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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장코뱅 추천 4 조회 821 24.04.13 09:16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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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4.13 09:45

    첫댓글 『GODpia 성경: 아가페출판사』, “바리새인”

    후기 제2성전 시대에(약 B.C. 150-A.D. 70년) 유대교 안에서 발생한 종교 분파 가운데 하나.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규례에 대한 엄격한 준수, 성경 외적인 관습과 전통들의 전수,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절충주의적인 입장, 그리고 천사의 존재와 다가올 부활에 대한 믿음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요세푸스 BJ : Ant , 막 7 : 3; 행 23 : 6-9; 빌 3 : 5;참조. 갈 1 : 14).
    고대의 문서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을 정치 집단이나 철학 학파나 학자들의 계층, 또는 정결예식을 철저히 준수하기로 헌신한 자발적인 집단(히. 하베로트 ) 등 다양하게 묘사하였다. 헬. '파리사이오이'는 히. '페루쉼'(-"분리된 자들")에서 유래. <히> '페루쉼'은 랍비 문학에 자주 나타나는 말인데, 이 말이 항상 '분리된 자들'이란 의미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사실 '분리된 자들'이란 의미의 '바리새인'이란 칭호를, 바리새인 자신들이 붙였는지 또는 반대자들에 의해 붙여졌는지 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 작성자 24.04.13 09:46

    바리새파는 마카비 시대 초기에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킨 '하시딤'의 한 지파로 시작된 것 같다(마카비1서 2 : 42; 7:13; 마카비2서 14 : 6).
    이들은 유다 하스모니아 왕가의 요한 힐카누스와(B.C. 134-104년) 알렉산더 얀네우스(B.C. 103-76년)의 친헬라적인정책을 반대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알렉산드라 살로메 (B.C. 76-67년)에게는 매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헤롯 시대와(B.C. 37-A.D. 4년) 로마가 직접 통치하던 시대에는(A.D. 6년부터) 정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예수님 당시와 교회의 제1세대가 살던 시대에 유대인 종교 활동의 중심지인 성전이 사두개인들에 의하여 장악되었다. 그러자 바리새파의 서기관들은 회당을 장악하여 일만 평민들에게 영향을 주는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성전이 파괴되기 전보다 A.D.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유대교는 거의 모두가 바리새인들을 통하여 수립되고 보존된 규례들로 이루어져 있다.

  • 작성자 24.04.13 09:46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신랄한 공격을 초대 교회 성도들도 계속 이어받아 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인들이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서에서 보면 '바리새인'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대적자로 나타나 있다(예. 마 27 : 62;요 7 : 32; 18 : 3).
    바리새인들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인 언급으로 인하여,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도 부활이나 토라(율법)에 대한 및 가지 해석에서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을(마 22 : 23-33; 23 : 1-2) 모호하게 만들 수가 있다.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 발생한 논쟁의 근거들은, 식사 때에 지키는 성결예식에 대한 예수님의 관대함(막 2 : 15-17; 7 : 1-2;눅 5 : 2), 정규적인 금식에 대한 제자들의 위반(막 2 : 18), 바리새인들이 고집하는 율례에 대한 제자들의 불이행(막 2 : 23-24; 7 : 1-4), 안식일 규례 및 다른 규례에 대한 예수님의 공개적인 비판(3 : 4-6; 7 : 6-23) 등이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행동이나 주장들에 대하여 정당한 근거들을 제시하셨는데, 이것 또한 바리새인과의 갈등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 작성자 24.04.13 09:47

    예수님의 독특한 메시지와 행동과 생활 태도가 바리새인들에게 모욕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일반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의 사상에 전적으로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실 때 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항하는 바리새인들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간혹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에 관하여 긍정적인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마 22 : 34-40;요 3 : 1-2).
    그런데 이러한 마찰이 사도행전 시대에는 잠시 중단되었던 것 같다. 사도행전에서는 바리새인들이 교회의 수호자로 나타나있으며(5 : 34-39; 23 : 6-9), 교회 내의 보수적인 성도로도 나타나 있다(15 : 5).
    바울도 자신이 바리새파 출신이라고 밝힐 때, 바리새파를 본질적으로 모독했던 것이 아니라 율법을 철저히 준수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교리를 비난했던 것이다(행 23 : 6; 26 : 5; 고전 9 : 20-21; 갈 1 : 13-16; 빌 3 : 4-11).

