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사물과 관념 이미지의 융합과 시적 화해 --이병일 시집 『몽당빗자루』 金 松 培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정경 속 외적 사물과 정감적 대화 현대시의 구성 요건에는 대체로 이미지와 주제에 관한 담론으로 말한다. 그것은 그 시인이 평소에 간직한 삶에 대한 경험들이 어떤 과정으로 변해왔으며 그 도정(道程)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나 흔적들이 상상력을 통해서 재생하여 심상(心象)으로 발현하느냐 하는 이미지와 그 경험에서 획득한 인간적인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 내용의 메시지 즉 주제가 명징(明澄)하게 표출되고 있나 하는 문제에 심각성을 두는 경향을 중시하게 된다. 여기 이병일 시집 『몽당빗자루』의 시편들을 일별해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시각적으로 착목(着目)하는 외적인 사물과의 무언의 대화를 통해서 이미지를 창출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심중(心中)에 잠재해 있던 인생의 진실이 융합하고 화해하는 시법을 잘 응용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병일 시인이 응시하는 외적 사물은 만유(萬有)의 자연물과 함께 주변의 사소한 생물, 무생물의 범주까지 그의 심안(心眼)으로 상호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는 대화를 계속하게 된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는 그가 시집 ‘序’에서 언급했듯이 ‘주어진 삶의 끝자락에서 / 몸이 시들어도 놓지 못하는 집착 / 그것이 천근의 납덩이인 줄 알면서도 / 우리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다’는 심적 고뇌의 해소 내지는 화해의 해법을 항상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백운사 뒤꼍에서 / 노스님 독경소리에 귀 기울이다 / 여울 만들며 흐르는 실개천 / 비 내려 지표수 보태기 전의 정수가 / 너희 모든 번뇌 내려놓으라 / 집착으로 쌓인 업을 내게 넘기라 한다’는 ‘왕곡천에서’의 ‘노스님의 독경소리’에 절실한 감응으로 시적인 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영감 생전에 뒤꼍 대나무 곁가지 잘라서 칡넝쿨 쪼개 옭매어 쓰던 대빗자루 하나 잔가지 닳아 없어지고 굵은 가지 몇 성글게 남은 채 사립문 기둥에 기대어 서 있네 햇살은 쓸어 모으고 어둠은 쓸어 내치던 대빗자루가 백골이 된 추억으로 남아 어스레한 불빛 배어 나오는 안방 문을 바라보네 섬돌부터 마당 빈 구석까지 잡티 하나 없이 쓸어 내던 영감이 땅거미 속으로 묻혀 가는 옛집 사립문 기둥에 기대어 홀로 남은 할멈을 부르네 쓸어 모을 것도 쓸어 내칠 것도 없는 곳 대빗자루가 쓸데없는 세상 밝고 외롭지 않은 천국으로 어서 가자 채근하며 기다리네 --「몽당빗자루」 전문 이병일 시인은 보편적인 일상생할의 단면에서 인생 전체를 조감(照鑑)하는 감응력을 발휘하고 있다. 첫 연에서는 ‘잔가지 닳아 없어지고 / 굵은 가지 몇 성글게 남은 채 / 사립문 기둥에 기대어 서 있네‘라고 어쩔 수 없이 인생무상에 잠기면서 생에 대한 체념을 적시하고 있다. 또한 둘째 연에서는 지나온 생의 아스라한 형상들이 추억 남아있는 ‘어스레한 불빛 배어 나오는 / 안방 문을 바라보’는 회상에 젖어 있으며 다음은 ‘마당 빈 구석’과 ‘옛집’에서 ‘사립문 기둥에 기대어 / 홀로 남은 할멈을 부르‘는 고독감에서 더욱 무상의 심지(心志))를 발현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성찰과 허무의 일념(一念)이 작품 전체를 분사(噴射)하는 인생관이 절절한 메시지로 전해지는 시적 의미가 작품의 주제로 정립하면서 이 ‘몽단빗자루’가 제시하는 시적 비유가 우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다른 사물을 이끌어 쓰는 수사적 방법이 작품의 형태나 구성에서 이해를 돕는 시법으로 우리 시인들이 자주 응용하는 감동을 주는 시법이다. 