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에서> 수필집을 읽고
김홍은
권명자 수필가는 착실한 기독교 신자로 어릴 때부터 남다른 인성으로 어디를 가나 그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오는 사람이다. 천주교 주보에 수년간 글을 게재하면서 다져진 인품으로 아름다운 꽃보다는 향기로 주변을 즐겁게 가꾸는 분이다. 인자함으로 주변을 화목하게 만드는데 솔선수범하는 소유자이다.
삶의 이야기가 그대로 수필로 이어져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거나 정다운 사람과 가족이 나들이를 함께 하는 기분이다. 문장과 문맥이 흐트러짐이 없고, 반듯하다. 올곧으며 개성이 담긴 인생을 아름다운 수필그릇에 담아 놓은 소박한 글이다.
<생명의 길에서> 수필집을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생에 욕심을 부리거나 탐냄이 없고, 그렇다고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은 묵언(默言)의 아내로, 인자한 어머니로 내 이웃을 사랑하는 수필로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의미를 은연중에 일깨워주고 있다.
여유사덕(女有四德)을 지닌 인품은 마치 가을하늘에 보름달이 높이 떠 있는 듯하고, 언행은 조용히 흐르는 은은한 여울물 소리 같고, 사랑의 베풂도 왼손이 오른손을 모르게 동료들에게 조용히 기쁨을 나눠준다.
권명자 수필가는 말과 글이 같고 그의 삶이 곧, 수필이다. 종교로 다져진 예수님의 제자로 인생의 생활은 마을 앞에 서 있는 한그루의 둥구나무라고나 할까. 오고 가는 사람마다 쉼터가 되고, 그늘이 되는 큰 느티나무다. 권명자 님의 수필집이 바로 그러하다.
<생명의 길에서> 수필집은 5부로 <제1부 삶은 아름다운 것> <제2부 여름이 오면> <제3부 노년을 보내며> <제4부 만남> <제5부 생명의 길에서>로 나누어져 있다. 수필문장이 자연스럽고, 표현들이 소박하면서도 소박하게 읽혀간다.
1. 기도하는 마음
종교를 순종하는 사람들은 기도는 소원과 바람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함을 담은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도의 깊은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란다. 우리의 무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뜻에 우리를 위탁함이란다. 화자는 주님의 기도문이 늘 생활에 함께하고 있다.
<나의 손 그림을 보며>의 글은, 모임에서 그림 수업을 하는 날 제목은 ‘나 만의 기도’로 손을 그리게 되었다. 뭉툭하고 윤기 없이 주름진 손으로 다치고, 데이고, 못이 배겨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던 고달픈 삶에 볼품없이 변해버린 손 그림이다. 그래도 마음은 새싹의 생명과 기쁨을 내 손에 가득 담고 싶었다는 그림이다.
안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화자의 손 그림이다. 침대 머리맡에 걸어놓은 엉성한 손 그림은 수시로 자신을 가르치며 웃음 짓게 한다며, 손의 고마움을 담아냈다.
<사랑한다는 건> 수필은, 5월의 첫 주간은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화자는 큰 시누이님과 꽃 마중을 나갔다. 연세가 많으셔서 마음대로 활동하시기가 어려우나 목욕탕에 모시고 가서 목욕도 하고, 좋아하시는 맛집도 들렸다가, 야외서 일광욕도 하고 대화를 나눈 이야기다. 지난날 넘치는 사랑을 받고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며,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인정을 담아낸 글이다. 시누와 올케 사이는 가까운 집도 있으나 늘 불편한 관계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간다. 그래도 시누이를 모신다는 마음이 고맙고 새롭게 느껴져 온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만의 기도 손을 보며 마음을 추스른다. 휘어지고 뭉툭한 내 손이 창피하기만 했는데 이젠 고생만 시킨 게 미안해요. 나를 위해 평생을 일하고 기도해 주는 손이 고마워요. 속내를 털어놓던 동료들의 겸손하고 예쁜 말씨들도 떠오른다. 하루 일을 마치고 손의 물기를 닦고 손을 토닥이며 “오늘도 수고했어, 고마워~~” 가만히 속삭인다. 그리고 손그림을 보며 웃음 짓는다. 하루를 감사하게 하는 이 시간이 나는 좋다.
