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산행기]
월출산 천황봉,
임 그리워 흩날리는 치마폭런가!
양 승 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둥근 둥근 달이 뜬다/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
이 뜬다/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달을 보
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지화자자 좋구나서호강 몽햇들에 풍년이
온다/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달 보는 아
리랑 임 보는 아리랑
흥타령 부네 흥타령 부네/목화짐 지고 흥타령 부네/용칠 도령 목화
짐은/장가 밑천이라네/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달 보는 아리랑 임 보는 아리랑
꾀꼬리 같은 하춘화 님의 '영암 아리랑'이 귓전을 맴돈다. 소리없이
입 속으로 가락을 따라 부른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11월 첫 주말, 무박 이틀 일정으로 월출산 종주 산행을 가자 하여
정해진 날로부터 생겨난 버릇이다. 회원님들에게 보낼 안내문을 작성
하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는 내내 월출산 보름달은 어떻게 뜰까, 마음
이 먼저 월출산으로 달마중 간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월출산! 달 뜨는 월출산!
대체 달 뜨는 월출산이 얼마나 멋있기에 노랫가락이 다 나왔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간다 간다 하면서 짬을 내지 못하다 산
악회에 발을 들여놓은지 어언 15년 여, 산행 162회 째 만에 드디어 월
출산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약속 된 그 11월 첫 주말, 4일은 공교롭게도 음력으로 9월 열 나흘,
따라서 보름달은 못 봐도 살짝 덜 찬 보름달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게 어인 일인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익일인 보름날
은 강풍까지 불어닥친다는 기상대의 일기 예보가 산행을 떠나는 일행
의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다. 비록 땅거미 물러가는 여명과 함께 산행
을 시작하게 되는 관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볼 생각은 애당초 접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월출산 경개를 보면서 마음 속의 둥근 달을
떠올려 보리라 마음 부풀렸건만 비가 오고 강풍까지 불어닥칠거라니,
하늘이 무심한 건가?
어쨌든 비가 온다 해도 강행군은 시작되었다. 4일 밤 11시50분 인
천예술회관 앞에서 전날 미리 도착해 있는 3명의 회원을 제외한 15명
이 15인승 렌트카에 탑승, 무박이틀 간의 월출산 산행길에 올랐다.
서해안 고속국도를 달리는데 하늘이 월출산 산행임을 아는 지 잔뜩
낀 구름 사이로 음력 9월 열 닷새 첫 새벽의 보름달을 잠깐 잠깐 보여
준다. 숫자 때문에 일제치하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731부대가 떠
오르게 하는 7310m 서해대교를 지날 때에는 차의 엉덩이가 강풍으로
트위스트 춤을 춘다. 휴게소에서 쉬엄쉬엄 휴식을 취하면서 고속국도
를 달린 차는 함평 나들목에서 지방 국도로 바꾸어 달려 영암을 지나
천황사 입구 쯤에서 좌표 잃은 배처럼, 더듬이를 잃은 개미처럼 제자
리를 맴돌아야 했다. '천황사' 방향 이정표가 갑자기 사라져 미로 속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5시 전후의 신새벽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
고 겨우 불이 켜져 있는 모텔을 찾았으나 웬걸 불만 켜져 있을 뿐 사
람의 기척은 없다. 할 수 없이 또다시 헤매다가 겨우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만나 물어본 즉, 긴가 민가 하며 일러주기에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신반의 하며 손가락질 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어찌 하랴! 하지만 또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고 만다. 그러다 어찌어찌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관광 안내소를 발견하게 되어 물어보니 턱짓
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20,000원을 내라 한다. 영문도 모르고 밖을 내다
보고 있던 뒷좌석의 사람들은 의아함에 앞서 황당함을 느낀다. 길을
일러준 대가가 20,000원이란 말인가, 또다시 헷갈리고 있는데 주차비를
포함한 입장료라 한다. 이럴 수가! 돈을 건네자 입장권을 내민다. 뒷걸
음치던 황소, 어쩌다 개구리도 잡더라고 헷갈리다 보니 용케도 월출산
천황사 입구를 찾은 셈인데 사위가 아직도 캄캄하기만 해서 정말 제대
로 찾아 들어서기나 한 것인가 싶을 정도다. 다시말해 도무지 월출산
입구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차가 멈춰선 곳은 차 몇 대 주차할 수 있는 작은 주차장이다. 천황
사 청소년 수련장 이정표가 보이고 저만치 화장실도 보인다. 천황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선발대(?) 3명의 회원과 합류하기가 쉽지
않다. 휴대전화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필자 혼자 입구 쪽으로 내
려가다 보니 주차장 방향 이정표가 또 있다.
