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본 오늘~ 10/10
임산부의 날, 영양의 날, 세계사형폐지의 날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04 - 미국의 영화배우, 감독 크리스토퍼 리브(Reeve, Christopher) 사망
리브 [Reeve, Christopher, 1952.9.25~2004.10.10]
영화 '슈퍼맨' 시리즈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가 2004년 오늘 52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뉴욕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했다.
리브는 1995년 5월 승마대회에서 낙마해 하반신 마비가 된 후 적극적인 재활운동과 함께 장애인 인권을 위한 사회운동을 벌였다.
1996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석했고, 1998년에는 히치콕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스릴러 영화 '이창'에 출연하기도 했다. /YTN
2000 - 스리랑카의 총리 반다라나이케(Bandaranaike, Sirimavo) 사망
반다라나이케 [Bandaranaike, Sirimavo, 1916.4.17~2000.10.10]
세계최초 여성총리를 역임했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전 스리랑카 총리가 2000년 10월 10일 사망했다. 84세였다. 반다라나이케는 이날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현 스리랑카 대통령의 어머니이기도 한 반다라나이케는 1959년 당시 스리랑카 총리였던 남편이 암살된 뒤 정계에 입문했다. 그녀는 1960년~65년 세계최초의 여성 총리를 역임했고 1970년~77년에도 총리로 재임했으며 1994년 선출된 딸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의 임명으로 2000년 8월까지 총리직을 역임했다. /조선
- 우표문화거리 개장 기념, 1998.10.10 발행
1998 - 우표분화거리 개장
우리나라에도 프랑스 우표벼룩시장, 중국 우표상거리처럼 우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우표문화거리'가 서울에 만들어 진다.
정보통신부는 세계 각국의 우표를 쉽게 사고 팔며 우표수집의 즐 거움과 우표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우표문화거리'를 10월10일부터 서울중앙우체국 주변, 1백미터 공간에 조성키로 했다.
우표문화거리는 매주 토요일(오후1시∼7시)과 일요일(정오∼오후6 시)에 열리며, 동절기(11월∼2월)에는 폐장시간이 1시간 앞당겨진다.
이 곳에서는 각종 우표류는 물론 우취제품, 기념주화, 공중전화카 드, 엽서·봉투류 등을 판매하고 또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매주 1회 우취강좌, 월1회 우표경매도 함께 열어 수집가들의 흥미를 돋 굴 예정이다.
정보통신부는 한국우표문화협회, 서울시 등과 협조, 우표문화거리 를 프랑스의 마티니올·가브리엘가의 우표벼룩시장과 중국 심양의 우표상거리에 버금가는 서울의 관광명소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 다.
우표문화거리 참가신청은 (사)한국우표문화협회(02-908-4014)로 하면 된다.
한편 정통부는 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우표문화거리 개장 엽 서'와 '기념통신일부인'을 조제 사용하며, 개장엽서는 우표문화거리 개장시간에 한해 서울중앙우체국에서만 판매하고 개장식 행사때 선 착순 5백명에게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다. (우정국 우표실 김재홍사무관)
/정보통신부 1998-09-15 /pda.mic.go.kr
1973 - 해병대, 해군에 통합
대한민국 해병대 역사 - 사령부 해체와 시련기
해병대를 해군에 통합
자주국방태세의 확립과 경제적인 군 관리운영을 위하여 국방부훈령 제157호(국기관 912-018호, 1973.7.10)및 국기관 912-92호(1973.10.8)에 따라 1973년 10월 10일부로 해병대를 해군에 통합운영토록 하였으며 국군조직법(법률 제2624호 1973.10.10)을 개정하였다. 따라서 지휘 · 행정 · 군수지원부대는 해체하여 해군의 유사기능을 가진 부대에 흡수통합하고 전투부대는 해군에 통합운영하게 되었다.
부대 개편 및 창설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될 때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길이 보존하라"는 박대통령의 지시와 함께 하사한 2,000만원과 해병대 장교의 성금 2,400만원을 기금으로 1974년 4월 15일 해병대 기념관을 구 해병대 사령부가 위치했던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2가에 건립하였다. 소장품으로는 총포류, 장비류, 개인장구류, 기치류, 문헌 등 총 3,381점의 해병대 기념물을 보존 전시하고 있다.
