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유혹(KBS, 1999) 은 누구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슬픈유혹 ...
->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명(!)대사... 중의 하나지요..(순정만화에 나올법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가능한 튕기지 않고 동성애를 정당화시키기위한 모순적인 말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게이는 없을 겁니다. 대사는 대사일 뿐이지요. 스트레잇 작가가 쓴 동성애의 낭만을 자극하는 ... 게이들이 피식 웃어버릴만한 별스럽지 않은 말일 수도 있구요.
단지 사람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남여를 뛰어넘어서 범 인류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박애주의적이고 .. 포비아들에게 약간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만합니다. 스트레잇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게이필을 변이되지 않게, 군중들이 돌던지지 않게 둥글둥글 넘어가 보자는 말이지요.
' 남자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내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남자일 뿐이다." 는 말은 스트레잇에게 굉장히 낭만적일 수 있으나 커밍아웃한 이들에게는 씨도 안먹히는 소리가 되겠지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니라면 게이가 아닌데 뭔소릴 하는거냐' 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정한다면 뭣하러 그리 돌려서 이야기 하겠습니까.
제대로 하자면 " 내가 게이이기 때문에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 가 되겠지요. 모든것을 초탈한 마더테라사적 인간애도 아니고, 남자라서 사랑하는 게이이야기도 아니고.. 스트레잇의 구미에 맞게 동성애를 이쁘게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내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일 뿐이다" 라는 말을 쓴 작가의 의중을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삑! 남자가 좋아질 수 있는 걸까요? 회사에서 무능한 중년남자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게이가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게 주요 내용인데요. 무거워보이나 오히려 가벼운 소재죠. 스트레잇중년과 젊은 게이가 사랑하게 되는게 외로움을 이유로 타당성을 갖기가 절대 쉬운게 아니죠. 게다가 스스로 동성연애자라고 말하면서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사랑한 사람이 남자였다? 한 작가의 손에서 동성애에 대한 오류가 마구마구 분출을 합니다. 동성애라는 주제가 단지..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기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입니다.
동성연애자되는게 누워서 떡먹기(어렵구나;;)도 아니고 줄곳 스트레잇으로 47년을 살다가 (물론 여기에 관한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남자를 사랑한 전적이라든지 기타등등)
회사에서 나이들고 힘빠지고 그 와중에 젊고 유능한 신참이 들어와서 그와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부럽기도 하겠죠 하지만 이게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는건지.. 스트레잇이고 게이고 캐릭에대한 일말의 배려도 느낄 수 없습니다. (보는 사람들 니들이 알아서 생각해라.. ㅎㅎㅎ)
쿼프와 슬픈유혹을 비교해 보기위해 몇해전.. 성생리학 수업을 들은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가..(호르몬분비의 비정상성과 뇌하수체 전엽의 크기 문제, 정신분석학적 측면, 생태학적 측면)로 나뉩니다.
*선천성에 기인하는 호르몬 & 게놈
성의 유전적 결정은 X나 Y염색체가 관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분화는 성호르몬의 작용과 조절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거의 모즌 종류의 성 호르몬의 분비 조절은 뇌의 하단부에 위치한 뇌하수체(Pituitary glands)에서 관할을 합니다. 즉 대죄의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성적 성숙이 시작될 때, 바로 밑에 위치한 뇌하수체에 신호하여 사춘기의 성장에 필요한 호르몬 분지를 활성화시킵니다. 뇌하수체는 전엽, 중엽 및 후엽의 세 부분으로 구성죄며, 각기 상이한 종류의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특히 뇌하수체 전엽은 6가지 종류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가장 단상의 구조물이지요.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여포자극 호르몬과 황체 형성 호르몬은 생식선 자극 호르문으로서 남녀의 생식선을 자극합니다. 남성의 경우 이 두 호르몬이 고환의 성장을 자극하고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겐(androgen)을 생산하도록 합니다. 특히 여포자극 호르몬은 정자의 성숙을 촉진시키고, 황체 호르몬은 고환 내의 세포들을 자극하야 가장 대표적인 남성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분비하게 합니다.