어쨌든 두 번에 걸쳐 내려갔다 올라오는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모든
회원과 합류할 수 있었다.
어슴프레한 가운데 주차장에서 작은 조식 파티가 이루어졌다. 시인
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임회장이 몇 가지의 나물과 찰밥을, 45세에 늦
둥이(현재 6세)를 낳아 산행할 때마다 사학가인 부군과 함께 참석하는
수필가 장선생님이 준비한 보쌈용 고기와 김치 등이 펼쳐졌고, 끓는
물을 부은 사발면도 인기 있는 메뉴로 올라왔다. 그야말로 야외에서
이만하면 진수성찬, 마치 먹으러 온 사람 같다. 그러나 산행할 때 좀
과하게 먹으면 오히려 불편하다는 것을 경험한 필자는 더 먹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적당량만 먹는다.
식사를 끝내고 산행을 시작한 시각은 06시 40분, 그새 월출산의 발
치께가 어느 정도 밝아 있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이 오솔길 같아보이는
것은 순전히 시누대(산죽) 덕분인 것 같다. 따뜻한 남쪽을 대변이라도 하듯
키 작은 시누대가 등산로 양쪽에 잘 자라 있다. 한데 몇 걸음 놓았나
싶었는데 오호라! 시인이시며 교장선생으로 정년 퇴임을 하신 74세의
한선생님의 등산화 한쪽 뒤축이 자기는 왜 굶기느냐는 듯 커다란 입을
벌리는 게 아닌가. 오래 전부터 월출산을 꼭 오르고 싶으셨다며 대중
교통을 이용해 전날 미리 내려와 인근에서 1박까지 하고 나오신 마당
인데 시작부터 난감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그러나 미리 내려와 1박
한 게 억울해서라도 기어이 산행을 하시겠다며 배낭에 매어져 있던 비
상용 끈을 풀어 감발을 한 후 산행을 강행하셨다.
얼마쯤, 대략 한 30여분 쯤 갔을까,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병풍인
양 올려다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시인이시자 의학박사이고 인천문
인산악회를 태동시키신 임박사님이 가던 길을 멈추며 관자놀이를 감싸
신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몸을 부리려 해 마침 뒤에 따라
가던 필자가 가까스로 잡아 가만히 눕혀 드렸다. 난시 심한 돗수 높은
안경이 벗겨져 떨어지고...... 잠시 정신을 놓아버리시는 게 아닌가. 마
침 동행하신 사모님까지 곁에서 기겁을 하시고, 가까이에 있던 회원
모두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팔과 다리 등 주무를 수 있는 모든
곳을 주무르기도 하고...... 안전을 책임 지어야 할 필자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건강을 회복하신 임박사님과 사모님)
잠시 뒤, 4, 5분 쯤 흘렀을까. 다행히 정신을 수습한 임박사님이 ?I
찮다, 걱정 말라, 잠을 못 자고 난시가 심해 어지러웠을 뿐이다, 며 사
모님과 회원들을 안심 시키신다. 작년 이맘 때쯤 같은 방식으로 경북
주왕산 산행을 할 때는 끄떡 없으시던 분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무슨
연유인지 차내에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느라 한 숨도 눈을 부치지
않으시더니 그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비록 연세가 77세이나 그
어느 누구보다 강한 체력을 가지신 분으로, 몇 해 전부터 만년설로 유
명한 킬리만자로를 필두로 일본의 3000m가 넘는 후지산, 6000~7000m
급 티베트의 聖山 등도 정복할 정도로 건강체력을 자랑하던 분이었는
데 잠을 자지 못한 것으로 인해 결국 기대했던 산행을 포기하셔야 하
는 상황이 빚어지고 말았다. 60년대부터 단식요법을 몸소 실천 체득하
며 연구, 단식요법 책자를 우리나라 최초로 발간한 분으로서 요즘도
그 연세에 매해 단식요법을 실천해 오고 있으신 걸로 아는데... 그렇게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시는 분에게도 잠 만큼한 보약은 없나 보다. 하
룻밤 잠을 못 이루었다고 쓰러지신 것을 보면......
