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부터 3일까지 전남 신안군 증도면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에서 영광군 염산교회, 야월교회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다.
6월 1일 새벽 6시. 공식적으로 39년 5개월로 실제 업무를 하나님 은혜로 마치게 되었다.
퇴근 즉시 준비하여 회원들과 합류하여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장로, 김 장로, 김 집사와 함께 부부로 동참하였다. 가는 도중 광주 송정역에서 전동차에 근무하는 이재현 형제를 태우고 증도에 도착했다.
섬이었던 증도는 다리로 잘 연결되어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다닐 수 있도록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새삼 나라의 부함이 자랑스럽다. 허기진 배를 장뚱어탕으로 채웠는데,짱뚱어는 보성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있다. 하긴 뻘이 이렇게 많은데.... 추어탕보다 부드러워 아침 스프용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식후에 가까이에 있는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에 들렸다
선 전체를 전도하여 기독인 90%나 되게 하셨다는데, 그 전도의 열정은 주민의 손과 발이 되셨다고 한다. 아프면 기도로 고치고, 조산원도 되며, 힘 든 자에게는 도우미 역할도 하고 전도하였는데 자신을 주님께 드린 삶이었다고 한다. 기념관 가까이에 순교 당한 장소가 있는데 공산당이 주민을 못살게 구니까 제지하는 과정에서 전도사임을 알고 '암닭' 운운하여 막말로 대하며 무참히 살해했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전도사님의 일대기와 성결교회의 역사를 정리하여 순교자 사적지로서 손색이 없다.
순교지를 지나 장뚱어 갯벌 체험장으로 가보았다. 넑고넓은 갯벌에 나무 다리로 건너편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너무 더운지 짱뚱어가 간간히 보이고 바닥이 말라 있었다.
그 다음은 소금 만드는 염전지대를 가보았다.
우리나라 소금 생산지 중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이 신안군이다. 시설은 낡아보이지 않았다. 전망대에 오르니 염젼과 갯벌이 널리 펼쳐져 보인다. 아마 해질 무릎이면 장관이겠다 싶었다. 주변에는 소금으로 체험할 수 있는 카페, 박물관, 시판대 등 잘 구성되어 있었다. 박물관은 요금이 3000원이나 되었다.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여기에도 다양한 소금을 뿌려 먹게 하였다. 특이한 경험이다.
이제 2박을 해야 할 팬션에 들었다. 이름하여 '솔꽁' 이 지방 사투리란다. 솔 숲이 우거져 있고, 동화 속에 난장이 집 같이 아담하며, 작은 저수지가 있고, 토끼가 제멋대로 다니고,위협을 느낄 수 없는 개 두 마리, 젊어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는 팬션이다. 작은 저수지에는 가물치가 있는데 딱 한 번 큰 놈을 보았다.
숯불 바베큐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류 장로의 정년을 축하하며, 재미있는 천국의 유흥을 즐겼다.
이튼 날, 새소리가 잠을 개운다. 아! 이런 행복을 누리게 하시다니....
숲 주변을 산책하고,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오늘은 문 전도사의 걸었던 노두길로 화도를 돌아본다. 화도는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라고 한다. 곳곳에 안내문이 보인다.
노두길.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면 섬과 섬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물이 있는 곳에는 돌을 놓아 임시 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약 400 미터 정도의 다리가 되어 보인다. 세 군데로 차량이 피할 곳을 있으며 반드시 바다물이 빠졌을 때만 다닐 수 있다. 화도 주변에 작은 섬들을 연결하여 둘러보게 하였다. 이상하게도 고사리가 아직도 먹을 만하게 있었다.
이제 반대편에 보물섬으로 간다.
해적이 숨겨 놓아서 보물섬이 아니라 신안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바다물 상태는 잔잔해 보이나 물속안에서 놀이 일어나는 곳 같은 곳이 더러 보인다. 가까이에 배 모양의 유물 전시관을 전시하고 작은 동산을 각종 수목으로 만들어 놓았다. 유물은 모조품으로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점심은 왕바위 식당에서 낙지전골로 해결한다. 왕바위 지역은 한창 볼 것을 조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진곳에 볼만한 것이 없다면 어찌 관광객이 오겠는가.
