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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리와 덤
이 홍사
돌배 아재는 죽었다.
그게 벌써 사오 년이 넘었다.
돌배 아재는 홍랑의 오촌 당숙이다.
항렬이 당숙이면 표준말로 아저씨라는 호칭이 붙어야 마땅한데, 홍랑이 사는 구미에서는 당숙이건, 재종숙이건, 통칭으로 싸잡아서 아재라고 부른다.
촌수나 항렬이 아니더라도 여기는 아재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지방이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 낯선 젊은 사람을 보면 ‘어이! 거기 길가는 아재!’ 이렇게 말을 걸고, 면 소재지 다방에 가면, 전성기를 넘어 퇴물이 되어 시골다방으로 좌천한 쭈글쭈글한 아가씨가 시골 노인을 상대로 ‘아재! 나도 커피 한잔 사줘!’ 이렇게 말을 건다. 상대가 삼십 대든 칠십 대든 이름을 모르고 만만하면 모두가 아재다. 아재라는 호칭은 경상도에서 참 편리하게 쓰인다. 전라도의 거시기와 맞먹는 말이다.
거시기해서 거시기하니 참 거시기하네!
이런 말이 통용되고 듣는 사람은 그 의미를 알아먹는 지방이 있단다. 들어보니 참 거시기하지만 거시기하다.
돌배 아재는 홍랑보다 두 살이나 적다. 막내 종조부의 막내아들이니까 그렇게 적을 수도 있다. 한데 학교는 시골 마을에서 동급생으로 같이 다녔다. 홍랑은 초등학교를 재수했고 돌배 아재는 한 살 일찍 들어가 동급생으로 다녔다. 초등학교와 중학을 그렇게 시골 학교에 같이 다닌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학을 다닐 때는 친하게 붙어서 다녔다. 홍랑의 고향 동네는 전주 이가 왕손의 집성촌이다. 그래서 동네 동급생들과는 항렬이 골라 이름에 돌림자를 같은 글씨로 쓰는데 돌배 아재만 항렬이 한 칸 위다. 하여, 동네 동급생들 모두가 돌배 아재를 보고 아재라고 불렀다. 완전히 동네 아재였는데 고등학교는 자기 취향과 실력대로 홍랑과 다른 학교에 지원해서 다녔다. 그렇다고 멀리 큰 도회로 유학을 간 건 아니었다. 돌배 아재는 면 소재지에 있는 상업학교에 다녔고 홍랑은 강 건너에 있는 인문계를 다녔다. 홍랑이 공부를 훨씬 잘했기 때문이다.
중학을 다닐 때까지는 기회는 비교적 균등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난 다음부터는 기회가 균등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선거 공약으로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내걸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기회는 균등할 수가 없는 물건이다. 기회라는 물건을 예리한 칼로 반으로 나누어 주지 않는 이상 균등할 수가 없다.
기회의 균등? 균등한 기회? 이런 용어는 어디에도 적합하지 않다. 절대로 기회는 균등할 수가 없다. 기회는 바로 자신이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대는 누구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주어본 적이 있나?
기회를 균등하게 준다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기독교방송과 불교방송을 반반으로 보아야 하고, 맛있는 롯데리아를 두고 옆집의 퉁퉁 불은 칼국수를 먹어 주어야만 균등한 기회라고 말할 수가 있는 문제다. 절대로 인간이란 기회를 균등하게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짐승이다.
기회는 에누리가 없다. 그리고 덤으로 따라오는 기회도 없다.
이건 속담으로 흘러오는 말이 아니라 홍랑이 문득 돌배 아재를 떠올리다 만든 말이다.
기회란 스스로 만드는 대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한치의 에누리도 없으며 덤이라곤 더 없는 물건이다.
돌배 아재는 상업학교를 나와서 서울의 어느 전문대학에 진학했고, 홍랑은 인문계를 나와서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홍랑은 공부는 뒷전이고 대중가요 가수가 되겠다고 어지간히 설쳤다. 어머니께서 부숴버린 기타만 서너 개가 넘을 정도로 어머니 속을 썩였다. 달리 말하면 홍랑은 스스로 만든다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유기했다. 그렇다고 그게 인생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고 생각을 뒤늦게 했다.