이 작품이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기도 해서 더욱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병일 시인은 작품 「낙과」 중에서도 ‘과수원 한구석에 쌓여 / 썩어 가는 복숭아 한 무더기 / 저마다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 무색의 피 / 세월에 굳어 간다 / 내출혈로 기진해 / 가지 놓고 떨어진 절망 한 무더기’라는 낙과(落果)에 대한 의인회의 시법은 그의 대사물에 대한 인식이 시적인 사유와 지향점이 동일함을 이해하게 한다. 다음으로 이병일 시인에게서 사물적인 이미지에서 특이한 점은 ‘신’과의 접맥으로 진실을 구현하려는 시법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사물과 접신(接神)으로써 형상화에서 탐색하는 진실을 이해하게 한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신이 하늘에 있다곤 하지만 / 나는 보거나 느낀 적이 없다 / 어쩌면 빛으로 뭇 생명을 주 관하는 / 태양이 신일지도 모른다 /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므로(「하 늘」 중에서) - 이제부터는 신이 주신 권능을 / 함부로 쓰지 말아라 / 마른하늘이든 어둠 속의 폭풍에서든 / 장난삼아 불칼을 휘두르지 마라 / 먹이를 취한 포식자는 되지 말아라(「번개야 천둥아」 중에서) - 만일 너의 정체가 신의 호흡이라면 / 신전을 짓고 제단을 쌓아야겠구나 / 멋대로 숨 쉬는 신을 달래기 위해 / 우리는 어리석은 인간이어야 하겠다(「바람」 중에서) - 그늘은 그것을 만들어 잡고 있는 것들의 / 희생으로 다른 생명에게 / 은혜를 베푸는 신의 한 모습일 뿐 / 그것을 잡고 있다 하여 / 그늘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그늘」 중에서)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신 / 아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 그를 본 적이 없어 /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층 아파트」 중에서) - 절대영도로 얼어있는 불모지는 / 하늘 문에 들어가야 해빙되어 / 생명을 얻을 것이다 / 신 만이 풀 수 있는 행성 이면의 비밀(「비밀」 중에서) 2. 내적인 관념세계와의 접맥과 진실 탐구 이병일 시인의 시적 사유에는 앞에서 본바와 같이 모든 귀결점은 관념세계와 접맥한다. 현대시에는 사물시와 관념시로 구별해서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사물시는 어떤 사상이나 어떤 의지를 배제하고 사물 이미지를 중시하는 작품이며 관념시는 사물의 이미지보다 어떤 관념세계를 드러내어 독자를 설득시키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 작품을 말한다. 이병일 시인도 지금까지 어떤 사물을 대하면서 외적인 이미지만 창출했는데 지금은 내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분출하는 관념으로 시를 구성하는 전환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작품 「희망」 중에서 ‘한여름 밤에 / 나는 은하로 나가 그물을 던진다 / 작은 별들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게 / 그물코가 성근 그물 / 은하수를 따라 헤엄치는 희망들 중 / 크고 밝은 별들만 잡는다’는 관념의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시화(詩化)하는 특성이 바로 관념세계의 발현이다. 정신과 의사는 마음도 생각처럼 머릿속에 있다고 전문지식을 빌려 말하지만 나는 마음은 가슴 안에 있다고 믿는다 기쁠 때 슬플 때 반가울 때 뛰고 울렁거리고 가라앉는 가슴 마음은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지식과 생각을 담은 무거운 머리는 버리고 해와 달, 별과 꽃이 가득한 가슴만 가지고 가겠다 그것들로 하늘에 수많은 무지개를 만들겠다 --「마음이 있는 곳」 전문 그렇다. 