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한자 |
연도 |
급제품계 |
등수 |
계파 |
봉 |
封 |
세조11년(1465) |
별시 을과 (別試乙科) |
1/3 |
문열 |
자 |
耔 |
연산군10년(1504) |
식년시 갑과(式年試甲科) |
1/31 |
양도 |
출 |
秫 |
중종30년(1535) |
별시 갑과(別試甲科) |
1/11 |
양도 |
정기 |
廷夔 |
인조26년(1648) |
정시 갑과(庭試甲科) |
1/9 |
문열 |
기성 |
基聖 |
숙종32년(1706) |
별시 갑과(別試甲科) |
1/12 |
문열 |
유춘 |
囿春 |
숙종43년(1717) |
별시3 갑과(別試甲科) |
1/9 |
판중추 |
거원 |
巨源 |
숙종43년(1717 |
정시 갑과(庭試甲科) |
1/5 |
문열 |
우재 |
愚在 |
순조4년(1804) |
식년시 갑과(式年試甲科) |
1/38 |
문열 |
승구 |
承九 |
철종4년(1853) |
별시 갑과(別試甲科) |
1/15 |
문열 |
합계: 9명 |
|
|
|
|
|
또한 한산이문은 총 열두명의 “아차!” 차석급제자를
내었는데 명단이 다음과 같다:
이름 |
한자 |
연도 |
급제품계 |
등수 |
계파 |
구 |
久 |
1605 (선조 38년) |
정시갑과 (庭試甲科) |
2/33 |
문열 |
태연 |
泰淵 |
1642 (인조 11년) |
정시을과 (庭試乙科) |
2/5 |
광목 |
수언 |
秀彦 |
1669 (현종 10년) |
정시을과 (庭試乙科) |
2/7 |
광목 |
성채 |
星彩 |
1717 (숙종43년) |
별시3 갑과(別試甲科) |
2/9 |
판중추 |
사관 |
思觀 |
1737 (영조13년) |
별시을과 (別試乙科) |
2/17 |
문열 |
해중 |
海重 |
1750 (영조 26년) |
알성을과 (謁聖乙科) |
2/5 |
문열 |
의록 |
宜祿 |
1759 (영조 35년) |
식년갑과 (式年甲科) |
2/56 |
판중추 |
심도 |
審度 |
1805 (순조5년) |
증광갑과 (增廣甲科) |
2/42 |
광목 |
정기 |
正耆 |
1825 (순조25년) |
식년갑과 (式年甲科) |
2/48 |
문열 |
정재 |
鼎在 |
1826 (순조 26년) |
별시을과 (別試乙科) |
2/8 |
문열 |
노규 |
魯奎 |
1828 (순조 29년) |
식년갑과 (式年甲科) |
2/42 |
문열 |
승유 |
承游 |
1848 (헌종14년) |
정시을과 (庭試乙科) |
2/3 |
문열 |
합계: 12명 |
|
|
|
|
|
위에 나오는 장원급제자 휘 유채는 같은 시험에서 차석급제한 휘 성채의 아드님이 된다. 부자가 동시에, 그것도 아들은 장원에 아버지는 차석에 같은 과거시험에서 급제한 진기록을 세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산이문에선 총 156번에 걸친 과거시험들에서 6명의 “아슬아슬 휴~~” 꼴찌합격자가 나왔다. 그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름 |
한자 |
연도 |
급제품계 |
등수 |
계파 |
적 |
𥡦 |
1624 (인조 2년) |
알성병과 (謁聖丙科) |
4/4 |
문열 |
한상 |
漢相 |
1721 (경종 1년) |
식년병과 (式年丙科) |
34/34 |
미상 |
승오 |
承五 |
1858 (철종9년) |
별시병과 (別試丙科) |
25/25 |
문열 |
운필 |
雲弼 |
1860 (철종 11년) |
별시병과 (別試丙科) |
19/19 |
문열 |
헌직 |
憲稙 |
1875 (고종 12년) |
별시병과 (別試丙科) |
34/34 |
판중추 |
승수 |
承壽 |
1892 (고종 29년) |
별시병과 (別試丙科) |
64/64 |
문열 |
합계: 6명 |
|
|
|
|
|
꼴찌합격은 나중에 출세하는데엔 결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니, 휘 승오는 대사성/제학 (정3품) 에, 휘 운필은 참판 (종2품) 에, 휘 헌직은 궁내부특진관 (종1품) 에, 휘 승수는 참판 (종2품) 직에 올라, 여섯명중 네명이 3품직 이상에 최종 진급하였다.
