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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3일
“히말라야”
하늘에 닿아 있는 땅
산이 허락해야 만이 오를 수 있는 신의 영역
꿈에서도 그리는 산악인들의 성지라 불리는 산!
천둥벌거숭이 고삐리때 지리산 등산을 시작으로 초보적 암벽 빙벽 흉내만 내는 산악인 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마추어 등산객이지만, 언제나 그곳을 향한 30년 로망...
8848M 에베레스트 정상도 아니고 5550M 칼라파트라에 지천명이 되어서야 도전하는 이번여행은 초라한 씁쓸함도 마음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새벽6시 부산을 출발한 KTX열차, 3시간이 언제 갖는지 벌써 광명역 이라고 안내방송이 나오고, 내 핸드폰이 울린다.
네팔 자이언트 게스트하우스 사모님, 벌써 서울역에서 기다리 신 단다.
9시45분 초면이지만 외풍으로 화콜 스타일 네팔 자이언트 사모, 먼 길 오시느라 배고프시겠다며 집에서 만든 웰빙 떡을 주셨다.
(싸모님 잘 먹기는 했는데 그 쑥떡 맛이 약간 아시죠 ㅎㅎ)
가져 오신 짐과 무게를 맞추어 보니 대충 30kg, 참고로 항공사 대부분 수화물로 20kg 인데, 네팔 항로 중국 남방항공은 30kg 까지라 택배 알바를 자청했다.
인천공항 직통 지하철을 타고 40분 만에 인천공항 도착, 수화물을 부치고 면세 소주를 사야 하는데, 어디서 파는지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해매다 보딩 게이트 앞에 앉자 있자니, 들리느니 중국어와 영어뿐이라 앞으로 닥칠 현실이 까~아 깝~ 하다.
어디선가 일성호가 귓전을 울리는 한국어, 스님 이라는 사실은 네팔에서 알았지만, 박동철 스님일행을 만나 두렵고 지루할 새도 없이 중국광주를 거쳐 네팔에 도착, 인터넷으로 비자신청서를 작성해온 정보 덕에 지체도 없이 도착비자를 받고, 트리부반 국제공항을 나서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착륙 한 시간 전만 해도 비행기 창가로, 별이 총총 마른벼락만 한두 번 번쩍 번쩍 하더만, 이게 바로 하늘과 땅 차이...
마중 나와야할 이구 대장님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머라고 머라고 아우성인데, 즉 자기 택시를 타라는 이바구다.
말 설고 냄새 설은 이국땅, 깜깜한 밤중에 어찌할 바도 모르겠고 하여, 이구 이구대장님 하고 소리를 몇 번 쳤더니 슬그머니 누군가 다가와, 알아듣는 토킹을 한다.
우찌 이리 반가운지 ^.^ “휴 살았다”
(전화가 되나 말이 통하나 까딱 하다간 보쌈당할 뻔 했어)
초면이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얼굴을 보았기에, 대번 알아볼 수 있다.
짐 찾는 북새통에 스님과 인사도 못하고,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한다.
비 오는 어둠이라 창밖은 시계제로 우리나라 티코만한 차가 요동을 치며 달리는데 어디로 향하는지,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 울퉁불퉁 도로가 엉망이라는 것 경제 수준도 대충 몸으로 느껴진다.
대장님 말로는 자립 할 수 있는 공장이 없어 제원부족으로 도로 등 기반시설을 보수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네팔에 원정 오는 전문 산악인들과 트레커에게 최상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은 일념으로, 한적하고 조용한 쉼터를 조성했다는 네팔 자이안트 게스트 하우스에, 시차 감안 하지 않고 내 시계로 20시간 만에 입성, 이대장님과 소주한잔을 부딪히며 산 예기 산악인예기로 밤이 새어간다.
2012년 9월 14일
아침9시30분 적당히 마신다고 했는데, 머리가 띵한걸 보니 택배비를 제법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시간 계산을 얼핏 해봐도 3시간 남짓 잔 것 같으니, 아직 숙취가 해소될 시간도 아닌 것 같다.
달그락 달그락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나마스테 네팔 여인 한분이 주방에서 분주하다.
옥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다세대 주택과 흡사하지만, 고급 주거지역이라는데 곧 이사할 이 게스트하우스의 마지막 손님이 될 것 같아 대충 적는다.
상쾌한 아침공기와 달리, 물건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에, 동네 여기저기 소란하다.
네팔 특유 요상한 모양의 그릇들을 자전거에 가득 실고 팔로 다니는 사람, 아침 먹을거리 장사, 커다란 양탄자를 매고 소리치 는 네팔리 기타 등등..
장사치들의 공통점은, 다 남성 이라는 거?!
네팔에서의 첫 식사는 스파게티와 계란탕, 네팔분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무리가 없을 듯, 자타가 공인하는 타고난 적응 맨 이라,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또츠)맛있습니다 했더니, 미소를 지어 신다.
아침도 잘 먹었겠다 마실 을 가야지, 관광객이 찾는다는 타멜바잘 거리를 가야 하는데, 네팔은 데모가 잦아 오늘도 데모 중이라, 차량 통제를 하기 때문에 걸어가야 한단다.
어차피 등산하러 온 것, 워밍업 삼아 용감히 뚜벅이로 길을 나섰다.
후덥지근한 날씨, 어제 내린 비로 좁은 곰보 도로에 고인 빗물은 철벅철벅,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수레 엉키어 경적소리 귀 고막을 찢고, 냄새는 어디서 나는지 야리끼리, 개 들은 길 아무데나 쭉 늘어져 널 부러져 있다.
