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인동(옥산)장씨종친회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자유게시판 디지털구미문화대전(인터넷홈페이지)의 내용 중 인동장씨와 관련한 부분의 오류 및 누락에 대해 알립니다.
하얀레조 추천 0 조회 134 10.02.09 13:52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드리구요 구미시청 담당자/칠곡군청 담당자/ 한국학 중앙연구원 담당자와 통화해서 태사
    장정필(안동 시조)와 인동(장금용)님은 전혀 틀리며 같은 핏줄도 아니며 잘못 기술된 내용이니 시정해달라고 요구햇으며 수정약속을 받앗습니다
    장정필님은 중국인 장금용님은 한국인 어찌 같다고하는지 조상 바꾸지말라고 따끔하게 말씀드렸습니다

  • 참고로 한국학 주앙연구원담당자 말씀으로는 이부분들을 돈을주고 용역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종회 전화번호 불러주고 다시문의후 수정해달라고하였구요
    안동장씨 홈피와 인동장씨 홈피가 엄연히있고 그 후손들이있는데
    왜? 물어보지도 않고 한 사학자의 말만 믿고 남의 조상을 함부로 바꾸는 짓을 했냐며 쫌 혼냈습니다
    참고로 안동장씨 대종회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동장씨 홈피 담당자가 저에게 그러했듯 인동과 안동은 같은 조상이라며 분명히 우길것이지만
    우리인동장씨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혓습니다

  • 아 그리고 아주 품위있게 말했으니 인동장씨 품위에 누가되지않게 혼냈으니 걱정마시구요~^^

  • 경북도청 문화재과장이신 김용만님과 통화했습니다 본인이 저술한것이 아니랍니다

  • 한국학 중앙연구원 자체 용역 집필자의 실수라고합니다

  • 그래요 우리 서림 종문님 수고 하셨구요~올바르게 수정이 되였는지 자꾸 확인 부탁의 말씀도 함께 드립니다~

  • 네 그렇게 하겟습니다~^^

  • 작성자 10.02.09 17:53

    수고하셨습니다. 방금 저도 디지털구미문화대전의 '내가 쓰는 백과'에 자료의 수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해 놨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열정적으로 문중일에 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 10.02.09 20:06

    직제학(장계)계 인동장씨 문중은
    肅宗9년(1683) 이후 1920년까지 여러 차례 편찬한 족보에「吾派는 아는 바 최선조인 直提學公 張桂로 시조를 삼았다」하고 타관장씨의 족보에 직제학 張桂 위에 계대해 놓은 世系는 부인한다」고 하였으며
    "張氏各派先系考異" 와 "傳疑錄"을 편찬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이는 당나라 한림학사 張之賢이 玄宗天寶13년(753)년에 우리나라로 귀양 왔으니 장태사가 공을 세운 해(930년)보다 177년 앞인데 그 張之賢을 장태사의 손자이니 혹은 증손자라고 한 것은 크게 잘못이라」극렬비판 하였는데

  • 10.02.09 20:05

    ↑위 글에 이어서~ 근래에 와서 아무 근거도 없이 14대손 운운하니 장태사를 조상으로 삼든 않든 우리가 상관할바 아니나 하루아침에 換父易祖를 서슴지 아니하니 참 이상하네요...

  • 하하~!그렇지요 고증도 안된 왜곡된 기록을 2~3백 여년 동안 대물림해 숙지하다 보니 이젠 그분들 조차도 억지주장을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 부분에선 우리 인동에서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보지만 잘 못 기록된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 들이며 옳바른 종족관을 세웠으면 하련만~ 그분들은 함자가 자신들의 선조 할아버지와 비슷 하거나 동일하면 고증이나 역사 기록을 확인도 안하고 무조건 적으로 포음공 장태사 후손으로 계대를 해 놓았던 기록들을 타인들은 별다른 여과 없이 그 내용들이 사실로 알고 있다는게 현실이지요~이런 오류들을 바로 잡기까진 많은 시간과 공력이 뒷 받침 되어야 하며 일반 인들에게 까지 바로 알려

  • 지려면 그동안 잘 못 알려진 세월 만큼은 흘러야 세인들이 우리 인동[옥산]과 안동의 시조님들의 바로된 정립이 될걸로 봅니다 그러니 이런 일들은 바로 현세대인 우리들의 일이라고 보며 앞으로 우리 후대에게도 계속해서 일깨워 줘야 할걸로 봅니다~

  • 안동장씨문중 대표와 인동장씨문중 대표분들이 만나 더이상 남의 조상을 깍아내리는 행동에 대해
    단판을 지을 필요성을 느낍니다
    도데체 무었이 두려워서 무었을 위해 우리 조상도 아닌데 그들은 우리와 자기들을 한데 묶으려할까요???
    아무레도 한국 토종이 아닌 중국 귀화라는 아킬래스건과 한국인으로 완전한 정통성을 내세우기에는 한계점을 느끼고
    억지로라도 수라도 늘려 그 정통성에 한계를 넘어보려는 생각으로보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귀화한 분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면 될것인데
    오히려 인동과 안동을 억지로 한데 묶으려는 행동들이 한국에 뿌리내린 그들 내면에