아무튼 그로 인해 임박사님 내외분과 승용차로 미리 내려와 인근에
서 1박까지 했던 법무사이자 시인인 임법무사님과 동행인, 그리고 시
인이자 산악회 총무인 지선생님, 이렇게 5인이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
을 해야 했다.
(구름다리를 향해 철계단을 오르는 임시인)
잔뜩 걱정을 안은 채 당신 몸은 당신이 잘 아니 아무 염려 말고 산
행을 계속하라는 임박사님의 당부를 들으며 나머지 일행은 정상을 향
해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산행을 하며 능선마다 펼쳐진 장엄한 기암
괴석의 사열을 바라보며 걷는데 구름 저편으로 떠오른 아침 태양이 보
름달인 양 둥그런 모습으로 잠깐이나마 보여주는 게 아닌가. 이토록
태양까지 달의 모습으로 드러내 보여주기에 산의 이름이 월출산인가.
비록 맑은 날 떠오르는 보름달은 아닐 지언정 흐린 날 떠오르는 태양
이라도 보름달인 양 착각하며 잠시 보았으니 이런 횡재가 또 어디 있
으랴! 허나 구름다리(482m)까지 오르기 전에는 임박사님의 건강 생각
에 마음이 무거워 제대로 경치 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구름다리(지상 120m)를 쳐다보며 오르는
깎아지른 계단과 주변의 기암 괴석들은 모든 등산인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바위 꼭대기 구름다리 이쪽 저쪽에서 내려다 보이고
건너다 보이고 올려다 보이는 온갖 형상의 바위 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한데 이쪽 방향 저쪽 방향, 함께 오른 사람들 단체사진까
지 여러 차례 찍었으나 아뿔싸! 그 곳을 지나고 보니 필자의 디카 설
정이 자동으로 되어 있지 않고 제멋대로 돌아가 있는 게 아닌가. 보나
마나 엉터리 사진들일 게 뻔했다. 수시로 확인해야 함을 미리 알고 있
었음에도 경치에 매료 되다 그만 깜빡 잊고 마냥 신이 나서 셔터만 마
구 눌러댄 꼴이라니!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앞서 속부터 상했다.
하지만 어쩌랴, 회원들에게 사진을 다시 찍기 위해 되돌아 가자 할 수
도 없는 노릇, 임박사님이 안전하게 내려가 임법무사의 승용차를 이용
인근의 관광지를 돌아보기 위해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져 이제부터 산행다운 산해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름다리 건너선 임회장과 동행인)
기암괴석 바위들을 돌고 돌기를 몇 차례, 사자봉(667m) 아래 도착
하자 한 발 앞서 사자봉에 올라갔다 내려온 회장이 봉 하나를 정복했
으니 이곳에서 반환점을 찍겠다며 무사한 모습으로 도갑사에서 만나자
며 동행인 한 사람과 내려갔다. 함께 교대하며 운전하기로 한 조카가
먼저 천황봉 방향으로 가 있는 상황이라 부득이 전 회원을 위해 회장
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산행이 끝나는 지점으로 차를 대야 했
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회장이 차처한 셈이기도 했다. 필자는 다 함
께 산행하기 위해 25인승 미니버스와 기사를 쓰자고 했으나 회장은 비
용(최하 600,000원을 요구)이 지나치게 비싸다며 당신이 직접 운전하겠
노라 우긴 것이다. 회장은 대형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대형면허까지
소지한 터라 곧잘 희생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산행을 함께 하
지 못해 아쉬웠다.