1977년 1월 1일 개편된 제 6 해병 여단은 서해 5개 도서를 고수 방어토록 하였으며 제 2 해병 훈련단을 창설하여 해병 예비 사단의 임무를 수행토록 하였고 1981년 4월 16일에는 제 2 해병 사단을 창설 하였다.
http://www.rokmcus.com/xe/?document_srl=314
- Independence 1970, King Cakobau
1970 - 남태평양 피지, 영국으로부터 독립
1643년 네덜란드 A.타스만에 의하여 발견된 피지에서는 19세기 중엽 여러 추장들 사이에 내전(內戰)이 벌어졌다. 그 때문에 당시 이 곳에 와 있던 미국인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되자 미국은 피지왕(王)으로 자처하고 있던 자콘바우에게 4만 5000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였다. 지불능력이 없었던 자콘바우는 영국에서 돈을 빌리는 대가로 20만 에이커의 토지를 할양하였으며 이것을 계기로 1874년 영국은 섬 전체를 식민지화하였다. 그 후 1966년에 자치기구를 확립하였고 같은 해 9월 입법의원 선거를 실시한 데 이어 1970년 10월 영연방(英聯邦) 가맹국으로서 독립하였다. /naver
1964 - 제18회 도쿄올림픽 개막
유럽에서 탄생한 올림픽이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막됐다. 제18회 올림픽이 일본 도쿄에서 1964년 10월 10일 개막된 것이다. 94개국 5586명의 선수가 출전한 도쿄올림픽 개막식에는 7만5천4백여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4년전 소련에 뒤졌던 미국은 금메달수에서 다시 소련을 제치고 스포츠강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이 얻은 금메달중 가장 화제에 오른 것은 1만m에서 우승한 빌리 밀스였다. 밀스는 수우족 인디언의 혈통을 물려받은 해병대원이었다. 전통적으로 북유럽선수가 강한 1만m에서 미국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은 밀스가 처음이었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도 2시간12분11초의 세계신기록으로 2연패했다. 또한 홍보용 포스터는 많은 외국인을 유치한 광고로 평가 받았다. /조선
1962 - 한국-아이슬란드 국교 수립
한국과 아이슬란드는 1962년 10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주(駐)노르웨이 대사가 아이슬란드 대사직을 겸임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작은 나라여서 본부에 상주하는 대사가 중국·인도·일본·파키스탄·이란·타이 대사를 겸임하며, 예산사정과 남북한 균형 등을 이유로 한국에 대해서는 명예총영사만을 임명하고 있다. 양국간에 체결된 협정으로는 1970년 4월의 사증면제협정이 있다. 1997년 현재 대(對)대한수입은 7,300만 달러이고 대(對)한수출은 2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모피,어류 등이고, 수입품은 철도차량, 차량, 고무 등이다. 교민수는 1999년 3월 현재 157명이다. /naver
1962 - 제10차 인도, 태평양지역 수산(水産)이사회 조선호텔서 개막
인도태평양어업이사회(India Pacific Fisheries Council)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속하는 하부기구로서 국제협력에 의해 인도 ·태평양 지역의 수산자원의 개발 및 적절한 이용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48년 설립되어 사무국을 방콕에 두고 있다. 가맹국은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와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31개국이다. /naver
-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1957 - 육당 최남선(崔南善) 사망
최남선 [崔南善, 1890.4.26~1957.10.10]
본관 동주(東州:鐵原), 호 육당(六堂), 자 공륙(公六), 아명 창흥(昌興), 세례명 베드로이다. 자습으로 한글을 깨쳐 1901년(광무 5)부터 《황성신문》에 투고했고 이듬해 경성학당에 입학하여 일본어를 배웠다. 1904년 황실유학생으로 소년반장(少年班長)이 되어, 도쿄[東京]부립중학에 입학했으나 3개월 만에 귀국했다. 1906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대학 지리역사학과에 들어가 유학생회보 《대한흥학회보(大韓興學會報)》를 편집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시와 시조를 발표했다.
1907년 모의국회 사건으로 퇴학, 이듬해 귀국하여 자택에 신문관(新文館)을 설립하고 인쇄와 출판을 했다. 다음해 잡지 《소년》를 창간하여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고, 한편 이광수의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09년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학우회 설립위원이 되고, 이듬해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창설하여 고전을 간행하고 20여 종의 육전소설(六錢小說)을 발간했다. 1913년 다시 《아이들 보이》를 창간했으나 이듬해 폐간되자 다시 《청춘(靑春)》을 발간하여 초창기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다음해 가출옥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지 《동명(東明)》을 발행하면서 국사연구에 전념했다. 1924년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곧 사임, 이듬해 《동아일보(東亞日報)》의 객원이 되어 사설을 썼다. 1927년 총독부의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거쳐 위원이 되고,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만몽일보(滿蒙日報)》 고문으로 있다가 1939년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가 되었고, 귀국 후 1943년 재일조선인 유학생의 학병지원을 권고하는 강연을 하기 위하여 도쿄로 건너갔다. 광복 후 우이동(牛耳洞)에 은거, 역사논문 집필에 전념하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되어 1949년 수감되었으나 병보석되었다. 6·25전쟁 때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촉탁이 되었다가 서울시사(市史) 편찬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그후 국사관계 저술을 하다가 뇌일혈로 작고했다.