기회는 에누리가 없다?
에누리라는, 이 말을 곱씹으니 문득 떠오르는 게 가방이다.
어제는 쓰던 가방을 매물로 내어놓았다.
남성용 서류가방인데 중고를 거래하는 사이트에 매물로 내어놓은 것인데 그 상품의 설명 끝에 ‘에누리 없음.’이라는 문장을 넣었다. 괜히 일하는데 문자 메시지가 와서 가격을 놓고 흥정을 하기가 상당히 귀찮을 거라고 여겨졌다. 딱히 그걸 팔아야 할 정도로 돈이 아쉽기보다는 재미 삼아 내어놓았다. 나도 이런 물건 있어요. 하는 자랑과 그런 사이트에 거래하는 재미를 맛보고 싶은 심리가 작용해서 충동적으로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판다는 글을 올렸다.
가방은 미얀마에 나가는 길에 환승을 했던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 면세점에서 산 것이다. 색깔과 디자인이 하도 예뻐서, 눈길이 끌려 산 것인데 얼마 쓰지 않았다. 가격이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면세점 매장에서 몇 번이나 들어보고 놓아보고 저울질을 하다가, 아오자이를 입은 늘씬한 면세점 아가씨가 잘 어울린다고 권해서 산 것인데 큰맘을 먹고 지갑을 열었지만 몇 번 쓰지 않고 장롱에 처박아 둔 물건이었다.
그 가방을 또 충동적으로 모바일 사이버 중고시장에 매물로 내어놓은 것이다. 그런 사이버 시장이 있다는 걸 안 것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늘 가는 친구의 타이어 가게, 현장을 나가면서 들러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가고 들어오면서 들러서 노닥거리다가 오는, 참새 방앗간 들락거리듯이 들리는 군대 동기의 타이어 가게에 갔더니, 그날은 못 보던 빨간 조깅화가 한 켤레 테이블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친구 녀석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신발인데, 웬 거냐고 물었더니 사이버 중고시장에서 샀다고 했다.
사이버 중고시장?
가격은 담배 한 갑 값을 주었다고 묻지도 않는 말까지 했다. 오토바이 퀵 서비스를 시키면 간단하게 배달되어 온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담배 한 갑 값이라면 그저 주운 물건이나 진배없다. 두 번만 신어도 본전이 빠지는 물건이다. 그런 사이트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금세 얼렁뚱땅 앱을 깔아주었다.
물건을 검색하다가 마음에 들면 채팅으로 접근해서 구매하는 방식인데 중독이 된다고 했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그 싼 물건들을 찬찬히 검색하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고 했다.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금세 중독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별별 물건이 다 나온다. 아기 옷부터 시작해서 머리띠 각종 운동기구, 심지어 자동차 타이어까지 올라온다. 멀리 있는 것은 아니고 동네 단위로 추적하고 분류해서 거래가 손쉽게 가능한 동네에서 올라오는 물건인데, 자기는 쓸 일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물건들만 올라오는 사이버 매장이었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니 거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홍랑은 거기서 첫날 원목으로 만든 탁자를 하나 구매했다.
장방형의 큼직한 원목 탁자인데 아주 싼 가격이었고 같은 동네에서 내놓은 물건이었다. 통나무로 된 게 원목 그대로 수작업을 한 것이었다. 탁자는 사무실에서 꼭 필요했다. 홍랑이 앉은 사무실, 업무용 책상 뒷자리에 책과 선풍기, 난로 등이 어지럽게 널려 어수선한 창고를 방불케 했다. 그것을 정리하려면 탁자가 필요했는데 의외로 쉽게 수월하게 싼 가격에 사서 놓고 보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아무튼, 그 사이버 시장을 훑어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다.
아주 유용한 사이트가 분명하다.
엊그제는 책을 샀다.
