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랑스 현대 철학은
데카르트의 끝없는 재구성이다
프랑스 철학의 학맥을 따라가는 데카르트 코멘터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서양 근대 철학을 열어젖힌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과 데카르트가 현대 프랑스 철학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책 《데카르트, 이성과 의심의 계보》(은행나무 刊)가 출간되었다. 사실에 입각한 엄정한 서술을 하기로 손꼽히는 20세기 초의 철학사가 빅토르 델보스가 남긴 데카르트 관련 저작들을 이근세(국민대 교수)가 골라 엮고, 데카르트의 철학이 프랑스 현대 철학에서 끊임없이 논의된 현장을 소개하는 해제를 덧붙여 데카르트 철학의 이해를 돕는다. 빅토르 델보스가 소개하는 스피노자 철학으로의 계승과, 해제에서 소개하는 20세기 후반의 ‘게루-알키에 논쟁’과 ‘푸코-데리다 논쟁’에서 데카르트가 생생히 논의되는 것을 보면 현대에도 유효한 데카르트의 유산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의 철학에 있어 중요한 실마리가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빅토르 델보스의 저작들은 엄정한 서술에 대한 그의 명성에 따라, 그가 소개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객관적인 안내서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원전을 읽는 것도 좋지만, 델보스의 저작처럼 원전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사실 관계의 엄격한 규명이 함께한 2차 저작물을 길라잡이로 선행하여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빅토르 델보스가 스피노자 연구자로도 이름을 떨친 만큼, 데카르트의 철학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철학으로 어떻게 계승되어 근대 철학의 시작이자 전부가 되었는지 그 맥을 살피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빅토르 델보스
(VICTOR DELBOS, 1862~1916)는 프랑스에서 가장 엄정하기로 손꼽히는 철학사가 중 한 사람. 프랑스 수재들의 집결지인 고등사범대학 출신으로 앙리 베르그손, 에밀 뒤르켐, 모리스 블롱델, 레옹 브런슈빅, 레비 브륄 등이 동학이다. 프랑스 철학계에서 특히 스피노자와 칸트 연구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처녀작인 『스피노자의 철학과 그 역사에서 도덕의 문제』와 『스피노자 철학』은 스피노자 철학 연구사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칸트의 실천철학』은 기념비적인 칸트 연구서로 정평이 나 있다. 델보스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정초』는 프랑스 철학계에서 정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고작인 『철학자들의 인물과 사상』 『프랑스 철학』 등은 서양 철학사 연구 전반에 매우 유용한 작품들이다. 멘 드 비랑의 철학에 관한 종합적 연구서 『멘 드 비랑과 그의 철학 작품』도 있고,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에 대한 탁월한 연구 논문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관념론과 실재론」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로크의 철학」 등 100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남겼다.
역자 : 이근세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 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뤼셀 통·번역대학교(ISTI) 강사를 역임하고 귀국하여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근대 철학, 프랑스 철학이며,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 비교철학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저서로 『효율성, 문명의 편견』 등이 있고, 역서로 『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변신론』 『전략: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중국까지』 등이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스피노자의 존재론 기초」 「스피노자의 철학에 있어서 시간성과 윤리」 「블롱델의 행동 철학과 라이프니츠의 실체적 연결고리 가설」 「프랑수아 줄리앙의 비교철학에서 중국과 서양의 효율성 개념 비교」 「야코비의 사유 구조와 스피노자의 영향」 「이념의 문제와 글쓰기 전략」 「동아시아적 이념의 가능성」 「모리스 블롱델의 현상학적 방법론」 「데카르트와 코기토 논쟁」 「조선 천주교 박해와 관용의 원리」 외 다수가 있다.
목차
역자 서문
I 데카르트와 근대 철학
1. 데카르트의 삶과 철학
2. 데카르트에서 과학과 철학의 관계
3. 데카르트의 철학
4. 데카르트의 철학과 스피노자의 철학
영원한 진리에 관한 데카르트의 편지들
1630년 4월 15일, 메르센 신부에게
1630년 5월 6일, 메르센 신부에게
1630년 5월 27일, 메르센 신부에게
II 데카르트 철학의 계보
5.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체계인가 경험인가?