호르몬분비의 불균형을 동성애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들의 뇌하수체의 고장내지는 크기의 비정상성을 꼬집습니다. 뇌하수체가 완전 고장이 나 버려서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은 분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여러가지 실험연구를 통해서 밝혀진바 있습니다. 심지어 여성의 성 주기와 관련한 실험도 진행되었는데요. 평소 여자에게 에스트로겐을 투여했을 경우 기계적으로 황체형성호르몬이 분비되고 이것이 반작용을 하여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거는것.. 그 결과가 월경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일반 남성들에게 에스트로겐을 투여하여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게이의 경우 실험에 참여한 절반이상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황체형성 호르몬 분비가 증가되었습니다. 이와같은 호르몬의 불균형성을 뇌하수체전엽의 크기때문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실제로 스트레잇의 경우와 비교하여 게이들의 경우 뇌하수체전엽이 3분의 1가량 작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모든것을 설명한다는 게놈으로 인해 또다른 주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유전자 설계도를 좍 펼쳐놓고 그 중에서 동성애코드를 찾아낸다면 그것을 추출해내고 그 자리에 스트레잇코드를 삽입하는 식으로 동성애를 없앨 수 있다고 보고 있지요(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선천성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는 없는 정신분석적 측면과 생태학적 측면
현대 정신분석학적인 이론(Psychoanalytic theory)은 동성애의 후천적 발생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동성애의 가능한 원인으로서 부모와 자녀 간의 왜곡된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었는데요. 임상적인 관찰에서 그는 동성애의 전제 조건으로서 거부적이거나 적의에 찬 엄마와 수동적인 아버지를 지적한바 있습니다. 비버(Bieber)도 같은 주장을 했는데, 즉 "아버지는 아들이 동성애자가 되는 데 있어서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는 아주 무관심하고 적대적이었다........동성애 아들을 가진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소유욕이 강하다." 그러니까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아버지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화하려는 열망이 좌절되고, 일반적 남성상에 대한 거부를 하게되고 정상적인(스트레잇의 눈으로 봤을때^^;)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무리가 생긴다는 입장입니다.
생태학적입장은 ... ㅡㅡ;; 피식 웃음이 나오는 헛소리일 때가 많습니다. 일단 그 제목만 읊어도 성적 격리설, 영향설, 무매력설, 유혹설 등등.. 성적으로 격리되어 동성과 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동성애! 는 아니지 않습니까..(피식..꽤 된 주장이긴하지만 무슨생각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건지..). 삽질하는 소리가 하나더 있습니다. 무매력설이 그것인데요, 이성에게 매력이 없는 사람일 수록 동성애자가 많다는 말이지요(푸하하.. 그럼 알랭드롱은 뭐고 록 허드슨은 뭐란 말인가..) 동성에게 인기 없는 동성애자는 이성애자가 되어야한다는 소리죠.. 앞뒤가 안맞죠 ㅎㅎ. 또하나 뒤집어지게 하는 주장은 영향설! 주변인물의 영향을 받아서 동성애자가 된다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동성애자는 왜 이성애자의 영향을 못받는다는 건지..ㅎㅎ. 다음은 유혹설인데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원인을 설명할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이 역시 성적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도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는 상태를 이해시킬 순 없습니다. 아무도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 경험을 바탕으로 궁여지책으로 나온 자기진단일 뿐이지요. 생태학적 입장에서 그나마 태클없이 지날 수 있는 주장은 미디어설입니다. 캐나다의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이자, 맛사지'라고 했다지요. 물론,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할 순 없습니다. 생태학적입장 내에서도 동성애의 원인이 섥혀있을 뿐더러 선천성적인 기질과 관련시키지 않고서는 어느것도 홀로 설수 없는 주장들이지요.
미국판이나 영국판이나 둘다 원인론에대해 아주 친절하지요. 일단 공통점은 원래 그런 인간이다(선천성). 라는점이구요, 그 중에서도 미국판이 더 친절한 이유는 브라이언의 가족사까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아버지, 자신의 주장에 무지강한 어머니.. 이는 위에서 설명한 정신분석학적 측면과도 잘 맞물리는 부분이죠. 아버지로 인해 눈물을 흘릴뿐더러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인정하는것 까지..아버지의 존재가 그에게 꽤나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죠. 게다가 너무나도 친철하게(친절함에 눈물을 쏟습니다ㅠ_ㅠ) 생태학적인 입장까지 겸하지요. 친한친구의 삼촌이 게이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주변이 리버티거리니까... 게이가 되기 안성맞춤입니다. 브라이언의 특출(?)함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게이가 된줄로만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여러부분들이 그의 성적취향을 서포트하고 있죠(물론, 그중에 선천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요).
반면에, 슬픈유혹에서의 문기는 47년을 아무 의심없이(무념무상) 살다가 뜬금없이 '웃통벗은 준영을 보고 심장이 쿵쿵 뛴다'는 식의 발상.. 슬픈유혹의 동성애가 얼마나 쌩뚱맞게 튕그러진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작가가 저 많은 원인중에 한개라도 고려했다면 쌩뚱소린 면했겠죠). 정말 놀라운것은 문기의 가정사에 대해 나오긴 한다는거죠(작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문제는 문기는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의 아버지 어머니상은 그 시대의 전형이라 겁입니다. 몫돈은 못벌지만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그를 순종적으로 따르고 자식을 보살피는 어머니이죠. 선천적인것도 아니고, 정신분석적으로도 원인을 찾을 수 없고, 그렇다면 가장 약한 생태학적..? 이것도 절대 아닙니다. 그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대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살아왔고, 한국사회에서 보이는 동성애에관한 편견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문기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면 '음.. 그래 그건 단지 사회의 따돌림에 대한 친근함일 뿐이었어' 라고 이해하려 노력 했겠지만.. 문기의 다이어리를 통해 확실히 보여줍니다.
