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은 화랑.불가 대 유가의 싸움이고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고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고 진보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었다.
묘청은 전자의 대표이고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다.
이 전쟁에서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으므로 조선 역사가
사대적.보수적.굴종적 사상, 곧 유교 사상에 정복된 것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 역사는 독립적.진보적 방향으로 전진하였을 것이니
이 전쟁을 어찌 1천년 이래 최대 사건이라 하지
않겠는가.
신채호의 <조선사 연구초>
묘청은 연개소문 이후로 근 500년만에 등장한
서진파.북진파였다.하지민 묘청은 김부식에게 패했다.
이 패배를 계기로 이땅에서는 한동안 북진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이 시대의 역사서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다.
이 책에서는 고조선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중국 점령을 최소한으로 소개하는 한편, 백제의 중국
점령은 아예 소개하지도 않았다. 중국 역사서에도 소개된 백제의
요서 지역 점령을 아예 감추어 버린 것이다.
김부식이 이렇게 한 것은 묘청의 대륙 진출을 꺽고 정권을 잡은
자신을 합리화하려면,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살아야 한다는
관념을 퍼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김종성의 <당쟁의 한국사> 중에서
첫댓글 아~~ 그랬군요~~ 흥미로운 역사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