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장 ------ 醜女는 술을 좋아한다
<귀문!>
하루의 반을 찢어 어둠만을 지배하는 세계.
아는가?
그 어둠의 진정한 의미를......?
여인의 그것처럼 내밀한, 악마의 숨결처럼 은밀한 어둠에서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의미를......?
살수의 집단이라 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 살수의 집단은 그 구성인원이 불과 다섯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불과 일년이란 짧은 기간에 어떠한 살수집단보다
공포와 죽음의 대명사로 손꼽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명비에 황금 일만냥을 갖다 놓고 이름만 적어 놓아라. 신분이
어떠 하던간에 적힌 이름은 삼일이내 어둠의 이름으로 지상에서 사
라지리라!>
처음 북망산의 한 거대한 묘비에 그 글이 써 있은 후 정확히 삼
개월만에 한 생명이 지상에서 제거되었다.
귀문이란 이름으로......
그 후, 귀문의 이름은 어떠한 방파보다 천하에 가장 공포적인 이
름으로 첫 머리에 올라섰고 어둠만이 존재하는 밤의 세계에서 생명
이 이슬처럼 사라지는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만 했다.
또한 암천오제란 이름은 유명부의 염라대제보다 더 공포적인 악
마의 이름으로 부각되었다.
<암천오제!>
무림에서 살수란 이질적인 직업이 탄생한 이래 가장 완벽한 살수
들이라 불리는 죽음의 지배자들.
야제 야우------
암천오제의 살수 일호.
밤의 비라 불리우는 그 이름은 이미 무림 중에 암천오제 가운데
가장 무서운 살수라 공공연한 귓속말로 전해지고 있다.
시제 포천리------
그 외호가 말해주듯 암천오제의 살수 이호이자 북망산에서 전문
적으로 관을 짜고 묻어주는 인물로서 그가 나타날 때는 언제나 핏
빛의 관에다 죽으 자의 이름을 써놓고 살수를 펼치는 살수였다.
귀제 란천------
암천오제의 살수 삼호.
귀문의 가장 신비한 인물로 유령의 그림자와도 같다고만 알려진
인물.
월제 음월------
암천오제 살수 사호로써 유일한 여살수.
만일 그대가 음월이란 이름을 안다면 그순간부터 밤에 뜨는 달이
더이상 아름답지도 밝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달이 뜨는 그 밤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죽음의 여신과 같은 존재
가 있다는 것을 알면......
혈제 만탑------
암천오제 살수 오호.
가장 완벽한 살수의 수법으로 미학을 추구하는 인물.
아는 사람은 암천오제 가운데 가장 무서운 인물이 바로 혈제임을
상기시킨다. 너무도 완벽한 살수 아래에서 생에 대한 미련이나 운
명을 논할수 없기에......
귀문.
암천오제.
어둠 속에서 죽음을 부르는 死神의 이름......
* * *
북망대산!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낙수를 끼고 있는 이 산이 바로 죽음의 귀역이라 불리우는 망자
들의 세계임을.
인화가 유혼처럼 떠도는 가운데 밤바람처럼 스산하게 느껴질 이
곳.
헌데 언제부터인가?
월광. 달빛마져 음산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귀역의 한 구석
에 한채의 사당이 우뚝 서 있었다.
흡사 망자들의 혼을 달래주기 위한 위패와 신을 모셔둔 듯이......
한 인물.
흡사 귀혼이 현신한듯 모든 것이 흑일색으로 가리워진 흑포인.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에 습습한 어둠을 느끼게 하는데......
그 습습한 분위기만큼이나 음울하게 젖어있는 눈은 창을 통해 사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존재인 야공의 달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향.
사당 안에 은은히 감돌고 있는 술냄새가 말해 주듯이, 지금 그의
손에는 백자병의 술병이 들려져 있었다.
향기만으로도 독한 경지의 고량주일진대......
야우!
그는 다름 아닌 사개명을 어둠 속에 지상에서 제거하여 유명부로
보낸 야우였다.
