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 7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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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5. 19:28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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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7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다!
타이태닉을 발견한 로버트 밸러드(1985년)
요약 1912년 타이태닉호가 1천 5백여 목숨과 함께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1,300km2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음파탐지기로 뒤졌으나 실패의 연속이었고 해양연구소는 잠수정 ‘아르고호’를 이용해 바다를 뒤지기 시작했다. 1985년 9월 1일, 밸러드 일행은 긴 석탄과 파이프 등을 발견 후 그토록 찾던 타이태닉호를 발견한다.
심해 탐사의 일인자
로버트 밸러드는 우즈홀해양연구소에 심해잠수실험실을 창설하고 책임자가 된 이후에도 바다 속을 누볐다.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에 엄청난 참사가 북대서양에서 일어났다. 세계 최대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처녀 항해에서 겨우 4일 17시간 30분 만에 빙산과 부딪쳐 1천 5백여 목숨과 함께 가라앉은 것이다.
1971년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해양과학자 로버트 밸러드가 타이태닉호를 찾자고 제안했으나 스폰서를 구할 수 없었다. 1974년 대서양중앙해령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로, 잠수정 앨빈호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진 밸러드가 1978년에도 타이태닉을 찾자고 나서자 1980년 잭 그림이라는 지질학자가 돈을 대겠다고 나섰다.
밸러드는 1980년 7월 31일부터 8월 16일까지 1,300km2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음파탐지기로 뒤지다가 폭풍을 만나 돌아왔다. 1981년과 1983년에도 날씨가 나빠 실패했다. 그는 탐사 지역을 좁히려고 대서양중앙해령을 함께 탐사했던 프랑스의 장 루이 미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사고 당시 북대서양을 항해한 배들의 항해 일지와 기록들을 샅샅이 뒤져, 타이태닉호가 가라앉았을 만한 곳을 20km2이내로 좁혔다.
1985년 6월 미국 해군이 밸러드에게 22만 달러를 대기로 했다. 해군은, 타이태닉을 찾으면서 카메라와 비디오를 통해 바다 속을 뒤지는 원격 조종 탐사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85년 7월 11일부터 8월 7일까지 밸러드 일행은 르 쉬르와호를 타고 쇠줄에 음파탐지기를 매달아 바다 속을 뒤졌으나 빠른 해류와 거센 해류 탓에 또 실패했다.
8월 13일, 밸러드와 미셸은 우즈홀 해양연구소가 보낸 탐사선 노르호에 갈아타고 다시 탐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 연구소가 새로 만든 잠수정 아르고호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르고호는 자동차만한 크기로 강력한 음파탐지기와 탐조등을 갖추고, 6,000m 깊이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날마다 거센 물결에 부대끼면서 바다를 뒤졌다. 그러나 타이태닉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원들은 점차 기운을 잃어 갔다 8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돌아가야 할 철이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8월 31일 밤, 미셸은 자정부터 9월 1일 새벽 4시까지 당직을 서려고 관제실로 나갔다.
9월 1일 0시 30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문득 석탄과 긴 파이프 같은 것이 화면에 나타났다. 미셸의 가슴이 뛰었다. 함께 당직하던 항해사와 비디오 기술자, 소나 전문가 여섯 사람도 꼼짝 않고 화면을 지켜보았다. 5분쯤 지나자 커다란 보일러 같은 것이 화면에 나타났다.
"누가 가서 밸러드를 깨워야겠어!"
미셸이 말했으나 아무도 가슴 벅찬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요리사에게 보고 받은 밸러드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보일러를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바로 저거야!"
다음 이틀 동안 바람은 시속 70km, 파도는 4m를 넘었다. 노르호를 돌려주기로 한 날이 며칠 안 남아, 밸러드는 악조건에서도 하루 24시간을 탐사에 매달렸다. 아르고호는 물속 3,900m에서 타이태닉호를 맴돌며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포도주병 · 매트리스 · 전신기 · 마스트 · 닻사슬···, 날마다 수많은 잔해가 화면을 메웠다.
1986년 7월 14일 2차 탐사가 시작되었다. 밸러드는 탐사선 애틀란티스 2호에서 잠수정 앨빈호로 옮겨 탔다. 밸러드를 비롯한 과학자 세 사람은 앨빈호 속에서 원격 조종을 해 '제이슨 주니어'라는 로봇(71×68×50cm)을 타이태닉호의 계단 통로를 따라 선실로 들여보냈다.
네가 들어가 봐
타이태닉호 갑판에서 잠수정 앨빈호(왼쪽 위)가 원격 조종 로봇 제이슨 주니어(오른쪽 가운데)를 선실 통로로 내려보내고 있다.
로봇에 장착된 특수 카메라가 찍은 선실 안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쳤다. 이 카메라는 높은 수압과 짙은 어둠 속에서도 170도 범위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었다. 1등 선실의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조금도 망가지지 않은 채 매달려 있었고, 구리로 만든 조타실 장식품들도 74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이 조사는 날마다 4시간씩 7월 25일까지 12일간 계속되었다.
제이슨 주니어는 어떤 잠수함도 더 이상 잠수할 수 없는 3,650m를 훨씬 넘어서 3,900m 바다 속을 신나게 휘젓고 다녔다. 길이 71cm 너비 68.5cm 높이 50cm밖에 안되는 이 작은 로봇은, 적 잠수함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물속 전파 탐지 장치와 미사일을 찾아내려고 만든 군사용 로봇답게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내 미국 해군을 만족시켰다.
2차 세계대전 때 유럽 최강이라 일컬어진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는 배수량 5만2,600톤에 15인치 포 여덟 문을 갖춘 거함이다. 이 배도 처녀항해에 나선지 8일 만에 영국 항공기와 전함 7척으로부터 2,876발에 달하는 함포와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밸러드가 비스마르크호를 찾아 나선 때는 1988년 6월, 타이태닉호가 직선 항로를 운항한 여객선인 데 견주어 비스마르크호는 전투를 하며 옮겨 다녔기 때문에 100km2가 넘는 해역을 뒤지고도 찾지 못했다.
1989년 5월에 아르고호를 가지고 다시 도전한 밸러드는 6월 6일 해저 4,700m가 넘는 포큐파인 해연(海淵)에서 마침내 이 배의 15인치 포 포신을 발견했다. 6월 8일, 아르고호가 파편을 따라 이동하자 비스마르크호 갑판에 그려진 지름 15m짜리 거대한 나치 휘장 하켄크로이츠(卍)가 모니터 화면에 그득 찼다.
▼ 관련 기록은 * 1972년 / 트리에스트 Ⅱ호가 해저 5,029m에서 케이블 부설 작업 [네이버 지식백과] 7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다! - 타이태닉을 발견한 로버트 밸러드(1985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