신문화 수입기에서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신문학운동과 국학(國學) 관계의 개척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이원(利原)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를 발견하였다. 저서에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百八煩惱)》, 시조집 《시조유취(時調類聚)》, 역사서 《단군론(檀君論)》 《조선역사》 《삼국유사해제》 《조선독립운동사(朝鮮獨立運動史)》 등 다수가 있다. /naver
- 조선노동당 창건 40돌 기념
1945 - 김일성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 (조선노동당 창건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1945년 10월 10일 창설됐다. 김일성의 권력 장정이 그동안 수면 하에서 진행됐다면, 분국 창설은 그것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33세의 새파란 김일성이 노련한 정치가 박헌영과의 담판에서 분국 창설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것 자체가 북한 권력의 향방을 예고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10월 5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는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가 열렸지만, 결론없이 대립만 하다 분국 창설의 과제를 10월 8일 밤의 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으로 떠넘겼다. 결국 분국 창설은 두 사람의 협의로 큰 문제없이 통과됐고 10월 10일 비밀리에 소집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 본회의에서 마무리됐다. 책임비서에 김용범, 제2비서에 오기섭과 무정이 선출됐고 김일성은 집행위원에 선출됐다. 비록 책임비서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김일성은 북한 공산당을 완전히 장악하기 일보 직전까지 다가갔다.
김일성이 책임비서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의 저항이 컸고, 소련도 국내 투쟁경험이 적은 김일성을 전면으로 내세우기에는 아직 지명도가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분국이 설치된 지 2개월 만인 12월 18일 마침내 북한 공산당 조직을 장악했다. 이날 열린 북조선 분국 비밀회의에서 책임비서로 선출된 것이다. 이로써 김일성은 명실공히 분국을 장악하게 됐으며 김일성의 분국은 사실상 북조선공산당으로 행세하게 됐다. /조선
1935 - 거슈윈(George Gershwin) 작곡 오페라 <포기와 베스> 초연
거슈윈(Gershwin, George, 1898~1937)은 뉴욕에서 태어났다. 대중적인 경음악을 작곡하면서 재즈기교에 의한 수준 높은 관현악곡과 오페라를 창작하여 새로운 측면을 개척하였다. 소년시절 개인교사에게 피아노와 화성학을 배우고 16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 음악출판사의 피아니스트로서 작곡을 시작하였다. 19세 때부터는 극장 전속 피아니스트로 근무하였으며, 21세 때에는 《스와니》를 발표하여 히트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인기를 모아 리뷰나 쇼의 일류 작곡가가 되었으며, 1924년(26세) 폴 화이트먼이 위촉한 재즈의 기법을 따른 피아노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고전음악과 경음악을 조화시켜 관현악곡 《파리의 미국인》(1928) 《피아노협주곡 F장조》(1925) 및 오페라 《포기와 베스》(1935) 등의 본격적인 작품 외에도 많은 통속 희가극과 대중음악,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는데 뇌종양이 발병해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naver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
3막 9장. 헤이워드부부의 희곡《포기》를 바탕으로 한 헤이워드(남편)와 이라 거슈윈의 대본에 의하여 작곡되고 1935년 10월 보스턴에서 초연되었다. 무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의 찰스턴. 하역인부(荷役人夫) 크라운의 정부(情婦) 베스는 포기에 대한 애정을 끊지 못한다. 이에 분노한 크라운은 베스를 찾으러 갔다가 도리어 포기에게 살해된다. 그러나 체포된 포기는 얼마 가지 않아 살인혐의를 벗고 출소(出所)하나 베스는 뉴욕으로 떠나고 만다. 포기는 뉴욕이 먼 곳에 있는 도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베스를 찾으러 떠난다. 한 사람의 단역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이 모두 흑인이고 흑인영가와 민요가 많이 들어 있으며 유럽의 전통을 대담하게 탈피한 이색적인 미국적 오페라이다. 곡 중에서 제1막의 <서머타임>과 제2막의 <피로할 따름>이 유명하다. /naver
거시윈(Gershwin, George 1898∼1937, 美)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 3막
대본 : 듀 보즈 헤이워드와 거시윈에 의함. 영어
때 : 1920∼1930년
곳 : 미국의 남부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톤
초연 : 1935. 10. 10. 뉴욕의 알빈좌
http://winter2018.co.kr/bbs/board.php?bo_table=11_app&wr_id=227
1932 - 독립운동가 이봉창(李奉昌) 순국
이봉창 [李奉昌, 1900.8.10~1932.10.10]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사업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일왕이 지나간다고 길 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일왕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1931년 12월에 도쿄에 도착한 이 의사는 때를 기다렸다. 마침 일왕이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알아낸 이 의사는 이날을 거사일로 잡았다. 1932년 1월 8일,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쿄 경시청 앞을 지날 때 이 의사는 그가 탄 승용차를 향해 폭탄을 힘껏 던졌다. 폭탄은 승용차 뒤쪽에서 굉음을 내며 터졌지만 거리가 멀어 뒤를 따르던 마차만 거꾸러졌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1932년 10월 10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조선
1920 - 구스타프 홀스트(Holst, Gustav)의 <행성> 모음곡이 영국 버밍엄에서 초연되다.
