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쇠둘레 평화누리길'
가끔, 신문 등을 통해 북한 관련 뉴스를 접하면, 그제서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동족상잔 비극의 상처가 온전히 남은 곳, 강원도 철원에서는 전쟁의 기억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아픔이 밴 철원 땅에도 평화의 물결이 번져나고 있다. 둘레길이 그것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생태 탐방로' 10곳 중 하나로 선정된 '쇠둘레 평화누리길'(이하 쇠둘레길)은, 해석하자면 '철원 평화의 땅 곳곳을 누비는 길' 정도가 된다. 승일교에서 직탕폭포를 거쳐 칠만암에 이르는 8.3㎞ 길이의 제1코스 '한여울길'과 율이리에서 수도국지와 노동당사를 지나 덕고개마을로 이어지는 10.8㎞의 제2코스 '금강산 가는길'로 이뤄져 있다. 민통선 안 3번 국도를 따라 '근대역사 문화의 길'을 조성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가슴 아픈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묘하게 어우러진, 보기 드문 둘레길이다.
제1코스 '한여울길'은 래프팅 명소로 이름 높은 한탄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한여울길 옆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탄강은 대륙 간 충돌로 생긴 틈에 화산 폭발로 생긴 용암이 흘러내렸고, 그곳에 물이 고이면서 생겨났다. 주상절리 등 다른 강에는 없는 독특한 지형이 많은데다가 에메랄드 빛을 띠는 오묘한 물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 곳곳에 데크가 설치돼 있고 평탄한 길이 많아 그리 힘들지 않다.
한여울길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승일교'는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낡은 시멘트 다리.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진 승일교는 한국전쟁 이전 북한이 다리를 놓다가 전쟁 직후 남한이 다리를 완공해 다리 기둥 모양이 양분돼 있다. 승일교 앞에 있는 검문소는 통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날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승일교 앞 벽돌길을 자세히 보면 '아기 발자국'이라 불리는 도장이 군데군데 찍혀있다. 두 눈 부릅떠도 찾지 못해 결국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말았다. 꽤 재미가 있다.
승일교를 지나 걷다보면 '고석정'을 발견할 수 있다. 고석정은 협곡 사이 솟은 고석바위와 고석루, 현무암 계곡을 아우르고 있다. 강 한가운데 외롭게 솟아있는 고석바위에 촘촘히 새겨진 가로결 무늬는 오랜 세월 바람과 물에 깎인 흔적들이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지난 1970년대 복원된 강 기슭의 고석루에 서면 고석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석바위에는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이 숨어지냈다는 자그마한 굴이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들어가볼 수 없다. 고석바위와 협곡의 앙상블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송대소와 태봉대교를 지나면 먼발치에서도 보이는 큰 폭포가 있으니, 바로 '직탕폭포'다. 강줄기 전체가 폭포로 이루어진 직탕폭포는 한국판 나이아가라 폭포로 불릴 만큼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높이 3여m에 너비 80여m로 규모면에서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방물과 독특한 일자형 기암은 충분한 볼거리다. 폭포 양쪽에서 주상절리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제2코스 '금강산 가는길'은 이야기를 따라 걷는 길이다. 대부분 흙길이고 제대로 된 표지판조차 없지만 분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손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이요, 탐방로인 이 길은 1930년대 당시 큰 인기를 모았으나 분단 후 철거되는 비운을 맞은 금강산 전기철도 일부 구간이 포함되면서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금강산 가는길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율이리는 월북 작가 이태준이 태어난 마을로, 용담마을로 불렸다. 마을의 옛 흔적은 찾기 힘들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넓은 밭을 가로질러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직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마지막 두루미들이 드문드문 발견된다.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30여㎞에 달하는 둑은 전차방어벽. 북한군의 탱크를 5분간 저지한다고 해 5분 방어벽이라고도 불리는 전차방어벽은 멀리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차 통로를 지나보니 높이 5m에 너비가 8m로 규모가 꽤 컸다.
산길과 밭길을 따라 걷다보니 '수도국지'가 보였다. 철원 주민에게 상수도를 공급하던 저수탱크와 관리소가 있던 자리로, 일제 강점기 때 지어졌다. 저수 탱크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수도국지에서 구철원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절로 마음이 탁 트였다. 상쾌한 공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한몫했다. 강원도 하면 '산'을 먼저 떠올리기 일쑤였는데, 철원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수도국지에서 한참을 걸어나오니 '노동당사'가 보였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 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진 노동당사는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북한 건축 유적지란다. 노동당사 건물 앞쪽은 그런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뒤쪽은 포탄으로 거의 무너진 상태다.
노동당사 옆으로 민통선 검문소가 보였다. 참, 철원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검문소인데 함부로 사진 찍다간 바로 걸려 삭제 당하니 조심할 것. 고생하는 국군장병들에게 초코파이 등 간식거리를 전해주는 것도 잊지 말자.
글·사진=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취재협조=강원도 철원군청·대륙항공여행사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김천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한참을 북진한다. 여주JC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옮겨탄 뒤 호법JC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달리다가 강일IC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린다. 오른쪽 운천 방면으로 37번 국도를 달린 뒤 문혜사거리에서 한탄강유원지 방면으로 따라 달리다 보면 한여울길 승일교를 발견할 수 있다. 승일교 앞 승일공원에 주차한 뒤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6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자가운전하는 것이 고될 것 같다면 관련 여행상품을 이용할 수도 있다. 대륙항공여행사에서 다음달 14~15일 1박 2일 일정으로 철원 DMZ 여행을 떠난다. 민간통제선 안에 있는 승리전망대와 평화전망대, 경원선의 마지막역 월정리역 등도 둘러볼 수 있다. 1인당 13만 9천~14만 9천 원. 051-463-0034.
- 지역의 빛으로 독자의 희망으로 -
첫댓글 어서빨리 통일되어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