이병일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시적 소재를 외적 사물에서 취택하지 않고 ‘나는 마음은 가슴 안에 있다’고 굳게 믿는 내적인 의지를 먼저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그가 희구하거나 갈구(渴求)하는 기원의 의식이 ‘해와 달, 별과 꽃이 가득한 / 가슴만 가지고 가겠다 / 그것들로 하늘에 / 수많은 무지개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행보를 장치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정황을 관념 이미지로 흡인했지만 ‘언젠가 /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 지식과 생각을 담은 / 무거운 머리는 버리고’라는 단정적인 외적 형상도 함께 표출함으로써 우리 시학에서 말하는 형이상시(形而上詩-metaphsical poetry)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형이상시는 사물시와 관념시를 극복하고 이 두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융합시켜서 새로운 시법을 모색하는 고도의 지적인 작품세계를 말한다. 이는 사물시와 관념시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타입의 작품을 창작한 시를 말하는 시창작의 중요한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는 다시 ‘푸른 하늘에서 한가로운 흰 구름아 / 네가 지나온 하늘 도솔천에는 / 먼저 간 내 선한 벗들이 / 눈썹 하얀 신선이 되어 있더냐 / 등 굽은 노송 그늘에서 시문 지으며 / / 아직도 헛된 미련 못 놓고 / 사파에서 미적대고 있는 / 나를 기다리고 있더냐(「세월에게 물어본다」 중에서)’라는 관념의 의지를 의문형으로 결론을 내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심연(深淵)에는 사파의 세계나 도솔천이나 또는 신선이 그와의 시적 동행의 심지로 현시되는 것을 보면 무형의 세월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이상적인 개념을 감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세월은 옛날엔 꿈이었지만 지금은 시름이다 흐르는 그 속엔 송사리 버들치 모두 사라지고 물장군 몇 마리 엎드려 어기적댄다 말풀에 걸린 날개 옷 한 조각쯤 잡을 수 있을까 하고 그것으로 몸을 감싸고 하늘로 오르려 꿈꾼다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노인이 ----「老年」 전문 그는 다시 무형체의 시간성에서 승천(昇天)하는 꿈을 꾸다가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고 / 기다려야 하는 노인‘은 지난날의 꿈을 ’시름‘으로 되새기고 있다. 여기에서도 그의 세월(또는 시간)에 대한 이미지가 송사리, 버들치, 물장군 등의 실재 사물이 등장하여 사물과 관념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정적 이미지의 계류장엔 ‘자유를 사용 못하고 / 외로움에 파묻혀 / 서서히 죽어 가는 독거노인 / 삶에 가장 치명적인 질병 / 자유와 외로움(「獨居」 중에서)’이 가득 넘치고 있다. 이러한 그이 내면에는 다양한 신상 변화가 있었겠으나 ‘완치되지 않고 진행만 늦출 수 있는 병 / 알콜 의존증(「퇴원」 중에서)’에서 엄습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인생이라고 자숙(自肅)하고 있다. ‘세월 따라 겹겹이 쌓이는 카르마 / 저세상 갈 때도 벗지 못할 짐을 지고 / 부풀었다 꺼지는 삶 / 바람에 날려 지워지는 흔적인 것을 (「인생」 중에서)’이라는 어조에서 침통한 심정의 일단이 자신의 인생관으로 현시되고 있어서 그의 의중(意中)에서 생성하는 시적 진실을 공감하게 하고 있다. 3. 꽃과 사랑의 함수, 미적 애정론 이병일 시인은 습관처럼 꽃에 관한 시를 많이 쓴다. 그의 시야에서 활짝 웃으면서 사랑의 언어를 묵언(黙言)으로 유혹하는 꽃들에게서 무엇인가 따뜻한 말 한 마디 던지고 싶은 치기(稚氣)가 발동하는가보다. 그는 ‘이 여름의 길목 유월에는 / 장미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 사랑의 가시로 나를 찌르고 / 비바람의 일부가 되는 장미 / 그 붉은 정열만을 가슴에 새겨 넣자(「유월의 붉은 장미」 중에서)거나 ’화장은 지우더라도 꿈은 지우지 말라고 / 정열은 사위더라도 그리움은 놓지 말라고 / 사랑만은 가슴속 깊이 간직하라 하며 / 눈물 닦아 준다(「황매화 시들다」 중에서)‘라는 어조로 애정의 말을 건네고 있다. 