6. 광기에 대하여 ?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의 논쟁
1) 푸코와 데카르트
2) 데리다의 공격
3) 푸코의 반격
7. 데카르트의 현대성
출판사 서평
서양 근대 철학의 대부 데카르트의 철학을
가장 엄정한 철학사가의 서술로 만난다
빅토르 델보스의 저작들을 모은 1부는 데카르트의 생애와 사상을 전반적으로 다룬 1장 「데카르트의 삶과 철학」으로 시작한다. 델보스의 생전 마지막 저작이자 소크라테스, 스피노자, 칸트 등 철학자들을 소개한 《철학자들의 인물과 사상》(1918)을 번역한 것으로, 이 한 장만으로도 데카르트의 생애와 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1장에서 라플레슈 학교에서 귀족들을 위한 일반적인 교육을 받으며 수학의 정확성에 대한 사랑을 느낀 데카르트가 스스로의 사유와 학교 바깥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형성해온 과정을 그리고, 파리,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방법서설』 『성찰』 『철학의 원리』 등 현전하는 명저들을 저술하고 팔츠 선제국의 엘리자베스 공주와 교류한 이력, 스웨덴의 궁정에 초빙되어 지내다가 숨을 거두기까지의 생애를 저작과 역사적 사실들에 의거하여 서술한다. 이에 덧붙여 이성에 의한 정확성에 입각하여 과학을 대했던 엄격한 태도,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으로 위시되는 그의 회의론, 그 끝에서 입증한 신의 현존 등, 중세 철학으로부터 현격한 독창성을 선보인 데카르트의 철학을 소개한다.
2장 「데카르트에서 철학과 과학의 관계」와 3장 「데카르트의 철학」은 유고작인 『프랑스 철학』(1919)에 실린 데카르트와 연관된 장들을 옮긴 것이다. 2장에서는 데카르트가 해석기하학과 물질계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기하학적 물리학을 창안함으로써 근대의 신(新)과학에 끼친 기여를 이야기한다. 바로 보편적 수학 이념에 따라 스콜라철학과 대별되는 연역으로서 일궈낸 것이다. 이성에 의거, 확실성에 대한 과학을 정당화하여 과학적?철학적 태도를 설정함으로써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데카르트의 신학이 철학과 별개의 공고한 학문이 된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압축한 3장은 데카르트가 주창한 제1진리인 ‘코기토 에르고 숨’으로 시작한다. 명석판명한 이성으로 연장된 물질을 인식하던 실재론과 절대 진리로서의 신의 현존을 증명해냈던 관념론의 이원론에 입각하여, 근대 철학의 시작이자 그 유산이 현재의 철학까지도 이어지는 데카르트 철학의 독창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대의 모든 위대한 사상들이 데카르트 철학의 일면을 간직했다고 하는 것은 과장 없이 옳은 말이다. 데카르트 없는 스피노자가 무엇이겠는가? (…중략…) 기하학적 명증성의 방법론, 명확한 관념들의 합리론, 본질들의 실재론은 스피노자로 하여금 절대 존재의 통일성에 대한 범신론적 직관을 철학적 체계로 표현하도록 해준 것들이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를 반박할 수 있었고 특히 그를 보완하는 쪽으로 갈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유심론적 일원론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가 그의 유심론적 개념을 가지게 된 것은 데카르트의 관념론 때문이 아닌가? (…중략…) 칸트는 사유만으로 현존으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가 우리 인식의 조건이라는 원리는 어디로부터 그에게 온 것인가? 다른 한편, 로크는 데카르트를 공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스스로 고백했듯이 데카르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으며, 지성에 대한 분석 계획 자체는 인식의 조건에 대한 검토를 모든 철학의 출발점으로 정하는 데카르트적 영감에 속한다. 버클리의 비물질주의, 흄의 현상주의, 그리고 영국의 모든 경험심리학은 즉각적인 것은 의식의 재료이고 정신에 대한 설명은 가장 단순한 요소들을 통해 정신의 발생을 밝히는 데 있다는 전적으로 데카르트적인 관념에서 비롯된다.
_본문 P. 102
4장 「데카르트의 철학과 스피노자의 철학」은 스피노자 철학 연구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델보스의 역작 《스피노자 철학》(1916)에서 데카르트 철학과의 관계를 논의한 부분을 옮긴 것으로, 스피노자의 철학과의 비교를 통해 근대 철학의 형성에 데카르트가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헤겔에 의해 데카르트 철학의 완성이라 평가받은 바 있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 델보스는 기하학적 방법론이나 순수한 객관적 진리 등 데카르트적 재료들을 활용해 이뤄냈다고 말한다.