우얏든 네팔은 개 팔자가 상팔자여, (한국이면 후루룩 짭짭 탕 인디 근데요 맛은 없을 것 같아요)
예상보다 멀다 싶은데, 타멜바잘에 접어들었다. (바잘이 시장이라네요)
곳곳에 종교 사원과 네팔 식 가옥들 짝퉁 등산용품점, 그 외 종교적 색채의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주류를 이루어 골동품 거리 같다.
아이 쇼핑이 지루해 질 즈음, 이 먼 이국땅에서 태극기를 보았다.
어라 중국집인가 한글로 경북궁 이라 쓰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궁하면 90% 짜장면 집 무조건 들어가 네팔짱을 물어보았다.
한국 분은 길이 복잡해 설명을 잘 못하겠다며 인사만 나누고, 네팔리가 약도를 그리며 레프트 라이트 커버 하며, 영어로 설명하는 제스처가 “먼 말인지 알지 하는 눈친데”
아엠 쏘리 메시지 불통불통 못 알아들어도 척하면 삼천리, 오(OH) 내비게이션이 아니던 가 한걸음에 네팔짱에 들어서는데 박동철 스님이 막 나가실 채비였다.
1분만 늦었어도 엇갈릴 뻔했다.
어제 못 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히말라야에 자주오신 선배로서 이번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는, 현장 체험 정보와 조언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시는 좌담시간을 보내고, 간단한 물건을 구입하러 쇼핑 가신다기에 따라나섰다.
스님은 이곳저곳 저렴한 가계들을 일러주시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스님의 따님과 친구, 두 아가씨 현란한 영어와 애교로, 네팔아저씨 뽀~옹 가게해서 가격을 후려쳐 흥정하는 품세가 달인의 경지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 할 것 같아, 없는 돈에 비행기 표도 카드 빛으로 온 놈이 충동구매를 못 이겨, 또 플라스틱을 끗고 말았다.
2012년 9월 15일
이건 자이언트 사모가 알면 안 되는데 ㅋㅋ
어제저녁 맥주 한잔만 하자면서 간곳이 가무를 즐기는 이쁜 여자들 술집?, 뼈 없는 붕어빵에 김샜다.
전통악사와 여가수들이 손님의 신청곡을 받아, 무대 위 자기들만 춤추고 노래하고 신났다.
노래패턴은 서로 주고받는 대화형식 이라는데, 우리의 아리랑처럼 후렴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좀 지루하게 긴 편, 전통악기 소리도 너무 크고 의미를 모르니 장시간 듣기에는 좀, 이대장님은 벌써 이곳 문화에 익숙한 것 같은 모습이다.
알람시계도 없고 해서 제시간에 일어날까 뒤척이다 시계를 보니, 현지시간으로 4시10분 창밖부터 내다본다.
아직 우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그쳤다.
대충 라면하나 끊여먹고, 새벽이라 600루피 달라는 택시비 이대장님 흥정으로 400루피 콜하고, 국내선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조금 있으니 트레커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어‘ 안면 있는 분이 한분 오신다.
어제 네팔짱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분으로, 히말라야에 가시기는 하나 나와 달리 긴 일정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같은 비행기를 타시려나 보다.
아침인사를 하고 여정을 들어보니, 남체 까지는 동행 할 수 있을 것 같아, 영어 짧은 내게는 빛과 소금 같은 동행이다.
나이는 50중반에서 보이시는데, 요즘 하도 젊게 사시는 분들이 많아, 더 많을 수도, 여성분 나이를 꼬치꼬치 파악하기도 그렇고, 일단 성씨를 따라 조 여사님이 부담이 없을 듯하다.
국내선 청사 안은 우리네 읍 단위 시골버스 대합실만 한데, 첫눈에 들어온 공적기관의 전기배선 꼬라지가, 우리의 잣대로는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장비래야 화물엑스레이기 1대 몸수색은 손으로 아래위 훌 터보고 끝, 고물버스를 다고 2~3분, 겉보기에는 날렵한 프로펠라 비행기가 활주로에 몇 대 서 있다.
6시 조금 넘어 15명 정도 탈 수 있는 잠자리비행기는, 내 시계 고도계로 2000M 정도 창공을 날고 있다.
구름에 가렸지만 멀리 히말라야 산군들이, 내 심장을 펄떡이게 한다.
(ㅎㅎ 사실은 잠자리 추락 할까봐 겁이 나서, 우~ 새가슴)
오마나 잠자리가 갑자기 추락을 한다.
앞을 보니 저 멀리 산등성이 사이, 성냥 각 마을 한가운데로 하얀 줄이 보인다.
성냥개비 하나 20도 정도 삐딱하게 놓아 놓은 것 같은, 말로만 듣던 악명의 루크라 활주로인 모양이다.
“아멘,타불,알라~ 지은 죄는 만치만, 요기까지 와서 히말라야 근처도 못가보고 비명횡사는 억울하오니 어린양, 중생을 보우 하소서”
베리 나이스, 우리의 잠자리 사뿐히 내려 앉았다.
(역시 高山에오니 기도 빨 쥑이는 구만!)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베스트 플라잉 캡틴 탑건, 얼토당토 영어지만 사진도 같이 찍어주는 센서 쟁이 매너남이다.
7시20분 수속이라고 할 것도 없이 짐 들고 비행장 밖을 나섰는데, 암호를 가진 접선 자가 없다.
이대장은 [Mr,OH] 암호를 들고 포터로 위장, 접선한다고 했는데...
짐을 두개나 들고 두리번거리자, 첫날 입국장처럼, 때 거지로 달려들어 아우성이다.
조 여사님 포타도 안 보인다는데, 여기 몇 번 와서 잘 아는 포터라 좀 늦는 것 뿐 이라더니 10분쯤 후 왔다.
