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일 변화가 있는 시간을 가졌다.
살아 영원한 설렘이자 평안이고, 죽는다 해도 영원할 수밖에 없는 고향이다.
민철이는 초중고 친구다. 고창에 내려간 이유이기도 하다. 17일 1시 약간 넘은 시간에 터미널에서 만났다. 바로 모양성으로 이동했다. 모양성이 바람으로 살갑다. 아버지 바람이 얕은 소리를 낸다. 사진 찍고 속삭임으로 인사를 나눴다.
동호 바다가 보이는 ‘황토바다’다. 은호 친구가 있다. 몇 번 전화로 목소리를 들었다. 반갑고 듬직했다. 동호 바다에서 잡은 낙지다. 정갈한 음식에 막걸리를 채웠다. 친구 수만이를 만났다. 수십 년 만에 만나도 고향 친구는 스스럼이 없다. 은호 친구가 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바람 너머 당신> 서명도 했다. 동호해수욕장에 들렀다. 손에 내민 새우깡을 갈매기가 정확하게 낚아채 간다.
민철이랑 모양성을 다시 한 바퀴 돌았다. 민철이는 전날 술을 너무 마신 이유로 힘들어했다. 민철이가 가고 중백이, 원이랑 삼겹살에 저녁 겸 술을 마셨다. 건강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좋다. 숙소까지 안내하고 결제마저 하고 갔다. 에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남는다.
18일 아침이다. 작년 11월부터 심원에서 목회하고 있는 생현이가 왔다. 아내가 운전했다. 콩나물해장국으로 속을 편안하게 했다. 사포버스정류장에 나를 내려 주었다. 서해랑길 44코스가 시작하는 곳이다. 부부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헤어졌다. 곰소항이 끝나는 지점이다. 부지런히 걸었다. 14Km, 4시간 30분 코스를 3시간에 걸어 버렸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던 이유가 작용했다.
대학교 선배를 만났다. 고창에 살고 있다. 지금의 거처는 제주도다. 차를 가지고 왔으니, 나만 소주를 마셨다. 젓갈 백반이다. 자주, 민주, 통일, 노동해방, 평등 세상을 추구하며 치열했던 젊은 날이 소환되었다. 젊은 날의 운동은 늙는다고 해서 달라질 이유가 없다. 분명 우리는 수탈과 착취가 없는 세상,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투쟁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본질적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이 달라진 것은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우리의 나이 듦이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부안터미널에서 5초 차이로 버스를 놓쳤다. 기계는 50분 발권했는데, 버스는 50분 출발했다. 50분에는 60초가 있다. 기계 발권을 돕는 분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취소하고 7시 30분 버스를 다시 예매했다. 취소에 30퍼센트 돈이 깎였다. 이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관리자와 통화가 이루어졌고, 서울터미널에 이야기해서 100퍼센트 환불 처리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취소가 며칠 뒤에 이루어진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다. 서해랑길 44코스를 걸은 이유로 몸이 무겁고 살짝 피곤했다. 순댓국에 소주 유혹을 물리쳤다. 1박 2일이 입안에 달큰하게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