J.부자급제, 형제급제가 빈번함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부자급제와 형제급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부전자전이라 할까, 아니면 형제는 용감했다 라고나 할까, 좋은 DNA 와 바람직한 교육환경 탓인지 가족들간에 경사가 겹치는 일이 제법 자주 일어났던 것이다.
통계를 내 본 결과 한산이문에선 총 37번의 부자급제가 있었다; 이중 35번이 생부자 급제로, 두 번의 경우엔 계자를 들여 부자급제가 이루어졌었다. 37번의 부자급제중 5대연속급제의 경우가 한 번 있었고 (산해-경전-무-인빈-효근), 4대연속급제는 두 번 있었으며 (증-경류-제-정기 & 태영-희갑-겸재-승순), 3대연속급제 또한 두 번 있었다 (봉년-거원-우화 & 경재-승구-정직). 5부자가 급제한 경우는 한 번 있었으며 (정래-심,만,완,자), 4부자가 급제한 경우는 세 번 있었고 [1. 계전-우, 파, 봉. 2. 경전-후, 구, 무. 3. 태영-희갑, 희조, (희준 출) ], 3부자 급제는 네 번이나 있었던 걸로 조사되었다 [1. 증-경함, 경류. 2. 산해-경백, 경전. 3. 인빈-효근, (동근 출)]. 4. 경재-승구, (승오 출) ].
통계결과 (생)형제급제는 열다섯번이 있었다; 이중 4형제급제는 한 번 있었고 (심, 만, 완, 자), 3형제 급제는 모두 세 번 있었다 [1. 우, 파, 봉. 2. 후, 구, 무. 3. 기발, 생발, 흥발. 4. 희조, 희갑, (희준 출) ].
그렇다면 부자급제와 형제급제를 함께 다 이룬 경우는 얼마나 되었을까? 집계 결과 그런 몇갑절의 경사스런 드문 일들이 총 열네번 일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1. 계전 2. 계완 3. 우, 파, 봉 4. 인견, 예견 5. 경함, 경류 6. 경백, 경전 7. 후, 구,무 8. 경함, 경류 9. 기발 10. 심, 만, 완, 자 11. 효근, 동근출 12. 희갑, 희조, 희준출 13. 승구, 승오출 14. 충직출].
부자-형제 급제 데이타를 정리한 다음의 테이블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름 |
부자/형제? |
특기사항 |
계파 |
계전-우, 파, 봉 |
부자 |
4부자급제 |
문열 |
계원-한 |
부자 |
|
감찰 |
계전, 계원 |
형제 |
|
문열/감찰 |
우, 파, 봉 |
형제 |
3형제급제 |
문열 |
인견-운 |
부자 |
|
양도 |
예견-자 |
부자 |
|
양도 |
인견, 예견 |
형제 |
|
양도 |
치, 여 |
형제 |
|
총제 |
유청-언호 |
부자 |
|
광목 |
증-경함, 경류 |
부자 |
3부자급제 |
문열 |
경함-경류 |
형제 |
|
문열 |
산해-경백, 경전 |
부자 |
3부자급제 |
문열 |
경백, 경전 |
형제 |
|
문열 |
산보-경탁 |
부자 |
|
문열 |
경전-후, 구, 무 |
부자 |
4부자급제 |
문열 |
후, 구, 무 |
형제 |
3형제급제 |
문열 |
경함-선 |
부자 |
|
문열 |
경류-제 |
부자 |
|
문열 |
현영-기조 |
부자 |
|
판중추 |
덕형-행원 |
부자 |
|
광목 |
제-정기 |
부자 |
|
문열 |
적-연년 |
부자 |
|
문열 |
기발, 생발, 흥발 |
형제 |
3형제급제 |
판중추 |
기발-유룡 |
부자 |
|
판중추 |
동직-수언 |
부자 |
|
광목 |
규령-명언 |
부자 |
|
판중추 |
정래-심, 만, 완, 자 |
부자 |
5부자급제 |
문열 |
심, 만, 완, 자 |
형제 |
4형제급제 |
문열 |
직, 경석 |
부자 |
|
문열 |
무-인빈 |
부자 |
|
문열 |
인빈-효근, (동근 출) |
부자 |
(3)부자급제 |
문열 |
효근, (동근 출) |
(형제) |