(기암괴석:산 전체가 거의 이와 같은 기암괴석들 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장 및 동행인과 헤어져 코 앞에 보이는 사자봉을 눈으로 오른 후
곁으로 돌아 가려는데 필자의 휴대폰이 경쾌한 리듬으로 손길을 그리
워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M여론조사 기관의
장으로 재직 중이신 선발대 김선생님의 전화다. 필자의 현 위치로부터
600m 전방에서 뒤에 오는 우리 일행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였다.
어차피 많이 뒤쳐져 있으니 여유 있게 경치를 만끽하며 천황봉으로 방
향을 잡으시라 일렀다. 뒤쳐진 일행이 아무리 빨리 가 따라 잡으려 해
도 소용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평지의 600m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에
게는 여섯 살 짜리 꼬마 공주가 칭얼거림 없이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한두 번쯤 다리가 아프다며 꾀를
부릴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되레 어른들보다 더 잘 올라가고
내려갔으며 또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온갖 기암괴석도 경이로웠지만
꼬마 공주가 이 험하고 긴 산행을 아장아장 잘도 걸어 가는 것을 본
마주 오던 산행인들이 장하다며 이 것 저 것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
을 주기도 여러 차례 했다. 엄마인 장선생님은 얘하고 다니면 굶어 죽
지는 않겠다, 고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뒤이어 하는 이야기가 산이 험
하고 긴 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원래 아이를 시집갈 나이가 된 언니에
게 부탁하고 나올 생각이었단다. 하여 엄마 아빠 서울 가서 공부하고
오겠노라며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니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아빠는
공부하러 간다면서 그런 옷(등산복) 입고 가?' 하더라는 얘기다. 엄마
아빠의 산행에 당연히 함께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엉뚱한 소리를 하
니 아이로서도 황당했을 것은 뻔한 이치, 하여 꼼짝 없이 데려 왔노라
는 얘기였다. 그만큼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산행을 즐기는 엄마
아빠 따라 전국의 웬만한 산은 다 다녔을 정도로 산에 익숙해 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암괴석을 대여섯 개 정도 돌고 돌아 통천문
아래 도착해 있는데 선발대가 이미 천황봉에 올랐노라며 기다리겠다는
전화가 왔다. 통천문, 이 문을 지나면 하늘과 통할 수 있다 해서 통천
문이라 한다는데 날씨가 맑지 않아 과연 하늘과 통할 수 있을지 의문
이다. 역시 막상 통과해 본 통천문 저쪽 하늘은 뿌옇게 끼어 있는 구
름일 뿐이어서 하늘과 통하기는 애저녁에 틀려버렸고 다만 점점 거세
어지는 바람에 습기가 없는 듯해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때문에
미리 준비했던 우의를 써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될 터였다.
(등산화에 감발을 한 채 완주를 하신 시인 한 전교장선생님)
얼마를 또 가까이와 먼발치로 기암 괴석에 취해 걷고 있는데 선발
대로부터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어디 쯤이냐. 한참 기다리다 보니 추워
서 안 되겠다며 아직 멀었으면 먼저 출발하겠다는 전화였다. 그러나
우리의 위치를 전해들은 선발대는 얼마 안 남았으니 기다리겠노라 한
다.
(천황봉에서 한 컷, 바람이 불어 머릿결이 엉망이다.)