개울가에 핀 야생화 너무나 예쁜데 이름을 모르겠다 지나는 농부에게 물어도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나는 왜 저 꽃 이름에 이리 집착할까 꽃이 제 이름 알려 달라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이 붙인 이름은 꽃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나는 왜 알고 싶어 안달일까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 보는 사람 마음 천상에 올려놓고 때 되면 흔적 지우고 가는 것이 꽃이거늘 그저 “아! 예쁘구나” 감탄하면서 가슴 열고 보듬으면 될 것을 쓸데없는 호기심이 심사 어지럽게 하는구나 --「이름 모를 꽃」 전문 이병일 시인이 지나가는 곳엔 언제나 꽃들이 화사하게 만발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도 있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의 이름을 모두 알기는 식물학자가 아니면 어렵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붙인 이름은 / 꽃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 나는 왜 알고 싶어 안달일까’하고 ‘쓸데없는 호기심이 / 심사 어지럽게 하’는 정황이어서 그의 시각적 이미지의 발현이 적시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 / 보는 사람 마음 천상에 올려놓고 / 때 되면 흔적 지우고 / 가는 것이 꽃이거늘 / 그저 “아! 예쁘구나” 감탄하면서 / 가슴 열고 보듬으면 될 것’이라는 아름다움과 예쁨에 심취(深醉)하는 사랑의 정수(精髓)를 탐구하는 듯 심오(深奧)하다. 먼 길 쉬어 가려 잠시 머무른 신행길의 어린신부인가 붉은색 노란색 마다하고 정수리에 남자색 족두리 얹었다 평생 겪어야 할 시집살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르는가 수줍은 미소 머금었다 키 작아 덤불 뒤에서 까치발 딛고 가야 할 길 쳐다본다 따라나서는 사람 많겠지만 다시 길 떠날 때는 청사초롱은 내가 들고 앞장서야 하겠구나 --「각시붓꽃」 전문 또한 ‘청사초롱은 내가 들고 / 앞장서야 하겠’다는 어린 신부의 신행길과 같이 이 ‘각시붓꽃’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에 대한 그의 집념이 형상화하는 이미지의 투사(投射)가 엿보이고 있어서 공감하게 한다. 이렇게 자연 사물을 인격화하는 시법은 자연이 우리 인간의 정서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 시학에서 감상적 오류라고 말하는 자연의 인격화에는 두 가지의 원리가 작용한다.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동화(同化-assimilation)가 있으며 반대로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投與)하는 투사(投射-project)로 구분해서 친자연적인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 이병일 시인도 꽃(자연)을 대할 때 자신이 그 꽃이 되어 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과 꽃을 저만치 거리를 두고 서서 ‘아름답다’ 또는 ‘예쁘다’를 되뇌이면서 꽃에 대한 사랑을 토로하는 시법이 시학에서 널리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상사화, 양귀비, 장미, 아카시아, 홍단풍, 밤꽃, 민들레, 메꽃, 능소화 등등에서 감응하는 그의 시법은 예리한 시각과 후각 혹은 청각을 통해서 그들의 속삭임을 경청하면서 진솔한 사랑의 진실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꽃과의 애정론은 여러 편의 작품에서 다채롭게 형상화하고 있는데 「홍단풍」 중에서 ‘붉은 옷 입어 속마음 내보이는데 / 너는 어이 조급해서 / 님 오기 전부터 붉게 정염을 태우는가’라거나 「양귀비」 중에서 ‘꽃은 가만히 있는데 / 비바람이 그대로 두지 않는다 / 너무 아름다워 / 서로 품으려 싸운다’는 형상으로 그들의 미적 애정론을 표출하고 있어서 흥미를 유발하게 된다. 