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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하지 못하였는지 내게 묻고 싶어졌다. 술과 담배에 변명에서 항상 세상 사람들은 나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았다. 잘못이나 거짓에도 왜 그것을 해야 했는지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난 스파르타식으로 행동을 하였음이 후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행동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가족을 움직일 생각을 하여야 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상력과 열정에 있으나 때로는 과거의 통계에서 미래를 보는 경우도 발생했다. 모든 현상이 이상하게 스쳐 지나간 후에 사회에서 가정으로 지인의 발자국이 움직이려고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정이 있어야 사회가 있다는 생각으로 소통의 철학으로 원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이제는 새롭게 나의 정신세계를 고쳐야 한다. 성당과 국선도를 배워서 몸과 마음의 정신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나에게 신이 보내준 6개월이라는 수양기간에 할 일은 금주와 금연에 처음에 목표가 있었다. 이러한 목표에는 약간의 허구의 지식이 나에 깔려 있기 때문에 목표의 수정도 필요하였다. 우선 금연을 한 경험은 3년이 넘어가고 있으나 금주는 2주차를 넘기 전이었다. 금주가 나에게 준 병은 약물중독으로 밤에 자지 못하게 나를 괴롭혔다. 대상포진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1년 6개월이라는 것으로 승리의 판정을 내리었다. 지금은 술과의 전쟁으로 유혹은 끝이 없이 나타났지만 참고 견디기에 오랜 힘인 인내가 필요할 것 같았다.
“국선도로 건강에 희망을 가져 보지요.”
잠이 오지 않기에 금주와 함께 시작한지 1주차를 넘기며 온 몸의 근육이 망가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이면 100% 국선도 운동에 출석을 하였다. 몸이 굳어 있기에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 오해가 있는 내용으로 내가 잘 듣지 못하는 것을 마음이 허락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에 웃을 수가 없었다. 훈련의 끝이 끝나고 나서 옆으로 다가가 내가 장애인임을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아, 이제 오늘 성당에 가서 인내의 힘을 받아와야 하지요.”
이제야 정신을 차리어 전 부인에게 다 내려놓은 기분으로 성당을 찾아갔다. 그렇게 몇 번의 통화를 하며 구석진 골목이 있는 성당에서 이해와 소통을 위해 내가 가지고 가는 희망을 선택하였다. 접수대의 사무실에서 성당에 다니는 자매님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과정으로 내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첫날이 일 년 전에 노무현 대통령 각하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신지 일 년이 지난날이었다.
“ 미워하지 말라.”
모든 것인 나의 탓으로 돌린 것처럼 자존심을 땅에 내려놓고 움직임을 가졌다. 혼자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상황이 슬프고 기쁘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접하며 가족과 소통이 되는 곳에 나를 가져다 놓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할 것은 외로워하기보다 마음의 성당인 몸을 깨끗하게 하여 죄를 지은 것을 소멸시키는 것이 급한 일임이 보였다.
“ 술을 마시지 말고 담배도 피우지 말아야 하지요.”
몸의 움직임과 행동에서 자기가 포기하는 것과 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에 금주와 금연을 목표로 세우며 현재 살고 있지만 불면증으로 몸살이 다가오면 열과 함께 온 몸이 아팠다. 약주인 술로 감독이 없이 나의 정신이 행방불명이 된 상태에서 지난 세월이 3년으로 잠을 잘 수가 없는 병은 지속되었다. 이 병을 쉽게 고치는 방법은 간단한 것으로 술을 다시 마시면 되었다. 마음이 가족의 행방으로 괴롭기에 금주를 중지하려다가 끝까지 버티는 작은 희망은 버리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금주와 금연의 결심으로 좋은 기억이 없잖아요.”
내가 나에게 한 질문이었다. 금연은 부인과 별거를 한 후 행하여진 행동이고, 금주는 홀로 사무실을 운영하며 술을 많이 마셔 사무실을 폐업하며 내린 결심이었다. 이런 한심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즈음에 전 부인의 강요에 의해 나의 마음에 병이 깊어져 기독교에서 천주교의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너의 십자가는 나보다 힘들지 않지요.”
인생을 살아가며 십자가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은 각각 자기 십자가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으로 보였다. 가장 무겁고 어려운 짐을 지고 가신 분이 예수님으로 생각이 되었다. 그 짐이 자식이 지고 가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나의 짐도 무겁지만 앞으로 더 가야하는 세상이 보이기에 그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 육신을 빌려 태어나게 한 부모의 마음이었다.
“이젠 내가 만 번 이상을 양보한 기독교에서 가톨릭으로 넘어가니 공부도 다시 해야 하고 행동의 반경을 많이 바꾸어야 하지요.”
