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구 안드레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
성실한 신앙생활 안에서 행복한 성가정이 됩시다
어느 젊은 남녀가 혼인면담을 하러 본당에 찾아왔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혼인면담할 당사자 진술서 등의 혼인 면담용 서류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면담 초반에 신랑이 미신자이고, 신부는 신자라서
‘미신자 장애만 관면해주면 되겠구나’하고 속으로 생각을 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신랑이 될 형제님이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인날짜를 알아보니, 형제님의 세례식이 있고 난 후 였습니다.
자매님은 혼인성사를 받기 위해 신랑이 될 형제님을 교회로 이끌어주었던 것입니다.
자매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세례 후에 혼배를 하자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2009년은 수원교구가 성가정 운동의 3년을 마무리 짓는 해입니다.
이 특별한 기간 동안에 성가정이 되라고 하느님께서 두 분을 맺어주셨고,
또 형제님을 세례성사로 이끌어 주시는가 봅니다.
나중에 2세가 태어나면 꼭 유아세례를 받게하여 하느님께 더욱 감사드리시고,
보다 성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행복한 성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 축일은 나자렛 성가정을 특별히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늘 주님의 사랑과 이끄심안에서 모든 가정이 성가정이 되기를 기도하며 보내는
거룩한 날이기도 합니다.
점점 더 각박해지고 어려워지는 경제현실에 우리가정에도 어두움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도적 권고〈가정 공동체에서
현대 가정이 놓여있는 역사적 상황을 “빛과 어둠의 교차점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에 뿌리박은 사랑을 위한 교육만이 어둠의 가정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가정에 드리워진 어둠을 밝히는 등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 안으로 내려오신 아기 예수님이며,
우리는 밝은 희망의 빛을 오직 신앙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 요셉, 성모님, 예수님이 이루셨던 성가정에 늘 웃음과 평화만이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가정에도 여러가지 어려움과 고통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가운데 그 어려움과 고통을 봉헌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 요셉과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는 내용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 온전히 주님께 봉헌된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그토록 바라는 성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12월의 마지막 주간은 ‘가정 성화 주간’입니다.
가정생활의 자랑이며 모범이신 성 마리아와 성 요셉의 덕을 본받아 가정성화를 이룰 때,
우리가 외치고 있는 구역반 공동체의 성화, 나아가 본당, 지역교회, 보편교회 성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하나의 기초적 교회이며, 교회의 세포이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황용구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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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하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
사랑합니다
바보같이 로마에 유학을 떠난 어느 여학생의 글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로마 시내에서는 방을 얻기가 어려워 여학생은 시내 외곽에 방을 얻어
기차로 통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마치고 기차를 이용해 집으로 가는데
기차 안의 승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들로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졸고 있거나,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기차가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갑자기 건장해 보이는 청년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타더라는 것입니다.
기차에 오른 청년은 이내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책을 보고 있어?” “왜, 잠만 자?”
“신문에 무슨 기사가 났어?” “누구하고 통화를 하는 거야?”
그러면서 놀란 사람들의 대답을 자기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이 사람은 이런 책을 읽고 있대.”
“아빠, 신문에 이런 일이 생겼대.”
“아빠, 이 사람은 여자 친구가 있대.”
그 순간 고요한 정적이 감돌던 기차 안은 모두 청년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고
술렁거림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청년은 아버지에게 오줌 마렵다고 소리를 쳤고 아버지는 청년을 데리고
기차에 딸린 화장실로 데려가 용변을 보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마치고 손을 씻은 청년은 기분이 좋았는지
또다시 기차 안의 승객들에게 다가가 비누로 씻은 자신의 두 손을 내밀며,
“맡아봐! 냄새 좋지?” 하며 일일이 냄새를 맡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기차 안은 폭소가 터졌고 모두가 연실 청년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학생은 그 글 끝에 이렇게 썼습니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주변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정적만이 감돌던 기차 안은
머리가 부족한 청년 한 명으로 인하여 이내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사랑은 계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이기겠다는 욕심으로는 완성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속아주기도 하고 가끔은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사랑은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고 순수한 관심의 배려입니다.
이것이 사라지고 있기에 많은 가정의 행복이 깨지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용서가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화와 감사가 사라지는 가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서 이 같은 아름다운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이름은 스스로 허물을 벗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부의 이름은 사라지고 ‘여보’와 ‘당신’만 남는 거랍니다.”
사랑은 내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이미 늦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의 사랑은 바로 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라늄 꽃의 꽃말은 “그대가 있기에 행복이 있네”라고 합니다.
가족 한 명 한 명을 예쁜 꽃으로 생각하여 지금의 있는 그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있어, 네가 있어 행복해”라고 말입니다.
쑥스러워하며 입안에 웅얼거리고, 생각만으로 말하지 않고
내일로 미루다가는 영영 그 아름다운 말을 가족이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시린 가슴의 상처로 영원히 남을 수 있습니다.
세속의 한해가 마무리 되는 오늘 교회는 세상의 가장 작은 교회인 가정을 위하여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오늘날 모든 가정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닮으라고 가르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부모님에게 하신 자세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카 2, 51).
예수님은 분명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계산적이지 않고 바보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 자리, 그 순간에 사랑을 사셨습니다.
성모님 역시 이기적인 삶이 아닌 희생의 사랑을 사셨습니다.
그분의 순명과 자기 헌신이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완성된 것입니다.
요셉 성인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로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바보스러움의 희생이 나자렛 성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같이 가르칩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 12).
진정 사랑으로 한 해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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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윤석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41-52
부모는 파업 중
얼마 전 일간신문에 난 ‘부모는 파업 중’이란 기사를 소개합니다.
미국의 한 부모가 집안에서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녀들을 상대로
‘부모 파업’을 벌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플로리다주(州) 델토나에 살고 있는 핼런 배너드(56)와 부인 캣(45)씨는
아들 벤자민(17)과 딸 킷(12) 남매가 평소 집안일이나 설겆이를 도와주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방 정리도 하지 않고 빨랫감을 아무 데나 내던지는 등
최소한의 도리를 외면하고 있다며 지난 2004년 12월 6일 파업을 선언했다.
부부는 두 남매를 아무리 설득하고 타일러도 반성과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원에 텐트를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부모는 파업 중’
‘협조와 존중을 요구하며’라는 피켓까지 꽂아놓았다.
끼니 때가 되면 자신들만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집 밖으로 내다놓은 TV를 보거나 독서를 하다가 침낭에서 잠을 자고 있다.
냉장고에 먹을거리만 채워놓은 채 ‘가출’ 한 뒤 지금까지
남매에게 일체의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아이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예요.”
부부는 “일을 못 시켜먹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면서
“자기 코앞 밖에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눈을 들어 세상을 내다보게 하려는 마음”
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부의 파업 현장에는 이웃들과 취재진은 물론,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는 부모가 할 짓이 아니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반면,
대다수는 이번 기회에 모든 자녀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달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부모 파업 닷새째인 10일(현지시각) 현재,
아들은 본체만체 집을 들락거리고 있다.
딸은 지난 8일부터 자신의 빨래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
이상입니다.
자녀 여러분, 여러분들은 집에서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위의 아이들 같아선 안되겠죠?
집안일 잘 거들고 최소한 내가 할 일은 내가 합시다.
오늘은 가정 주일입니다.
오늘의 전례는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들에게, 부모와 함께 사신 예수님께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예수님의 가정은 우리에게 참된 삶의 모범으로 소개합니다.
가장 요셉은 깊은 신심으로 아기 예수와 아기 어머니를 보살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성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모든 가정이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