그리고 ‘머리 큰 인간이 더럽힌 예토를 / 부처님과 예수님이 / 손잡고 정화하려나 보다 / 자비와 사랑으로 씻어 내려나 보다 / 박애의 꽃이 만발한 이팝나무에서 / 자비의 연등이 밝히는 / 어둠 없는 세상을 본다(「이팝나무 꽃길」 중에서)’에서는 그가 정신적으로 교통(交通)하고 있는 불성(佛性)이 ‘이팝나무 꽃길’을 걸으면서 생성하는 그의 시법에 감동하게 된다. 그는 이 밖에도 자연과 교감하는 서정적 심저(心底)에는 작품 「산들길」 「구름이 머물던 자리」 「여름날 백운산 골짜기」 등에서 정감어린 풍광(風光)에서 연약한 인간의 속내가 화합하는 시법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4. 생명체들과의 정감적 소통과 그 형태 이병일 시인에게서 주목할 시적 대상물은 이 세상 천지에 널려있는 생물과의 정감적 소통을 통해서 교합하는 시적인 경지를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 이 시집 제재인 ‘몽당빗자루’나 ‘쓰레기’, ‘계단’ ‘화석’ 그리고 ‘산들길’ 등 무생물들에게도 귀중한 생명을 부여하고 인생적인 담론을 교환했던 시법도 있었지만 특히 「화석」 중에서는 ‘그 화석은 내가 죽어 / 매장이든 화장이든 장사 지낼 때 / 부장품으로 나와 함께 갈 것이라는 것은 안다‘는 어조로 자신의 향후의 지향에 대해서까지 예단(豫斷)을 하는 것이다. 이제 무생물뿐만 아니라, 귀중한 생명체에서 그 예지적인 메시지를 경청함으로써 그의 시세계는 더욱 광범위하게 사유의 광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곤충과 가금(家禽), 어류, 애완동물에게까지 우리 인간과의 교감을 시화(詩化)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팽나무」 중에서도 ‘아파트 정원으로 이식된 / 팽나무 한 그루 / 뿌리 가지 잘리고 / 수액 주사기 여러 개 몸통에 꽂고 / 밤새워 내는 신음소리에 / 귀 여린 나도 잠을 설친다’는 나무들의 애환도 잠을 설쳐가면서 직접 듣는 시인의 정서이다. 내가 자라 꽃 피울 만큼 큰 나무가 되었을 때 어디선가 날아든 나비 한 마리 피운 꽃의 꿀을 모두 빨아 먹고 먼 곳으로 날아갔다 꽃을 텅 빈 항아리로 남겨 놓고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내가 피운 꽃의 꿀을 빼앗기 위해 그 큰 날개로 춤추더니 멀리 날아가 버렸다 잠시 동안 주고받은 정 인연을 내동댕이치고 아주 멀리 가 버렸다 --「날아간 나비」 전문 이병일 시인은 이 날아가버린 나비에게서 무엇을 얻었을까. 그는 그만큼 애지중지 ‘내가 피운 꽃의 꿀’을 송두리째 빨아먹고는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잠시 동안 주고받은 정 / 인연을 내동댕이치고 / 아주 멀리 가 버렸다‘는 화자는 허무의식에 잠겨서 허망(虛妄)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작품 「나비처럼 살고 싶었다」 중에서는 ‘한 개의 점인 알로 / 일차원에서 잠자다가 / 애벌레로 깨어나 나뭇가지를 기면서 / 이차원을 살아 보고 / 번데기로 몸을 숨겨 삼차원을 느껴 보고 / 나비로 우화하여 / 사차원을 헤집고 싶었다’는 그의 간절한 기원이 나비의 우화(羽化)하는 과정에서 현현되고 있어서 시적 비유나 그 이미지의 투영이 설득력을 가지게 한다. 마음마저 추악하다 머릿속에 깊이 숨겨 내보이지 않는다 잘 진화한 두뇌로 흉계와 위선 배신을 포장하여 주고받는다 신이 준 본능을 변형시켜 서로 멸하려 한다 개들은 강아지에게 가르친다 사람만도 못한 개가 되지 말라고 주인이 못났어도 우직한 개가 되라 한다 --「개가 되어 사람을 본다」 중에서 그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 놓인 간극(間隙)을 교훈적인 메시지로 분사하고 있다. ‘개가 되라 한다’는 결론적인 어조는 결국 ‘사람이 되라 한다’는 개와 사람의 비유적인 시법이 흡인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과 비합리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가는 무리들을 풍자(satire)적으로 