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머금은 보랏빛 구름 걸린 자운봉(紫雲峰)에 상서로운 기운이 천지에 뻗친다. 한 점의 미혹도 의심도 없다. 하늘과 통한 고도한 정신의 세계가 절정에서 빛나고 있다. 누구일까? 잃어버린 마음의 명경을 찾아 제 얼굴을 보고 세상으로 가는 이가.
도봉산 만월암
적설의 고요가 깊다.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누가 저 길을 걸어갈까. 바람일까, 아니면 선인봉 아래 문 열고 마실을 가시는 석굴암의 부처님일까. 월정(月精)의 달빛 사리는 보석으로 쏟아지고, 그 소리 듣고 계신 만월보전의 부처님 흰 미소가 마음의 심매(心梅)로 핀다.
도봉산 포대능선에서
산정의 저 소나무 천길 바위 벼랑에 몸을 세웠다. 우리의 삶 어디엔들 벼랑이 없으랴. 벼랑에서 일어서면 벼랑은 정신이 된다. 정신의 지평이 열린다. 삶은 어디냐의 문제보다 무엇이냐의 문제가 그 사람의 한 생애를 좌우한다. 벼랑에서 소나무를 키워온 부부가 소나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벼랑의 설송
그 무엇 하나 제 것 내주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바람에게도 대설에게도 때때로 내주어야 할 것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바람의 방향을 안다. 눈의 무게를 안다. 내준 만큼 넓어지고 깊어진 내면세계가 비로소 온전한 그의 세계요 우주가 된다. 중동을 내준 소나무가 길 없는 절대적 세계 속에 하늘을 얻었다. 사뿐 눈송이 받은 손바닥 위에 흰빛이 소복하다.
선인봉과 소나무
진실로 좋으면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더는 바랄 게 없다. 석굴암 가는 길목 누구라도 앉아 쉬기 좋은 바위 쉼터가 있다. 한 번 앉아서 저 거벽의 선인봉 바라보고 있노라면 좀처럼 일어설 줄 모른다. 길을 가던 저 소나무도 쉬어간다는 것이 그길로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주저앉았듯.
선인봉과 포대능선
천축사 갈림길에서 오른쪽 석굴암과 만월암 가는 길로 접어들면 아주 오래된 도봉산장 있다. 안으로 들면 머리에 만년설을 머리에 인 할머니 한 분 계신다. 반질거리는 그라인더로 내려주시는 원두커피의 향기가 잠시 고독의 시원을 더듬는 시간이 있다. 침묵으로 사람을 듣는 그런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