"달...... 이 밤도 어김없이 달이 떠오르는구나. 그러나..... 비
내리는 밤에는 달이 뜨지 않으니....."
어느 순간이었을까?
얄팍한 그래서 비정하게 느껴지는 입술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흘
러 나온 것은.
헌데 이 무슨 느낌인가? 비정하게만 느껴질 입술 사이로 흘러나
오는 음성에 간직된 음울한 기운은......?
"그래서이냐? 나 밤에 내리는 비, 야우에게...... 너 음월이 나
타나지 않는 것은?"
음월------
"나 또한 이 밤과 똑같은 밤...... 야우...... 밤이 존재하지 않
으면 달 또한 빛나지 않듯이 달없는 밤이란 무의미함을 너 음월은
모른단 말이냐?"
달과 달.
듣기에 따라 안개같은 의미가 우러나오는 말인데......
왜인가? 거기에 어려 있는 느낌이 잔잔하게 내리는 밤비처럼 음울
한 것은......
아마도 젖어드는 음울함 때문이리라.
야우는 술병을 자신의 입에 박아넣듯 술을 들이켰다.
퍽!
내려놓는 술병은 야우의 손 힘에 견딜 수 없음인지 힘없이 박살났
다. 그리고 다시금 조용하고도 음습하게 젖은 채 흘러나오는 음성.
"아느냐......? 음월......"
음월, 아느냐?
죽음의 계단으로 이어지는 지옥과도 같은 수련에서 한줄기 끈끈
한 생명력을 나 야우가 키워올수 있었던 것은...... 너 밤에 뜨는
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 너의 고사리 손을 잡았을 때, 멍에로 찢긴 나의 가슴이 괜
스레 뜨거워지고 설렜다.
어린 시절의 서러움과 질시 속에서 그리고 고뇌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빛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죽음과 같은 지옥수련에서......
서러움을 머금은 백합같은 너의 청초한 모습은 변함없는 아늬 영
원한 달이었다.
어느 날인가......
운명의 장난이 희롱할 때에도, 수 많은 날들을 온 몸으로 싸우며
키워오고 간직했던 서로의 존재를 느낌온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
기에...... 너는 이 야우에게 영원한 달이었다.
삶과 죽음이 덧없는 우리네의 인생이라면 그렇기에 이 야우가 상
념의 고뇌에 울고 있다면 그것은 너 음월의 아픈 눈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리고 너의 아픔이 진실에서 오는 것이기에 이 야우가 지금까지
걸어온 생의 의미와 가치마져 흔들고 있음을.
밤의 가랑비처럼 음습하게 젖어있는 야우의 독백.
그것이 사당 안에 조용히 흐르다 갑자기 흐트러진 것은 그때.
"야우!"
여인의 음성.
그것이 야우의 독백을 흩트려 놓은 것이다.
순간이었다.
"......"
음울하게 젖어있던 야우의 눈빛이 물결처럼 한차례 흔들리는가싶
자 흐트러진 자세의 그가 일어서며 몸을 돌린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당 입구에 서 있는 하나의 그림자가 몸
을 돌리는 야우의 시선 속으로 빨려 들었다.
여인.
조용히 서 있는 자태만으로도 고고한 기품을 느끼게 하는데 일신
에 걸치고 있는 의복은 이 황량한 귀역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화려한 금의.
헌데 대체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어디까지인가?
밤하늘의 샛별처럼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는 봉목. 깍아 빛은 콧
날과 붉디붉은 화편같은 입술은 그림같은 아미와 더할수 없이 오묘
로운 조화를 이루는데, 아마도 이 여인의 백옥같은 피부를 두고 설
부라고 표현하는 것일 게다.
솜털처럼 보송한 목덜미도 그렇거니와,
손.
금의의 소매 끝으로 언뜻 드러나 있는 여인의 손이 너무도 섬세
하고 백설과도 같이 눈부시기만 했으니......
"......"