《행성(The Planets)》(작품번호 32)은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가 쓴,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이다. 작곡자에게 점성술을 가르쳐 준 클리포드 백스의 제안으로 1914년에 착상하여 1916년에 작곡을 마쳤으며 1920년 10월 10일 버밍엄에서 애플비 매슈스(Appleby Matthews)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도미타 이사오의 신디사이저 편곡이 있다.
이 중 〈화성〉은 넥스트의 Lazenca - A Space Rock Opera 앨범에 편곡되어 수록되어 있고,〈목성〉의 도입부는 MBC 뉴스데스크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위키백과
구조
《행성》은 태양계의 일곱 행성에 해당하는 로마 신화의 신을 각각 주제로 한 일곱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1. 〈화성, 전쟁을 가져오는 자〉(Mars, the Bringer of War)
2. 〈금성, 평화를 가져오는 자〉(Venus, the Bringer of Peace)
3. 〈수성, 날개달린 파발꾼〉(Mercury, the Winged Messenger)
4. 〈목성, 즐거움을 가져오는 자〉(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5. 〈토성, 황혼기를 가져오는 자〉(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6. 〈천왕성, 마술사〉(Uranus, the Magician)
7. 〈해왕성, 신비로운 자〉(Neptune, the Mystic)
명왕성
1930년 명왕성이 발견되었는데, 홀스트는 명왕성을 위한 곡을 쓰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2000년 할레 오케스트라(Hallé Orchestra)의 위촉으로 콜린 매슈스가 〈명왕성, 새롭게 하는 자〉(Pluto, the renewer)를 써서 이모겐 홀스트에게 헌정했다. 매슈스는 해왕성의 종결 부분을 명왕성으로 넘어가도록 고쳤다. 명왕성이 포함된 《행성》은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할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2000년 5월 11일 맨체스터에서 초연했다.
2006년 8월 국제 천문 연합이 명왕성의 분류를 행성에서 왜행성으로 바꾸면서 《행성》은 다시 지구를 제외한 모든 태양계의 행성을 다루는 곡이 되었다.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D%96%89%EC%84%B1_%EB%AA%A8%EC%9D%8C%EA%B3%A1
1917 -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작곡가 멍크(Monk, Thelonious) 출생
멍크 [Monk, Thelonious (Sphere), 1917.10.10~1982.2.17]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서 출생하였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1940년경 당시의 재즈에 만족할 수 없었던 젊은 음악가들 속에 끼여들어 비밥(bebop) 창조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44년 레코드를 출반하여 가요계에 데뷔하고, 1950년대 중기에 실력을 인정받아 작곡가 ·연주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독창적인 스타일과 타협을 모르는 성격으로 유명하며 전위재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에 《라운드 미드나이트》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모던재즈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곡들을 많이 만들었다. /naver
1911 - 중국 신해혁명(辛亥革命) 발발 (쌍십절)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시작된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鎭)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진영에 가담하자 청조는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나섰다. 위안(袁)은 한커우와 한양을 탈환했으나 곧 혁명군과 타협을 모색했다. 임시대총통 자리를 내주겠다는 혁명군의 제의를 받은 마당에 굳이 승산도 불투명한 내전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혁명군도 힘의 열세를 느끼고 있었다.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중화민국 수립이 선포되고 쑨원이 임시대총통으로 취임했지만 쑨원은 3월 11일 위안에게 대총통직을 이양했다. 이미 2월 12일에 청조 마지막 황제 푸이가 황제직을 내놓아 286년간에 걸친 청조가 무너진 뒤였다. 그러나 신해혁명은 국민의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조선
삼육대학교 개교 100주년(2006년)
‘지육’(知育) ‘영육’(靈育) ‘체육’(體育)의 삼육(三育)을 건학이념으로 1906년 문을 연 삼육대가 2006년 10월 10일 개교 100돌을 맞았다.