<나의 손 그림을 보며> 중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요한 15,9-12)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다소곳이 손을 모읍니다. 사랑한다는 건 기쁨이고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신비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적마다 자네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이제 와 생각하니 참 미안햐……”
지나간 일들을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마주 보고 웃습니다. 사랑은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하나가 되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힘이 되고 희망을 샘솟게 합니다. 꽃 마중에 사랑 나눔도 하며 시누이님과 함께 보낸 오늘은 행복도, 기쁨도, 감사도 두 배입니다.
<사랑한다는 건> 중에서
기도하는 마음은 자선과 사회봉사 활동을 통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움이다. 5월의 첫 주간은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부모 형제와 친지 은인들을 만나거나 전화나 문자로 감사와 안부 인사를 나눈다. 화자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랑을 실천을 언행일치로 하였다.
2.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봄이 오면 모든 만물은 생동감을 느낀다. 사람도 꽃물든 봄바람에 나비처럼 날고 싶은 봄날이다. 휴면에 들었던 식물들은 꽃도 피우고 새순도 돋게 된다. 이런 과정들은 생명을 위한 종족 번식으로 순환되는 자연의 섭리이다. 우리 인간도 봄이 되면 활기차다.
<오월 문학제> 작품은 수필창작 반에서 펼친 행사에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풀나풀 자줏빛 옷고름 날리며 참가하여 즐거움을 나눈 정감 이야기로, 추억을 그리는 호드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다육이>글은 ‘몰게인이’의 몸체에서 황금종 같은 열 세송이가 하나둘 피어난다며 금방이라도 종소리가 쏟아져 들릴 것만 같다 하였다. 꽃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묘사의 재치가 돋보였다.
<마로니에 씨를 심고> 수필은 마로니에라는 노래는 들었지만, 열매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색깔도 모양도 밤처럼 생긴 야무진 열매는 딱 깨물면 달큰 고소하고 담백한 알밤 맛일 것 같다며, 발아의 꿈을 기다리는 글이다.
율봉공원 행사장에는 ‘오월 문학제’라는 펼침막 펼쳐져 있고, 휘휘 늘어진 버들가지들은 바람을 타고 춤사위를 펼친다. 산뜻한 초록 잎새들과 활짝 핀 꽃들이 어울려 퍼지는 향기가 싱그럽다. 아늑한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비틀어 만든 호드기 불기가 시작되었다. 추억의 나래를 펴고 우린 하나같이 천진한 아이들이 되었다. ‘뿌우 뿍, 삐리릭 삐~익 삑…….’ 나란히 앉아 삐죽이 입에 물고, 마주 보며 불기도 하고, 두 손으로 감싸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높고 낮고 길고 짧게 제각각 내는 소리가 거칠고 투박해도 까르르 터지는 폭소가 아이들 못지않게 재미를 더한다.
나박김치 같은 산뜻하고 맛깔나는 글’을 쓰고 싶다. 오늘 같은 날 고운 시 한 수 지어 읊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월 문학제> 중에서
몰게인이 꽃대를 올린 지 한 달이 넘었다. 동그랗던 연분홍빛 줄기가 허리를 펴면서 황금종 모양으로 꽃봉오리들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맑은 종소리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열세 송이 꽃이 활짝 피는 날, 아름다운 종소리를 상상하며 날마다 눈을 맞춘다. 나도 정화와 편안함을 주는 다육이처럼 살고 싶다. <다육이> 중에서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놓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준다. 세상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차분히 그날을 기다리자 하면서도 발아를 기다리는 조급함은 샘가에 앉아 숭늉을 찾는 격이다. 따가운 햇살에 여물어가는 열매들의 어울림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을이다. 내년 봄이면 건강하고 예쁜 싹을 보여주겠지! 마로니에의 출생을 기다리는 마음이 하늘빛을 닮아간다.
<마로니에를 씨를 심고> 중에서
오월은 생명의 달이다.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켜 낸다는 것은 기획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공감하는 참여 의식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솔선함이 귀감이 된다. 생명을 탄생키는 노력은 기쁨이며 행복함이다.
시편 126장 5절에 ‘울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다.’는 말씀을 하였듯이, 봄에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로움이 있을 때, 가을이면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기다리는 성실한 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3. 가족 사랑과 삶의 향기
인생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행복이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아마도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홍범(洪範)의 기록에 의한 인간 오복(五福)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를 반론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인간의 오복은 다섯 가지로, 오래 사는 것이고, 부유한 것이고, 건강하고 안녕한 것이며, 훌륭한 덕을 닦는 것이고, 천명을 다하고 죽는 것(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라고 하였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 모두가 오복을 지님이 아니겠는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 효도하고,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기쁨을 누리며 살아감이 행복함일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주변에 지식이건 경제든,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주며 살아감도 자족(自足)함이 될 것이다.