야우의 눈빛이 다시금 한차례 흔들린 것은 금의여인의 손에 들려
있는 명첩을 확인했을 때였다.
피빛을 머금고 있는 명첩.
야우는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름하여...... 혈명첩!
앞으로 삼일 이내 죽여야 할 이름을 담고 있는 악마의 명첩임을.
그리고 자신이 또다시 아무런 연고도, 원한도 없는 사람을 죽이
기 위한 살인을 해야만 한다는 절대신권의 명령임도.
금의여인.
그녀는 흑진주처럼 영롱한, 그러나 너무도 잔잔하여 소름끼치도
록 사악한 느낌을 주는 눈길로 응시하고 있다 꽃잎같은 입을 열었
다.
"야우, 흔들리고 있구나."
옥계수가 옹달샘에 똑똑 떨어질 때처럼 맑디 맑은 아름다운 음성.
헌데 무슨 마력인가?
미풍이 스쳐가듯 언뜻 듣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그 음성에 빨려들
어갈 것만 같은 유혹의 힘이라니......?
"야우, 잊지마라. 살수에게 감정이란 무의미한 것이거니와 치명
적인 것임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공주."
여인의 음성을 자르듯 무심하게 흘러내는 야우의 말에 의해 미처
끝을 맺지 못하고 중도에서 흐트러졌다.
헌데 공주라니......?
듣기에도 이런 곳에서 불릴 호칭이라고 할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여인의 신분은?
"......"
여인은 야우가 자신의 말을 끊어버리자 묵묵히 야우를 응시하다
수중의 명첩을 말없이 내밀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라는 듯이......
야우도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라 혈명첩을 받아 펼쳤다.
붉은 바탕의 심지에 써있는 글은......
<태백검협 라한성.
대금, 황금 천오백칠십 관!>
"태백검협이라...... 후훗! 누군지 모르나 하릴 없이 돈을 번 자
로군. 황금 천오백칠십 관이나 지불할 정도면......"
야우.
그는 혈명첩에 적힌 이름, 즉 죽을 자의 인물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다. 때문에 청부업자의 대금에 대해 비웃음과
조소를 떠올린 것이다.
자신도 살수이지만 대개 살수에게 청부를 하는 자가 어떤 부류의
인물이라는 것에 경멸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떠오르던 미소는 그대로 석고처럼 굳어졌다.
그 아래에 있는 글을 확인하는 순간에......
<음월, 귀문의 여살수!>
대금이 적혀 있지 않는 이름.
오, 놀랍게도 그 이름은 야우가 몸을 담고 있는 귀문의 암천오제
가운데 하나인 월제음월이 아닌가?
귀문의 살수에게 귀문의 살수를 죽이라니......!
흔들린다. 굳어진 야우의 얼굴이 꿈틀하면서 음습하게 가라앉아
있던 야우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흔들림을 누르듯 여인의 음성이 나직하게 사당 안을 흔들어놓
은 것은 그때.
"본시 라한성을 음월이 제거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음월은......"
여인은 그 뒷말을 가만히 흐트러 버리며 입을 다물었다.
흔들리던 야우의 눈빛이 다시금 음습하게 가라앉은 것은 여인의
음성을 다 듣고 난 후. 조용한 움직임이다.
여인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는 야우의 움직임은......
"공주, 음월은 본국의 재건을 위해 귀문에 많은 공을 쌓아왔고
혼신의 힘을 다해 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오."
"그러나 그녀는 본국의 천상천비의 무상지보를 빼내 귀문과 등을
돌렸다."
본국...... 천상천비의 무상지보.
언뜻 흘려 듣기에는 결코 평범한 말이 아닐진대......
"야우, 본 공주는 그대가 그녀를 오래 전부터 사랑해 왔음을 잘
안다. 또한 그녀의 공이 작지 않은도 인정한다. 허나 본국의 재건
을 위해서는 그 결과를 중시할 뿐이다. 음월은 스스로 귀문을 벗어
나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여인의 음성은 마치 야우의 심적 동요를 억누르듯 무섭게 침잠되
어 있었다.