삼육대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선교사들이 평남 순안에 설립한 의명학교를 시작으로 1942년 일제 탄압으로 폐교당한 후 1974년 지금의 자리에 학교를 재건했다. 삼육대는 40년간 한센인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다 간 고 최성훈(52년 신학과 졸) 목사와 혈관조영 및 성형의 세계적 권위자 장근청(58년 신학과 졸) 미 로마린다의대 교수, 아침고요수목원 설립자 한상경(84년 대학원신학과 졸)씨 등을 배출했다. 삼육대는 10일 오전 사무엘광장에서 홍명수 이사장, 서광수 총장, 동문·재학생 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오후 2시엔 세계 24개국 34개 자매대 총장이 대학간 교류방안 등을 논의하는 ‘세계 SDA대학 총장포럼’이 열린다. 총학생회도 100주년을 기념해 오전 11시 솔로몬 광장에서 비빔밥 4732인분을 만들어 초대형 비빔밥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다.
서광수 총장은 “삼육대는 교직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정결·정돈·정숙·정직·정조의 ‘5정운동’과 금연·금주운동을 벌이는 등 인성교육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학’ 슬로건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경복 교수 홈페이지
http://joupia.net/bbs/zboard.php?id=cam_01&page=6&sn1=&divpage=1&sn=
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PHPSESSID=
74e04fe95ed1b770a9ef31a4d3a47103
1902 - 도량형규칙 공포
1875년에 국제미터협약이 체결되어 전세계적으로 미터법만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1902년 도량형 규칙이 제정되고 국내에 평식원(平式院)이 설치되었으며, 1905년 조선 고종 때 대한제국 법률 제1호로 도량형 규칙을 제정 공포하여 척관법을 미터법과 서양에서 사용하는 야드-파운드법과 혼용하도록 하였다. 이 때 비로소 척관법의 기본단위가 되는 길이의 단위인 척은 0.303m로, 무게의 단위인 관은 3.75㎏으로 정의하였다.
그 후 1961년 5월 10일 구(舊)도량형 관계법이 폐지되고 새로운 형태의 계량법이 제정되었으며, 또한 미터법 통일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국제적인 추세에 맞추어 한국도 미터법만을 사용하도록 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1964년 1월 1일부터는 토지 건물이나 수출입, 무기·항공·선박 및 연구분야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척관법이나 야드-파운드법은 거래상 또는 증명상의 계량에서 그 사용이 금지되었다. 1983년 1월 1일부터는 토지 건물에 사용되는 평도 사용이 금지되었다. (Daum 신지식)
http://k.daum.net/qna/view.html?qid=2eZ1Z
1901 - 스위스의 조각가, 화가 자코메티(Giacometti, Alberto) 출생
1898 - 프랑스의 육군 장교 쾨니그(Koenig, Marie-Pierre) 출생
1897 - 미국 장로회 선교사 베어드, 평양에 숭실학교(崇實學校) 설립
1895 - 중국의 소설가, 문명비평가 린위탕[林語堂] 출생
1892 - 크로아티아의 소설가 안드리치(Andric, Ivo) 출생
1861 - 노르웨이의 북극 탐험가 난센(Nansen, Fridtjof) 출생
1856 - 조선 후기의 서화가, 문인, 금석학자 김정희(金正喜) 사망
1834 - 핀란드 문학의 아버지 키비(Kivi, Aleksis) 출생
1830 -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 2세(Isabel II) 출생
1825 - 보어인 국가를 건설한 남아프리카의 농부, 군인, 정치가 크뤼에르(Kruger, Paul) 출생
1813 -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Verdi, Giuseppe) 출생
1738 - 영국에서 활약한 미국의 역사화가 웨스트(West, Benjamin) 출생
1684 - 프랑스의 화가 와토(Watteau, Antoine) 출생
|
출처: 너에게로 가는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인간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