권명자 작가님의 가족이 바로 행복한 가정임을 느낀다. <소나무> <사랑의 선물> <어버이날> <만남>의 작품이 그러하다. 가까이서는 항상 큰딸이 보살펴드리고, 막내딸은 외국에 나가 마흔에 박사학위를 받고, 결혼하여 손자들과 외할머니 팔순 생일에 참석하여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작품 속에는 문장마다 행복한 삶의 향기가 넘쳐나고 있다.
<여름이 오면> 일요일이거나 학교에서 일찍 오는 날은 보리타작을 하는 날이다. 어머니의 추임새에 맞춰 한바탕 도리깨질을 하고 나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목이며 얼굴 온몸에는, 좁쌀알처럼 송글송글 땀띠가 나기 시작했다. 밤이면 멍석에 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세다 잠이 들었던 아름다운 여름밤은, 동화 속 이야기가 된 지 오래지만, 여름이면 꺼내 보는 재미가 아프고도 쏠쏠하다는 서정이 담겨 있다.
<촛불을 켜고>는, 촛불은 소원을 담고 근심 걱정을 해소하며 축하와 행운의 뜻이 있다고 했다. 모두가 잠든 이 밤, 어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실까. 어머니! 가슴 절절히 사무치는 그 이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삶을 돌아보며>는 “침 한번 꿀꺽 삼키고 크게 숨 한번 쉬어봐. 하루를 참으면 열흘이 편하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나의 좌우명이 되었고, 오늘을 있게 한 지혜의 산실이 되었단다. 신앙 안에서 말씀을 되새기고 언행일치를 생활화하면서 살았다. 겸허하고 신중하게 다져온 삶은 신뢰를 쌓게 되었고, 고비마다 늘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고 한다. 작품마다 겸손하며 인생 삶의 철학이 스며져 나고 있다.
붐비지도 않고 청량한 숲의 향기가 나른하고 피곤했던 속마음까지 말끔하게 씻어낸다. 서두름 없이 정담을 나누며 산책을 즐긴다. 소슬한 바람이 초가을의 상큼함을 더해준다. 오각정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대청호의 맑고 푸른 물길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생략)
바람결에 가지를 흔들며 배웅하는 소나무처럼 내 마음도 솔향을 닮아간다. “참 좋다. 우리 딸 덕분에 오늘 또 잘 보냈네. 고마워~~”살며시 딸의 손을 잡고 고백을 한다. 엄마만 좋으면 난 행복하다는 딸의 말이 기쁨을 더한다. 하늘은 높고 청량하다. 손을 맞잡고 내딛는 발걸음에 즐거움이 넘친다. <소나무> 중에서
엄마가 해주는 건 다 맛있다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행복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외손주들과 함께했던 날들, 정성을 다해 생일상을 차려주고, 집안을 청소하며, 어미를 위해 마련한 딸의 선물은 사랑 덩어리였다. 여행의 피로가 풀릴 새도 없이 또 얼마나 바쁠까.
강의하는 영상을 보여주며 “엄마,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고요~~”라고 나를 으쓱하게 하던 딸을 생각하며 항상 건강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기도 손을 모은다. < 사랑의 선물> 중에서
우리도 딸이 예약했다는 맛집으로 길을 나섰다. 연휴 사흘을 단비로 단장한 오월은 싱그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도착한 곳은 대청호 주변의 아늑한 자락에 찻집을 겸한 아담한 식당이었다.
잔디밭 쉼터로 나왔다. 멀리 호수 가운데 둔치에 선 소나무 한그루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 손을 맞잡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바람에 잔물결을 이루는 호숫가 소나무 숲 산책로를 걷는다. 맑고 신선한 풍광에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부러움 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어버이 날이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상당산성 맛집에서 보낸 어버이날 생각이 난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다. 웃음을 띠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고 ‘황성 옛터’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담담하신 모습은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할머니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딸 일곱에 아들 둘을 두신 대종손이신 부모님의 한 생이 오롯이 느껴지던 그 날의 감성이 아련하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밀려오는 그리움에 하늘을 본다.
<어버이날> 중에서
같은 또래이며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삼 동서가 한 지붕 아래서 살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생활환경도 낯설고 개성도 다른 손위 동서들과 조카, 시누이가 함께했던 막내의 시집살이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나는 농사일로 시골 가끔 다녀가시던 사려 깊고 자상하신 어머님의 사랑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삼형제가 살림을 나게 되자 우리는 청주에 사는 종형제 동서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어머님은 동기간에 서로 오가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실 때마다 5형제가 한동네에서 재미있게 사셨던 일들을 맛깔나게 들려주시며 아버님의 크신 공덕을 치하하셨다.