생형제 |
문열 |
봉년-거원 |
부자 |
|
문열 |
기성-(사관 출) |
(부자) |
생부자 |
문열 |
필중-이장 |
부자 |
|
양도 |
성채-유춘 |
부자 |
부자동시급제 |
판중추 |
거원-우화 |
부자 |
|
문열 |
태중-득영 |
부자 |
|
문열 |
택, 집 |
형제 |
|
문열 |
상정-완 |
형제 |
|
판중추 |
태영-희갑, 희조, (희준 출) |
부자 |
(4생)부자급제 |
문열 |
희조, 희갑, (희준 출) |
형제 |
(3생)형제 급제 |
문열 |
희갑-겸재 |
부자 |
|
문열 |
현영-희준계 |
부자 |
|
문열 |
경재-승구, (승오 출) |
부자 |
(3)부자급제 |
문열 |
승구, (승오 출) |
(형제) |
생형제 |
문열 |
승오-충직계 |
부자 |
|
문열 |
헌직-경직 |
형제 |
|
판중추 |
겸재-승순 |
부자 |
|
문열 |
승구-정직 |
부자 |
|
문열 |
명직, (충직 출) |
(형제) |
생형제 |
광목/문열 |
|
|
|
|
K. 쉬지 않고 급제자들이 쏟아져 나옴
한산이문의 특징 중 하나가 조선왕조 500년을 거치며 공백없이 줄곧 세력을 누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바침 하듯, 한산이문에선 줄기차게 쉬지 않고 문과급제자가 쏟아져 나왔다.
급제기간들 사이에 가장 큰 공백이 있었던 때는 조선초기인 1427년과 1408년 사이의 19년간이었다. 이때엔 휘 숙복 직강공 혼자만이 처음이자 유일한 급제자였고, 휘 계전 문열공이 두 번째로 급제하기까지 19년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다음으로 공백기간이 긴 때는 1451-1436과 1531-1516 기간이었는데, 다음 급제자가 나올때까지 15년간씩 걸렸다. 그리고 1568년과 1580년 사이인 12년간 급제자가 없었다. 그 다음으론 1615년과 1605년 사이 10년간 급제자가 나오지 않았었다.
위의 예외인 몇 기간들을 빼면 대다수가 1년에서 5년사이에 다음 급제자들을 쏟아 낸 것으로,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평균 3.04년 마다 한 번 씩 급제자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L. 반 이상이 3품이상 벼슬에 제직
역시 문과급제는 출세와 직결되어 있는지 벼슬이 확실하게 밝혀진 185명의 인물들중 절반이 넘는 107명이 (57.8%) 3품이상의 높은 관직에 오를수 있었다. 또한 이 107명중 절반이 넘는 65명이 (60.7% ) 2품 벼슬에 올랐고, 이중 7명이 종국엔 1품벼슬에 올랐다.
1품이상 벼슬을 한 인물들은 휘 유청 (영의정: 광목공파), 휘 산해 (영의정: 문열공파), 휘 덕형 (우찬성: 광목공파), 휘 사관 (좌의정: 문열공파), 휘 경재 (영의정: 문열공파), 휘 용직 (학부대신: 문열공파), 휘 헌직 (궁내부특진관: 판중추공파) 으로 총7명이었다. 문열공파에서 네 명, 광목공파에선 두 명, 판중추공파에서 한 명이 1품이상 벼슬에 오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와 반대로 가장 낮은 벼슬에 머무른 인물은 휘 생발인데, 종9품벼슬인 학유 (學諭) 에 머물렀다. 휘 생발이
종9품 벼슬에 머문 이유는 그가 19세의 연소의 나이에 급제하고
2년뒤인 21세때의 아주 젊은 나이에 단명하였기 때문이다. 이 밖에 정9품직인 승문원정자 (承文院正字) 벼슬에 머문 휘 경백이 있는데, 휘 경백은 급제한 같은 해에 20세의 어린 나이로 아쉽게도 세상을 떠났다.
또한 몰년이 미상인 휘 인채도 정9품벼슬인 승문원 정자에 그쳤다. 그러나 이 몇가지의 경우는 예외고 거의 대부분의 급제자들이 6품이상의 높은 벼슬에 올랐던 것으로
통계가 나왔다.