짐을 줄여 어디 맡기고 포타 없이 갈까 생각도 해보지만, 초출에 고소 때문에 어찌될지도 모르겠고, 영어 끈이 짧아 토킹이 안되니 언놈이 흰 까마귀인지 가리지도 못하겠고 흑 -.- 흑, 제2의 접선장소로 무작정 가서 확인해 보기로 하고 게스트하우스 앞으로가니, 한명이 따라와 계속 자기가 예약자라고 하기에, 조 여사님의 포타 가지의 전화를 빌려 이대장님과 대질하여 진위를 가리고, 밀크 티 한잔으로 첫 인사를 나누니 이름이 라츠 란 다.
8시20분 이럭저럭 1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8시25분 출발하자마자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 등제를 하고, 루크라 마을을 벗어나니 꿈에도 그리던 히말라야 여정이 정말 시작 되었구나 하는 벅찬 기대와 두려움에 만감이 교차한다.
아직 우기라 그런지 계곡을 다 쓸어갈 듯이 거센 물살의 포효소리위로 기다란 구름다리도 건너고, 계절폭포인지 골마다 흐르는 수많은 물줄기 아직 워밍업도 안한 것 같은데 벌써 점심을 먹어야 한단다.
10시10분 타르코시라고 하는데 2500M를 가리킨다.
무얼 시켜야 할지 몰라, 조 여사님 추천한 vegetable curry를 시켰다.
30여분이나 기다려도 식사가 안 나오기에 기대를 했더니, 달랑 접시에 펄펄 날리는 쌀밥 옆으로 채소 조금 석인 카레가 전부다.
이 사람들 천성이 느려서 그렇다는데, 그런데 로 먹을 만 은 하다.
오마나 점심 먹고 출발 하려니, 꾸무리하던 하늘에서 불청객이다.
위로라면 싸구려지만 방수가 된다는 새 신발의 성능을 믿을 빡 에, 첫 날부터 우중산행이라니 앞날이 막막하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모퉁 돌면 옹기종기 몇 집이고 한 고개 넘으면 한 두 가구,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마을이 자주 있고 큰 동네도 있다.
골은 깊어도 아직은 나무도 많고 크게 낮 설지도 않고, 혹시 고소 올 까봐 쉬엄쉬엄 힘들지도 않아 의기양양한데, 벌써 오늘산행 끝 이란다.
12시20분 팍팅에 도착 이건 아닌데 싶긴 해도 원래 계획된 구간이고, 까불다 초장에 무리하면 칼라파트라 근처도 못가보고 우세만 당하고 돌아 갈까봐, 초자가 고수 시키는 대로 따라야지 하고 마음을 접는다.
게스트하우스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돌 벽으로 지은 집이 소담스럽다.
주인장의 안내로 방을 찾아 가는데, 공사가 한창이라 “뭐 이래 싶은데” 나무침대 2개 샤워기에 화장실도 딸려있고, 편리성은 그럴 듯 꾸몄지만 내벽이 전부 합판이라 옆방의 숨소리도 들릴듯하다.
오락가락하는 비사이로 등짐을 메고 힘겹게 오르는 네팔인, 짐을 잔득 실고 푸륵푸륵 가픈 숨을 몰아쉬며 오르내리는 소와 말들을 한가로이 바라보지만, 내일은 얼마나 힘든 여정이 나를 기다릴지 남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2012년 9월 16일
밤새 오락가락 하더니, 아침까지 비인지 이슬인지 하여튼 개운치가 않다.
한국 사람은 아침밥을 잘 먹어야 힘을 쓰는데, 블랙퍼스트 메뉴에 (짜빠띠.펜케익,토스트) 밀가루 종류와 계란 후라이 茶 정도가 전부다.
빵도 많이만 먹으면 배야 부르겠지만, 퍼석퍼석한 면 종류가 아침부터 넘어가나 서양 사람들 위주로 식단이 짜여 있으니, 속 든든히 채우고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일지감치 버려야 할까보다.
7시45분 펜 케익과 밀크 티 한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의 목표를 향해 출발, 날씨가 맑지는 않지만 당장 굵은 비가 쏟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흙탕물에 뒤섞인 말똥 소똥 개똥, 외국인들은 스카프로 코를 막고 다니는 사람도 더러 보인다.
트레킹 중 짐을 실은 소나 말과 교행을 할 때 항상 산 쪽으로 붙어야 한 다 네요, 소나 말들이 온순한 편이지만, 바깥쪽으로 섰다가 부피가 큰 짐에 떠밀려 계곡으로 추락 할 수 도 있기에, 항상 주의해야 한단다.
8시40분 이름은 잊었어, 커다란 폭포 물보라가 시원하게 땀을 식혀준다.
여기는 아직 숲이 있어서 그런지 물맛도 상큼하고 깨끗하다.
네팔 물은 잘못 먹으면 기생충도 있고 해서 큰 일 날수도 있다고, 생수를 사 먹으라고 하던데,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산행동안 거의 물은 사먹지 않았다. (따라하진 마시길 저는 각설이 채질이라 그런고로)
10시00분 몬조 TICKET COUNTER 지도상 2830M 내 고도계로 2804M 가찍힌다.
여기서 거금 3,000루피를 강탈당했어요, 입산료라는데 너무 비싸 씨~이, 옆쪽 문으로 들어가 보니 히말라야 산군의 모형과 사진자료가 전시 되어있다.
몬조는 집들 색깔 중 청색이 많이 보이고 선명해, 첫눈에 깔끔하게 비쳤다.
