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북부도시 쿤두즈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황무지에 아미르 아바드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허물어지게 생긴 누런 담벼락과 햇볕에 말라버린 흙길들만 미로처럼 펼쳐져 있을 뿐 그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을 한쪽 끝에는 버려진 유엔 사무실이 있고, 국제이민기구(IOM)가 발부한 흰색 식량 배급권들이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이리저리 휘날린다.
피란길에 오르지도 못할 정도로 가난하거나 지친 난민들은 빈 건물들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임시 거처를 손보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모닥불 연기 너머로 우리를 쳐다봤다. 또다른 아이들은 부서진 건물들의 구석을 힐끔거렸다. 그들은 북부동맹 병사들이 AK 소총 총신을 지팡이처럼 들고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북부동맹 사령관 나지르 모하메드(35)는 모종의 거래를 마무리짓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는 며칠 전부터 여전히 탈레반에 충성하는 병사 2백여명의 투항을 추진해왔다. 이제 흰 턱수염을 기른 거구의 현지 탈레반군 사령관 마크돔 오마라누딘은 그 마을 서쪽 끝에 있는 폐가들 뒤에서 부하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북부동맹군과 탈레반군 사이의 들판에는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큰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지뢰가 매설된 장소임을 말해줬다. 투항하려는 탈레반 전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잠재적 위험이 있었다. 아랍인과 파키스탄인 및 기타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이 그곳에 주둔하면서 항복하는 사람은 누구든 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북부동맹 병사들이 옛 물방앗간 부근에서 정오기도를 마친 직후 나지르는 오마라누딘으로부터 마침내 대규모 투항 준비가 다 됐다는 말을 들었다(나지르측 병사들은 탈레반 점령지역을 접수한 뒤 투항하는 병사들을 다른 쪽으로 돌려 전선을 넘어오게 하면서 필요하다면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과 싸워 이길 계획이었다).
북부동맹 병사들이 앞서의 그 폐가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잰걸음으로 걷다가 나중에는 우르르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가던 중 나지르는 갑자기 멈추고 병사들 틈에서 탈레반측의 무선교신을 받았다. 오마라누딘이 “시간을 좀더 달라”고 절규했다.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나지르는 돌격하는 부하들을 쳐다보면서 대책 없이 망설이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너무 늦었다! 나의 부하들은 공격준비가 끝났다. 이제 와서 말릴 수가 없다. 이리 올 생각이 있으면 지금 오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느 이상한 전투의(또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괴한 투항 거래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시작이었다. 그러나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 다음에 벌어진 혼란은 아프간 전선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혼란이었다. 갈수록 아프간 전쟁은 이런 꼴이 돼간다. 도처에서 모종의 비밀거래가 이뤄지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소규모 접전과 미군의 폭격이 이어지는 것이다.
反탈레반 무장세력들의 느슨한 연합체인 북부동맹은 2주 전의 카불 함락으로 그 절정에 오른 일련의 승리 덕에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러나 패배한 탈레반군은 총 한번 제대로 쏴보지 못한 채 도시와 마을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탈레반 병사들이 단순히 편을 바꿔버린 경우도 있다. 상대편에 몸을 담고 있는 친구나 친척들이 다리를 놓아 그같은 거래들이 성사됐다.
사업 거래의 형태를 띠는 경우도 간혹 있다. 탈레반 사령관들은 타고 다니던 지프나 기타 귀중품을 대가로 지불하고 귀향길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쿤두즈 인근에서 벌어진 혼란스러운 투항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터의 혼란이야 다반사지만 이제는 전쟁과는 무관하게 혼란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같은 혼란은 상당수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에 충성을 바치는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의 역할에 의해 한층 더 가중된다. 아랍인·파키스탄인·체첸인 등으로 구성된 그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은 아프가니스탄에는 돌아가고 말고 할 집이 없다. 또 항복하면 아마도 처형되거나 죽을 고생을 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지난주 쿤두즈에서는 아프간인을 주축으로 한 수백명의 탈레반군이 쿤두즈의 북부동맹 사령관들에게 투항했다.
또 파키스탄 정부가 자국 지원병 상당수를 자국으로 실어가고 있다는 미확인 보도들도 나왔다. 그러나 최다 수천명에 이르는 다른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이 남아 있어 유혈사태의 우려를 높였다. 투항협상 과정에 개입했던 한 북부동맹 사령관은 “아프간 탈레반은 투항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은 만일 우리가 쿤두즈를 공격하면 쿤두즈 주민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미국 정부는 한발 뒤에서 빈 라덴과 그의 핵심 참모들을 사살 또는 체포하고 알 카에다 테러조직을 궤멸시킨다는 목표만을 계속 추구하려고 한다. 약 2백명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현지에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 지도자들의 탈출로와 보급망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군 항모탑재 폭격기들이 은신처로 사용될지도 모르는 동굴들의 입구에 2백여kg짜리 레이저 유도탄들을 투하하고 있다(CIA는 빈 라덴과 그의 핵심 측근들에 의해 이용되고 있을지 모르는 약 2백개의 동굴을 파악했다).
