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인생 최고의 해였습니다. 결혼을 반대하던 장인의 동의 없이도 클라라 비크(1819-1896)와 결혼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 마침내 갈망하던 결혼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으로 이 한 해 동안 슈만은 하염없이 솟아나는 멜로디를 악보에 옮겨 138편의 리트(Lied. 예술가곡)를 작곡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젊은 시절에는 가곡 분야에 큰 관심이 없었던 슈만이 일 년 내내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오로지 노래 멜로디만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1840년은 슈만의 생애에서 ‘가곡의 해’로 불립니다.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과 가곡모음집(Liederkreis) 두 편 역시 이때 완성되었습니다.
결혼해도 좋다는 법원 판결을 받자마자 슈만이 가장 먼저 작곡한 예술가곡이 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였다고 합니다. 한 처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남자는 처녀에게 너무나 높고 빛나는 존재여서 처녀는 감히 그 곁을 꿈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거짓말처럼 처녀에게 청혼하고, 처녀는 이 믿을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노래합니다. 드디어 결혼식이 거행되고, 처녀에서 여인으로 변모한 그녀는 아이의 탄생을 경험하며 최고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고 슬픔에 잠깁니다.
이 모노드라마 속의 여인은 슈만보다 아홉 살 아래였던 클라라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부부간의 나이 차는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는 막 성년이 된 딸을 사회적으로 성공한 스무 살쯤 연상인 남자와 결혼시키려는 부모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등한 부부관계보다는 어린 신부가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관계가 흔했습니다. 자녀들을 키우며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클라라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고 때로 사회부적응적인 태도를 보였던 슈만을 이끌고 감싸주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혼할 무렵에는 아홉 살 연상인 슈만을 아마도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여주인공이 그랬듯 우러러보았을 것입니다.
벅찬 흥분과 차분한 관조의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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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가곡을 구성하고 있는 여덟 곡의 조는 계속 바뀌지만 기본이 되는 조성은 나(B)조입니다. B로 시작해서 B로 끝나죠. 전체적으로 깊고 어두운 분위기여서, 음역 뿐만 아니라 음색 면에서도 메조소프라노나 알토에게 적합한 곡입니다. 소프라노 가수들 가운데는 제시 노먼처럼 풍부하고 어두운 음색을 지닌 가수가 잘 부를 수 있습니다.
첫 곡 ‘그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 눈은 멀어버린 듯 Seit ich ihn gesehen’은 남자에게 첫 눈에 반한 처녀의 설렘을 담고 있지만 감히 꿈꿀 수 없는 행복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어둡고 차분합니다. 바라보는 곳마다 그 사람의 모습만 보이고, 자매들과의 즐거운 놀이도 시큰둥, 차라리 방에서 조용히 울고 싶은 심경이라고 처녀는 토로합니다. 장엄한 사라방드 리듬으로 시작하는 첫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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