점심 후 이재현 형제가 급히 서울로 올라 간다. 지난 해 총무로 선교회를 섬겼다.
여행의 하일라이트 해수찜!
처음 해보는 해수찜. 해수탕으로 몸을 살짝 달구고 1시간 반 동안 해수짐질을 하는데 처음에는 답답해서 힘들었다. 그런데 술을 먹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처럼 좋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부해수를 부어주고 암마도 해주고 한다면 팀웤을 이루는데 좋은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리고보니 주차장에 차들이 교회차량이 많았다.
저녁은 생선구이와 삼겹살이다. 생선은 이 장로가 굽고 삼겹살은 김 집사가 구웠는데, 너무 잘들 하신다. 부인들이 돕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는지 너무 늦지 않게 식사 시간을 잘 맞춘다. 이후 천국의 여흥은 즐겁기만 하고....
아쉽지만 부산으로 가야 한다. 가기는 가지만 영광군에 있는 야월교회와 염산교회를 보고 가잔다. 이곳까지 또 오기가 쉽지 않다고. 사실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원래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서 그런가.
그렇지만 같은 시대를 살면서 우리의 아픔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지방도로로 가니 좀 피곤하다. 그러다가 시골에 맞지않은 건물이 보였다. 염산교회!
지명이 좀 이상하지만 일제 때 섬이었지만 주변을 매립하여 섬들을 연결했단다. 그런데 염산교회에는 엄청난 순교의 역사가 있었다. 625 때에 공산당에 의해서 김방호 담임목사님과 가족을 포함하여 교인까지 77명이나 순교 당했다. 목사님은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았지만 교회를 버리고 갈 수 없다고 피난을 하지 않다고 일가족 모두 순교를 당하셨다. 죽음을 당하시면서 '몰라서 저러니 저들을 웡망하지 말라'하시며 '이렇게 살면 안 되니 곡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시면서 숨지셨다 합니다. 죽이는 것도 잔인하여 새끼로 굴비 엮듯 묶어서 수장시키고, 대창으로 찌르고, 나무로 패고, 생매장으로 파 묻고 등등 어쩌면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 교인은 미국놈 스파이라는 미영하라 찾는데로 한 두 명 씩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했답니다. 4살난 아이가 무서워 우니 11살 언니가 '천국 가니까 우지 마라' 하면서 달래며 끌려갔다고 합니다. 이 증언은 당시 교인 아닌 사람들이 증언하여 주신 내용입니다.
염산교회는 장로교 합동 교단의 첫 순교사적지 1호로 선정되어 순교신앙을 전하는 교회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습니다. 주변에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5분 정도 더 가니 야월교회를 찾았습니다.
야월교회는 교인 65명 전체가 순교한 곳이었습니다. 역시 공산당에 의해 철저히 짓밣힌 교회 입니다. 그래도 2년 후 다시 시작하여 오늘에 그 사건을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야월교회를 보고 나서야 기독인 순교자 추모를 위한 사적지 조성이 시작된 것같이 보였습니다. 이곳에는 야월교회 교인들의 생활상과 순교 당사신 분들, 그리고 기독인 순교자 195명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뜻 있는 분에 의해 귀중한 성경 서적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하신 장로님도 그 당시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된 것임을 아님을 알고 그 은헤를 감사하며 그 축복으로 산다면 헌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년 감리교 성지순례를 통해 순교하신 분들의 믿음의 도전이 오늘 성결교, 장로교 순교자들의 믿음을 보게 되었는지. 함께 한 장로들도 믿음을 다시 점검합니다. 그리고 김집사도 지난 주 장로 선거가 잇었는데 피택되었다고 합니다. 장로 고시가 남아 있고 노회가 있으니 그때까지는 준비를 잘 해야 하지만 역시 올해 정년을 맞이 하는데 약간의 우려가 있습니다.
중도 성지 순례를 마치면서 직장 선교의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이 되어야 하리라 다짐하며, 정년이 되더라도 함께 해야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끝까지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