담배 두 갑 가격에 샀는데 한국역사를 쓴 만화책이었다. 서점에서 요즘 나오는 책 한 권 값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24권으로 된 한 질이었는데 너무 싼 가격에 산 것이다. 오토바이 퀵 서비스로 오는 배달료를 지급해야 했다. 받아서 보니 아주 유용한 책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부터 어른까지 심심풀이로 읽을 만한, 재미있게 구성된 만화인데 유명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홍랑은 이틀 만에 반을 읽었다. 반만 읽어도 본전은 이미 빠진 셈이었다.
홍랑은 생각했다.
이 사이버 시장에서 수혜만 입을 거 아니라 뭔가 물건을 내놓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채무의식을 느끼다가 가방을 떠올린 것이다. 거의 쓰지 않고 장롱에 들어있던 가방이었다. 산 가격의 10%에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하고 그 가방에 대한 부연설명을 쓰다가 밑에 에누리 없음이라고 썼다. 부연설명도 거짓말을 조금 보탰다. 하노이 공항에서 샀다고 하면 후진국의 짝퉁이라고 할까 봐, 캘리포니아 공항에서 샀다는 했으며, 다른 사람도 가끔 그렇게 쓰기에 홍랑도 그렇게 에누리가 없다고 썼는데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
가격에만 에누리가 없는 게 아니라 가방은 하나뿐이니 살 기회에도 에누리가 없는 것이다.
돌배 아재를 생각하다가 어떻게 가방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에누리 없음, 이라는 문장 때문일 거고 또 이 새벽에 난데없이 돌배 아재를 떠올린 것도 그 문장 때문일 거다.
말머리를 돌려서 생년월일이 빨리 되어 있으니 군대는 당연히 홍랑이 먼저 갔다. 당시에 돌배 아재는 전문대학을 다니느라 서울에 있었고 홍랑은 부산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나니 돌배 아재가 연락도 없이 면회를 왔다. 혼자 온 게 아니라 홍랑이 편지로 사귀던 서울 아가씨를 어떻게 찾아서 데리고 온 것이다.
홍랑은 한두 번 만난 그 아가씨가 서먹서먹했지만, 돌배 아재는 격의가 없었다. 눈치를 보니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서울에서 여러 번 만났노라고 했다. 면회를 왔으니 외박을 나갈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홍랑은 외박을 포기했다.
그 아가씨를 홍랑이 먼저 알았으나 둘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금방 감지할 수가 있는 문제였다.
부대 앞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같이 먹고 홍랑은 서둘러 귀대했다. 서울 아가씨는 홍랑의 옆에 앉은 것이 아니라 식탁 맞은편, 돌배 아재 옆에 앉는 것이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낌새가 이상했다. 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면회가 목적이 아니라 기차여행이 목적인 듯했다.
둘은 밤차를 타고 올라가겠다고 했지만, 부산에서 자고 갔는지 아니면 밤차를 타고 올라갔는지 홍랑은 알 길이 없었다.
그 후로는 서울 아가씨에게 오는 편지가 눈에 띄게 뜸해졌고 돌배 아재가 언제 군에 입대한다는 걸 그 아가씨가 오랜만에 보내온 편지에서 들어야 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돌배 아재가 보내온 군사우편을 통해서 그 아가씨가 돌배 아재에게 면회를 와서 외박하고 왔다는 말을 듣고 둘 사이를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지 않고 강탈을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홍랑은 둘의 중매쟁이 역할을 한 셈이었다.
홍랑은 제대를 하고 다른 아가씨를 만났다. 둘의 관계는 어느 정도로 무르익는지 홍랑은 자신의 연애에 바빠서 관심이 없었다. 돌배 아재도 뒤를 이어 제대를 하고 둘은 서울에 있었고 홍랑은 갓 배운 굴착기를 끌고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결혼은 홍랑이 먼저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결혼을 늦게 하는 게 아니었다. 서른이면 노총각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홍랑의 결혼식에 돌배 아재는 서울 아가씨와 동행해서 나타났다. 관심은 없었지만, 그때까지 둘은 사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듬해 둘도 결혼을 했다.
홍랑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서울 아가씨는 결국 촌수로 따지면 홍랑의 당숙모가 되는 셈이었다. 돌배 아재는 당시에 서울의 자그마한 화공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서울에서 살림을 차렸다.
