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PEN문학 11.12월호 / 세계한글작가대회 특집 - 임애월

[嘉南 임애월]

                        세계한글작가대회, 그 3일째 오후에

                                                                                                                                                 임 애 월 (시인)

   국제PEN한국본부가 주최한 세계한글작가대회 개최 3일째인 9월 17일, 신라천년의 고도 서라벌에는 아침부터 초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오전 행사를 마치고 오찬을 마친 후, 경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형산강을 건너 동국대학교 100주년기념관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와 소설가 윤후명, 독일의 레귤라 벤스케, 이집트의 에크발 바크라 등의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잘 정돈된 시내 도로변의 가로수는 가을비를 맞으며 하나 둘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가을비와 함께 이제 가을향기도 짙어지리라.

   동국대학교 100주년기념관 대강당의 객석은 이미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만석이다.

뒤에 선 채로 강연을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진행은 동국대학교 장영우 교수가 맡았다.

그는 이 강연을 야외가 아니므로 야단법석은 아니지만 ‘강단법석’이라 해 두자며 첫 번째 강연하실 소설가 르 클레지오 님을 소개하였다.

   감색 줄무늬 상의에 청바지 차림으로 르 클레지오 님이 강단에 서서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하자 큰 박수가 터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대한 기대심리와 존경의 마음이리라.

   필자도 2008년에 그의 소설 『사막』을 읽었었는데...... 이 행사에서 뵙게 된 인연으로 집에 돌아가면 다시 한 번 그의 소설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르 클레지오 님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대주제로 ‘낱말의 음악성’에 대한 강연을 시작하였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되는 강연에서 그는 ‘작가들은 언어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작품은 국경을 허물고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서도 공감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묘사가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하고 삶에 대해 향기를 더해 주는 운율을 가진 문학은, 개체에서 시작하여 가장 명백한 형태로 보편성에 다다르는 과정이나 방법’이라고 말하였다.

   특히 한국문학은 자연과 모성애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서 허난설헌의 시와 김광섭의 「비 개인 아침」, 구상의 「초토의 시」, 윤동주의 「서시」 등을 인용하였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Counting the stars at night」을 영어로 낭독할 때는 왠지 가슴이 저릿해 왔다. 작품에 대한 선입감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온몸을 전율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이 시가 갖고 있는, 언어를 넘어선 그 무엇 때문이리라.

‘윤동주 시인은 자연의 비유와 연상을 통해서 문학과 외부세계와의 밀접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어머니에게 받은 생명에 대한 보답으로 민족의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칠 것을 시를 통해 다짐하였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전쟁범죄에 대한 인류의 집단책임을 심문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문학의 위대한 정신’이라고 르 클레지오는 설파하였다.

그의 말대로 언어가 ‘사라진 문화를 되살리는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조국의 광복을 끊임없이 노래하다가 먼저 가신 문인들의 혼이 담긴 문학작품들도 우리나라가 빛을 되찾는데 큰힘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윤후명 소설가는 경주에 오니 박목월 선생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면서 ‘세계한글작가대회라는 행사를 개최하게 되어 눈물겨운 마음으로 강단에 섰다. 한국에 태어나 한글로 문학을 하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하였다.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답//썩은 초가지붕에/하얗게 일어서//가난한 살림살이 자근자근 속삭이며 .....’ 그는 박목월 선생의 시 「박꽃」 낭독으로 강연을 시작하였다.

   ‘이제 겨우 100년이 조금 넘은 한글문학의 생태계는 아직 신생아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외국어나 축약어, 일본식 한자용어 사용 등으로 지금 한글의 오염은 굉장히 심각성 상태이다. 그 위험성을 빨리 깨닫고 문인들이 앞장서서 정확하고 바른 한글사용으로 우리의 글을 정화해야 한다.

소통불가 애매모호한 문학이 아니라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한글문학을 해야 한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강해져야 우리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된다......

인도 같은 경우 24개가 넘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우리의 언어는 하나다.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는 그분의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 번째로 독일의 범죄소설 작가인 레귤라 벤스케가 금발에 까만 정장 차림으로 단상에 섰다. 그녀는 유럽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고 진행자가 소개하였다.