3품 이상 벼슬을 하신 인물들은 다음 아래와 같은데, 짙은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사람들이 2품이상 관직에 오른 인물들이다:
계전 (대제학), 개 (제학), 파 (제학), 우 (대사성), 영은 (형조참판), 봉 (형조참판/직학), 예견 (대사간), 균 (부학), 유청 (영의정), 윤번 (대사간), 운 (참의), 자 (참찬), 언호 (대사헌), 청 (좌윤), 각 (사성), 출 (사성), 희백 (부사), 기 (이조판서), 증(이판/예판), 산해 (영의정/대제학), 산보 (이조판서), 경함 (판서), 경전 (판중), 현영( 이조판서/제학), 덕형 (우찬성), 덕수 (강원감사), 기조 (예조판서), 제 (부사), 무 (이판/예판), 흥록 (목사), 태연 (감사), 정기 (이조참판), 선 (판교), 연년 (예조참판), 동직 (감사), 규령 (형조판서/참찬), 수경 (목사), 효원 (부사), 수언 (예판/형판), 홍적 (감사), 인빈 (첨지), 정익 (승지), 명준 (부사), 봉년 (참의/대사간), 택 (이조참판), 기성 (부사), 명언 (대사헌), 명의 (대사간), 병태 (부학, 청백리), 집 (감사), 하종 (승지), 덕중 (부학), 태중 (호조판서), 이장 (대사헌/참판), 상정 (참의), 사관 (좌의정), 규채 (대사헌, 참판), 수일 (승지), 현중 (대사간/승지), 해중 (참판), 수득 (대사헌/참판), 경옥 (대사간), 세연 (대사간), 석재 (대사간), 규위 (대사간), 현영 (대사성/참의), 영목 (대사간), 태영 (참판), 득영 (승지), 홍재 (예조참판), 수하 (좌윤), 민채 (참판), 해린 (승지), 희갑 (이조판서), 우재 (참판), 심도 (대사간/참의), 희준 (예조판서), 희조 (대사성/참판), 인부 (참판), 광재 (참찬), 경재 (영의정), 광정 승지), 정기 (승지), 정재 (판서), 도재 (대사성/참판), 겸재 (이조판서), 노규 (승지), 경부 (승지/대사간), 시재 (이조참판), 종병 (참판), 경재 (예조판서), 승익 (이조참판), 승유 (승지), 돈우 (참판), 운익 (참판), 승오 (대사성/제학), 승순 (이조판서) , 운필 (참판), 운필 (참판), 승고 (이조참판), 용직 (학부대신), 헌직 (궁내부특진관), 정직 (승지), 남규 (참판), 대직 (이조참판), 경직 (참판), 채 (좌승지), 승수 (참판), 명직 (궁내부특진관)
계파별로 관직품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파 |
1품 |
2품 |
3품 |
합계 |
문열공파 |
4 |
37 |
21 |
62 |
광목공파 |
2 |
11 |
4 |
17 |
판중추공파 |
1 |
6 |
9 |
16 |
양도공파 |
0 |
3 |
4 |
7 |
직강공파 |
0 |
1 |
1 |
2 |
정랑공파 |
0 |
1 |
0 |
1 |
집의공파 |
0 |
0 |
1 |
1 |
미상 |
0 |
0 |
2 |
2 |
위의 테이블에서 볼 수 있듯이 3품이상의 벼슬을 가장 많이 한 계파는 문열공파로 총 62명이었다. 그 다음은 광목공파로 17명, 그 다음 판중추공파가 16명씩을 올렸다. 그 다음이 양도공파로 7명이었고, 직강공파 (2명), 정랑공파 (1명), 집의공파 (1명), 미상 (2명) 순이었다.
M.학자관료의 최고봉인 대제학엔 누가 올랐는가?
옛말에 영의정 셋이 대제학 한 명과 맞먹고, 대제학 셋은 선생 하나, 선생 셋은 처사 한 명과 맞먹는다고 했다. 영의정은 조선시대 가장 높은 벼슬이었고 대제학은 정2품이었지만 대제학은 학문의 최고 권위자로서 종신 근무하는 명예로운 관직이어서 우러러봤다. 한산이문에선 조선조에서 세 명의 대제학을 배출하였으니 휘 맹균 문혜공, 휘 계전 문열공, 그리고 휘 산해 아계공이다. 이중 휘 맹균 문혜공은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휘 계전 문열공과 휘 산해 아계공은 조선조에 입격하였다.