톤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현대시들은 이러한 문명 비판으로 부도덕, 부조라, 부패 등 갈등요소들의 현실을 풍자하는 비유나 상징 또는 주제로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만도 못한 개가 되지 말라’는 화자의 교시(敎示)는 ‘흉계와 위선 배신’에 대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개라는 동물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에게 경종(警鐘)을 울려주고 있어서 그가 구현하려는 시적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이외에도 생명체를 중심으로 창조된 메시지들은 작품 「굴뚝나비」 「검둥이」 「자유 고양이」 「참새떼」 「콩새」 「낮닭 울음소리」 「물고기는 왜 물을 거슬러 오를까」 「호박벌」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생명체들에서 무언의 절규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지향적 인간 사랑의 염원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괴테는 ‘인생은 사랑이요, 그 생명은 정신이다’라는 말로 인간들의 올곧은 정신세계의 구현을 설파(說破)하고 있는데 이런 교훈들이 시적으로 용해되어 시정신으로 승화할 때 우리는 공감으로 화답하게 되는 것이다. 5. 마무리-‘미완의 선’ 이병일 시집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작품 「현대시」 중에서 ‘말이 달라져 서로 알아듣지 못해 / 짓다 팽개친 바벨탑 / 그 폐허에서 벽돌을 주워 와 / 집을 짓는다 / 탑을 쌓던 사람들이 /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벽돌에 / 여러 색을 칠하여 집을 짓는다 / 성당인지 절인지 성황당인지 / 사람이 사는 여염집인지 모를 / 추상화 같은 집 / 짓는 사람만 아는 집’ 이라는 비유로 현대시의 난해성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그가 평소에 시를 창작하거나 독시(讀詩)하면서 절감한 느낌이 진솔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 쓴 사람만 아는 글’ 뿐인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할 글을 / 누가 써서 내보일 것인가’라고 시창법에 대한 상당한 의구심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좋은 시 한편을 창작하기 위해서 많은 고심(苦心)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가 말했듯이 우리의 평상시 일상에서 시의 소재를 취택하고 생활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정서생할과 시의 기교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과 같이 아주 편안한 감정으로 사물들과 대화를 즐기는 작품을 창작하면 이런 문제는 무난하게 해결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다른 시집 『군불』에서도 특이하게 불성과 친화의 어조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그가 갈구하는 삶에 대한 집착을 읽을 수 있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인생론이나 가치관의 설정 정점에서 백미(白眉)로 꼽을 수 있는 작품 「未完의 禪」을 함께 읽으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투명함 속에 갇힌 정적을 스치며 한 줄기 미세한 바람이 인다 영혼이 떠난 주검의 이마에 입술을 댄 사람을 떠난 영혼이 기억할 수 없듯이 정적도 바람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정적보다 바람의 질량이 크므로 확실치 않지만 어떤 예감은 있었을 것이다 열반으로 이어지지 않는 禪 헝클어진 思惟가 바람처럼 다가와 투명함이 흔들리고 정적이 무너질 순간이 다가온다 죽어야 완성되는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