10시 10분. 드디어 천황봉(809m)! 월출산 암반들이 대부분 맥반석
으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에는 나라의 천제(天際)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기도발이 잘 받는 산. '신령한 바위'라는 뜻의 영암(靈巖)
이라는 지명도 태어나게 했다는 월출산, 그 최고봉 천황봉에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30분만에 총 18명 중 최종 11명이 기어이 천황봉에 오
른 것이다.
사방이 탁 트여 바람이 거세다. 동으로 보나 서로 보나, 아니 북으
로 보나 남으로 보나 온통 기암 괴석들이 능선을 타고 때론 수직 비탈
을 타고 봉을 향해 기어 오르는 모습들로 장관이다. 거대한 자연의 수
석 전시관이나 진배 없다. 감히 필설로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보이
는 그대로를 한 장의 사진으로 산 전체를 담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니 어쩌면 사진보다 산수화로 표현해 놓는 것이 더 아름
다울 것도 같다. 정조의 명을 받고 姜世晃, 姜 , 姜信, 任希養, 姜奎彦
과 동행해 금강산을 여행하며 산수화를 그려 바친 단원 김홍도 일행과
함께 였다면, 아니 그에 앞선 겸제 정선과 함께 였다면 그들은 또 어
떤 모습으로 이 월출산을 화선지 위에 재 탄생시켜 놓을까. 궁금도 하
다.
그 와중에도 꼬마 공주는 둘러다 보이는 주변 경치 만큼이나 관심
의 대상이다. 아마도 오늘 천황봉을 오른 사람 중에 최연소임에 틀림
없지 않겠느냐는 말들이다.
바람이 너무 불어 기념 촬영하기도 쉽지 않다. 디카를 든 손이 바
람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컷 사진을 찍는다. 오래도록 간직
하려면 멋지게 찍어야 하는데 인천문인산악회의 단체 사진은 임회장의
조카가 찍어주었다. 본인은 사진 찍기를 극구 부인했다. 내심 회원이
아닌데 무슨 사진을 함께 찍겠느냐는 것이다.
땀이 식어 가는 옷 속으로 들어간 바람 탓인지 추위 때문에 길게
있을 수도 없어 바람이 적은 쪽을 골라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 귤과
배, 전 인천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소설가로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
으며 문인산악회의 영구직(?) 출판부장 직함을 맡고 있기도 한 서선생
님(오늘이 마침 26주년 결혼 기념일이시라는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
다.)의 배낭에서 나온 때깔 보드라운 아이보리 색 밀빵, 이 밀빵은 호
텔의 양식 메뉴에도 가끔 나오는 것으로 비유가 좀 그렇지만 마치 송
아지가 알맞게 떨어뜨려놓은 쇠똥같이 생겼다. 추운 날씨 탓인가, 빵이
좀 굳어 있어 먹기에 불편했지만 그래도 요기하는 데는 그만이다.
(26주년 결혼기념을 축하드립니다.)