10시20분 로르살레 마을, 이친구들은 점심을 일찍 먹자고 한다.
아침을 안 먹는 건지, 식사를 하고 포타 라츠 이 친구, 배낭도 아닌 빽을 메고 다니기 버거운 것 같아,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 몇 가지를 빼서 파킹 좀 시키고 나중에 내려올 때 찾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가능 하단다.
이런 된장 다시 비가 쏟아진다.
바로 앞 초소에서 다시 체크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갈 길은 가야 한다.
카트만두 시장에서 우리 돈으로 7000원정도 주고, 100% 방수되는 것으로 판초 우의는 새로 장만해 든든한데, 고급등산화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
조 여사님은 뒤쳐져서 보이시지도 않고, 높은 구름다리를 지날 때부터 골 비바람은 점점 거칠게 불어 온도가 내려가니, 눈앞에 하얀 성애가 심봉사를 만들어 안경은 아예 벗어버렸다.
이 구간 오르막이 유난히 기~일다, 하염없이 끝없는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어디인지 “태산이 높다하되”를 속으로 읊조린다.
13시15분 COMMUNITY Police CHeek Post 어김없이 등록하고 돌아보니, 나의 포타 라츠 눈에 보일만치 올라왔다.
초소를 지나서 부터는 평탄한 길모퉁이를 돌아나가니, 산 비탈면에 차곡차곡 지어져 멀리서보면 부챗살 모양의 남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에 진입하면 계단계단 돌계단의 마을,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제일 큰 마을이라더니, 제법 번화한 상점가 골목엔, 비오는 와중에도 오가는 사람이 많다.
구름과 안개가 짙어 어스름 해, 저녁이 다 된 줄 알았는데, 비 피할 곳도 없고 해서 부지런히 온 것이 너무 빨랐나?
13시30분 3285M 투 나이트 주둔지, Comp be Base loge 오늘도 너무 이런 시간이다.
2012년 9월 17일
13℃ 673mbar 날씨가 흐려서인지, 체감온도는 썰렁하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는 고도적응 차 관광 겸 쿰종과 남체 주위를 둘러볼 참이라, 마음이 한결 가볍고 여유롭다.
마을 계단 골목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니, 빨간 항공 풍향기가 펄럭인다.
비포장에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데, 여기도 엄연한 비행장 이란다.
우기라 거의 정상 부 부터 산 전체가 여기저기 할 것 없이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구름이 이동하며 간간히 보여 주는 하얀 만년설은, 히말라야의 경이로움 그 자체, 판타스틱 뷰티풀 엑셀런트 탄성이 절로 나온다.
쿰종 넘어 가는 고개 마루, 약3700M 또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조 여사님 어제 저녁 남체서부터 고소증상이 약간 있으시다더니, 걸음이 여~엉 힘드신 모양이다.
쿰종은 산에 둘러싸여 있지만 지금껏 본 것 중에서 는 제법 너른 분지로, 가구 수도 많고 밭도 넓고 산기슭에 큰 사원도 보이고, 다른 곳에 비해 풍족해 보인다.
라츠 병원에 먼저가 있을 테니 천천히 오란다.
“병원이 있다고”?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허리에서 어께 높이의 정겨운 돌담길을 돌고 돌아가니, 유럽인 자원 봉사 의사가 운영하는 미니 병원이라네요, 이친구들이 이곳을 보여주는 것은 기부를 유도하기 위함이라 약간의 소액으로 눈도장은 찍었다.
알고 보니 라츠 이 친구, 평소 장이 안 좋아 배가 아픈 모양인데, 의사하고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거기서는 약을 받지 못하고 그냥 왔다.
점심으로 이 지역에서 나는 찐 감자와 수태차 를 시켰다.
감자가 약간 설익은 탓도 있지만, 소식하시는 조 여사님 두세 개 드시고 끝이다.
포타 가지가 창을 시켜서 나도 한잔 하고 싶지만, 내일부터 본격적인 산행에 고소가 걱정이라, 한 모금 맛만 보았는데 우리네 막걸리 맛이다.
12시쯤 남체로 돌아와, 보더가(불탑) 있는 곳으로 가기에 사원인가 했는데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아래쪽과, 군부대 옆으로 돌아 오르는 산 위쪽, 2곳인데 위쪽 박물관은 히말라야등반 개척 초기의 등산장비 근대 히말라야 등반 역사사진이 주류고, 보더가 있는 아래쪽은 100루피를 받는데, 세르파족 옛 전통가옥을 박물관으로 옛날 생활도구와 불교유물 소수부족의 지역별 축제 사진 등 이다.
남체 위쪽으로 보면 불교사원 뒤로 룽다가 길게 걸려있고, 큰 바위에 불화가 그려져 있다.
그곳은 데려가지 않기에 로지에 잠시 쉬었다 혼자 나섰는데, 쉽게 진입로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해매다 보니 비행장까지 올라갔다.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붕들이 계단처럼 야외 원형극장 같기도 하고, 우리부산의 감천 달동네 같은 풍경이다.
내려오면서 샛길로 두어군데 왔다 갔다, 에구에구 겨우 찾았다.
화려하게 채색된 부처상을 커다랗게 그려놓았고, 그 주위로 크고 작은 글씨의 경전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돌아오는 길이 어느덧 어둑어둑 해 진다.
네팔인 들이 사후세계의 발원과 안녕을 비는, 에밀레종 크기의 황금색 마니차를 힘 것 두어 바퀴 돌리고 나서니, 땡그렁~ 땡그렁~ 내 발걸음 뒤로 여운을 남긴다.
2012년 9월 18일
05시 기상 어제 저녁까지 오락가락 하던 비가, 오늘은 깔끔하게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어디서부터 고소가 올지 모르니, 이제 행복 끝 고행시작인가!