그 작은 회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돌배 아재는 도깨비방망이를 찾아다녔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그러나 도깨비방망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홍랑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돌배 아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니던 화공 회사가 장족으로 발전을 하면 덩달아 같이 크는 게, 임직원인데 만족하지 못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문경으로 내려갔다. 뒤늦게 홍랑이 찾아가 보니 남의 시골집 아랫방을 빌려서 단칸방 살림을 하고 있었다. 서울 아가씨를 그 깡마른 촌구석에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돌배 아재는 수석에 손을 대고 수석을 배우고 있었다. 매일 굴착기가 자갈을 채취하는 하천으로 수석을 수집하러 다녔다. 그때는 수석에 손을 대 이미 그 바닥에서 알아주는 인물이 있었다.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인데 윤필구,
그 자식을 얘기하려니 홍랑의 가슴이 싸늘해진다.
홍랑의 인생에서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녀석이다.
그 자식은 허구한 날 하는 소리가 어느 그룹의 회장이 수석을 좋아해서 몇억 대가 되는 수석을 소장하고 있다. 그 회장을 만났다. 그 회장에게 얼마를 소개해서 팔았다는 둥,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다니던 작자였다. 공교롭게도 그 자식이 결혼한 상대는 돌배 아재의 육촌 누나,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이 빨라 누나가 되는 애숙이, 홍랑에게는 칠촌, 그러니까 재종숙이 되는 아주머니였는데 홍랑은 동급생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애숙이 아지매’라고 불렀다. 물론 본명은 따로 있지만, 집에서는 애숙이라고 불렀다, 애숙이 아지매도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였는데 가장 일찍 결혼한 것이다. 그 애숙이 아지매가 살았던 작은집을 두고 홍랑의 형제들은 새집이라 불렀다.
윤필구는 애숙이 아지매와 결혼을 한 것이니 윤서방 고모부라고 불러야 마땅한데 홍랑은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윤필구의 말에 따르면 수석은 정해진 자산가치가 없다. 그냥 돌덩이에 불과하다. 사업이 잘못되어 부도가 나더라도 수석에는 딱지를 붙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룹의 회장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수석을 소장하고 있다. 회사가 잘못되면 수석만 들고나와서 팔아도 회사를 하나 차릴 수가 있다. 그래서 소장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돌배 아재가 그 소리에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도깨비방망이를 찾으러 다녔다. 하천에서 잘하면 하루아침에 몇억 대가 되는 수석을 발견할 수가 있다. 윤필구라는 자식이 돌배 아재를 끌어들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가의 핏줄 중에서 하나를 수족으로 만들어 놓고 이혼을 하기 위한 거였다.
왜 이혼을 하느냐?
이미 단물은 다 빨아 먹었다는 말이다. 돌을 산다고 처가의 땅을 농협에 저당 잡혀 얼마를 융통해간 다음이었다. 그 돌은 보관할 곳이 없다며, 가지고 있으면 가치가 올라간다며, 애숙이 아지매가 자랐던 처가의 마당에 늘어놓고 있었다.
그 꾐에 돌배 아재가 걸려든 것이다.
홍랑이 직접 문경을 찾아가서 보니 돌배 아재와 윤필구는 친구라기보다는 상하관계였다. 돌배 아재가 수석을 채취해서 오면 이건 얼마, 또 이건 얼마짜리, 값을 매겨서 팔아주는 인물이 바로 윤필구였다. 윤필구가 한마디 하면 오줌을 찔끔, 싸는 인물이 돌배 아재였고 돌배 아재 위에서 군림하는 게 윤필구였다. 당시에 문경에는 그런 돌쟁이들이 여관마다 포진하여 판을 치고 있었다.
돌배 아재가 그 소굴로 들어가 돌을 만지면서부터 친구들 사이에 정배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돌배 아재라고 불리었다. 돌배 아재는 윤필구 밑에 빌붙어서 제 속을 드러내지도 못했지만, 홍랑은 아니었다.
홍랑은 나서서 윤필구와 애숙이 아지매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가만히 보니 윤필구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여관에 죽치면서 아지매를 무시하고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음이 떠난 것이다.
그런 윤필구에게 홍랑은 삿대질을 하며 욕을 잔뜩 퍼붓고 돌아왔다.