천황봉 정상과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하산길을 찾는데 이정표가 없
다. 분명 올라온 길로 하산할 수도 있겠으나 그 길은 애초에 예정된
길이 아니다. 필자에게도 산행 안내 책자가 있었지만 선발대로 올라왔
던 회장의 조카가 비닐 속에 든 한 장 짜리 안내지도를 펼쳐 보이며
우리가 올라온 반대편이 예정했던 도갑사 방향이라 한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몇 미터 내
려가니 제대로 된 길이 갈 길을 인도한다. 한데 이게 어인 일인가, 아
니 어인 장관이란 말인가. 정상에서도 강한 바람에 추위를 느낄 정도
였는데 거기에 훨씬 더한 기세로 얼굴을 때리고 숨조차 쉬기 어려울
지경에 저 멀리 산자락 끝의 운해가 기암들을 휘더듬고 올라와 우리가
내려갈 방향을 온통 하얗게 뒤덮으며 금새 정상까지 치올라오는 게 아
닌가. 어느 여염집 아녀자가 하얀 속치마 단을 끌어올려 불거져 나온
젖가슴(기암들)을 가리며 雲霧를 추는 듯하다. 누구를 그토록 그리워
하이얀 속치마 바람으로 산허리를 더듬으며 햐얀 춤을 추는가. 흔히
봄은 여성의 계절이요,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 한다. 봄에는 여성의
氣가 충만하고 대신 남성의 기가 약해지는 고로 봄에는 여성이 남성에
게 사랑을 고백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고, 반대로 가을에는 남성의
기가 높아 약해진 여성의 기를 상대로 사랑을 고백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말인데 천황봉을 오른 이 멋진 오늘, 아직 가을이 다 가지 않
았으니 남성들에게는 충천된 氣가 남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터인데,
어찌자고 여염집 아녀자가 속치마 바람으로 이 천황봉 가랑이(계곡)를
속속들이 휘더듬고 있단 말인가. 한껏 오른 기를 보듬어 주기 위함이
런가. 전형적인 육산, 즉 대표적 陰山인 지리산 이래 죽 음산으로 이어
지다가 오로지 이곳 영암에서 양기 충천한 듯 온통 거대한 수석 전시
관의 모습으로 불끈 솟아오른 월출산 천황봉이기에 지리산으로부터 이
어져 온 그 淫氣를 어찌 주체 못한 나머지 이리도 하얀 속치마 바람으
로 천황봉을 오르고 있는 것인가. 오늘 이 천황봉을 오른 남정네여, 곁
에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거든 월출산에 떠오를 음력 구월 열 닷새 보
름달의 둥근 마음을 빌고 하얀 속치마폭에 휘감기는 천황봉 기를 빌어
한번쯤 사랑을 고백해 보시라! 그리 하면 여느 때보다 쉽게 사랑을 얻
을 수 있으리니......
각설하고, 볼에 휘감겨 오는 여인네의 속치마에서 스리슬쩍 음기를
맡으며 아슬아슬한 철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저만치 미사일을 닮은 미
사일바위(?)가 보이고 얼마 안 가서 거대한 남근 바위가 하늘의 열 닷
새 보름달을 상대로 용두질하듯 하며 등산 코스 길목을 지키고 있다.
흐흠! 그러면 그렇지! 여염집 아녀자의 속치마가 아무런 속셈없이 이
험준한 천황봉을 휘감을 리 있겠는가. 백일하도 아닌 불과 1시간도 못
되어 이렇게 다 드러나고 말 것을. 아, 이 거대한 거시기!
(미사일 바위)
사진을 찍어 주고자 수필가 장선생님의 부군인 사학가를 곁에 세우
니 거시기가 너무 커 조그맣게 보인다. 아빠의 품에 안긴 늦둥이 꼬마
공주도 신기한 듯 카메라 렌즈를 보는 게 아니라 거대한 남근석을 올
려다 보고 있다. 솔직히 이만큼 큰 거시기는 처음 보고 이만큼 잘 어
울리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다. 가히 달 뜨는 월출산이기에 이토록
잘 어울리리라 싶다.
(여근석:천왕봉에서 하산하다 보면 글과 다르게 여근석이 먼저 있다.)
(남근석)
(천황봉의 히로인 꼬마공주와 엄마 아빠)
그러나 다시 만난 여근석은 남근석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음
산이 아닌 양산에 있는 여근석이라 남근석 만큼 크지 못한 것은 아닐
까. 아무리 그러거나 말거나 좀 전에 보았던 남근석과 이 여근석이 하
얀 치마폭 속에서 사랑을 나누었기에 천황봉이 탄생 되었을 것이라 여
겨 본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그러나 개X에 보리알 끼듯 크고 작은 돌
맹이들이 갈라진 여근석 틈 사이에 끼워져 있어 필자의 상상을 짓밟는
다. 필시 지나가던 등산객들의 짓궂은 장난일 게다. 한데 그로 인해 머
잖아 이 여근석의 틈새가 훨씬 더 벌어질 것만 같다. 끼워진 돌들이
세월이란 나이를 먹다보면 쐐기 역할이 되어줄 게 분명한 것이다. 생
각 같아서는 모두 빼내어주고 싶지만 그 행위 자체가 보는 이로 하여
금 엉뚱한 상상을 하게 할 것이고, 갈길 바쁘다는 핑계로 끼워져 있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 아니겠느냐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그냥 지나친
다.