7시40분 남체를 출발 초입은 염려와 달리, 산허리를 감고 도는 길을 따라 호젓이 아주편안하게 즐기며 산행을 할 수 있다.
9시17분 산사 갈림길(SANSA) 무슨 인연이 있어 먼 이국땅에서, 여로 모로 애써주시고 끈 짧은 영어 때문에 어려운 나에게 구세주 이셨던 조 여사님과 포타 가지, 갈 길이 달라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나눈다.
9시45분 협곡 다리를 건너니, 길가에 책상 하나 달랑 있는 마지막 체크포인터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계속 오르막이다.
산길이라 길 폭은 거기서 거기지만, 트레커들이 가는 경사각이 낮은 길은 빙빙 돌고 돌아 거리가 멀다보니, 현지인 짐꾼들은 육칠십도 의 급경사를 질러올라 가기에, 나도 둘러가기 싫어 경사 진 소로 길을 따라 올라간다.
잠시 쉬면서 짐꾼들을 보니, 그 나이 감당하기에는 삶에 무게가 너무 버거워 보이는 초체하고 안쓰러운 어린모습들, 나도 한국에서야 별 볼일 없는 부류지만 등산 간다고 이러고 있으니 측은지심 양심의 털이 간질간질 미안스러움 마저 든다.
산꼭대기만 보고 1시간40여분 줄기차게 오르니, 머리위로 보더가 보이고 안부에 올라서니 화려한 사찰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 탕보체다.
11시30분 TASHI DELECK LOGE 야외 식탁 앞 전망이 끝내준다.
저 멀리 구름 뒤 하얀 산은 점심을 먹기 전엔 눕체를 점심을 먹고 나니 로체를, 수줍음을 타는 양 살짝살짝 보여주며 히말라야의 신비감을 자극한다.
1시45분 엄홍길 휴먼스쿨 안내판 갈림길, 포터에게 휴먼스쿨을 거쳐 팡보체로 갈수 있냐고 삼각형을 그려 물어보았더니 가능 하단다.
10여분 마을에 접어들어 엄홍길 휴먼스쿨을 들먹이니, 높다란 산위 사원 같은 건물을 가리킨다.
2시20분 내 고도계로 3960M 엄홍길 휴먼스쿨, 고귀한 한국인 기부자 명판이 네팔 하늘아래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엄홍길” 16좌 산악인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할 수 있는 리더이기에 존경심이 더욱 우러나온다.
언덕아래 돌담장으로 구획 지어진 밭들이 마치 파레트 물감처럼 알록달록, 누군가 당장 붓을 찍어 파란하늘 여백을 채울 것 같이 자연과 잘 어우러졌다.
멀지 감히 보이는 곳이 팡보체 인가하고 언덕을 타고 내려와 앞만 보고 가는데, 휘파람소리가 몇 번 들려도 무심 흘리는데 낯익은 고함소리, 아래를 보니 라츠 손짓으로 내려오란다.
2시50분 SANAM LOGE 내가보았던 그곳까지 같으면 좋겠는데, 이것으로 오늘도 종쳤고 아름답던 물감이 팡보체다.
3시10분 티 한잔을 마시며 지도를 펴놓고 내일 일정을 점검 해보니, 거리가 너무 짧아 포터에게 로부체까지 가자고 제시를 했더니 펄쩍뛴다.
거리도 거리지만, 고도를 1100M 나 하루 만에 올라 갈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는 빅 마운틴 한국의 스몰 마운틴 하고 틀리며, 여기가 벌써 4000M 급으로 내가 고소에 적응 못해 못 올라간다고, 그렇게 무리한 스케줄 이면 자기는 빽홈 하겠다고 반 협박성 으름장이다.
들은 예기론 이친구들 수틀리면 다 버리고 도망간다고 하던데, “어떻게 구슬린 담” 바디 랭귀지 불량 콩글리시도, 롱~토킹에 눈치가 코치하니 답이 나왔다.
속내는 첫째 일정이 줄어들어 돈이 줄까 걱정이고, 둘째는 아직 긴 여정에 자신이 힘에 부칠까 염려도 있는 것 같다.
일당은 처음 계약한 날수만큼 지급하며, 내일은 짐도 좀 덜어주기로 하고, 혹 내가 고소 때문에 정 못가면, 중간에 스톱하는 것으로 OK 답이 나 온다.
수화도 아니고 불량통신 몸으로 때워 겨우 소통 하고 보니, 해는 지고 언제부터인가 창가에 또 비가 내린다.
2012년 9월 19일
05시15분 미명의 아마다블람이 창가에 서서히 그려져, 창문을 열어젖히니 쌀랑하지만 상큼한 공기와 경쾌한 물소리, 한동안 늙을 잃고 바라보다 남체에서 사온 가스로 라면을 끓여 설산을 바라보며 음미하는 이 기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말 어 Oh happy.
7시50분 출발 엄홍길 휴먼스쿨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날다람쥐처럼 지나가고, 어제 미련을 가졌던 SONAM 마을은 25분 만에 금세다.
9시40분 4620M 피렌체 점심이 좀 이르지만, 중간에 로지가 없다니 요기를 하고 가야겠다.
피렌체는 아주 넓고 편편한 분지로 강폭이 넓어 유속이 천천히 흐르다보니, 웅덩이처럼 물 고인 곳이 많아 작은 풀들로 습지처럼 느껴지지만, 멀리서 보면 벌써 수목 한계선을 넘은 황량한 돌밭이다.