  • 작성자 24.04.13 09:48

    ※ 참고 문헌J.Bowker, Jesus and the Pharisees(Cambridge : 1973):E.P.Sanders, Jesus and Judeism(Philadelphia : 1985)

  • 24.04.13 13:06

    @장코뱅 코람데오님이 올렸던 신약성서 배경사, 특히 마카비 부분을 보면 바리새인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받을 것 같은데요. 예수님께는 돈을 사랑하는자들로 포착이 된 자들입니다.

  • 24.04.13 17:27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4.13 09:49

    『GODpia 성경: 아가페출판사』, “사두개인”

    B.C.2세기경부터 A.D.66-70년 전쟁때까지 계속해서 존재했던 유대주의의 한 집단이다. 그 이름은 아마도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사두개인은 제사장을 편애했으며,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제사장의 역할을 가장 존중하였다. 예수님 당시에 그들은 대제사장에게 충성했던 가족들과 예루살렘의 부유한 귀족들도 포함하였다. 유대인의 중앙사법기구인 산헤드린의 대부분의 회원들은 사두개인이었다. 따라서 사두개인은 헤롯 궁이나 로마인 집정관들과 연합해서 정치적인 권력을 소유한 집단이었으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영향력을 갖지 못하였다. 백성들을 지배한 것은 바리새인의 관점이었다. 그러므로 정결법이나 명절시 성전에서의 여러 예법에 대하여 이들 두 집단의 의견이 다를 때 사두개인 제사장들은 바리새인의 관점에 따라야만 했다. 이들 두 집단의 차이점은 사소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바리새인 중에서 귀족은 거의 없었다) 종교적 문제에 관한 원리에까지 확대되었다. 사두개인은 오직 기록된 토라만을 인정하였고 토라에 관한 전통적 해석인 모든 '구전적 토라'는 거부하였다.

  • 작성자 24.04.13 09:50

    반면에 이 '구전적 토라'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랍비 유대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학자들은 한때 사두개인이 오경만을 받아들였고, 선지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사두개인이 오경을 중심으로 경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사두개인은 미래의 부활. 중간기의 유대주의에서 발전한 천사와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그리고 바리새인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예정론에 대한 교리들을 거부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두개인은 옛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 종교적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삶의 모든 면을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을 제한시키는 보수주의를 대표하였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위의 두 가지를 추구하였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때때로 신약에서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3:7; 16:1-12).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집단의 많은 회원들은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사역에 대항할 때는 연합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항상 연합되지는 못했다(마22:15-46; 행 23:6-9).
    성경에도 기독교 바리새인은 기록되어 있지만(행15:5; 빌3:5), 기독교 사두개인의 기록은 없다.

  • 작성자 24.04.13 09:50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바리새인과 함께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의 강조는 혁명의 위험이 다가옴에 따라 바리새인보다는 사두개인의 반대에 더욱 강력하게 부딪히게 되었다(행4:1-3; 5:17-18).
    사두개인은 아마도 A.D.66-70년 사이의 전쟁 초기에 완전히 멸절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종교적 관점은 '성전 없는 유대주의'와는 관계가 없었다.

  • 24.04.13 10:52

    @장코뱅 부활과 천사와 영이 없다고 믿을 정도면 유대교로서의 신실함도 결핍된 자들로서 정치권력을 소유했다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매우 암울했을 것 같습니다.

  • 24.04.13 17:27

    @노베 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4.13 09:59

    자유주의 liberalism

    진보주의 기독교가 자율성에 관한 추구를 비롯한 인간의 긍정적인 염원과 조화될 수 있다는 가정으로부터 세워진 개신교 protestant 집단 내의 운동, 자유주의는 종교를 현대 사상과 문화에 적합하게 하기를 원한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주로,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보며, 하나님 나라kangdom of God를 특히 윤리적으로 변화된 사회 속에서 발견되는 현재적 실재로 본다. 초기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안브레히트 리츨Albrecht Rutach)이다.

    스텐리 그랜츠 등, 『신학용어 사전』, p.51.

  • 24.04.13 11:02

    사전이라서 점잖게 표현을 한 것이지, 자유주의는 창세기를 신화로 보고 성경의 기적을 허구로 보며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입니다. 이단에 준해서 경계해야 합니다.