- 준영이 떠난다. 가지말라고 잡고도 싶지만, 잡을 수 없다. 준영은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을
알까. 그가 떠나는 날, 힘들 것 같다 - (순정만화 맞죠...)
이쯤 되면 정말 캐릭을 잘못잡았다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래도 그들의 사랑이 애절하기만 하다면.. ㅠ ㅠ 하나더, 게이이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준영도 엉뚱한 캐릭이죠. 사회에 대한 편견을 못마땅해 하면서 게이라는 정체성에대해 사회에 어느정도 인정되도록 자신에게 편하도록 바꿔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그나마 자신이 동성애자라는걸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캐릭인데요. 좀더 치열하게 생각해야하지 않았나..싶습니다. 문기아자씨 뿐만 아니라 진우와 경민이란 남자까지 남자라서 만난게 아니라고 하지요. 시나리오에서 그대로 옮겨오자면
->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아직도 부족하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더, 문기의 부인 정혜와 그의 사랑스런 딸이 있습니다. 정혜는 물론 미인이구요, 동양화를 그리는 지적인 여성입니다. 내용상에서는 단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왜지.. 대화가 통할 것 같은데.. ㅡㅡ;; 정혜는 준영과도 부드럽고 솔직하게 대화를 하거든요. 분명 대화가 통하는 여자입니다. 차리리 달려라 하니의 홍두깨 선생의 부인정도였다면 더 이해하기 편했겠지만 굳이 이지적인 여성을 넣은건 세련되보이기위한 술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동성애를 제작의도에 넣은것은 뭔가 할말이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성없는 접근은 의문만을 남기게 합니다(동성애를 공중에 붕~ 떠있는 존재로 아나..). 동성애와 인류애의 짬뽕에도 모자라 최고의 플라토닉러브를 선사합니다.
-> 준영 : 난 당신을 만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잠자릴 하자고 한게 아니야! 사랑하자고 한거
야! 외로우니까, 위로하자고 했던 것 뿐이야!
동성애가 한국으로 넘어오면 이렇게 되는건가요? 아.. 드라마로 넘어오면 그렇게 되는구나.. 난 fuck를 원해! 라고 할 순 없으니까..(1999년 이면 그래도 큰 도전이라고 볼 수 있기도...)
-> 준영 :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닙니까?
멋진대사죠... 슬픈유혹은 멋지기만한 대사 천지입니다. 동성애를 끼워넣지 않았더라면.. 단지 사랑에 무감각한 문기의 문제점을 잡고 싶었다면 좀더 낫지 않았을까 안타까움을하나.. 제대로된 설정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환타지만 가지고 동성애를 도구화시킨것에 불만하나.. 추가합니다.
만약 쿼프에서 카울립이 이 대사를 넣었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죠. 쿼프는 게이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과 사랑에 대한 관점이 그 안에서 정확하게 한계지어져 있으니까요. 슬픈유혹은 무엇을 말하는지 무슨 의도인지 의도와 주제가 서로 상충하는 상황에서 마치 격언과 같은 대사한마디는 핵심에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격언은 격언일뿐). 동성애를 미화시키는것은 그것을 보기 쉽게 만들기위한 스트레잇의 욕구일 뿐이죠.
언뜻보기에 멋지게 보이는 말 한마디가 브라이언과 져스틴, 마이클과 에밋, 테드, 벤.. 등등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쿼프캐릭에 적용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게이니까요. 게이니까 남자를 사랑하는거구요.
돌려말하지 않게 하는 그들에게 감사를..
첫댓글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것이 남자다, 여자에게도 똑같은 말이 적용될 수 있겠죠. 얼핏 국경도, 나이도, 성별도 초월한 사랑의 절대성에 껌뻑 감격하게 되지만, Heinz님 말씀대로, 퀴어물의 입장에서, 동성애자의 견지에서 본다면,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오염과 모독이 되겠죠.
순정만화도 야오이도 아닌 쿼프에게, 돌려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지도 않게 해주는 쿼프에게 저도 박수를 보냅니다. 동성애든, 양성애든, 이성애든, 꼭 사랑이라는 허울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요? 사랑은 이성애자들이 섹스를 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는 브라이언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그 해 겨울,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노희경의 <슬픈 유혹> 방영과 더불어 순정 만화(라고 쓰고 야오이라 읽습니다;)계가 들썩였던 기억이 납니다. 보고 나서 정말 찝찝했었는데, 헤인즈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거야 말로 번드드르한 말로 본질을 왜곡하는 드라마였군요.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 게이들에게 말장난으로 본질 왜곡을 강요하는 거야 말로 호모포비아라 생각하고요, <번지점프>도 그랬고, <슬픈 유혹>도 그랬고, 그 내러티브가 전제하는 호모포비아를 발견하지 못하던 순진한 순정만화팬덤이 오히려 더 한심했더랍니다. 문제의 대사는 볼수록 가관이고요.