염불도 되지 않는 길에서 짚신 세 벌이란 말로 성불했다는 이야기이다. 즉 신시불이든 짚신 세 벌이든 성불하겠다는 열망과 정성만 있으면 기도는 그것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정하는 역사가 있었다. 어떤 기도가 더 효과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쓸데가 없는 소리로 보아야 한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만 있다 하여도 가장 높은 태산을 옮길 힘이 생긴다. 하느님의 자비를 이끌어내는 인내 외에 왕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낮은 기도는 간절한 염원과 믿음으로 모든 정성을 다 올리면 이것이 정성이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면 세상에 대한 갈증에서 비움이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결과만을 보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 아닌 것이 다 원하는 것에 답은 틀림과 믿음이 있기에 나는 명상록이라는 책을 다시 잡았다. 나의 명상록인 성경책을 펴고 그 뜻을 새기면서 과거의 역사가 미래에 펼쳐져 오는 풍경이 보이면서 산으로 마음은 옮겨갔다. 앞으로 가는 것은 미지의 상태에서는 쉬운 것이나 알고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산에 올라 성경책을 펴고 내용을 읽고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흐르는 공기가 변하고 있는 세상을 느끼라고 순백색으로 변하고 있음이 보였다.
“무엇이든지 혼자 하는 것은 기분이 행복하지 않아요.”
산의 중턱인 나의 보금자리에서 이내 하산을 결심하였다. 성경책과 기도서 등의 짐을 꾸려서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걸어 집에 도착을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새벽이면 가는 훈련이 있기에 일찍 잠을 자려고 하였지만 신이 거부를 하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여 몸도 마음도 비참하게 패배한 정신으로 시청의 본 사옥과 지방의회 의사당 중간에 위치한 곳에 곳으로 찾아갔다. 국선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을 계산하면 9일 차 9번째 훈련을 잘하려고 사전준비를 하였다. 국선도의 운동 자체에서 힘이 들어가는 것은 많지 않으나 잘하려고 힘이 들어가 온몸이 피멍이 들거나 심한 몸살의 증세도 있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움직이는 행동을 보면서 내가 열심히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기에 욕심을 버려야 함을 알게 되었다. 운동의 동작에서 대충에 대강을 하려고 하면 지도하시는 도사님이 내게로 와서 지도를 하기에 힘이 잘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체력단련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나의 주특기인 마라톤과 나름대로 개발한 기본 운동을 하면 되었다. 나의 일상생활에 있었던 생활의 반복인 연속이 운동이다. 어렵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며 단전운동에 도전을 하였다.
“남이 하면 쉽고 내가 하면 너무 힘이 들지요.”(10. 08. 30)
돈이 없기에 외롭다고 외치면서 친구를 찾는 전화를 하지 못하였다. 간혹 심심하게 찾아오는 친구에게 조차 일이 있음이 있거나 있어도 취소를 하면 거절을 하지 않던 나에게 주머니를 얇아지면서 핑계를 만들어 만나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제는 나는 무엇을 하여야 다른 사람이 이해를 하지요.”
난 도서관에서 너무 고독하기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신앙심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착오를 하거나 성공을 하였는지 읽고 싶어졌다.
“무엇을 하든지 동전의 앞과 뒤가 있지요.”
책에서 신앙심이 강한 분의 내용을 읽으며 단순하게 가난해지면 부자가 되고 하늘을 소유한다는 생각으로 맑은 공기에 눈을 뜨니 언제 왔는지 계양산 중턱에 앉아 있었다. 밤을 새우며 책을 읽었다는 생각과 누가 보아도 깨끗한 공기에 마음이 잡혀 아침에 오른 산이 점심이 지나도록 초록의 빛이 잡았는지 머물고 있었다. 희망이 없는 세상이라도 무엇을 잡아야 하기에 잡고 싶기에 그곳에 머물러 가고자 하는 곳에 같은 방향으로 보는 모습에 있는 동경의 새로운 모습이 보고 싶지만 아무도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난 내가 상상한 만큼 행복하게 세상을 보고 싶어요.”
혼자 있는 시간에 그 곳에 있으며 행복하게 되는 경우도 자주하니 즐거움이 흐릿하여 지고 있었다. 힘이 없이 보내는 세월의 꿈속에서 꽃은 열매를 맺고 다시 새싹을 보여주며 희망을 주지만 날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절망감에 절망이 다가와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와 있는 경우는 나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였다.
“나는 왜 살고 있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모르지요.”
