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에는 오랜 세월 손때가 묻은 물건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를 거쳐 이어온 가옥에서는 조상들이 구입했던 예스러운 가구와 집기가 지금도 사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세풍의 예쁜 마을인 일 쉬르 라 소르그(L'Isle-sur-la-Sorgue)는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유럽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작은 수로가 실핏줄처럼 퍼져 있고, 물레바퀴가 유유히 돌아가고 있는 소촌인 일 쉬르 라 소르그는 프로방스의 여느 곳처럼 평온하다. 이곳에서 1907년에 태어난 시인인 르네 샤르(Rene Char)는 고향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진솔하게 표현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도 ‘그 마을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를 입지 않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석양이 장관이고, 겨울에도 천혜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넘쳐났기 때문이다.
르네 샤르의 상찬처럼 일 쉬르 라 소르그는 12세기에 세워진 이래 잔잔한 물결처럼 평화로움을 지켜왔다. 중세 시대에는 어부들이 습지 위에 지주를 세운 오두막에 물고기를 저장하며 살아가던 어촌이었고, 18세기 무렵에는 수십 개의 나무 물레바퀴들이 부지런히 회전하며 만들어낸 전력으로 종이와 비단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오늘날에는 운하와 주변 경관을 관망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노천카페들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평범한 마을인 일 쉬르 라 소르그가 알려진 이유는 주말마다 펼쳐지는‘벼룩시장’ 덕분이다. 주말이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앤티크 용품과 골동품을 사고팔기 위해 이곳을 들른다. 파리의 생투앙(Saint-Ouen)과 영국 런던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중고품 매매 시장이어서 토요일만 되면 상인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물건 값을 흥정하고 진귀한 상품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벼룩시장이 인기를 얻으면서 일 쉬르 라 소르그의 오래된 가옥과 창고, 버려진 산업 용지는 점차 상점, 화랑, 디자인 사무실 등으로 바뀌었다. 예술적 분위기가 감도는 이곳에는 앤티크 용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인이 350명에 달한다. 특히 부활절과 8월 15일에는 대규모의 시장이 열려 전 세계에서 보물 사냥꾼들이 몰려든다. 운이 좋게도, 이즈음 프로방스를 여행한다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을지도 모를 일이다.
◆Tip
가는 법_ 에어프랑스가 인천-파리 구간에 취항하고 있다. 이외에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도 파리까지 항공기를 띄우고 있다. 파리에 도착한 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에어프랑스 국내선이나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에어프랑스는 파리를 기점으로 아비뇽, 마르세유, 칸(Cannes), 니스(Nice) 등으로 직항을 운영하고 있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는 매일 3편이 운항되며, 소요 시간은 55분이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는 초고속열차인 TGV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데, 약 3시간이 걸린다.
기후, 시차, 비자_ 프로방스는 강수량이 적고 맑은 날이 많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비가 자주 오는데,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거의 없다. 시차는 한국이 프랑스보다 8시간 빠르다. 단기 여행자의 경우 별도의 비자는 필요하지 않다.
[연합르페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