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함양 진궁터 铁器时代 · 咸阳秦宫殿遗址
출처: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친두 셴양의 황궁 및 기타 궁궐 건물터.지금의 산시(陕西西)성 셴양(咸陽)시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셴양(咸陽) 고원에 위치했습니다.친셴양성의 지형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며 북원에서 웨이허로 점차 낮아지고 도시의 가장 북쪽은 계단식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궁궐건축군유적은 북부계단지, 이른바 '북릉' 또는 '북판'의 상하 일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기원전 350년 진 효공이 함양으로 천도하자 상앙은 이곳에 먼저 기궐(冀阙·궁 밖의 문궐)을 지었고, 이후 역대 진왕들은 함양에 많은 궁궐을 지었습니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함양 고원에 관동육국의 궁궐인 육국의 궁실을 본떠서 만들고, 황궁인 함양궁을 확장했습니다.진나라 말기에 항우가 관중에 들어가 진궁실을 불태우고 함양 진궁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1959년부터 산시성 고고학 연구소, 문화 관리 협회 및 기타 단위는 셴양 친궁 유적을 조사하고 발굴했습니다.
▲ 함양 진궁터인 도회문 네모난 벽돌 함양궁터는 진나라 함양성지 북쪽 계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에 돌출되어 있는 전국시대 고대 궁관유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그 동안 좁고 긴 다지기 기초가 연결되어 있었고 많은 부분이 상원을 가로지르는 곡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함양 진궁의 복원도는 북쪽 계단에서 진나라 함양성의 중심축 부근에 있는 고대 궁관 유적지로, 전국시대 진나라 함양궁의 옛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진나라 때 존재했던 상원곡도(上原谷道, 지금의 '소양구'라 불림)의 동서 양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랑을 넘어 대치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서쪽이 제1호 유적, 동쪽이 제2호 유적입니다.
서쪽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1974~1975년에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유적의 복원에 따르면, 이것은 동서 대칭의 고대 궁관 집합으로, 곡도를 가로지르는 비각으로 하나로 연결된 예술적 매력을 지닌 탁사 복합체입니다.
제1호 유적지는 동서 60m, 남북 45m, 1층 높이의 6m, 평면은 약간 L자형이며 남북에 여러 개의 방이 있습니다.
남쪽 서쪽의 1열 5실, 서쪽의 4실은 침실로 벽화조각이 출토되고 물레바퀴가 동반되어 당시 궁빈들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며, 가장 동쪽의 1실에는 난방용 벽난로 및 대형 도자기 바닥 배수관과 배수관이 있어 욕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욕실 한쪽 구석에 음식을 저장하는 구덩이가 있습니다.
▲ 함양 진궁터인 6호 궁궐터 대대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각 방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토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대대의 중앙에는 판자를 두껍게 쌓아 담을 두른 주체의 궁실이 동서 13.4m, 남북 12m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남북벽은 각각 2문씩, 동벽은 중1문(門)에 있습니다.중앙에는 지름 60cm의 돌기둥 유적이 있고, 지표면은 주홍색, 즉 당시의 '단지'입니다.그것은 이곳이 최고 통치자가 사용했던 홀임을 보여줍니다.대청 동쪽에는 침실이 이어져 있고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홀의 서쪽에는 슬로프가 홀까지 연결되는 층이 있습니다.대대의 서쪽에는 큰 침실, 큰 욕실, 저장실도 있는데, 역시 비빈과 궁녀들이 머물던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북쪽에는 넓은 대청이 있고, 남쪽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어 성 전체를 내려다보며 위하와 남산의 풍경을 멀리 바라볼 수 있습니다.
▲ 진궁1호 궁궐터 솟대
▲ 함양 진궁터 상앙방승 제3호 궁궐터. 제1호 궁궐터 서남쪽에는 흙을 다져 서로 연결시켜 놓았습니다.발굴된 서각도는 길이 32.4m, 너비 5m로 좌우 벽화가 가득 장식되어 있으며, 주제는 진나라 왕이 수레와 말, 인물, 꽃과 나무, 건축 등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진나라 궁실 벽화들은 중국 건축사와 미술사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 함양 진궁터 차마도 벽화
▲ 함양 진궁터 동권의 '육국의 궁전' 유적지인 진나라가 6국을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매멸국, 즉 수도 함양 북판에 그 나라의 궁전을 모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사 결과 성북계지 궁궐유적의 서쪽 끝, 마오왕거우 부근 궁궐유적에서는 초나라형 기와가 출토되었고, 동쪽 끝 백가부리에서는 연나라형 기와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함양궁의 동서 양끝이 전국 말기 통일과정에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6개국의 궁궐을 모방했다는 사서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 함양 진궁터 서성벽 토층 다지기
▲ 함양 진궁터 운문와당 아방궁터 진시황 35년(전 212)에 주도풍,호의 땅, 즉 진의 상림원 안에 새로운 궁성인 아방궁이 건설되었습니다.
아방앞 전각에는 동서 1200m, 남북 450m의 높은 다지기대가 남아있습니다.현존하는 메사면은 남쪽은 약간 낮고 북쪽은 약간 높으며 가장 높은 곳은 약 7~8m입니다.아방궁 안에는 또 다른 유적지가 있습니다.
▲ 아방궁전 터 서북쪽
▲ 아방궁전 복원도 유물은 건축자재 위주이며 벽돌과 기와가 특징입니다.벽돌에는 바닥 타일과 중공 타일이 있으며 일부는 맨얼굴이고 일부는 격자무늬, 기하학 무늬 등이 있습니다.기와에는 슬레이트, 통기와 및 기와가 있습니다.
벽돌과 기와에 도문이 많이 인쇄되어 있습니다.기타 건축 자재로는 도관, 도기 굽이, 도권 등이 있습니다.궁궐터에서는 맷돌, 쇠칼 등의 도구와 유기, 토기 등의 생활용품과 전국화폐가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 함양 진궁터 신인기봉도
▲ 함양 진궁터 도현무문 공심벽돌
분류:고고 표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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