   ‘독일의 범죄소설은 독일의 감수성과 향수를 잘 표현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독일의 범죄소설에는 공격, 증거, 조사에 도덕적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특히 동독은 서독이 건드리지 못한 장르까지 섭렵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1992년에는 장벽 붕괴 관련 작품이 인기였다. 일부 지역에선 종교범죄소설이 득세하기도 했다’ 면서 그녀는 지역적인 범죄소설이 발생한 이유와 형성 유행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들려주었는데 ‘독일의 범죄소설은 일반 범죄소설들과 좀 다른 부분이 있지만 독일의 민족성이 들어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독일의 범죄소설을 구할 수 있으면 읽어봐야겠다.

   마지막 강연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생한, 언론인이면서 PEN센터에 근무하는 소설가 에크발 바라카 차례다. 그녀는 사고 때문에 참석을 못할 뻔 했는데 아들이 동행해 주어서 제 시간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였다. 초대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작가들은 사회를 끌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이슬람 여성들의 삶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슬람 보수주의 사회의 여성들은 역량은 충분하지만 그 활동은 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더 나아가서 여성을 노예처럼 보는 시각이 만연한 사회이다. 이슬람사회는 법률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칼리프가 지배하는 사회를 세우려 한다. 그 안에서 바깥세상을 모르고 사는 여성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개선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거진 등을 이용해 성명도 발표하면서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잘못된 사회의 제도나 관습을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차별받는 이슬람 여성들을 위해 용감하게 투쟁하는 이슬람사회의 선지자인 것 같다. 그녀의 강한 의지와 용기에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이다.

   시간관계로 질문들은 생략되었고 만찬을 위해 경주 시내 예술의 전당으로 이동하였다. 비가 그치지 않아 야외에서 진행하려던 만찬은 4층 로비에 준비되어 있었다. 장소도 다소 좁은 편이었고 뷔페메뉴도 소박했지만, 그래서 더 정감 있고 따스한 분위기였다. 접시를 들고 서서 음식을 나누며 참석자들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녁 7시부터 경주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아나운서 윤희정의 사회로 세계한글작가대회 기념공연이 시작되었다. 내일 문학기행이 남아있긴 하지만 3박 4일 동안 진행되는 세계한글작가대회의 공식적인 일정 중 마지막 행사인 셈이다.

   공연장은 대회에 참가한 국내외 작가들과 경주시민들로 가득 찼다. 음악인 김영임, 장사익 씨를 제외하면 공연 대부분이 문인들의 시낭송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만 2천여 명 가까이 입장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문인들이 대거 참석한 이유도 있겠지만, 일반시민들이 시낭송에 대해 관심이 많고, 또 경주가 신라의 고도였다는 자긍심과 한글문학에 대해 경주시민들이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고대문명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는 경주라는 도시가 새롭게 다가온다.

   1부에서는 김홍신 소설가가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여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였다.

김홍신 소설가는 ‘단일문자를 가진 우리는 언어의 문명국이다. 우수한 우리 한글이 세계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국격이 더 높아져야 한다. 한글작가들은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써서 한국문학을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하며, 우리만의 고유한 한국적 문명의식을 세우고, 공공선에 대한 통찰력으로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으로 이끌어야 한다’며 ‘한글문학은 앞으로 스스로 빛나는 광채가 되리라’는 덕담으로 편지 낭독을 끝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한글작가들은 앞으로 한글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신라의 꿈」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해 큰박수를 받으며 2부 시낭송의 막을 열었다. 수필가이기도 한 그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라 보였다.

이어서 「한국의 노래를」 김일연 시인, 「한글나라 좋은 나라」 김종상 시인,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 문태준 시인, 「한글, 식전 통싯글이었다고?」 유안진 시인, 「우리나라 악기」 윤제림 시인, 「수선화」 정호승 시인, 「감꼭지에 마우스 대고」 최금녀 시인, 「한글로 시를 지을 때」 허영자 시인 등이 각각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시인들은 각자 개성이 넘치는 작품을 자신만의 육성으로 내면의 소리까지 들려주려는 듯이 진지하게 낭송을 하였다. 작가들의 육성을 통해 직접 듣는 시낭송은 같은 작품이라도 눈으로 읽을 때와는 그 느낌이나 감동이 다르다. 그 이유는 아마 시를 낭송하는 시인들의 목소리, 눈빛, 몸짓 하나하나가 모두 시의 행간에서 또 다른 언어가 되어 숨겨진 감정을 구현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세계한글작가 대회장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인들이 한편한편 시를 낭송할 때마다 우리 말, 우리글의 아름다움이 더욱 새롭게 가슴을 울리며 다가왔다.

