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하지만 아주 단순히 우정 만을 공유하는 남녀사이가 가능할까?
글쎄... 샐리는 가능하다고 얘기했고, 해리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해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그 이유인 즉 슨, 언젠가는 남자가 섹스를 원하기 때문에,
여자는 사랑과 우정중 반드시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 일리있는 얘기다. 그리고 그만큼 여자와 남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해리와 샐리는 만나는 순간부터, 이런 논쟁을 벌이면서 티격태격 싸우고 서로 으르렁
대다가 결국 미운정 고운정이란 사랑 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 It had to be you ◈ Love is here to stay ◈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1977년 시카고 대학 캠퍼스. 샐리는 뉴욕으로 가는 길에
친구의 남자친구인 해리와 동승하게 되지만,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그 18시간을 샐리는
악몽같은 여정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5년후, 둘은 공항 에서 우연히 만나고 다시 5년후,
서점에서의 운명적인 재회는 이 둘에게 우 정이란 값진 선물을 한다.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친구가 된 두사람. 서로 남자 얘기, 여자 얘기 무슨 얘기든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그 허물없는 관계가 좋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예전과 달리 왠지
서먹하고 어색해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둘이 함께 보냈던 그 추억의 시간들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에서 해리는 샐리에게
이런 프로포즈를 건넨다.
'더울 때도 춥다는 당신, 음 식을 시키는 대로 한시간
걸리는 당신을, 날 미친놈처럼 쳐다보면서 인상쓰는 당신을,
하루종일 따라 다니면서 쫑알대는 당신을,
잠자기 전에 마지막 말을 할 수 있는 당신을,
외로워서도 아니고, 연말이라 그러는 것도 아니야.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싶어진 거고,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어진 거야'.
아, 과연 이런 프로포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두 사람은 올 드 랭 사인이 울려 퍼지는 그때 사랑의 입맞춤을 건네고
우정과 사랑 사이 의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 드디어 행복한 마침표를 찍는다.
처음 만나 12 년 3개월 반만에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뉴욕의 4계절 풍경 속에서
우정과 사 랑의 감정을 가득 풀어내던 두 사람.
그때 울려 퍼지던 선율에선, 고즈넉한 재즈의 향기가 맴돌고 있다.
과연 어떤 곡들이 이 두 사람의 옥신각신하는 사랑게임에 낭만적인 운율이 돼 주었을까?
우선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핏제랄드 듀엣의 Love Is Here To Stay 가 흐 르는
가운데 해리와 샐리는 시카고 대학의 캠퍼스에서 처음 만나고, 오랜 여 정 끝에 결국
뉴욕에 도착해 워싱턴 스퀘어의 대리석 아치 앞에서 헤어지던 순간,
역시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핏제랄드 듀엣의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가
고즈넉히 깔렸다. 결국 친구가 된 두 사람이 단풍으로 붉게 물 든 센트럴 파크를
걸어가면서 꿈에 관해 얘기하던 그 장면에서 우린 해리 코닉 주니어 트리오의
멋진 연주 Autumn In New York에 잠시 가을의 정 취를 느끼기도.
그리고 해리와 샐리가 함께 트리를 들고 가는 크리스마스의 행복한 풍경사이로
레이 찰스의 Winter Wonderland가 흘렀다면, 그 다음해 어색해진 관계 때문에
크리스마스도 혼자 보내야만 했던 샐리의 외로운 마 음은 빙 크로스비의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에 담겨 우울 하게 펼쳐졌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가 샐리에게 달려갈 때 흐르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It Had To Be You 는 샐리를 향한 해리의 변함없는 사랑 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 속엔 우리 귀에 익숙한 재즈 선율들이 변 화무쌍한 뉴욕의 풍경과
두 연인의 감정곡선에 맞춰 적재적소에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하지만 사운드트랙을 막상 살펴보면, 영화와는 달리, 모 두 다 해리 코닉 주니어의
연주와 노래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왜 그럴 까?
우선 1989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깜찍한 요정 멕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 탈의
매력은 물론, 노라 애프론의 톡톡 튀는 시나리오, 그리고 최근 배우로 더 열성적인
활약을 보여주는 로브 라이너 감독의 연출이 상큼하게 더해진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
그리고 또 하나, 재능있는 뮤지션이자 또 한 명의 해 리인 해리 코닉 주니어를
대중들에게 소개시킨 아주 특별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올해로 음악인생 23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해리 코닉
주니어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앨범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해리 코닉 주니어... 사실 요즘 활동이 조금 뜸한 편이지만, 데뷔당시만 해 도
그는 잘 생긴 외모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제 2의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별 명을
얻었던 재즈 뮤지션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가수뿐 아니라,
<꼬마천재 테이트>, <멤피스 벨>, <카피캣>, <인디펜던스 데이>,
그리고 <사랑이 다 시 올때>와 같은 영화를 통해서 배우로도 낯익다.
그는 재즈의 본고장인 뉴 올리언스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이미 피아노를 연주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는 딕시랜드 재즈 밴드와 레코딩을 했을 정도로 천부적인
음악재능을 쏟아 냈다. 또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 제임스 부커와 또 앨리스
마샬리스에게서 스윙 피아노를 사사 받았고, 19살 때엔 뉴욕 재즈 계로 진출해서
빅 밴드 음 악에서 재즈, 랙 타임, 그리고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 기도. 그런 그의 나이 22살 때, 이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음악 을 담당했고, 이 사운드트랙에 쏟아지는
찬사덕분에 해리 코닉 주니어는 인 기 뮤지션으로 그 발판을 마련한다.
재즈 앨범으로는 드믈게 당시 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위해서 해리 코닉 주니어가 새롭게 작곡한 곡은 단한곡도 없다.
그리고 영화와 사운드트랙을 완전히 차별화시켰다.
영화 속에서 들을 수 있었던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핏제랄드의 듀엣이라던가,
프랭크 시 나트라, 레이 찰스의 보컬 대신, 오로지 해리 코닉 주니어가 리메이크한
스 탠다드 재즈곡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주제곡인 제롬 칸의 명곡 It Had To Be You를 비롯해서, 거쉬인과 리차드 로져스,
그리고 베니 굿맨과 듀크 엘링턴의 명곡들을 재해석하고 있는 이 사운드트랙은,
흡사 해리 코닉 주니 어의 개인 앨범처럼 보인다
실상, 89년에 발표한 그의 4번째 앨범이라고 해 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닌데,
사운드트랙 커버에 해리 코닉 주니어의 사진이 실려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친근한 스탠다드 재즈곡 들을
뉴욕의 도시풍경에 걸맞게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해리 코닉 주니어의 재능
덕분에 엄청난 찬사와 사랑을 받았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의
사운드트랙. 마치 우정과 사랑 사이를 설왕설래하는 연인들을 위한
달 콤한 연가 모음집 같다.
<권 영·영화음악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