하지 말라는 결혼을 할 적은 언제고, 이제 중고품으로 만들어 놓고 이혼하겠다니, 너 인간이냐?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 것이다.
홍랑이라는 자식이 무례한 짓을 하고 갔다. 그 자식이 사과하면 이혼을 하지 않겠다.
무슨 티끌이라도 잡아서 이혼하려는 윤필구에게 홍랑은 원인을 제공하고 온 것이다. 윤필구에게 발목이 잡힌 홍랑이었다. 호구지책인지 돌배 아재도 그 윤필구에게 붙어서 홍랑이 못할 말을 하고 갔다고 했다. 홍랑은 당숙모가 되는 서울 아가씨가 측은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빤히 들여다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는 서울 아가씨를 보기에 정말이지 면목이 없었다.
사과하면 이혼하지 않겠다?
그렇게 비열한 자식인 줄 홍랑은 몰랐었다.
윤필구는 이미 마음은 떠났고 돌배 아재를 볼모로 잡고 그런 소리를 떠벌리고 다녔다. 사실이지 윤필구와 애숙이 아지매가 연애를 할 적에 가장 반대했던 인물이 홍랑이었다. 둘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윤필구는 막 저지르고 다니는 성격인데 그걸 뒤에서 처리할 정도의 소심함을 새집 애숙이 아지매는 지니지 못했다. 그냥 나서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의 차이가 있는데 결혼을 하다니, 그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다고 홍랑은 예측하고 믿었다. 그래서 결혼은 물론, 연애조차도 반대했다. 그런데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홍랑이 사과하면 이혼은 하지 않겠다?
그 비열한 자식은 그 말을 돌배 아재에게 누누이 강조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그 말이 새집 할매의 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집에 유선전화가 있었는데 홍랑이 퇴근을 하는 시간이면 새집 할매가 전화를 했다.
애숙이를 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번만 사과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하기도 했다. 그 전화가 이틀이 멀다, 하고 걸려오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을 살려달라는 말까지 하셨다. 홍랑은 벗어나고 싶었다. 사과한다고 해도 그 비열한 자식은 다른 핑계를 둘러대고 결국은 이혼을 하고야 만다, 기울어진 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지긋지긋한 전화에서 홍랑은 벗어나고 싶었다.
모일 모시 저녁에 날을 잡아서 새집 할매를 태우고 문경으로 올라갔다. 당시에 귀하다는 승용차가 홍랑에게는 있었다. 가서 보니 예상대로 윤필구는 여관에 죽치고 있었다. 새집 할매를 애숙이 아지매의 살림집에 모셔다 놓고 여관으로 찾아갔다.
예상대로 돌배 아재도 그곳에 있었다. 윤필구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홍랑은 그 앞에 꿇어앉아 사과하는, 설욕을 당하고 돌아왔다. 정말이지 홍랑은 죽을 맛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재하는 돌배 아재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렇게 빌붙어 먹고 사나?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우울해서 돌아올 적에는 새집 할매를 모시지 않고 혼자 내려왔다. 당시에 홍랑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차를 개울이나 다리 난간에 부딪혀 죽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고 내려왔다. 얼마나 약이 올랐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음날부터 보름간 면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전화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을 느꼈다. 윤필구보다 돌배 아재가 더 죽이고 싶어, 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불끈 쥐곤 했다.
그렇다고 이혼을 하지 않았느냐?
아니었다. 그 자식은 그해 겨울에 이혼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돌배 아재 말로는 예술 세계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갔다고 했다.
예술 세계의 지평? 개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낭창하게 그 말을 하는 돌배 아재의 얼굴에 똥물이라도 끼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윤필구는 일본으로 잠시 건너갔지만, 돌배 아재는 문경에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로는 둘의 관계에 관심이 없어 잘 알지 못하고 돌배 아재가 이혼했다는 소리를 풍문으로 들었다. 아이 둘을 낳고 서울 아가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고 돌배 아재는 문경에 남아서 윤필구와 싸돌아다닌다고 들었다.