1부의 뒷부분에는 데카르트가 영원한 진리에 관해 메르센 신부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부록으로 붙임으로써, 신학과 진리에 관한 데카르트의 생각을 본인의 언술로 직접 들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메르센 신부는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데카르트의 철학을 깊이 지지하며 그가 유럽 각지의 지성들과 서신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 당대에 ‘파리의 데카르트 중개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인물이다. ‘영원한 진리’ 개념은 데카르트의 철학 체계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데카르트의 주저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던 것이어서, 이 편지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영원한 진리에 대한 데카르트의 생각을 접하는 것은 데카르트 철학의 이해에 있어 좋은 기회일 것이다.
‘게루-알키에 논쟁’과 ‘푸코-데리다 논쟁’을 거쳐
지금의 프랑스 철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로 자리매김하다
역자의 원문보다 더 긴 해제로 이루어져 있는 2부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데카르트의 철학을 계승한 프랑스 철학자들의 주요 논쟁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1957년 루아요몽 수도원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펼쳐진 마르샬 게루와 페르디낭 알키에의 논쟁이고,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 철학계의 슈퍼스타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의 논쟁이다. 먼저 5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체계인가 경험인가?」에서는 프랑스 강단 철학의 거두 게루와 알키에가 철학의 구조적 체계와 사유 주체로서의 실존 중 어느 것이 우선적인지에 관해 격렬히 논박했던 논쟁을 소개한다. 1953년 게루가 『근거들의 질서에 따른 데카르트』를 출간하면서 1950년에 『데카르트에서 인간의 형이상학적 발견』을 출간한 알키에를 겨냥한 서술들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데카르트를 주제로 개최된 루아요몽 학술대회에서 개회사를 맡은 게루와 첫 번째 발표자로 참여한 알키에 간에 논쟁이 일어났다. 저마다의 주장이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던 당시 토론의 녹취록을 고스란히 인용함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으며, 두 철학자가 스피노자 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함께 소개하기에 근대 철학이 현대 철학으로 계승된 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6장 「광기에 대하여」에서 소개하고 있는 푸코와 데리다의 논쟁은 20세기 프랑스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으로 간주된다. 푸코는 첫 대작 『광기의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제1성찰(감각적인 인식에 대한 의심)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 두 손이 그리고 이 몸통이 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미치광이의 짓과 다름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미치광이는 검은 담즙에서 생기는 나쁜 증기로 인해 두뇌가 아주 혼란되어 있기 때문에 알거지이면서도 왕이라고,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다고, 머리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고, 몸이 호박이나 유리로 되어 있다고 우겨댄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갓 미치광이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이들의 언행 가운데 몇 가지만이라도 흉내 낸다면 나 역시도 미치광이로 보일 것이다.
_본문 P. 175
이에 대해 푸코는 데카르트가 단순한 시대적 편견에 따라 광기의 논거를 배제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데리다가 이에 대해 2년 뒤 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코기토와 광기의 역사」를 발표하면서 데카르트가 광기의 논거가 꿈의 논거보다 덜 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 반박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 전체를 해체하려는 시도였으며, 9년 뒤 푸코는 『광기의 역사』 재판에 「내 몸, 이 종이, 이 불」이라는 긴 글을 부록으로 실음으로써 데리다의 반박에 대해 조목조목 재반박하며 자신의 입장을 강화한다. 이 논쟁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역자는 푸코와 데리다가 논쟁 이전 얼마나 친근했는지, 그리고 그 논쟁이 얼마나 격렬하게 벌어졌는지를 푸코가 데리다에게 보냈던 편지나 서로를 겨냥하여 해체하려거나 반박했던 논문의 구절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세밀히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7장 「데카르트의 현대성」은 데카르트의 철학이 현대 철학자들이 견지하는 입장에 따라 읽어내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대논쟁들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중세 철학의 모든 것을 스스로의 사유와 독창적인 철학 정신으로 대번에 발전시킴으로써 근대 철학의 시초가 된 데카르트의 사상은 그의 일생이나 근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견해를 가진 철학자들이 재해석하고 기여함으로써 매순간 진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데카르트 철학을 소개하는 동시에 데카르트 철학이 20세기 이후 현대 철학에서 어떻게 진화해나갔는지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의 프랑스 철학의 발전 양상을 조망하는 하나의 새로운 현대 프랑스 철학의 계보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그러나 데카르트가 세속화하고자 한 것은 단지 과학뿐이지 종교는 아니었다. 