   특히 유안진 시인은 자작시 낭송에 앞서 박목월 시인의 시 「임」을 낭송하여 갈채를 받았다.

내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 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 박목월 「임」

   ‘애달프’고 ‘어리석은 꿈’일지라도 ‘바위’처럼 묵묵하게 사랑하고 기다리면 언젠가 반드시 ‘임과 하늘이’ 그 우직하고 견고한 바위에 ‘비치리’라...... 한자어 하나 없이 순 우리말로 쓰인 이 시를 듣고 있노라니 9월의 서라벌에 목월 선생님의 향취가 더욱 짙게, 향기롭게 퍼져 나간다.

신라 천년의 유산을 품고 있는 경주는 지금 한글문학의 향기에 젖고, 단풍잎 사이로 내리는 초가을 단비에 젖고 있는 중이다.

   3부에서 국악인 김영임 씨는 하얀 저고리에 연분홍치마를 입고 무대에 섰다.

45년을 한결같이 우리의 노래를 불러온 그녀는 정선아리랑, 뱃노래 등을 불러 흥을 돋웠다. 오랜만에 우리 혼이 담긴, 우리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시간이어서 우리 고유의 가락에 대해 되새겨 보는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장사익 선생은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박수가 터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존재 자체가 울림이 깊은 한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그가 입은 정갈한 한복, 그가 신은 하얀 고무신, 반백의 머리카락, 예사롭지 않은 절제된 몸짓, 혼이 실린 목소리 등......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게 시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서정주 선생의 시 「황혼길」, 김용택 시인의 시 「이게 아닌데」 등을 노래하였다. 몇 번씩 재청을 받은 그는 답례로 우리나라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래 1순위라는 「봄날은 간다」 등을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상문 이사장은 폐회사에서 ‘신라 천년의 위대한 정신이 한글창제의 정신으로 이어져 구체화되었다’면서 한글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우리의 문화유산임을 강조하였다.

‘제1회 세계한글작가대회를 계기로 우리들 모두는 한글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들이 한글문학으로 세상을 이롭게,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십시다...... 세계 어디서나 한글이 통용되는 그날을 꿈꾸며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거룩한 경주 땅에서 1년 후에는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가 개최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말씀으로 이 대회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아래의 예문들에서 보이듯이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 세계의 모든 문자들을 그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의 기준에 따라 순위대로 진열했는데 그 1위가 한글이다 /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교수들

-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 내는 방법 (ㄱ - ㅋ - 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 /영국, 리스대학, Geffrey Samson 언어학교수

- 한글은 독창적이고 기호배합 등 효율면에서 매우 돋보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이다/ 미국의 유명 과학지 Discovery

   이렇게 우수한 한글이지만 우리에게 한글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평상시에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사실 어제 오전에 진행된 일본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교수의 특별강연에서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한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등을 확인하면서 필자는 한국인으로서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대회에 참석한 문인들이나 시민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많았을 것이다.

   세계한글작가대회는 우리 모두 한글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고마움을 재인식하고 우리글이 얼마나 우수하고 소중한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확실한 촉매제가 되었다.

   한글은 우리의 혼이요, 우리 겨레의 정신이며,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가장 중요한 문화적 동력원이다. 한글작가들은 각종 오염으로부터 우리의 한글을 지켜내고,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하는 별들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훌륭한 한글 문학작품 창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국가위상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되어주기를 기원해 본다.

   신라천년의 고도 경주에, 단풍나무숲 사이를 돌아 가을이 오고 있다.

임애월 약력

제주도 출생

계간 《한국시학》, 《경기PEN문학》 편집주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겸 경기지역위원회 운영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남북교류위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상임이사, 경기문학인협회 부회장

수원시인상, 수원문학상, 경기문학인 대상, 경기시인상 등 수상

시집 『정박 혹은 출항』 『어떤 혹성을 위하여』 『사막의 달』 등

[회장 박병두]

좋아요

[얄라셩 이광훈]

언어를 섬기고, 시대와 공감하고, 삶에 향기를 더해주는 작가가 되어야한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