홍랑은 관심이 없었고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게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홍랑은 윤필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던 게 아니고 보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그 길고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홍랑은 윤필구가 용서되지 않았고, 꿇어앉아서 빌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혀를 물고 싶었다. 그 후 애숙이 아지매는 상처한 예비군 중대장과 결혼을 해서 딸 하나를 낳고 보란 듯이 살고 있다. 홍랑은 윤필구를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실제가 아닌 가상의 공간이었다. 학교 동기들끼리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활성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유행처럼 카페에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다. 카톡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런 인터넷 카페가 있는 줄 안다.
그 카페에서 홍랑이 올린 글에 뭐라고 윤필구가 주제넘게 뭐라고 댓글을 달아놓은 것이었다. 홍랑은 그 댓글을 다 읽지도 않고 카페를 탈퇴했다. 그놈이 들락거리는 카페는 들어가기가 싫었고 가상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공간에 몸을 담고 싶지 않았다.
한데 돌배 아재는 시도 때도 없이 홍랑을 찾아왔다.
와서는 차에 실린 수석 한 점을 사무실에 놓고 얼마짜리인데, 에누리 없이 얼마만 달라고 하며 현금을 뜯어가곤 했다.
와야 할 시간에는 오지 않고 수시로 갑자기 오는 것이었다. 홍랑의 할아버지는 돌배 아재에게는 큰아버지가 된다. 홍랑의 아버지는 돌배 아재에게 사촌 형님이 되고, 홍랑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장례식에 돌배 아재는 오지 않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홍랑의 할머니 장례식도 마찬가지였다.
홍랑은 괘씸했고 이가 갈렸다.
한데 종조모가 돌아가셨는데 거기에도 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 돌아가신 종조모란 바로 돌배 아재의 어머니였다. 돌배 아재의 친형이 되는 당숙들은 돌배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홍랑은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에게 전화로 수소문을 했다.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윤필구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윤필구에게 다른 친구가 연락했던 모양이다. 두어 시간 있으니 돌배 아재에게서 홍랑의 전화로 연락이 왔다. 어느 병원 장례식장이라고 일러주었더니 뒤늦게 나타났다.
뒤늦게 나타나서 하는 말이라곤 사는 게 바빠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르겠지만, 왜 인간 노릇을 왜 못해?”
홍랑은 장례식장에서 고함을 치며 역정을 냈다.
다행히 다른 당숙들이 말려서 싸움이 되진 않았고 장례를 치렀다.
그 후로도 잊을 만하면 홍랑을 찾아왔다.
꼭 수석 한점을 들고 와서 에누리 없이 얼마를 달라고 했다. 홍랑이 거절하면 승용차 기름값이 떨어졌다며 기어이 받아가곤 했다. 홍랑은 수석은 필요가 없으니 가져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두고 갔다.
홍랑은 집이나 사무실에는 수석이라곤 한 점도 없다.
돌배 아재가 에누리 없이 얼마라고 금을 치고 놓고 가면 홍랑은 바로 그 수석을 사무실 앞마당에 내어놓고,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가져가라고 쪽지를 붙여 둔다. 그 수석을 보면 돌배 아재가 떠오르기 때문에, 돌배 아재를 떠올리면 즐거운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게 없애는 것이었다.
가끔 동기들이 모이는 계모임에 나가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쩌다 윤필구에 관한 얘기도 나온다. 홍랑의 그의 이름을 들으면 뱀을 본 것 같이 몸서리가 쳐진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내색을 안 하고 먹던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놓고 바로 일어서서 나와버린다.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그 능글능글하고 비열함이란, 지금까지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에누리 없음.
돌배 아재가 자주 쓰던 말인데. 그 듣기도 싫고 지겨운 말을 왜 사이버 매장에 가방을 판다는 설명 뒤에 올렸을까?
왜 홍랑이 그 말을 썼을까?
새벽에 사무실에 내려와 휴대전화의 그 사이버 매장에 들어가 홍랑 자신이 올린 매물을 찾아내고 그 설명에 에누리 없음이란 말을 지우려고 했다. 한데 글을 수정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무리 해도 그 설명을 수정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에누리 없음.