데카르트가 내면적으로나 겉으로 드러난 태도에서나 기독교인이자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가 교회의 권위에 대한 순종을 맹세할 때, 자신의 평온을 위한 과도한 조심성조차도 그의 진실한 신앙, 그리고 그의 신앙 자체에 대한 의심의 원인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럼직한 사실은 데카르트에게 종교적 정신이 특수하거나 쇄신된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스스로 종교적 정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이미 확고하게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우연히 신비주의적인 외양을 보였을 뿐이다. 오히려 데카르트는 확고한 결단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계시된 진리에 대한 믿음이 의지 행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여하튼 데카르트는 지적 혁신에 대한 자신의 계획에서 단호하게 종교를 제외했다. 그는 종교를 과학적·철학적 확실성과 비교될 수도 없고 관계 맺을 수도 없는 특수한 성격의 확실성을 갖는 별개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가 종교가 철학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분명 스콜라학파의 신학으로부터 종교가 독립적인 것이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 p.38
데카르트가 나타났을 때 근대 철학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실질적으로 근대 철학을 확립한 것은 데카르트였다. 데카르트의 체계는 독창적이고자 했고 실제로 독창적이었다. 그의 체계가 독창적이었던 것은 우선 체계의 기원을 자아로부터 또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부터 도출해냈기 때문이다. 그의 체계가 독창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어느 정도 자명한 방식으로 그러나 확실히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상의 발전을 촉진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방향에서 미래의 학설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데카르트의 체계는 이 학설들 모두의 진정한 기원이었다.
--- p.67
과학자로서 데카르트가 내세울 만한 두 개의 위대한 권리가 있는데, 바로 해석기하학의 창안과 물질계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기계론적 물리학의 구성이다. 그런데 과학에서 이 두 종류의 업적이 데카르트 없이도 생겨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일단 매우 타당해 보인다. 과학에서 해석기하학과 기계론적 물리학은 데카르트 이전에 그 핵심이 이미 산출되었기 때문이다. 해석기하학은 페르게의 아폴로니오스의 기하학적 해석과 비에트의 대수학적 해석에 의해 직접적으로 준비되었을 뿐 아니라, 기하학의 문제를 대수학적 문제 해결에 할당한 해석기하학의 구성 절차도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미 페르마에 의해 매우 명시적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모든 것을 크기, 형태, 운동에 의해 설명할 목표를 가진 물리학의 확립은, 매우 오랜 선례들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말하자면 일정 부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매우 분명하게 구상되었고, 케플러에 의해, 그리고 데카르트의 시대에는 갈릴레이의 발견과 이론에 의해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우선은 이와 같이 보일지라도, 과학 영역에서도 데카르트는 그의 선배들을 계승하는 것 이상을 실현했으며 과학자로서의 그의 독창성은 그가 과학을 바라본 철학 정신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었다.
--- p.70
따라서 신은 현존한다. 신의 현존은 단지 새로 획득된 진리가 아니라 모든 진리의 보증이다. 데카르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명석판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참이라는 규칙은 오직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한 존재인 신이 우리를 속일 수 없기 때문에 보증된다. 신을 입증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적용된 규칙을 최종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진실성에 의거하는 것은 악순환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였고, 데카르트는 이 점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데카르트의 설명은 비록 매우 불완전하지만 그의 설명을 토대로 우리는 그의 사유를 이렇게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의 현존의 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파악하게 해주는 직관을 넘어선 보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직관은 항상 내 능력의 범위에 있으며 동일한 대상과 함께 내 인식 각각에서 실제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의 현존의 확실성도 그것을 산출한 근거들의 명확성에 의해 충만하게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증명의 대상은 정의상 진리에 고유한 본질의 불변성을 그 자체로 지니기 때문이다.
--- p.91~92
데카르트는 이런 간접적 절차를 심리학자와 도덕가의 위대한 능력을 갖고서 분석한다. 게다가 우리는 정념이 나쁜 사용에 예속된다면 정념의 본성적 모습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좋은 사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정념들에서, 심지어 가장 비난받을 만한 정념들에서도 그것들이 근원적으로 지닌 좋은 점, 즉 우리의 존재에 유용한 점을 비범할 정도로 섬세하게 발견해낸다. 이 점에서 우리 본성의 근원적인 선성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입증된다. 이로부터 우리의 자연적 현존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가꾸는 도덕이 도출된다. 이런 도덕은 데카르트 도덕의 가장 새로운 부분이지만 그는 여기에 최상의 선에 대한 도덕을 첨가한다. 최상의 선에 대한 도덕은 때때로 스토아 사상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행동의 효과, 행위자의 자유, 그리고 신의 인격성에 더 많은 여지를 부여하려고 마련된 해설과 근거를 스토아 사상에 부과하고 덧붙인다.