10시 52분 4340M 폰카랍을 지나면서 부터는, 잡초도 없는 돌밭으로 변하더니 오르막이 시작 된다.
어제 약속대로 짐을 덜어, 내 배낭과 무게를 맞추었는데도 라츠가 자꾸 쳐진다.
11시45분 투클라 로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저만치서 올라가라는 손짓이다.
배낭을 메고 오르니, 이 친구 지름길로 질러온다.
오르막을 반쯤 올라서 너무 지쳐하는 라츠와, 남체에서 비상용으로 사온 빵을 한 개씩 나누어먹고, 원기를 북돋우어 12시35분 4830M 투클라페스에 올라 사진을 찍으려니 카메라가 없다.
저곳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니, 미치고 폴딱 뛰겠다.
10여 분후 올라온 라츠에게, 카메라 로스트 마이다운 유 스톱 배낭 파킹, 콩글리시하고 간식 먹었던 곳으로 엘리베이트 속도로 내려간다.
하지만 바위투성이 경사에 여긴가 저긴가 헷갈리기만 하고, 겨우 찾아 훌 터 보아도 카메라는 오리무중, 투클라에서 배낭을 멜 때 흘린 모양이다.
엘리베이트 다시 하강 허겁지겁 투클라 로지에 들어서니, 네팔인 한사람이 카메라 잃어버렸냐고 다가온다.
다른 말 다 몰라도 카메라 소리만 들어도 반갑기에, OK OK 연발하니 카메라를 건네준다.
베리땡큐 베리땡큐 카메라를 찾아주었는데 립 서비스로 끝낼 수 도 없고, 돈으로는 얼마나 해야 할지 내 주머니 사정도 그렇고 현재 아무것도 없으니 대략 난감, 일단 배낭 있는 곳에 가서 봐야겠다.
1시 포터의 작은 앞 배낭을 들어주겠다고 배낭을 메고 앞장섰지만, 거의 1시간 거리를 다시 올라갈 걸 생각하니 아득하다.
고소 때문에 무리해선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라츠도 기다릴 것이고 배낭에서 무어라도 챙겨 성의를 보여야겠기에 최선을 다해 오른다.
얼떨결에 배낭을 빼앗긴 포터도 쉬지 못하고 따라 붙어 미안함이 더 하는데, 한번 쉬고 나더니 가뿐하게 앞서 올라간다.
사력을 다한 덕에 30여분 만에 투클라페스에 원위치, 어라 이번엔 배낭이 로스트다.
포타 라츠도 안 보이는 걸로 보아, 기다리라고 했는데 쌩 까버린 모양이다.
미안한 마음 간절하지만, 로부체에서 보자고 콩글리시로 얼버무리고 도망치듯 길을 재촉한다.
길도 평탄한 편이고 약골 라츠 얼마나 갖겠나 싶어 30여분 달리다시피 잰걸음인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게, 이것이 고소구나 싶어 속도를 늦추었지만 이미 늦었다.
다행이 개울가를 건너고 있던 터라 생각 할 것도 없이 개울에 엎어져 물을 들이 키고 나니,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정상은 아니다.
허공 속을 헤매듯 멍하니 얼마를 걸었는지, 언덕 하나를 넘어서니 라츠가 마중을 나왔다.
2시50분 로부체 4900M 레몬 티 한잔 마시고 잠시 누워있으니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아, 작은 동네 구경삼아 돌며 로지마다 찾아보아도 허탕만하고, 룸에서 짐정리를 하려는데 창밖으로 그 친구가 지나간다.
창문을 두드려 스톱하라는 신호를 하고, 새 등산양말 하나를 챙겨 달려 나가, 작은 성의나마 표시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2012년 9월 20일
어제는 무리를 해서 잠을 푹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합판으로 이어진 룸이다 보니, 옆방에서 뒤척이면 내방까지 진동이 느껴지니 제대로 잘 수가 있나, 4시45분 부스스 일어나 물 을 끓인다.
하우스 주인에게 버너 사용하는 것이 발각되면, 배 보다 배꼽이 큰 배상을 할 수 도 있다기에, 공범도 만들고 한국의 맛도 보여줄 겸 라면을 끓여 라츠와 5시에 같이 먹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판자하나 사이 옆방들이라 버너 소리와 냄새가 염려 되어, 조금이나마 냄새가 덜 풍기게 면부터 끓이니 물이 쫄 아 들어, 뽀글이가 되어 간다.
어디 자는지도 모르니 불러 올수도 없고, 지각 바람에 뽀글 라면이지만 내밀어주니 다행히 “미또츠, 딜리셔서” 하며 맛있게 먹는다.
06시30분 출발 14℃ 559mbar 쌀쌀하게 느껴지던 새벽과 달리, 햇살이 비추니 체감 온도는 금세 올라간다.
눕체를 오른쪽에 두고 마을을 벗어나 30여분, 잔디처럼 깔려있던 잡초는 어느새 사라지고 삭막한 돌 밭길로 변했는데, 어디선가 요상한 소리가 들린다.
마운틴 버(MOUNT BR) 라는 이곳 토종 새, 생김새는 암꿩 같은데 칠면조 소리 같기도 하고 망아지 울음 같기도 하고, 두세 가지 울음소리를 표현하기가 어렵다.
7시40분 커다란 바위와 룽다가 펄럭이는 돌탑에 다가서니, 드디어 5000M를 넘어 5015M를 가리킨다.
바위에 명판이 붙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산악인 영혼을 위로하는 명판이다.
라츠가 부스럭 거리더니 무언가를 내어 놓았다.
셀파어로 짬빠, 영어로 짬빠뽀리츠, 네팔어로 비토라며 설명하는데, 한마디로 미숫가루다.