이 글귀를 지워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아버지께선 가끔 아침 밥상머리에서 밤이 지겨웠노라 말씀하시곤 했다.
밤이 왜 지겨워?
당시에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옛날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보니 밤이 지겨웠노라는 말씀에 이해가 간다.
홍랑은 초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사무실에 내려와 인터넷을 뒤적이고 혼자 논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이 시간을 즐기려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은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씻고 사무실에 내려왔다. 늘 그 시간에 일어난다. 알람을 설정해 놓은 게 아니라 그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뜨이는 것이다. 오늘은 에누리 없음, 이라는 문장과 씨름을 했다.
옛날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새벽잠에서 깨면 무얼 하셨을까? 잠은 오지 않고, 부스럭거리면 옆에 사람이 깰 것이고. 옛날의 밤은 상당히 지겨웠을 것이다. 누구는 시계가 귀하던 그 시절 오밤중에 깨어서 새벽인 줄 알고 외양간의 소를 몰고 논갈이를 나갔다고 했다. 뿌연 달밤에 논을 갈았는데 서 마지기 논을 다 갈 동안, 달이 지지 않고 새벽이 오지 않더라는 말도 더러 들었다.
아무튼, 사이버 매장에 올린 글에서 ‘에누리 없음’은 지워야 한다.
돌배 아재가 자주 쓰던 말인데, 엄청 귀에 거슬린다.
에누리 없음을 지워야 한다.
돌배 아재는 죽었다.
그게 사오 년이 되었다.
이젠 홍랑의 사무실을 찾아와 돌을 내밀며 에누리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돌배 아재가 제 명을 다 누린 게 아니었다. 사오 년 전이었다. 어느 날 오밤중에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불쑥 돌배 아재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자다가 깨어나 전화를 받았는데, 조금 당혹스러웠던가? 아니면 낭패감이 일었던가? 홍랑의 입에서 에누리 없이 죽었구먼! 이 말이 맴돌고 있었다. 그 말을 가까스로 삼키고 전화를 한 친구에게 어떻게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홍랑이 알기로는 그 친구가 돌배 아재와는 친하지도 않은데. 그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경찰서에서 직접 전화가 왔다고 했다. 대구의 어느 원룸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어 신원을 조회하니 돌배 아재였고, 돌배 아재의 핸드폰에서 그 친구의 전화번호가 발견된 것이라는 경찰의 설명이었다고 했다.
“돌배 아재가 왜 내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자다가 경찰서라기에 깜짝 놀랐다. 그 친구가 왜 내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었을까? 본 지가 십 년도 넘는데?”
“돌배 아재가 언제부터 대구에 있었지?”
홍랑이 물었지만, 그 친구는 만난 적도 없고 모른다며, 그 변사체의 보호자를 찾는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고만 했다. 그 경찰의 핸드폰 번호까지 일러주었노라며 홍랑에게 번호를 알려주었다. 홍랑은 자다가 일어나,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 경찰의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돌배 아재의 형님들이 연락되면 바로 연락하라고 그 친구는 할 일을 다 했다는 투로 전화를 끊었다.
경찰의 전화번호를 보고 있으니 막막했다.
돌배 아재의 형님이 되는 당숙들은 서울에 계신다. 당숙들에게 연락하기 전에, 우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했다. 친구가 알려준 경찰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니 사실이었다. 그 사건의 담당이라는 경찰은 지금 어느 요양병원의 영안실로 옮겨놓았노라고 했다.
홍랑은 핸드폰을 훑어보니 당숙들의 전화번호가 하나도 없었다. 하여 당숙들과 연락이 잦은 형님에게 전화했다. 홍랑의 형님도 구미의 이웃 동네에 살고 계신다. 형님 역시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당숙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든지, 직접 연락을 하시든지 하라고 했더니 직접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형님은 종손이라 그런 일에 항상 관여하는 편이다.
