2001년 12월 31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경찰관 20여명이 조그만 옷가방 하나씩을 들고 약간 묘한 표정으로 경찰청 고시계에 속속 도착하였다.
이들의 표정에는 '연말연시에 집에도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 지내는구나' 하는 아쉬움과 '경찰관을 하면서 승진시험 출제위원을 하는 것도 영광스런 일인데…' 라는 감정이 엇갈리고 있었다.
인원점검과 신고를 마치고 드디어 2주일간 생활하게 될 출제장에 도착!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첫 회의가 열렸고 시험 출제 지침이 전달되었다.
'출제 범위는 실무문제집을 위주로 하면서 기본서도 참고하고, 난이도 비율은 어려운 문제 30%·보통문제 50%·쉬운 문제 20%로 하되, 지난해 변별력이 부족했다는 일부 논란이 있었으니 문제 변형 비율을 높여 변별력을 높이도록 할 것' 등이었다
출제위원들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흘러가는 2001년의 마지막 날과 2002년이 시작되는 새해 첫날을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고민해야만 했다.
또 마음속에는 '이 문제에 따라 적게는 1년, 많게는 수년씩 고생한 동료들의 승진 여부가 결정되는구나'하는 심적 부담감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문제를 변형·창작할 경우에는 예문이 잘못 되지 않았는지를 따져보다 보면 한 문제를 내는데 1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문제들을 놓고 출제위원장이 문제를 선정하는 순간, 출제위원장은 '이 문제는 어디에 근거가 있나, 법 조항은 찾아보았는가, 이 예문은 확실히 답이 아닌가' 등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였다.
견본으로 인쇄된 문제지를 몇차례 교정한 후 계급별로 全과목 출제위원들이 모여 '계급별 검토'에 들어갔다.
출제위원들은 자신이 낸 문제를 읽고 정답은 무엇이며 왜 그 예문이 정답인지를 설명해야 했고 일부 문제는 수정·교체되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1년 농사를 평가하는 승진시험! 혹시라도 문제에 오류가 있어서는 곤란하였다. 이번에는 출제위원들이 직접 문제를 풀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분명히 'A'라고 해야하는데 'B'라고 인쇄된 곳이 하나 있었고, 또 일부는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기는 하지만) 표현을 약간 바꾸는 것이 보다 확실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지는게 아닌가?
그러자면 인쇄가 완료된 3만여장의 문제지를 모두 버리고 새로 인쇄해야만 했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1년간 흘린 땀과 노력에 비한다면 그 정도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고, 그때부터 출제장의 인쇄기와 인쇄팀은 밤새 시달려야만 했다.
인쇄가 모두 완료되자 문제지는 1월 12일 우리 출제위원들 곁을 떠나 각 시험장으로 출발하였다.
막상 문제들을 각 시험장으로 떠나 보낼 때의 마음은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 같은 것이었다.
'구류 14일'동안 좁은 공간에서 지내느라고 소화가 잘 안돼 밥은 항상 조금씩만 먹어야 했고, 일부는 변비 증상이 생겨 변비약을 찾기도 하였다.
또 치질이 생긴 某파출소장은 공중보건의를 모셔와 치료를 받기도 하였고, 어떤 중대장은 출제 기간중 집이 이사를 하여 마음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장시간 고생한 수험생들의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출제위원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결국 우리 경찰관들의 시험 승진은 직무와 무관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집을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 보다는 해설 등을 참고, 전체적인 맥락을 폭넓게 이해하여 실무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중요한 부분은 기본서와 구체적 법 조문까지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된다.
가정생활 등도 멀리한 채 시험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신 수험생 여러분 모두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하여 격려의 말씀을 드리며,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출제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제위원장
본청 법무과장 김정석
출 제 위 원
울산동부 방범과장 곽순기
수원남부 방범과장 이 훈
전북 청문감사관 이동민
경대 개혁추진단 강 욱
충남 서천파출소장 최정우
인천중부 수사과장 송민헌
부산연산 방범과장 남구준
전남 기획계장 김홍균
전주북부 사고계장 이후신
전북군산 조사계장 한상갑
전남광산 수사과장 송용욱
분당 경비교통과장 김근식
중앙 실무1학과 김태열
충남 2중대장 장진영
전북무주 경무과장 정재봉
경북 2중대장 최학도
종합 경찰학과 장대균
경북 정보통신2계장 임경칠
인천 남부 방범계 권춘석
경기의정부 조사계 권오현
인천 정보통신 김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