<만남> 중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보듬는 사랑과 위로가 힘이 되는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은 행복을 피워올린다. 일을 마친 저녁이면 너른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가족이 콩국수와 오이냉국으로 더위를 쫓고, 손뼉을 치면서 반딧불을 쫓아다니며 웃음을 쏟아냈다. 멍석에 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세다 잠이 들었던 아름다운 여름밤은, 동화 속 이야기가 된 지 오래지만, 여름이면 꺼내 보는 재미가 아프고도 쏠쏠하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기계화된 농경 생활은 환경도 삶의 질도 도시 못지않게 풍요롭고 수월하게 되었다. TV나 그림, 영상으로 보는 농가의 풍경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자연과 함께하며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들도, 전원생활을 선호하며, 귀농하는 젊은이들과 나나인들도 늘어가고 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보람차게 살아가는 이들의 활기찬 모습은 행복하게만 보인다. 생명이 주는 신비가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기 때문인가 보다.
창밖엔 조용히 솔비가 내린다. 목덜미가 가렵고 따끔하다. 어김없이 찾아온 땀띠들이 보내는 반갑지 않은 신호다. 불현듯 나 보다도 훨씬 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땀띠 분을 흠뻑 찍어 톡톡 두드려주며 안쓰러워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눈물이 핑 돈다. 그리운 내 어머니! 베이비파우더 통을 들고 서서 하염없이 빗줄기를 센다.
<여름이 오면> 중에서
첫날밤을 밝혔던 촛대를 꺼내 닦아 선홍빛 초를 꽂고 불을 댕겼다. 백합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온화한 미소가 어른거리고 “잘 살아라” 하시던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결혼식을 하고 바로 시댁으로 들어가 폐백을 올리고 새댁 노릇으로 하루를 보내고 처음으로 생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그마한 화장대 위에 선 삼단 은빛 촛대에 꽂힌 선홍빛 촛불이 방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어서 오렴. 힘들었지!” 나는 그만 ‘어머니!’하고 털석 주저앉았다. 멍하니 촛불을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집가면 친정에 올 생각을 하지 말아라” 하시던 말씀이 서럽고 야속했다.
어머니는 내게 집안의 빛이 되라고 딸의 신방을 촛불로 밝혀주고 싶으셨나 보다. 촛불은 소원을 담고 근심 걱정을 해소하며 축하와 행운의 뜻이 있다고 했다. 모두가 잠든 이 밤, 어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실까. 딸 걱정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고 계실까. 신혼의 달콤한 꿈에 빠진 큰딸의 첫날밤을 상상하며 행복해하실까.
< 촛불을 켜고> 중에서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나날이었다. “침 한번 꿀꺽 삼키고 크게 숨 한번 쉬어봐. 하루를 참으면 열흘이 편하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나의 좌우명이 되었고 오늘을 있게 한 지혜의 산실이 되었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다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끔 숨이 멎었다가 한꺼번에 토해내는 앓는 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집안의 대소사와 가장의 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온 주름진 얼굴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받은 재산은 없지만 건강한 몸이 있기에 성실하게 살아왔고,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그리도 듣고 싶었던 말 ‘사랑해요, 고마워요. 수고했어요’가 이젠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 삶을 돌아보며 > 중에서
가정의 화목함과 부모의 공경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의 인륜을 알게 하고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살아온 부모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을 떠올려주고 있어, 진정한 수필은 삶의 지혜를 표현하는 글임을 느끼게 한다.
4. 인생을 예술로 밝히는 축복
수필은 인생 삶의 희노애락 노래이다. 문학예술의 의미는 삶 속에서 우러나는 흥취이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은 감정을 아름답게 언어로 꽃피워내어 맺어놓은 열매이다. 가락이 있되 춤이 없으면 무의미하고, 춤이 있되 장단이 없으면 흥이 없다. 수필예술은 바로 노년의 인생이 들려주는 가락이요, 춤이며 장단이다.
권명자 수필가의 수필은 모든 삶의 감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발자취로 백세를 건강하게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는 축복의 향연이다.
<노년을 보내며>에, 화자는 산수의 연세에 이르렀어도 활동이 활기차다.