그런데 이런 대제학보다 더 존경받는 것이 선생이었다. 요즘에야 선생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만 옛날엔 아무나 보고 선생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선생보다 더 존경받는 사람이 있었으니, 학식이 높으면서도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처사였다. 옛날 선비들의 가치관을 여기서 잠시 알 수 있겠다.
옛 선비들이 가장 이상적인 표상으로 삼았던 대표적인 선생을 꼽으라면 역시 퇴계 이황이라 할 수 있겠다. 대과에 급제하고서도 한양에서의 높은 벼슬과 출세를 포기하고 안동 향리에 묻혀 오로지 후학양진에 평생 매진했던 퇴계 선생이야 말로 온 조선의 선비들이 존경하고 흠모하기에 부족하기 없었던 것이다. 우리 한산이문에선 퇴계 이황의 적통인 대산 “소퇴계” 휘 상정 선생이 그런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대산 선생도 대과급제하고서도 입신양면을 훌훌 다 벗어버리고 안동 시골에서 기거하며 청빈하게 사는 가운데 수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 내고 학문전수하는데 일평생을 바쳤다. 대산선생과 그 제자들이 퇴계학문과 조선말 영남학문에 끼친 공은 지대하다.
그런데, 선생들보다 더 존경받았던 인물들이 처사로 있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위기에 발벗고 뛰어든 의병장들이고 독립운동투사들이었던 것이다. 안동 수은공파의 파조가 되시는 휘 홍조 수은공이 그런 애국자들중의 한 분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벼슬이 6품인 현감에 그치고 과거시험도 향시에 몇번밖에 급제 못한 수은공이 불천위에 모셔진 큰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선비들이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벼슬<학문<절의 순서로, 충절을 최고로 꼽았었다.
N. 백성을 내몸같이 돌본 목민관 청백리는 누구인가?
한산이문은 조선조에서 총 다섯명의 청백리를 내었는데, 그중 세명이 문과방목에 실린 급제자들이다. 이들은 휘 기/휘 희 (이조판서), 휘 병태 (부제학), 휘 태중 (호조판서) 이다. 이 밖에 휘 자 (참찬) 와 휘 한상 (사예) 이 청록사에 기록되었다. 문과급제를 하지 않은 나머지 두명의 청백리는 휘 훈 (塤: 참찬) 과 휘 선장 (善長: 군수) 이다.
O. 시호를 받은 인물들은 누구인가?
문과방목에 실린 급제자들중에서 시호를 받은 인물은 총 23명으로 집계가 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아직 최종검증이 거쳐지지 않아서 아마도 몇명이 더 추가될 가망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밝혀진 시호를 받은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 |
시호 |
계파 |
계전 (季甸) |
문열 (文烈) |
문열 |
개 (塏) |
충간 (忠簡) |
정랑 |
파 (坡) |
명헌 (明憲) |
문열 |
영은 (永垠) |
정도 (丁悼) |
양도 |
봉 (封) |
헌평 (憲平) |
문열 |
유청 (惟淸) |
공편 (恭翩) |
광목 |
자 (耔) |
문경 (文敬) |
양도 |
증 (增) |
의간 (懿簡) |
문열 |
산해 (山海) |
문충 (文忠) |
문열 |
산보 (山甫) |
충간 (忠簡) |
문열 |
현영 (顯英) |
충정 (忠貞) |
판중추 |
덕형 (德泂) |
충숙 (忠肅) |
광목 |
기조 (基祚) |
충간 (忠簡) |
판중추 |
규령 (奎齡) |
정혜 (貞惠) |
판중추 |
수언 (秀彦) |
정간 (正簡) |
광목 |
이장 (彝章) |
충정 (忠正) |
양도 |
상정 (象靖) |
문경 (文敬) |
판중추 |
사관 (思觀) |
효정 (孝靖) |
문열 |
희갑 (羲甲) |
정헌 (正獻) |
문열 |
경재 (景在) |
문간 (文簡) |
문열 |
겸재 (謙在) |
효헌 (孝獻) |
문열 |
헌직 (憲稙) |
충간 (忠簡) |
판중추 |
경직 (畊稙) |
충숙 (忠肅) |
판중추 |
합계: 총 23명 |
|
|
위의 테이블에 나왔듯이 계파별로 살펴보면 문열공파에서 10명, 판중추공파에서 6명, 양도공파에서 3명, 광목공파에서 3명, 정랑공파에서 1명씩 시호를 받은걸로 나타났다.