1999년이었다면...저렇게 얼버무려서 표현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은데요.저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요.작가가 환상이라도 가지고 있나...대사가 너무 비겁해요.성정체성의 유전적,환경적 결정에 대한 내용 잘 봤어요^^유전적 결정에서..그럼 바이는 어찌해서 되는 겁니까;;생물학적으로 남자지만 레즈비언인 사람이나,
트렌스젠더이거나..어쨌든 유전자 지도에서 동성애 코드를 없앨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 무섭군요..도대체 뭐가 그리 못마땅한가.
헤인즈님 멋진 글 감사합니다. 말이란 참 빙산의 일각이네요.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호모포비아적 기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브라이언이 왜 스트레잇은 두 종류 밖에 없다고 단정지었었는지 새삼 이해가 되기도요. 우호적인 스트레잇式 미화는 본질적으로는 뒤로 욕하는 것이로군여!
슬픈유혹! 제목부터 (퉷)
쿨럭x3 (난작인간님 저와 행동반경이 비슷하십니다 ㅋㅋ) 어쨌든 퀴어물을 스트레잇의 구미를 자극하는 도구로 전락시킨점! 용서가 안됩니다. 마치 생각을 요한다는 대사도 그 본질을 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군요. 겉만 번지르한 껍데기를 잡고 환호하지맙시다(쿼프에 대한 신뢰증폭ㅋㅋ)
스트레잇으로서 게이물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모독이 된다. 그런건가요?
모독이 된다 여겨지시면 재고해보심이 어떨런지요? 다들 즐기고 있는데요.^^
논지가 너무나도 확실한 글인데 다시 물으시는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퀴어함을 왜곡하지 말자는 겁니다. 스트레잇으로서 게이물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모독이 아니라 스트레잇의 구미에 맞게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남자일뿐이다]는 식으로 만드는것이 모독입니다.
그 말을 왜 그렇게 따지고 드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 그 내용이 바로 이 글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퀴어함을 가장한 범인류애, 숨어있는 호모포비아기질 ㅋㅋ 적어도 쿼프의 팬이라면 그 정도 분별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그들에 대한 존중이니까요.
흠 노희경의 슬픈유혹이 그랬군요... 못봤는데.. 케인즈님의 글을 읽고 상당히 공감한게.. 저또한 게이들의 성취향이 선택에 의한게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야오이의 영향으로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죠.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사랑하게됐는데.. 그게 하필 남자였어' 말이에요.
제가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걸 알게 된게.. QAF를 보면서 부터죠. 좀 시선을 교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완전히 깨진게 QAF에 접하면서부터입니다. 소수성애자에 대해 아는 척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부터. 잘 읽었습니다.
작가는 분명 동성애를 그렸습니다. 헐벗은 준영을 보고 허걱하는것, 키스하는것, 사랑한다고 다이어리에 쓴것. 일반적인 한국 아저씨들의 자기애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애를 그리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꺼구요. (애초의 주제에 미치지 못한 드라마를 자기애라고 합리화시키는것은...?)
녹색글씨님의 꼬리말이 과거형이라.. 뭐라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
그렇군요.... 슬픈 유혹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주진모의 눈빛이 멋지다 생각했을 뿐(1999년이면 지금보다 더 많이 어릴때였기에);;;;; 스트레잇의 욕구에 의한 동성애의 미화라...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이네요... (이 글 심층분석으로 가도 손색없을 듯 싶은데요!)
저도 이글을 보며 반성햇습니다. 스트레잇 여자의 욕구로 그들의 미모를 즐기는 저도 일단은 그들을 모독하는 자가 아닌가 합니다.
스트레잇임에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점. 외부의 시선이 뒤틀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요. 내부의 반성이 정말 반성이구요. 헤인즈님-지식적 차원에서 풀어내신 것도 정말 잘 읽었지만요. 본질에 대한 강한 욕구와 의지가 내재되어 훌륭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좀 반성이 되는군여... 원래 동성애에 대한 별 편견은 없었지만... 그저 배우들이 멋져 즐기는 영화가 쿼프였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트레잇들은 지금껏 동성애자들을 자기들에게 맞게 순화하여 받아들이고선 그것을 보고"나는 동성애를 이해한다"라고 말을 해오진 않았나..싶네요. 이건 저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제 생각에는 확실이 동성애는 이성애와 차이가 있어요. 똑같은 사랑이라고 하면 큰 오산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