동화구연과 동극반에 등록을 하고 교육을 받으며 어린이회관과 도서관에 견학 온 아이들, 병원이나 요양원의 환자들을 방문하며 동극과 전래동화, 체험 놀이, 그림책 읽어주기로 활동을 하게 되었단다. 요양시설이나 병원을 찾을 때면 한 생을 돌아보며 느끼는 점도 많단다. 봉사할 수 있는 환경과 건강이 감사하고, 노년의 아픔과 외로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지혜롭게 맞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다.
청주시에서 시행하는 1인 1책 펴내기를 통하여 쓴 글을 모아 첫 작품집도 펴냈고, 그 끈을 놓지 않고 수필가로 등단을 했다. 화자는 이러한 활동을 주님의 은총으로 돌리고 있다.
< 건강백세>는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 목적이 있는 삶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아직은 봉사활동을 하고 글도 쓰면서 체조로 심신을 단련하며 어울리는 삶이 즐거움이 아닌가.
해마다 이어지는 청노 발표회는 우리들의 재롱(?)잔치다. 오늘의 연주곡은‘새색시 시집가네, 찔레꽃, 울고 넘는 박달재’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공연장에 모인 할매 할배들의 차림이 오색찬란하다. (생략)
순번에 따라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악기를 들고 무대로 나아갔다. 다리를 꼬고 앉아 보면대에 악보를 펼쳤다. 가슴이 뛴다. 코드를 짚어가며 현란한 S자와 스트러밍의 멋스러운 연주에 노래도 곁들였다. 사람들의 귀에 익은 노래는 듣는 이들을 흥겹게 하고 분위기를 들뜨게 한다.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어울리며 즐기는 노년은 보람 있고 행복하다. 외롭고 슬프고 주눅 든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서투르고 부족해도 허물이 없고 활기차고 당당한 모습들이 멋스럽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오가는 덕담이 한결같이 훈훈하다..
인생의 황혼은 외롭고 서글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부정하고 기력이 떨어지는 노년이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품격은 아름다운 삶의 기본이 된다. 활력과 생동감으로 지혜롭게 채워가는 노년은 즐겁고, 기쁨과 사랑이 넘친다. “아름다운 은빛 청춘이여 빛나라! ”우렁찬 할배, 할매들의 함성과 함께 활짝 웃음꽃이 피는 행복한 은빛 청춘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람차고 행복했던 나날들, 봉사와 취미생활로 즐거웠던 지난날들은 모두가 축복이고 은총이었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나누고 비우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은 노년입니다. 겸손함으로 믿음을 더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기쁨으로 지혜롭게 하소서.
‘제가 당신께 노래할 때 제 입술이 기뻐 뛰고, 당신께서 구하신 제 영혼도 그리 하리이다.’(시편 71편 23절) 아멘. < 노년을 보내며> 중에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느낌을 줄까. 몸이 힘들수록 자신감도 떨어지고 건강도 무시할 수 없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백세시대라지만 오래 살고 싶은 마음보다 건강하게 살다가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 목적이 있는 삶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아직은 봉사활동을 하고 글도 쓰면서 체조로 심신을 단련하며 어울리는 삶이 아닌가. 매 순간을 건강하게 감사하며 기쁘게 사는 거다.
하루의 일을 마치며 나를 칭찬한다. ‘나는 참 대단해. 오늘도 다 해냈잖아. 노후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오늘도 건강백세 파이팅이다.’
< 건강백세> 중에서
수필은 오감(五感)을 통하여 과유불급의 감성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다양한 체험을 바탕에 두고 진솔하게 그 삶을 조화롭게 표현하여 이끌어감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독자와 공감하며 경험으로부터의 글 속에서, 삶의 지혜와 사유(思惟)를 깨닫게 되고 자신을 성찰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기도속에 가정을 지키며, 삶을 슬기롭게 예술로 승화시키어 ‘아름다운 은빛 청춘’으로 살아감임을 오롯이 들려주고 있다.
권명자 수필가는 산수(傘壽)의 노후를 인생예술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오늘도 건강백세 파이팅이다.’의 외침으로 내 이웃을, 사회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동화구연과 동극, 수필, 음악으로 밝혀주고 있다. <생명의 길에서>의 수필집은 인생을 예술로 밝히는 축복 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권명자선생님 (생명의 길에서) 수필집을 김홍은교수님 의 서평과 평론으로 다 읽은듯 합니다. 감동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푸근한 교수님의 서평이 글의 맛을 더욱 맛깔스럽게 해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서평만으로도 책 한 권을 읽은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