"그대가 거절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대의 마음을
잡고...... 그녀의 수중에서 천상천비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사람
은 그대이기 때문에 맡기는 것이다."
"후훗...... 거절이라......?"
야우. 그는 무엇이 우스운지 흐릿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어려 있는 것은 비릿한 조소와 비애의 냉소.
"이제껏 단 한 번도 공주의 명령을 거역해 보지 못한 나요. 후후......
아니 거절할 수 없는 살인기계로 키워진 내가 공주의 명을 거절할 수
있겠소?"
자조하듯 말을 흘려낸 야우.
그는 음울하게 젖은 눈길로 공주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 눈빛 때문일까?
공주의 안색이 일순간 흐릿하게 변한 것은.
"야우, 비록 본 공주가 잔인한 명령을 내렸을지라도...... 원하
던 바의 일이 아님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
"우리가 다른 신분으로 태어났던들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결코 손에 피비린내를 물들이지 않고...... 밭을 갈고 길쌈을 하는
평범하나 행복한 삶을...... 그러나 우리의 운명은 평범한 삶을 용
납하지 않는 운명이다. 기왕 주어진 숙명이라면 우리는 이 일을 해
내야만 한다. 때문에 본 공주는 잔인한 줄 알면서도 그대에게 사랑
하는 여인의 심장에 칼을 꽂으라는 명령을 내려야만 하고...... 그
대는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
"......!"
"야우, 우리는 지난 세월 노력해 왔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그대가 지금까지 희생한 세월에 대한 보상은 후일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보상해 주겠다. 그러나 여기서 흔들릴 수는 없다."
야우.
그는 공주가 말을 끝낼 때까지 시종 말없이 음울한 눈빛으로 그
녀를 응시하고 있을 뿐, 오직 침묵만을 지켰다.
아니, 그 침묵의 여운처럼 그는 소리 없이 몸을 돌려 제단 뒤로 향
했다.
그 종용한 움직임과 어깨에 어려있는 것은...... 알알이 맺혀 구
름처럼 피어오르는 고뇌의 빛이었으니......
야우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야우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던
금의여인의 얼굴에도 음울한 빛이 떠오른 것은 언제일까?
"야우, 괴로우리라. 사랑하는 여인의 심장에 칼을 꽂는 그 마음
은...... 그러나 우리의 주어진 운명의 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
을 잊지 않기를......"
아름답고 마력적인 여인의 음성.
"앞으로 일 년..... 그때는 나 아나의 꿈이 이루어 질 것이다. 나
의 꿈이......"
여인 아나.
아나의 꿈.
그녀의 독백이 가지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 *
서고.
제단 뒤에 이어진 지하 암도에 자리한 석실은 서고였다.
순서에 따라 진열된 책 중 하나를 봅아든 야우. 그는 지금 그 책
의 앞부분 어느 한 장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성명 : 태백검협 라한성.
내력 : 호남성 태극검문 출신.
지위 : 현 태극검문의 문주.
나이 : 계축년 오월생.
무공 : 팔팔육십사식의 태극검법에 달통.
헛점 : 제이십사식의 변환세인 희분음양에 있음.
특기 : 매화를 좋아하여 대부분은 매화곡이란 곳에 거주하고 있
음.
주의사항 : 특히 청력이 뛰어나고 감각이 좋음. 접근함에 주의
를 기울여야 함.>
내용.
그것은 한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였다.
탁!
야우는 책을 덮으며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어깨 위로 한줄기 바람처럼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라한성...... 아까운 인물이나 피할수 없는 것이 그대의 죽음이
다. 음월을 만나기 전에 먼저 그를 염왕에게 안내해야겠지."
그 음성이 허공에서 흐트러질 때에는 이미 야우의 신형은 사라지
고 난 후였다.
이곳은.......
망자의 유혼이 떠도는 귀역인 북망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