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암(獅子庵) 극락보전 지장목각탱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十王)과 기타 권속들을 함께 배치한 불화이다. 주존인 지장보살이 승려의 모습으로 삭발을 하고, 천의 대신 가사를 입고 있으며, 투명한 구슬인 장상명주를 쥐고 있다. 또한 중앙의 지장보살은 좌상, 양쪽의 협시존상은 입상으로 표현해 놓았다.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 지역의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시왕 각각의 정확한 명칭 및 간지가 기록되어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명칭변경; 사자암 소장 불화 → 사자암 지장시왕도
전북 유형문화재 제 200호 한국의 슈바이처 이영춘 가옥
이영춘 가옥 전라북도 유형문화재200호
소 재 지;
전북 군산시 개정동 413-11
이 집은 구 개정병원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1920년경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개인별장으로 외부형태에 있어서는 유럽의 주거형식을 따르며 평면의 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 평면을 바탕으로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 온돌방이 결합된 절충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영춘(李永春) 박사가 사용하면서 일식의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외관의 구조를 포함한 전체적인 주거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가옥내의 기초와 벽난로는 호박돌을 허튼층쌓기 하였고 외벽의 하부는 통나무를 절반으로 켜서 걸침턱맞춤으로 짠 귀틀집의 구조이며 외벽의 상부는 회반죽 뿜칠로 마감하여 색채와 질감이 목재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지붕은 요철이 있는 평면구조에 맞추어 박공과 모임지붕이 결합된 형태 위에 판석으로 마감하였다. 이 집의 바닥은 티그목 쪽매널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으며 샹들리에 및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로 당시 건축비가 조선총독부의 관저와 비슷하게 소요되었다고 할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하였다.중복도를 중심으로 남쪽에 커다란 다다미방이 있고 북쪽에는 현재 식당으로 사용하는 온돌방이 있으며 복도 끝에 작은 홀이 있어 부엌과 다용도실, 화장실이 연결된다. 외부와 연결되는 북쪽 창은 유리를 낀 세살창과 미닫이 방충망, 완자창 등 3중의 창을 만들었으며 부엌은 현재 북쪽에 개수대를 설치하여 서서 행동하도록 된 부엌으로 개조하였다. 이 건물은 근대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과 양상을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평면과 외관의 구성을 볼 때 뛰어난 건축적 구성을 하고 있다. 서구식·일식·한옥의 양식이 결합된 이와 같은 사례는 도내의 주거 건축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없으며 다른 도에서도 흔치않은 사례로 파악된다. 또한 이 건물은 일제의 토지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으며 해방 후 주인이었던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 활동에 끼친 역사적 비중을 볼 때 가치가 있다.
체화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200호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상리 2리 447
조선 효종(재위 1649∼1659) 때 진사(進士)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 1663∼1744)이 세운 정자로 학문을 닦던 곳이다. 그 후 순조(재위 1800∼1834) 때 국가에서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마을에 정문을 세우는 정려를 받은 용눌재(慵訥齋) 이한오(李漢伍) 선생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이민적(李敏迪) 선생이 그의 형인 옥봉(玉峰) 이민정(李敏政) 선생과 함께 살면서 우애를 다지던 장소로 유명한데, 이로 보아 정자 앞 연못의 이름을 ‘체화지(棣華池)’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체화(棣華)’란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시경』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 연못에는 방장(方丈) 봉래(逢萊) 영주(瀛州)의 삼신선산(三神仙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인공섬을 둔 연못이 있다. 건물구조는 앞면 3칸·옆면 3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1층은 지면과 떨어져 있으며 온돌방 1칸을 만들었다. 현판 ‘담락제(湛樂齊)’의 글씨는 조선 제일의 화가였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썼다.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명 칭
두방암 다층석탑 (杜芳庵多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2.08.02
소 재 지
경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325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두방암
관리자(관리단체)
두방암
설명
두방암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원래 법륜사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으로 절이 없어져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푸른빛이 도는 점판암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일명 청석탑(靑石塔)이라 한다.
기단부(基壇部)의 바닥돌은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시멘트로 만들었고, 각 기단의 맨윗돌에는 연꽃을 새겨 장식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부서지기 쉬운 돌의 특성상 상자모양의 몸돌과 얇은 지붕돌을 교대로 높게 쌓아 올렸다.
새로 만든 바닥돌이 기단의 폭보다 좁고 높아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다른 청석탑에 비해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으로 청석탑이 유행하던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두방암 다층석탑
종 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명 칭
보림사 사천왕상복장 불설사십이장경 (寶林寺四天王像腹藏佛設四十二藏經)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사찰문서/ 기타류
수량/면적
1책
지 정 일
1998.08.20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보림사
시 대
고려시대
소 유 자
보림사
관 리 자
보림사
설명
보림사는 전라남도 장흥군 가지산에 있는 절로, 860년 신라의 승려 체징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 책은 보림사 사천왕상의 배안에 넣어서 보관하던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된 초기의 경전으로 가섭마등과 법란이 공동으로 번역한 것이다. 불교의 방대한 내용을 42장의 요지로 간명하게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 ‘불조삼경(佛祖三經)’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 전라북도 전주 원암사에서 간행된 판본과 고려 우왕 10년(1384)에 간행된 것 등 2종이 전하고 있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보물 제694호로 지정된 ‘불설 42장 경합철<불유교경, 위산경책>’과 같은 판본으로, 고려 공민왕 10년에 원암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송나라 때 유행하던 장정 형태인 호접장(蝴蝶裝)으로 책을 엮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띤다. 호접장이란 인쇄면이 안쪽으로 오도록 반을 접은 뒤 바깥쪽을 풀칠하여 다른 장과 서로 붙이는 방식을 말한다. 책을 펼치면 마치 나비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