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남공원
강 문 석
공원에 빼곡한 솔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바다는 연청색을 띠었다. 하늘빛이 바다로 빨려들어가 그 색깔이 달라져 보이는 것 같았다. 남항과 붙은 바다가 이렇게 오늘처럼 텅 비어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부산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이 며칠씩 쉬어가는 묘박지인 터라 그동안 늘 화물선들이 빼곡하게 정박하고 있었다. 텅 빈 바다는 세계 일등을 달리던 조선업이 성장 동력을 잃고 내리막을 치닫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너지는 산업은 조선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기업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이 연대하여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현장을 비추던 간밤 뉴스는 어쩌면 노와 사의 공멸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암반에서 유래했을 '암남'이란 지명은 ‘아미산의 남쪽’을 뜻한다니 의외였다. 1970년대 초반 조성된 공원은 사반세기 동안이나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이어 출입이 통제되었다. 이후 재정비를 거쳐 20년 전 전면 개방에 들어갔지만 도심에서의 접근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진 못했다. 그 바람에 공원은 오히려 보존이 잘되어 지금도 울창한 숲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숲속에 파묻힌 공원도 내년 봄이면 천지가 개벽하는 만큼의 대변화를 맞게 된다. 송도해상케이블카 터미널이 이곳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공원을 찾은 것도 1년 공사기간의 반환점에 이른 터라 골재공사 진척이 궁금해서였다.
미륵산에서 출발하여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한려수도 비경을 조망하는 통영케이블카가 성공모델로 자주 꼽힌다. 하지만 이곳 케이블카는 전체 운행구간이 해상에 위치하니 차원이 다르다. 송도해수욕장 들머리와 남항대교에 붙은 송림공원을 출발하여 이곳까지 바다 위를 날며 남항의 비경과 영도를 지나 쓰시마까지를 조망할 수 있으니 구름인파가 몰릴 것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송도해수욕장에서 암남공원까지 설치된 갈맷길 해안산책로 철제사다리를 밟으면 적색의 셰일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곳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로 점토로 구성되어 층리가 발달되어 잘 쪼개지는 성질을 갖는 적색의 쇄설성 퇴적암이 많다.
그러고 암석은 캘크리트라고 불리는 흰색의 석회질을 많이 지니기도 했다. 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서서 해면에 닿으면 퇴적암으로 형성된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이 빚은 예술조각 작품이 원형대로 살아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사작전지역으로 오랜 세월 닫혀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남북이 여전히 긴장상태로 대치하여 지금도 밤마다 경계근무를 서는지 작전초소도 그대로 있다. 관광안내지도엔 이곳을 낚시터로만 적고 있다. 새끼 고등어 몇 마리를 건져 올린 중년사내는 카메라에 절경을 담는 사람이 자신의 낚시에 방해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인사말로 조황을 묻는데도 입이 뿌루퉁했다.
낚시터에 버려진 스티로폼과 깡통 식품 케이스 쓰레기들이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질서의식을 말해준다. 초인적 능력을 가진 자가 바다 위로 자전거를 달려왔는지 심하게 산화된 안장까지 보인다. 반세기 전 여름 대전에서 전근되어 부산에 첫발을 디뎠을 때 송도는 사무실에서 가까웠다. 그래서 걸어서 오가며 바다의 낭만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공설해수욕장 제1호로 지금은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송도해수욕장도 당시엔 꽤나 초라했다. 그런데도 지독한 가난에서 막 벗어난 사람들은 송도를 가장 선호하는 신혼여행지로 꼽았다. 천마산에서 거북섬 시하우스를 연결한 케이블카와 송림공원에서 거북섬을 잇는 출렁다리가 명소로 꼽혔다.