삶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기에 하루에 몇 번씩 말하며 슬픈 삶을 다 내려놓고 싶어졌다. 나에게 하느님이 추첨의 순간에 교회의 말씀 아니 성경의 말씀에 있는 “슬기”라는 말씀을 주셨다. 하느님의 뜻대로 판단하기도 하고 복권을 뽑았다 대박을 맞은 기분으로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과정에 아직 진행 중인 것에 대하여 부인이 오지 않았기에 "하느님이 뜻대로 판단하기로 하고 구원이 필요한 일에 이끌리게 하는 은사“라는 복권을 뽑았다. 나의 삶과 맞는 것으로 의심을 하면서 믿는 것까지 알고 있기에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 아, 이곳은 아직도 계양산 정상에서 중턱이다.”
계양산을 지나가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게 정상까지 거리를 45분에서 4시간의 등산코스를 알려 주면서 웃었다. 세상의 움직임을 마음으로 짐작하며 지금까지 온 거리를 짐작하며 중턱을 반경으로 잡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몸은 땀방울과 하늘의 햇살로 따갑고 근육이 갈라지는 고통을 겪으나 약 45분에 정상에 오르는 즐거움은 숨고픔으로 산의 공기나 지나가는 사람의 땀 냄새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욕심이 없이 살자고 하면서 산 너머에서 올라오는 희망의 연장인 소나무 향기에 조차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눈물을 지우며 그 곳에 지나가며 나는 옛날의 추억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짧게도 길게도 삶은 맛을 내기에 사람마다 다르게 오고 가지요.”
“인생을 짧게도 길게도 보지 않는다면 삶의 맛을 내기에 다르게 다가오게 할 수가 있지요.”
삶은 길게 보면 하나의 가치도 반복되기에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에서 내일로 젊은 영혼이 아니지만 꿈을 가진 사람으로 앞을 보면서 걸어갔다.
“그냥 열심히 살고 목적이 없는 곳에 쉬어야 하기에 쉼표를 찍고, 웃어야 하는 시간에 나를 담아야 할 집은 눈물이 담겨 있는 그릇에 불과하기에 지우고, 미소가 되어 있는 그릇에 향기를 채우며 탁류처럼 그냥 혼탁해진 인생을 흘려보내고 싶지요.”
하느님이 참으로 계신지 확인하는 순간에 나의 곁에 다가오는 풀잎의 향기에 그것이 내가 원하는 만남의 느낌이라면 더 이상 나의 가슴에 멍이 있기에 상처를 주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 중턱에서 산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이 오기를 바라며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느님,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니 참으로 간사하지요.”
나의 마음도 흐르는 물에 바위라도 아니 조약돌이라도 만나면 피하는 버릇이 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기에 산에 올랐지만 그 동안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나의 길에서 더 깊은 상처가 있기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에게 깊은 상처를 치유할 것은 종교이다. 사회생활에서 조차 삶의 짐에서 무게를 느끼는 십자가의 느낌에 종교생활에 앞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나 욕심이 없어졌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신앙고백에 대한 책을 읽으며 현실과 종교가 같이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진실하게 느끼며 알게 되었다.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은 기분이지요.”
며칠간의 고민으로 잠을 숙면으로 취하지 못한 관계로 온 몸이 아파오면서 눈의 신경이 상하였는지 눈물이 앞을 가리어 정면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현재 나의 상태는 놀고 있기에 머무르는 장소가 아닌 앞으로 가기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 더럽게 길게 가고 있기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생애에서 가장 길면서 짧은 말은 무엇이지요? 그것은 남이 다 알고 있는 것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죽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났다. 행복한 새벽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멀어지면 하는 생각이 바뀌어 열등의식으로 보내니 모든 것이 작게 보이는ㅌ 곳에 나를 끼워 넣은 모습이 환시로 보였다.
“가자.”
희망도 절망도 나의 생각에 있음을 느끼고 자고 난 곳에서 보인 침대의 흔적인 침대의 시트를 바르게 정리하는 과정에 시계를 보니 국선도장에 출발을 할 시간이 되었다. 혼자서 살아가는 집이라 출발을 하기 전에 안전점검을 세 번 이상 한 후에 지하철을 타기위해 걸어갔다. 운동으로 마라톤을 하는 경우에는 오전 5전 30분에 일어났으나 지금은 오전 4시 45분에 전화 벨소리에 일어나 얼굴을 물로 세수를 하고 나왔으나 일찍 나온 것이 아니라 빠른 걸음으로 갔으나 조금 전에 지하철은 출발을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지하철을 타기 위해 05시 38분으로 움직이지 말고 05시 45분으로 알고 움직이면 실수가 줄어 운동을 할 수가 있겠지요.”(10.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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