(수없이 많은 기암괴석)
어느 사이 운해의 사라짐을 느꼈던가. 기암에 취하고 지형지세에
취하다 보니 그새 감쪽같이 사라진 운해도 느끼지 못하고 이제야 깨닫
는다.
(맨 앞쪽이 필자)
계속 이어지는 기암봉을 돌고 넘고, 바람인 양 휘도는데 곳곳에서
발길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더디게 한다. 도대체 얼마를 돌고
돌아 넘고 넘어야 기암괴석 수석 전시관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이 산을 벗어나기 전에는 절대 기암괴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여겨지기도 한다. 산행 코스 또한 기가 막히게 나 있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둔산에서의 쓸데없는 철계단
과 비교해 보면 이곳 월출산에서의 계단들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
는 듯하여 자연을 훼손했다기보다 차라리 그 일부가 되어 있는 느낌이
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은 있는 법, 기암들의 수효가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천황봉을 떠난 지 2시간여 남짓 된 12시 35분 미왕재 억새밭에
이르렀을 때 쯤에는 발길을 잡고 눈길을 끌던 기암들이 우리가 가야
할 앞 길에 간 곳 없다. 오래 전 화재로 잿더미가 된 뒤 자연 발생적
으로 억새들이 제 세상인 양 밭을 이루고 있어 이름조차 '미왕재 억새
밭'으로 새롭게 얻게 되었다는 입 간판이 우리의 시선을 끌 뿐이다. 아
마도 등산객들의 부주의으로 인해 빚어진 참극(?) 이후 복원되어 가는
자연의 과정이리라. 산 자체는 별 볼품 없으나 정상에 30만여 평의 억
새 군락으로 유명한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에 비한다면 어림없는 규모
였지만 그래도 이만큼한 이름을 얻기까지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생
각해 보면 아타까움이 앞선다. 산을 사랑하는 산행인들이여, 제발 불조
심해 주시기를.........!!
(미왕재 억새밭)
억새밭 사이로 가로질러 난 내리막길을 따라 호젓한 나무 밑 사이
길을 걸으며 기암괴석 대신 모처럼 만난 화사한 붉은 단풍에 유혹을
당하기도 하며 1시간 넘게 걸은 13시 50분에 도착한 곳이 도선국사 비
각이다. 오랜 세월을 방증하듯 거대한 바위에 글씨가 언뜻 보아 잘 보
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치 입적한 고승들의 선산인 양 즐비한 사리
탑들이 잠시 필자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역시 사학가인 수필가 장선
생님 부군의 눈빛이 비각과 사리탑에서 남다름이 느껴진다.