이 지역 작전을 맡은 토미 프랭크스 美 중부사령부 사령관도 공격용 수륙양용함 펠렐류號와 바탄號에 약 2천명의 해병대원들을 대기시켜놓았다. 해병대는 수색 그물망을 펼치는 데 활용될 수 있지만 그러자면 프랭크스는 먼저 백악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 관리들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 지도자들이 비밀거래를 통해 살아남지 않을까 신경쓰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 정부는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독자적 미끼를 내걸었다. 최근 빈 라덴의 소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지급하기로 한 보상금 5백만달러를 ‘최대 2천5백만달러’로 올린 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지난주 쿤두즈의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이 ‘사살되거나 체포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럼즈펠드는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가 다른 나라에서 테러리스트로 활약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지난주 쿤두즈 인근에서 진행된 투항협상은 아프간인들의 전형적인 거래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일례였다. 북부동맹 사령관 나지르가 명령을 내리자 샌들을 신은 13세 소년 병사들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이 나서 “우리는 공격한다”고 외쳤다. “전부 죽이자!” 원래는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을 공격해 오마라누딘 휘하의 아프간 탈레반 병사들이 투항할 수 있도록 엄호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북부동맹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자 투항하려던 탈레반 병사들은 겁에 질렸고 외국인 탈레반 병사들이 사격을 개시해 나뭇잎들이 휘날리고 도로에 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양쪽 병사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근처에서 나는 총소리를 듣고 (나를 비롯한) 몇몇 구경꾼은 마을 위쪽 끝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어지럽기는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20세도 채 안돼 보이는 북부동맹 병사 20여명이 탄약고를 탈취해 자신들의 탄창을 채우고 로켓추진유탄발사기에 쓸 탄약의 꾸러미를 풀고 있었다. 한 병사는 총알을 한움큼 손에 쥐고는 “탈레반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외쳤다. 포탄들이 날아와 코앞의 둑에 떨어지면서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멀리 한 부상병이 쓰러지면서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겁에 질린 일부 북부동맹 병사들은 농민 2명을 포함해 웅크리고 앉아 있는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외쳤다. “도망쳐요, 도망쳐. 여기를 벗어나세요. 탈레반이 쳐들어옵니다.” 피융피융 하는 총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우리 일행은 통역을 앞세운 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 5분 동안 내가 들은 것으로 기억되는 소리는 뒤에서 쿵쿵거렸던 구둣발 소리와 헉헉대던 나의 숨소리였다. 나는 앞사람 다리만 보고 뛰었다. 통역이 절뚝거리며 걸을 때 자기 사이즈보다 큰 그의 검은색 구두는 여러차례 벗겨질 뻔했다. 마을은 완전히 비여 있었지만 한 집에서는 말리려고 널어둔 자주색 시트가 산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우리 위쪽에 있는 언덕들이 폭발로 흔들리면서 나도 몇번 비틀거렸다. 총알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내 주변의 공기를 끌어당겨 방탄막처럼 나를 감쌀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싸움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픽업트럭 몇대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통역은 “저기 또 탈레반군이 온다”면서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트럭들이 가까이 올 때 보니 투항하는 탈레반군이었다. 그리고 투항하려는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세대의 트럭 앞좌석과 짐칸에 웅크리고 있던 수십명은 며칠 동안 한숨도 못잔 사람들 같았다. 탈레반 사령관 오마라누딘은 총격으로 앞유리가 완전히 날아가버린 진흙투성이의 픽업트럭을 타고 있었다. 머리가 부스스하고 겁먹은 듯 보이는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여전히 검정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곁을 지나가면서 멍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하루 전만 해도 그들을 죽일 수 있었던 북부동맹 병사들은 트럭과 나란히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았다. 북부동맹 병사들은 우리를 위해 “탈레반, 탈레반”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두가 웃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들이 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좋은 탈레반”이라고 덧붙였다. 오마라누딘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차를 세웠다.
흉터가 남은 손으로 진흙이 묻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우리는 이쪽 편이 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이들은 우리의 친구다.”북부동맹 병사들은 탈레반이 장악한 하나바드市에 도착하면 약탈을 할 계획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그 도시의 대다수 주민은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민족인 파슈툰族인 반면 북부동맹은 대부분 소수민족 병사들로 구성돼 있다). 아미르 아바드의 난민들은 탈레반 점령마을 주민들이 탈레반의 탄압도 싫어하지만 마찬가지로 북부동맹도 겁낸다고 말했다. 최근 하나바드에서 온 아몬(62)은 “사람들은 약탈과 살인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북부동맹의 일부 병사들은 자기네들의 군기가 엉망이라고 걱정했지만 그 이유는 달랐다. 모하마드라는 한 부사령관은 “오늘은 완전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모두들 제각기 개인행동을 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 철수한다. 더이상 여기 머물 수 없다. 외국인 탈레반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 또다른 현지 북부동맹 사령관은 새로운 공세가 임박했다고 내다봤다.
쿤두즈 지역에서 전차 몇대를 지휘하는 그 우즈베크족 사령관은 “쿤두즈가 함락될 때까지 공격은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에도 미군 B52 폭격기 한대가 나타나 폭탄을 떨어뜨렸다. 탈레반이 점령한 언덕 하나가 연기와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그 사령관은 “미군의 폭격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완전히 만족한 표정은 아니었다. “폭격을 좀더 늘리고 좀더 빨리 해야 한다.”
With Colin Soloway in northern Afghanistan and John Barry in Washing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