입가에 허연 가루를 묻혀가며 손으로 몇 번 집어먹으니, 목은 메이지 만 근기가 있다.
눕체, 롤라, 쿰부체, 푸모리, 쳉궁, 병풍처럼 빙 둘러쳐진 히말라야 설산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들으니, 드디어 신들의 영역에 들어 왔다는 희열이, 전두엽에서 후두부로 척추를 타고 손 발끝 말초 신경까지 짜릿한 경련이 온다.
09시00 코라셉 도착, 짐을 로지에 내려놓고 EBC 에베레스트 베이스 켐프로 향한다.
분지를 질러 진행하는데, 길이 여러 곳으로 나있다.
라츠와 지도는 로지에 두었지 지나가는 트레커도 없지, 에라 모르겠다.
올드 베이스캠프 뉴 캠프 두 군데 중 한곳은 나오겠지 산위로 무작정 올라가는데, 길이 점점 희미해지는 게 “여가 아닌가벼”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니 이제야 저 아래 사람들이 지나 가는 게 보인다.
팔랑팔랑 룽다와 돌탑과 설산의 조화, 여길 잘못오지 안아서면 결코 볼 수 없는 황홀한 경관, 댓끼리, 왕 짱, 무지 좋다.
캠프에 가까워질수록 너들 지대가 쫙 깔려 발걸음 조심조심, 깜짝 놀라게도 하는 크고 작은 우루룽 쿠쿵 꽈쾅 여기 저기서 간간히 들리는 건 빙하 갈라지는 소리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도 자세히 보니, 얼음위에 자갈돌이 엷게 깔려있는, 말로만 듣던 빙하지대다.
직선거리로는 200여 미터 전방에 보이는 베이스캠프, 갑자기 길이 없다.
저길 건너가려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만만찮아 해매고 있는데, 가이드인 듯한 사람이 네팔국기를 보여주며 워킹 트레커들은 여기가 종점이란다.
독일인, 미국커플, 일본젊은이, 네팔리가이드, 국적은 달라도 대자연의 웅장함 앞에 동지가 되어,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인정 샷도 찍고 we are the world 하나가 된다.
구름이 오락가락 갑자기 좁쌀 우박비도 한줄기 날씨가 선무당 널뛰기다.
알록달록 텐트촌 베이스켐프가 부러워 내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허망한 미련이 남을까 뒤도 보지 않고 달리다시피 한 시간 만에 로지로 돌아왔다.
5시30분쯤 식당에 나가보니, 셀파 파눌루가 와 있다.
어제부터 자기가 엄홍길 대장님 프랜드라 면서 친절하더니, 오늘은 더 친근하게 반색이다.
엄대장님 친구답게 한국어도 쬐끔은 하고, 한국에 다녀온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이미지가 아주 좋은 모양이다.
같이 식사도 하고 지내는 동안 주인내외는 파눌루에게 창을(술) 연신 권하며, 음식 소스도 약간 색다른 맛이 고급 셀파들에 대한 예우가 남다르다.
파눌루 나에게도 창을 권하는데, 마음이야 꿀떡 같지만, 투모루 칼라파트라 프라브럼 하이스포미야, 콩글리시로 사양하고 침만 꼴딱꼴딱, 그놈에 고소증이 원수로다.
2012년 9월 21일
3시50분 잦는지 말았는지 자명종이 없으니 시계를 몇 번이나 보았든가, 비몽사몽 창밖은 아직 컴컴하지만 남체에서 사온 빵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물과 카메라만 주머니에 챙겨 넣고 지도를 들고 4시05분 Himalaya loge를 나섰다.
어제 만났던 미국인 커플이 4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벌써 가 벼렸나 아니면 아직도 만리장성ㅋㅋㅋ
하늘을 보니 별이 반짝반짝, 저 멀리 별빛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고 불규칙한 반짝임, 내가 늦었구나 싶어 열심히 스무심이 따라 붙었는데, 백색깔이 아닌 약간 깜장, 사실 어두워서 처음엔 잘 몰랐고 칼라파트라 정상에서 물어보니 말레시아인 이다.
어둠을 뚫고 한 시간여 지나니, 여명이 장엄하고도 깔끔한 백설 히말라야를 깨운다.
5시25분 5550M 칼라파트라 전위 봉에 올라 전방을 보니, 한쪽 면이 날카롭게 잘려나간 봉우리가 칼라파트라인 모양이다.
5시35분 5550M 12℃ 512mbar 칼라파트라에 오늘의 첫손님으로 등재, 별 볼일 없는 하류 인생이지만 작은 소망하나는 이루었다는 감개무량, 시쳇말로 죽여주는 성취감에 도파민 엔돌핀도 팍팍, 단숨에 에베레스트 정상도 오를 것 같은 책임질 수 없는 파워풀에너지, 山은 忍耐 하는 만큼 自尊感을 增幅시킨다.
에베레스트를 위시 사방을 둘러친 높디높은 히말라야 설산 속에서, 신들의 품속인양 포근함은 떠오르는 태양 때문이겠지요!?
15분쯤 넘으니 말레이시아인 두 분도 도착, 인정 샷을 부탁 똥 폼을 잡고 섰노라니, 칼라파트라 백그라운드 푸모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이 다가와, 그렇잖아도 못내 아쉬운 내 마음을 유혹한다.
콩글리쉬로 카메라를 떠맡기고 험난해 보이긴 하지만 무작정 출발, 너들 지대를 20~30M 다운 우회해 다시 올라야 하는데, 길 찾기가 만만치 않아 길이 트이는 곳을 따라 올라서니 고도계가 5595m를 가리킨다.