P. 공신
한산이문에선 조선조에 총14명의 공신을 내었는데, 이중 6명이 문과방목에 오른 인물이다. 공신 14명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름 |
시대 |
공신품계 |
문과? |
계파 |
*계전(季甸 |
단종/세조 |
계서정난1등 (癸西靖難1等)/세조즉위 2등 (世祖卽位2等) |
u |
문열 |
계린 (季疄) |
세조 |
세조즉위2등 (世祖卽位2等) |
× |
공무 |
훈 (塤) |
성종 |
성종즉위4등 (成宗卽位4等) |
× |
광목 |
*영은 (永垠) |
성종 |
성종즉위4등 (成宗卽位4等) |
u |
양도 |
*유청 (惟淸) |
중종 |
정란2등 (定難2等) |
u |
광목 |
계복 (繼福) |
중종 |
정난3등 (定難3等) |
× |
|
*산해 (山海) |
선조 |
정여립옥사3등 (鄭汝立獄事3等)/종계변무3등 (宗系辨誣3等) |
u |
문열 |
*증 (增) |
선조 |
정여립옥사3등 (鄭汝立獄事3等) |
u |
문열 |
*산보 (山甫) |
선조 |
호성2등 (扈聖2等) |
u |
문열 |
수곤 (壽崑) |
선조 |
호성3등 (扈聖3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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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公沂) |
선조 |
호성3등 (扈聖3等) |
× |
문열 |
의배 (義培) |
인조 |
인조반정3등 (仁祖反正3等) |
× |
문열 |
우 (祐) |
인조 |
이괄란토평3등 (李适亂討平3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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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 (萬囿) |
영조 |
이린좌란토벌2등 (李麟佐亂討伐2等) |
× |
양도 |
합계: 14 (*6) |
*문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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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호당 출신의 엘리트 관료는 누구일까?
호당 (湖堂) 이란 조선조때 세종20년-숙종 39년간 (1438-1713년) 275년동안에 거행되었던 인재양성제도의 하나로, 글재주와 덕이 있고 장래가 유망한 젊은 초급관리중에서 대제학이 엄히 선발하여 장기 휴가를 주어서 공부, 즉 독서에 전념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그래서 이를 독서당 (讀書堂) 또는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내려서 독서하게 한다) 라고도 불렀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초급관리 연수 또는 보수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 20년(1438) 에 임금이 집현전 대제학 변계량을 시켜서 권채 등 3인을 뽑아서 장의사(藏義寺: 지금의 서울 구기동 구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함) 에서 공부하게 한 것을 시작으로 총 38회 269인이었다.
최초는 장의사, 세종24년의 2차는 진관사 (현재 북한산 비봉 북쪽 진관내동에 있음) 등 한적한 산사 (山寺) 를 택하여 공부하게 하다가, 중종 10년 (1515) 에 두모포(豆毛浦: 지금의 옥수동) 에 건물을 짓고 “湖堂” (호당) 이란 현판을 붙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호당 (湖堂) 이라 불렀다 한다.
호당에 선발된 사람은 조선조 관리중의 엘리트로 인정 받는 것이기 때문에 등과에 비할 수 없는 큰 가문의 영광이었다. 따라서 호당에 선발된 사실은 당연히 족보에 기록된다. 한산이문에선 총 7인의 호당을 배출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다 문과급제자들이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름 |
세대 |
특기사항 |
계파 |
개 (塏) |
세종 |
휘 계전의 질 |
정랑 |
파 (坡) |
문종 |
휘 계전의 자 |
문열 |
자 (耔) |
중종 |
휘 예견의 자 |
양도 |
산해 (山海) |
명종 |
휘 계전의 5대손 |
문열 |
경전 (慶全) |
선조 |
휘 산해의 자 |
문열 |
후 (厚) |
선조 |
휘 산해의 손 |
문열 |
구 (久) |
선조 |
휘 산해의 손 |
문열 |
합계: 7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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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 최종편에선 처음 두편에 미처 다루지 못한 자료들을 검토해보고, 한산이문 문과방목을 둘러싼 이슈들을 한 번 다뤄볼까 합니다. 예를 들면 왜 항간에 떠도는 문헌들과 자료들에서 각각 다른 숫자의 급제자를 보고 하는가, 혹 무슨 우리가 알지못하는 모종의 음모 (?) 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점들을 심층있게 토론해 보고자 합니다.