  • 스스로의 조상에대한 정통성을 가진 한국인이 아니라는 귀화인이라는 열등감이 존재하는듯 보여집니다
    안동장씨 문중을 욕되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인동장씨들은 안동과 한 핏줄이 아니라고 극렬반대하는반면 안동장씨 그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조상엮기에 전혀 신경스지않는것이 그 에 대한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 자신들의 정통성의 한계를 뛰어 넘어보려는 무리한 행동보다 자신들의 조상에대해 다시금 제대로 알고 배우고 자부심을 가지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때야 비로소 명문이 되는것입니다
    태생이 중국이라해도 자신의 조상에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조상에 누가되지않는 삶을 사는것이
    후손된 도리라 여겨집니다 그것이야말로 형식에 억매여 만들어진 명문이 아닌 조상을 바로 섬기고
    조상의 삶을 본받아 세상을 이롭게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명문가문이라 생각되어집니다
    관직이 높다하나 행동이 미천하다면 그것은 명문이 아니며 관직은 작다하나 사람들을 이롭게하고
    행실이 올바른사람이라 주변에 덕을 얻는이 그가바로 명문 후예일것입니다

  • 정말 수고들 많이 하십니다~!! 늘 함께하는 종문님들의 안녕이 가득하시길~!!

  • 10.02.10 17:15

    족보 기록의 역사는 오래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족보 기록은 조선중기에 안동권씨 족보인 '성화보(成化譜, 성종대: 1400년대)'와 문화류씨 족보인 '가정보(嘉靖譜, 중종대: 1500년대)'를 최초로 보고 있습니다..그것도, 현재와 같은 '대동보(大同譜)' 형태가 아닌, 한 집안의 가계를 중심으로 내외척(內外戚)을 두루 갖춘 계보도(系譜圖) 형태의 '가첩(家牒)'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러던 것이 조선후기(영조대: 1700년대)에 요즘 같은 씨족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보 형태를 갖춘 족보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그것은 각 성씨 마다 자신의 집안을 양반 벌족으로 내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 합니다.

  • 10.02.10 13:24

    우리나라 장씨 족보도 이때 거의 대다수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위조족보'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그것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중국에서 내화(來化)한 드러난 인물인 안동(安東)장씨 시조인 장태사(張太師)를 내세우며 '초무장성설(初無張姓說: 우리나라에 장씨가 없었는데 장태사가 최초로 우리나라 장씨란 주장)을 퍼트려 이후, 우리나라 장씨 종족사를 큰 혼란에 빠트리게 만듭니다..하지만, 처음부터 장씨는 모두 장태사 후손이란 망상은 근본부터 거짓이기에 이후, 드러난 문제가 불거지면 또 다른 거짓으로 해명해야 했기에 위조로 점철됐으며, '환부역조(換父易祖)'의 질곡으로 빠지고 만 것입니다.

  • 10.02.10 13:20

    우리 인동(옥산) 장문 족보는 죽정공[竹亭公: 휘 잠(潛) 부군, 황상파 분파조, 연산군~중종대]께서 처음 만드셨으나, 안타깝게도 임진란 때 소실되어 전해오지 않습니다..이 때문에 우리 장문의 족보 근간은 여헌(旅軒) 선생[휘 현광(顯光) 부군, 명종~인조대]께서 남기신 '여헌수록(旅軒手錄)'으로 삼고 있습니다..이 점 여러 현종님들께서는 숙지 하시길 바라며, 타관 장씨들이 주장하는 검증되지 않는 여러 허무맹랑한 설에 절대 부하뇌동하지 마시고, 우리 장문의 종족사를 올바로 굳건히 세워고 또한, 지켜나가야 할 막중한 의무가 부여된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네 잘알겟습니다 좋으신 말씀 잘 배웟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분명히 확실하게 해둘것이있습니다 지금 인동장씨의 대동보나 전자족보를 보더라도
    종파를 비롯한 각파의 조상님들의 연원과 업적에대한 저술이 너무나 미흡하게여겨집니다
    이부분에 대해 그동안의 문중 어르신들의 노고를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기본부터 충실하게 명확하게 있는 자료 그대로 라도 모두 저술해놓고
    우리 문중분들이 다 배우고익 힌다면 타관 장씨들의 환부역조의 허무맹랑한 낭설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조상 알기가되리라 생각되어집니다

  • 10.04.05 22:38

    장서림씨 의견에 동의합니다. 최소한 시관조및 시조와 파조에 해당하시는 선조에 대하여는 관직과 봉직 그리고 업적을 사료에 의해서 고증하여 올려주신다면 타 장씨에게도 고증되는 자료가 되리라 봅니다. 족보만을 갖고 주장함은 왜곡 과장 미화 잘못계대등 구시대 유산으로 객관성이 없습니다.<설 송>

  • 10.04.05 09:35

    저는 결성장씨 카페지기겸 종사위원장 직분을 갖고있는 설송 장흥순 입니다.질문하기는 정회원이 아닌탓에 인사등업 항목에 간단히 질문을 드렸습니다.(참고) 장익창씨 께서 언급하였듯이 장씨성은 장태사공 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전제하에 1763년 장씨족보(일명 8관보)를 작성하면서 장씨 성씨를 보다 돗보이게 하기위하여 태사공 후손으로 끼여 맞추고 과장 미화등 임의 계대를 하다보니 장씨문중은 너나할것없이 문제를 안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장계(張桂)공의 1.출생~운명 년도와 최종관직 봉직내용등 2.장계공 선대4대조 각각의 성함및 관직 *상기 내용을 사료와 고증 내용을 댓글에 올려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설 송>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