형님께 연락하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홍랑은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가서 시신이 진짜 돌배 아재인지 확인을 하고 빈소라도 지키는 게 도리다, 싶어 집을 나섰다. 작은방에 자는 아내를 깨울까 하다가 조용히 문단속하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구미역으로 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시간에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가 없었다. 역에는 노숙자들이 흩어져 자고 있었고 창구는 닫혀 있었다. 첫차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있는 것이다. 택시로 대구까지 내려갈까 하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언젠가 작은 집 당숙의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 돌배 아재에게 한 말이 불쑥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가 죽으니 오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오나? 나보다는 오래 살아라. 네가 죽으면 절대로 내가 가지 않겠다. 나보다 오래 살아라!”
하도 서운해서 했던 말인데 그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이 오밤중에 길거리에서 무슨 짓이야? 내가 왜?
홍랑은 집으로 다시 들어오려고 했으나 역전에는 이미 택시조차도 없었다.
홍랑은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내는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홍랑이 역으로 좀 태우러 나오라는 말에 아내는 이 시간에 거기에 왜 갔느냐고 물었다. 아무튼, 그럴 일이 있으니, 택시도 없고 걸어갈 수도 없으니 좀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아내는 마지못해서 나왔다.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홍랑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펄쩍 뛰었다.
“그렇게 죽었는데 당신이 거기에 왜 가? 진 빚이라도 있어?”
아내도 어지간히 서운했는지 표독스럽게 반말을 했다. 아내가 서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이 베풀고 살아야지!”
정말이지 할 말이 궁색했다. 집으로 들어와 아내는 작은방으로 건너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다음날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문상을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마다할 수가 없었다. 형님의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그동안 윤필구와 있었던 일과 애숙이 아지매 사건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형님은 그런 소상한 것까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인지 애숙이 아지매의 오빠가 되는 세균이 아재에게까지 연락했다고 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아재는 절대로 안 옵니다. 두고 보십시오.”
큰 당숙의 뜻으로 빈소는 차리지 않았다. 영안실이 있는 요양병원 앞의 술집에서 모여 옹색하게 술을 마셨다. 홍랑이 연락을 해서 대구에 사는 친구 서넛이 온 게 고작이었다.
같은 대구에 살고 있지만, 세균이 아재는 그날 늦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윤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홍랑은 술이 엉망으로 취해서 큰 당숙에게 할 말, 못할 말 다 했다. 지금 돌이키니 당숙들이 어지간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어떻게 살았길래, 둘이나 된다는 아들 녀석들도 나타나지 않아?”
홍랑은 당숙들에게 고함을 쳤다.
형님은 종중의 선산에, 화장해서 묻을 자리를 마련하고 인부들을 준비한다면서 당숙과 말을 마치고 자리를 피했고, 당숙들은 여관에 자러 들어가고, 홍랑은 친구들과 술을 더 마시며 돌배 아재에 대해서 서운한 얘기만 하다가 엉망으로 취한 것이었다. 홍랑이 준 게 있다면 주머니를 털어서 장례비에 보태쓰라며 당숙에게 얼마를 드린 게 전부였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엉망으로 취해서 친구들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돌아와 다음날은 그대로 퍼져서 종일 잤다.
생전의 약속대로 홍랑은 돌배 아재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에누리 없음,
괜히 이 단어를 떠올려 오늘 새벽엔 돌배 아재의 생각으로 고요해야 좋을 정서가 훼손되었다. 기분이 고약하다. 생각하니, 정말이지 인생은 덤이나 에누리가 없다.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지, 정말 에누리나 덤이 없다.
덤이 있다면 이 새벽에 누군가 돌배 아재를 생각한다는 것만이 덤이라 하겠다. 더 생각하지 말자. 에누리가 없음, 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가방을 판다는 사이버 시장의 글은 삭제시켜야 할 것 같다. 그 가격에 홍랑이 다시 산 것이라, 생각하고 삭제시키는 게 낫겠다.
어디 가서 그 금액에 이런 가방을 사?
에누리 없음, 이라는 문장을 삭제시키는 게 아니라 그 글을 통째로 없애야 할 일이다.
가방은 분명 덤이다.
에누리가 없다는 말보다 덤이다, 는 말이 얼마나 듣기가 좋은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덤은 기분이 좋은 말이지.
그래! 가방은 이제부터 덤이다.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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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두 정성들여 잘 살아야 하는데....
서로 상처주지 않고,, ,
오늘도 문득 문득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