아무도 흉내못내는 엄청난 일을 하셨네요 대단합니다 시간내어 한번더 자세히 읽어보아야겠습니다
@대원 나도 독자들께 내가 올린 장문의 글들을 시간나면 2-3일 후에 다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네. 나름 첨에 신경써서 올리지만 오류 한두가지씩 글 올리고 나서 발견하여 고치거든. 이번글에도 대제학이 세 명인데 두 명으로 올렸다 지금 정정했다네. ^^
@이주원 (周遠) 옳으신 말씀 입니다 게시글은 몇번 읽어서 익혀야 본인것이 되죠 금방 무슨일이 저한테 일어났습니다 안좋은것 무엇일까요 ? 퀴즈입니다 맞으면 오늘이 가래떡 데이 겸 빼빼로데이라서 선물드리겠습니다 ㅎㅎ
@대원 과연 몰까?! 부럽네 그려~~ ㅎㅎ 내대신 꼭 가래떡 타 드시고 빼빼로레이라서 멋진 선물도 받으시길~~ 난 다시 설친 이른 새벽 잠 좀 더 자야겠구먼. ㅋ
@이주원 (周遠) 안녕히 주무십시요 퀴즈정답은 교통사고인데 신호대기정차중인데 뒤 차가 졸다가 저의 차를 받았습니다
그냥 성격이 좋아 보내주기는 했는데 아프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차량은 약간 뒤 범퍼 들어갔지만 큰 흠집없이 되었다고는 했는데 목과 허리가 뻐근합니다 대신 파스는 붙이니 조금괜찮습니다 ㅎㅎ 내가 현대사회 바보인지 아님 천성이 그런지 헷갈립니다
@대원 어째?! 아우님이 성격이 넘 좋은거지. 여기 미국에서 그런 접촉사고나면 경찰 부르고 난리나거든. 병원에도 가서 진단받고 막 그러는데. 왕파스로 빨리 낫는 수준이길 바라네 그려. 암튼 넘 착하네..^^
@이주원 (周遠) 예 일단 저도 일찍 잘려고 합니다 몸이 안아프기를 바랄뿐입니다 애기아빠이던데 저의 모친과 같은 황씨라서 그사람도 놀랐겠네요 원래 사고낸 사람이 더 놀라고 걱정하잖아요 이제는 진짜 저도 잡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사람한테 잘해야 복이 온다는데 그렇게 되기를 빌어봅니다 ㅎㅎ
주원씨 대단한 작업을 하셨습니다. 부산화수회 카페에 이런 자료가 존재한다는 것이 큰 자랑꺼리 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카렌다 2부와 사육신 이개선조님 유고집 1권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한달정도 걸린다고 하니 년말이면 도착하리라 생각됩니다.
@대원 많이 놀랐겠네요. 큰사고 아니기를 바랍니다. 차량사고가 당시는 근육이 긴장이 되어 통증을 못느끼는데 2~3일 경과하면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잘 첵크해 보세요.
@진원 연말에 큰 선물이 되겠군요. 기다려집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릴께요 회장님!!
@진원 걱정해주신 덕택으로 괜찮을것 같습니다 좋은 날 보내십시요
아~ 이 글은 밤에 봐야겠군요.ㅎㅎ시간을 충분히 내서요.^^
최종검증을 거쳐 재확인한 결과를 1,2편에 정정하여 다시 올렸습니다. 제일 중요한 사항은 한산이문 문과급제자수가 189명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중 12명이 중시에서 복수급제하였는데, 11명이 두 번급제, 한명이 세번급제를 하여서 이 수치까지 더하면 총등제수는 202번에 이르는 것으로 결과가 집계되었습니다.
서울화수회 카페에 글씨 싸이즈 줄여서 올렸답니다.^^
나이드신 분들 읽기 편하시라 글씨사이즈를 일부러 크게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