--- p.101
데카르트의 철학은 독창성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근대의 모든 위대한 사상들이 데카르트 철학의 일면을 간직했다고 하는 것은 과장 없이 옳은 말이다. 데카르트 없는 스피노자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에게 속하지 않는 관심과 문제를 도입했다. 또한 그는 코기토의 근원적 특성, 의식과 주체성과 자유의지의 모든 요소들을 배척했다. 그러나 기하학적 명증성의 방법론, 명확한 관념들의 합리론, 본질들의 실재론은 스피노자로 하여금 절대 존재의 통일성에 대한 범신론적 직관을 철학적 체계로 표현하도록 해준 것들이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를 반박할 수 있었고 특히 그를 보완하는 쪽으로 갈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유심론적 일원론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가 그의 유심론적 개념을 가지게 된 것은 데카르트의 관념론 때문이 아닌가? 그가 물활론적 혼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 것은 물질세계와 모나드 세계의 이원론을 유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에게 물질세계는 현상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칸트는 사유만으로 현존으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가 우리 인식의 조건이라는 원리는 어디로부터 그에게 온 것인가? 다른 한편, 로크는 데카르트를 공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스스로 고백했듯이 데카르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으며, 지성에 대한 분석 계획 자체는 인식의 조건에 대한 검토를 모든 철학의 출발점으로 정하는 데카르트적 영감에 속한다. 버클리의 비물질주의, 흄의 현상주의, 그리고 영국의 모든 경험심리학은 즉각적인 것은 의식의 재료이고 정신에 대한 설명은 가장 단순한 요소들을 통해 정신의 발생을 밝히는 데 있다는 전적으로 데카르트적인 관념에서 비롯된다.
--- p.101~102
그런데 스피노자가 단지 일종의 반골 신학자나 단순한 이단 교부가 아니었고, 또는 우선적으로 직관, 유비, 예감으로 구성된 학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면, 그리고 설명하는 학(學) 없이는 구원하는 인식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그의 욕망을 정확히 충족할 수 있었고 그가 철학자라는 단어의 가장 충만한 의미에 맞는 철학자, 그것도 근대 철학자라면, 그가 빚지고 있는 것은 바로 데카르트다. 물론 스피노자 체계의 이런저런 부분에 대한 데카르트의 영향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데카르트가 발휘한 전반적이고도 최상의 영향이 있었고 그것은 스피노자의 정신 고유의 성향과 매우 훌륭하게 조합되었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 철학에서 열정적으로 포착한 것은 지성에 의해 전개할 수 있고, 감각과 상상이 도입하는 주체성의 모든 요소들을 근원적으로 배제하는 순수한 객관적 진리의 개념이다. 이는 명석판명한 관념이 순수한 객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한에서 명석판명한 관념의 권리다. 이런 명석판명한 관념의 권리는 명석판명한 관념 외 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느낌과 의지의 주장을 축소하며, 지성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 사물들의 연쇄에 대한 모든 표상을 억제할 수 있는 권리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이런 점을 취하고 간직하기 위해 의심, 코기토의 근원적 특성, 자유의지의 존재, 신의 초월성, 신의 자유와 창조 능력을 무시하거나 배제해야 했음이 틀림없다.
--- p.108~109
이 정도 되면 알키에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게루에 따르면 알키에는 마치 데카르트가 말하지 않은 것을 토대로 무상으로 꾸며대는 시인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알키에는 다소 짜증 섞인 어투로 항변한다. “제발 이 논쟁이 끝났으면 좋겠군요. 오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제게 큰 기쁨과 성과를 제공해준, 선생님과 저 사이의 아주 많은 대화가 저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또 저도 선생님을 납득시키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알키에는 몇몇 질문을 던지면서 명료하게 게루와의 해석 차이를 설명한다. 게루에게 사유의 핵심 속성은 지성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양태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왜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 1부 6절에서 ‘나는 생각한다’를 의지로서 도입하는가? 그리고 왜 그는 53절에서 지성이 사유하는 실체의 본성을 구성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