그때의 케이블카가 경사진 동서방향을 연결했다면 새로 들어설 케이블카는 그보다 두세 배 길게 남북을 거의 수평으로 오가게 된다. 그런데도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은 송도해상케이블카 ‘복원공사’라고 했다.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환경단체들의 반대투쟁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모르지 않지만 '설치공사'라고 떴떴하게 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닐까 싶다. 장군산을 바다로 에워싸다시피 한 공원엔 곳곳에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간혹 물병 하나만 달랑 들고 산책하는 청년들도 보이지만 난 음수대 물을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맛이 파는 생수보다 좋게 느껴진 것은 순전히 목 타는 갈증이 극에 달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요일과 초복이 겹치고 지난 시절엔 헌법을 만든 제헌절로 기념했던 날이었다. 오늘도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많았다. 공원 구석구석을 빠트리지 않고 돌고 또 돈 것은 카메라에 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천착 때문이다. 벌써 세 차례나 흥건하게 땀에 젖었다가 마른 옷에선 염분기가 느껴지는데도 몸은 신통하게도 전진을 거부하지 않았다. 걷기운동의 건강효과가 사이버 공간에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공원엔 산책하는 이들도 끊이지 않았다. 가끔씩 두세 명 또는 대여섯 명씩 단체를 이룬 외국인들까지 보인다. 그들은 가벼운 복장으로 쉬는 날 힐링을 겸해 찾은 것 같았다. 감천항이 바로 공원 밑이라 중년의 러시아 선원들도 보였다.
김해의 공장에서 일한다는 우즈베키스탄 청년들은 우리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정자에 올라 숨죽여가며 두도등대 주변 바다를 파노라마 동영상으로 갈무리하고 있을 때 나타난 다섯 명의 중년 아줌마들. 기차불통을 삶아먹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소음공해를 일으켰다. 그중 남구 예찬론자는 오륙도 가까이에 사는지 이기대 바다가 여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떠벌이더니 성에 차질 않는지 황령산에 오르면 대마도까지 끝내준다고 자랑했다. 저급한 졸부로 보이던 그들에 비하면 체육공원에서 만난 세 여인은 운동기구에 올라서도 조용히 읊조리듯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바람을 불러들였는지 갑자기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벤치에 앉은 사람의 땀에 젖은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공원엔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곳마다 정자가 들어섰다. 언제 우리가 이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지 스스로도 놀라게 된다. 하지만 정자를 안방처럼 점령해서 그것도 민망스러운 복장을 한 여인들이 대낮에 수면을 취하고 있었으니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무너진 공중도덕을 세우는 일은 이기심을 버리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지구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매너로서 어찌 선진국 진입을 꿈꿀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나밖에 모르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지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사무실을 들르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잠시 공원 들머리 벤치에 앉았다. 3시간 넘게 공원을 답사하는 동안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만났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은 하루살이까지도 없어서 쾌적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시커먼 산모기 떼의 습격을 받았다. 몇 차례나 몸에서 배어나와 말라붙은 땀이 그들의 후각을 자극한 모양이다. 반팔소매를 걸친 탓에 손에서 팔꿈치까지 무차별 공격을 받았고 침을 놓은 곳은 금세 부어올랐다. 이곳 케이블카가 운행을 개시하려면 아직 세 계절을 지나야 한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깝다고 했던가. 금년 겨울이 빨리 깊어져야 공원의 봄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73040578E599819)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31840578E59992E)
![](https://t1.daumcdn.net/cfile/cafe/217C9840578E599A34)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0E540578E599B23)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78040578E599C2B)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B4A40578E599D1A)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10440578E599E14)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27C3F578E599F24)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09D3F578E59A040)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0A83F578E59A116)
![](https://t1.daumcdn.net/cfile/cafe/257D133F578E59A335)
![](https://t1.daumcdn.net/cfile/cafe/247ECB3F578E59A434)
![](https://t1.daumcdn.net/cfile/cafe/2202243F578E59A532)
![](https://t1.daumcdn.net/cfile/cafe/2706B23F578E59A62A)
![](https://t1.daumcdn.net/cfile/cafe/26467244578E59A814)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60344578E59A90A)
![](https://t1.daumcdn.net/cfile/cafe/25410844578E59AA1E)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11E44578E59AB2D)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2CA44578E59AC0D)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E7844578E59AD21)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E6144578E59AE30)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95146578E59B004)
![](https://t1.daumcdn.net/cfile/cafe/23386546578E59B112)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4F146578E59B232)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D4046578E59B31E)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BF446578E59B402)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27746578E59B60B)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3F846578E59B717)
![](https://t1.daumcdn.net/cfile/cafe/276FB53E578E59B833)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B8F3E578E59B91D)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67F3E578E59BB2D)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7BC3E578E59BD10)
첫댓글 오랜만에 암남공원 모습을 보니 새롭습니다
바닷가로 낮은 둘레길도 생기고요 이렇게 좋은공원에 방문객들이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즐기고 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