  • 24.04.19 07:46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4.13 10:03

    신비주의 mysticism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추상적이지 않은 사랑의 마주침 혹은 연합이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이고 경험적인(때때로 관상적이라고 표현되는) 지식을 추구하는 믿음과 신천. 비록 심리학적 차원(환상, 꿈, 특별 계시 등)이 신비 체험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이러한 차원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은, 신비적 삶에 성령의 열매가 있는지 여부가 그 경험을 시험한다고 가르친다.

    스텐리 그랜츠 등, 『신학용어 사전』, p.37.

  • 24.04.13 11:06

    이 사전이 설명한 신비주의는 관상기도나 내적 경건에만 치중해 있습니다. 베뢰아, 오순정, 신사도 운동 같은 현실적 신비주의 현상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4.04.13 10:12

    기복신앙 祈福信仰

    기복신앙이란 복을 기대하는, 즉 본인에게 득이 되는 복(福)을 바라는(祈) 신앙 행태를 말한다. 여기서 '복'이란 재물, 무병장수, 내세의 공덕, 자손의 번창 같은 일체의 인간적 욕심을 포함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믿음에 기복(起伏, ups and downs)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므로 유의하자. 은근히 이 뜻으로 아는 사람들도 좀 된다.

    일부 개신교의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도 기복신앙에 해당한다.

    출처: 나무위키

  • 24.04.13 11:12

    비록 나무위키이지만 금방 쉽게 다가오는 설명입니다. o.k.

  • 작성자 24.04.13 10:13

    번영신학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 gospel of success, prosperity gospel, the health and wealth gospel)이란 재정적 축복이나 물질적 풍성함이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신앙이 자신들의 물질적 부를 증가시킨다고 믿는 반성경적 신학이다. 번영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안정과 번영을 준다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서 성경을 이해한다. 번영신학의 교리는 개인적인 능력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성경해석은 초기 유대주의의 주된 흐름에서 나타나는데 기독교 전통에서는 없다.[1] 하나님과 화해된 속죄를 죄와 가난을 완화시킨다고 해석하며 저주란 믿음이 깨진것을 말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교회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힐송 교회이다. 번영신학은 인본주의에서 나온 신학이다.

    샤머니즘에 뿌리를 둔 번영신학은 성경적 관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기독교의 참된 축복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되며 현세에 결코 이루어지 않는다. 번영신학의 한국교회의 세속화의 시작으로 평가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

  • 24.04.13 11:29

    성경이 설명한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높은 것 같습니다.ㅠㅠ

  • 24.04.19 07:46

    @노베 공감합니다.

  • 24.04.13 11:31

    막연히 알고 그냥 넘어갈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고 말씀의 묵상을 한 좋은 포스팅에 대해서 매우 공감합니다.

  • 24.04.13 12:24

    사두개인과 같은 자유주의적인 신학적 주장들과,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적 열정을 빙자하여 돈을 사랑하고 표적을 중시하는 신비주의 성향들 모두가 진리를 방해하고 대적하는 누룩 같은 것이니 이것을 경계하자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올바른 분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세력은 옛 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어 왔던 흐름이겠죠. 한 쪽은 영적인 것들을 무시하면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자들이 있고, 한 쪽은 권력과 부가 없는 대신에 종교성과 도덕성을 무기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메꾸기 위한 보상심리로 역설적으로 돈을 사랑하며 초월적인 능력을 갈구한다는 거죠.
    자유주의 신학에 몰입하면 자신들을 굉장히 높게 보고 타 기독교인의 신앙과 학문을 무시하는 경향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많이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진리와 영적인 세계에 무지하고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 평범한 교인들의 다수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우선으로 나름 열심을 내기도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돈의 위력과 표적에 의존하는 연약함과 악함에 자주 노출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거울 삼아서 진리를 거스르는 것들을 제거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24.04.13 13:03

    굉장히 예리한 분별 같습니다.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지도자들, 심지어는 심리학 전공자들 중에서... 사회적 경쟁에서 낙오하고 뭔가 초월적인 세계로 들어거려 하지만 의외로 또 육신과 돈에 노예가 돼서 방황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흐름이 바라새인에게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 24.04.13 17:27

    @노베 공감합니다.

  • 24.04.19 07:47

    좋은 묵상을 올려 주셔서 저에게 도움이 되고요. 댓글들에서도 유익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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