(도선국사비각)
아빠가 사리탑에 넋을 잃는 사이 30여 분 전쯤부터 아빠의 등을 오
르내리던 여섯살박이 꼬마 공주가 엄마의 부재를 뒤늦게 깨달았는지
엄마 어디 있느냐고 잠시 칭얼대기도 한다. 처음 입산 시작해서부터
종주 끝나기 직전까지 거의 전 구간을 어른들과 함께 걸어 완주한 여
섯살박이 꼬마. 어른들도 오르내리기 힘든 곳이야 아빠에 의해 부축을
받았거나 들어올려지고 끌어올려지고 했지만 끝까지 함께 동행한 필자
로서는 생각만해도 기특하고 대단하다. 아마도 성인이 되어서는 6대륙
최고봉을 밟고도 부족해 남극, 북극까지도 정복하는 최초의 여성 산악
인이 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도갑사 도착 직전의 단풍을 배경으로 다리 난간에 앉아 한 컷)
드디어 14시 00분 산행의 종착지 도갑사에 이른다. 산행을 시작한
지 총 7시간 20여 분만이다. 이런 저런 연유로 시간은 좀 늦어졌지만
되레 그 덕분에 산의 요모조모를 살필 수 있는 여유를 얻었지 않았을
까 싶다. 다만 전 인원 모두가 함께 종주를 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
고 언젠가 후일 또다시 산을 올라보리라 마음을 다진다.
아버지가 식당을 개업한지 20년이고 아들에게 전수한지 10년이 되
었다는 도갑사 입구의 '호남일반음식점'에서 산채비빔밥으로 하루의 산
행을 마감하는 뒤풀이를 했다. 그러나 식당에서의 뒷풀이도 뒷풀이지
만 그 식당 앞의 고목, 적어도 6,7백년은 되었음직한 팽나무가 더욱
시선을 끌었다. 그 생김생김이 예사롭지 않아 역시 월출산의 그 웅장
하면서도 섬세하기까지 한 기개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조선
시대 영상 유성룡의 고향이요 반촌인 하회마을의 천년 넘은 느티나무
와 함께 필자의 뇌리를 오래도록 잔영으로 각인 될 것 같다.
(도갑사 입구 음식점 앞의 팽나무)
올라갈 길을 생각해 부지런히 식사를 마친 후 15시 20분에 도갑사
입구를 떠나 출발지인 인천예술회관에는 21시 45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내내 커다란 은거울 같은 월출산 보름달이 차창 밖으
로 따라와 달 뜨는 월출산, 그야말로 제대로 보고 오는구나, 생각 되어
내려갈 때 밤새 꼬박 한 숨도 자지 못했건만 졸립지도 않고 필자의 마
음에 달이 뜬다. 하늘에도 월출산 달이 뜨고 필자의 마음에도 달이 뜨
고....... 달이 뜬다 달이 뜬다/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나지막
이 속으로 흥얼흥얼 거려본다.
물론 연세가 있으신 시인 한전교장 선생님과 건강문제로 산행을 포
기하셔야 했던 임박사님과 사모님께서는 승용차를 가지고 전날 내려가
셨던 임법무사님 덕분에 편안히 모실 수 있어 올라오는 내내 필자의
마음이 가벼웠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건강을 되찾아 인근의 왕인박사 기념관 등 관광지를 둘러보시는 것
으로 만족해 하신 임박사님께 감사드리고 임법무사님께도 감사드리며,
가슴을 쓸어내리셨을 임박사님의 사모님께 대단히 죄송스러웠음과 아
울러 늘 건강하시기를 새삼 기원드리며, 장거리 안전을 책임지며 운전
해 주신 임회장님과 조카님께도 감사드리고 또한 함께한 모든 인산회
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인천문인산악회여,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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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양 작가, 참으로 수고가 많군. 벌써 등산 경력이 15년이라, 스쿼시 한지도 그 정도는 될 거구. 참으로 열심히 사시네. 난 족구에 빠져 사는지 1년여가 조금 넘을 뿐인디... 여행기 잘 보고 가네. 사진찍으랴 편집해서 글 올리랴 수고 너무 많네.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일쎄...멀리서나마 성원을 보내겠네. 건강하고, 좋은 글 쓰시게~
괜찮은 곳 여행한 후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럴 듯한 묘사가 될 때마다 스스로 뿌듯해 진다네. 글쓰기 연습 뿐만 아니라 앞으로 쓸 작품 속의 무대를 넓혀가기 위함이라네. 자네의 족구도 마찬가지가 될 걸세. 족구도 열심히, 글도 열심히 쓰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