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자주 ‘빈 무덤’을 생각하고, 가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합시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요한20,1~9)
오늘은 부활 대축일입니다.
부활절은 우리가 우리 신앙의 뿌리를 새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하는 날입니다.
우리 신앙의 근거는 예수님 제자들의 부활체험입니다.
주님께서 체포되던 그 시간에 제자들은 겁이나 뿔뿔이 도망갔습니다.
십자가에 신음하며 돌아가시는 그 자리에서 마음껏 목 놓아 울지도 못했습니다.
가냘픈 여인들과 이름 없는 제자들,
아리마태오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례를 치루는 그 현장에
제자들은 얼굴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흩어지고 배신하고 돌아섰던 제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던 그 힘이 무엇입니까?
죽음이 그토록 무서워 떨던 제자들이 생명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던 그 힘이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무섭게 변화시켰습니까?
그것은 부활에 대한 확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빠스카 신비 즉 죽음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에서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지 않고
다시 부활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악과 절망과 미움의 패배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갖가지 맺힌 한과 불행 그리고 미움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의 파괴와 함께 생명의 승리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과 선과 행복의 완전힌 승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모든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
즉 사랑이 미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덕분에 우리에게도 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덕분에 우리 역시 부활 할 수 있고,
지금 여기서도 죽음의 힘에서 벗어나서 부활의 힘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힘입어 우리는 절망하기보다는 희망하고,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사랑의 회복입니다.
또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오늘 복음의 빈 무덤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빈 빈 무덤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포기할 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을 텅 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포기할 줄 압니다.
우리는 자주 자주 빈 무덤을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평범한 일상이 멈추고 살아가기 어려울 때 빈 무덤을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빈 무덤으로 살아갈 때, 나중에 나의 무덤이 참으로 비워지게 되고,
최종적으로 부활되어 하느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빈 무덤은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우리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나의 무덤은 어느 정도 비워져 있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위에 있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고 땅에 있는 것은 다 모조리 모조품입니다.
땅에 있는 것들은 우리의 자기실현과 회복을 방해하고 상처를 주는 것들이고
위에 있는 것들은 하늘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의 인생 목적과 존재이유를 실현시켜 주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지내면서 우리의 존재 품위를 올려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세종 성바오로성당 교우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