6시52분 원위치하여 사진을 확인해보니, 오토 모션을 건드려 부옇게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아쉬움에 망설이다, 내친걸음이니 다시 어게인을 부탁하고, 한번 가본 길이라고 너들 길은 조금 빨리 통과 한지라, 눈이 덮인 푸모리봉 언저리라도 오르고 싶은데, 다운도 너무 깊고 장비도 없고 혼자서는 도저히 “아니 올시다” 여서 앞서 올랐던 다음 봉우리를 찍었는데, 경사와 크랙등반까지 난이도가 완전히 틀린다.
암벽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위험함은 알지만, 외국인 앞에서 칼을 뽑았으니 허공이라도 베어야지, 7시46분 벼랑 끝 봉우리에 올라서니 5630M, 야호를 외쳐 신호를 하지만 들릴 리는 없고, 손도 흔들어 보지만 나도 저쪽 사람이 잘 안보이니, 5분여 머물다 하산을 하는데 두려움과 후회로 “오마이갓” 멘붕 직전이다.
“네팔 칼라파트에서 오 모씨 까불다 추락 축 중상&다이” 이라는, 한국 언론 망신은 면하고 무사히 8시35분 오늘 칼라파트라 쓰리패스 했다.
그새 사람들이 10여명 올라와 있는데, 말레시아인 들은 벗어 놓고 간 옷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어놓고 하산하고 없다.
오늘 종라까지 가야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 같아, 지리산 천황봉에서 중산리 1시간 속도로 뛰었더니 30분이 채 안 결렸다.
9시10분 파눌루와 식사를 하며 딴에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니,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축하를 해주며 다음에 자기와 빅 마운틴을 가자며, 은근히 영업모드를 비친다.
9시40분 기념으로 멋진 사람들 시그널을 로비기둥에 붙여놓고 코라셉을 출발, 고추가 얼마나 매웠던지 창자도 아리고, 칼라파트에서 너무 설쳐 진이 다 빠졌는가! 에고에고 다리에 힘도 없고, 코라셉 고개를 넘으며 점 찍어두었던 돌중에 하나를 찾아 배낭에 챙기고 나니 그나마 활력충전 왠지 든든하다.
11시15분 로부체에서 밀크티와 tomato soup를 먹고, 새벽에 설친 잠이 밀려와 한숨 붙이고 나니 속 아림이 차쯤 가라앉는다.
12시40분 투클라 종라 갈림길, 올라올 때 투클라에서 카메라 찾아 급히 오다 약한 고소 증세 때문에 물 마셨던 징검다리, 오른쪽 능선으로 붙어 10여분 진행하니 고생하며 오르내린 투클라 로지에서 투클라패스 오르막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종라로 가는 길은 오르막도 있지만, 5000M급에서 4800M로 내려가는 길이니 고소 걱정도 없고, 여태 지나온 길과 달리 흙 길이라 폭신폭신한 감촉, 호수를 보며 걷는 발걸음은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 짤깍 야생화도 한 장, 납작납작 구들장 같은 돌을 놓아 만든 다리를 건너 언덕처럼 보이던 분지에 올라서니 집이 서너 채, 2시50분 높은 쪽 로지에 들어서니 공사로 부산스럽다.
연무가 지나가니 연두색에서 회색으로 변신하는 지나온 Chola Tsho호를 내려 다 보며, 내생에 잊지 못 할 잊을 수도 없는 아주 특 스페셜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2012년 9월 22일
우기가 끝나는 10월부터 새 시즌에 맞추어 대부분 로지마다 증축 공사는 이해하지만,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마시려다, 담력 테스트도 아니고 렌턴에 비친 공사판은 엉망으로 뒹구는 자재들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폐가 수준, “내가 여기서 무얼 하는 거지 무엇에 홀렸나”?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차가운걸 보니 꿈속을 해매는 것은 아니고, 새벽 3시 결국 받아놓은 빗물로 갈증을 해결하고,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집구석 머리만 쭈뼛쭈뼛 잠도 안 오고 오만 잡생각에 문득 생선이 그립고 영원히 못 먹을 것 같은 불안감, 이곳 메뉴판에서 피시라는 단어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귀신한테 붙들려 갈까봐 새벽 참으로 라면하나 끓여먹고 뜬눈으로 지셀 참이었는데, 깜빡 늦잠에 어디서 자고 왔는지 라츠 창문을 두드리면서 일어나라고 고함이다,
세수도 당연히 빗물로, 식당로비에 차려진 불당 옆에서 라마승이 열심히 불경을 읽고 있다.
식사를 하는데 영문 모를 밀크티를 한잔 주신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한국의 인심, 적당한지는 모르지만 100루피를 불단에 놓으니 단네밧(감사합니다) 두손을 모아 합장의 예를 해주신다.
7시30분 출발 10분정도 언덕을 넘으니 평원이 펼쳐졌지만, 저 멀리 높은 산들은 앞길이 녹녹치 않음을 경고하듯 버티고 있다.
이곳은 물색깔이 부연 것이 석회성분이 많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8시10분 오르막을 시작하기 전 한숨 고르며 뒤돌아본 원경에, 군계일학 아마다블람이 우뚝 솟아 있다.
거대한 바위산 아래쪽엔 부서진 바위 너들 지대, 상단으로 오를수록 급경사 바위틈 사이로 오르고 또 오르고 우리 라츠 어디쯤 헤매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9시20분 5120M 안부에서부터 뜻밖의 보너스, 계절이 맞지 않아 히말라야에서 눈 한번 밟아보지도 못하고 가나 했는데, 하얀 산등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만년설 눈밭이 눈을 의심하게 한다.
설맹에 걸리지 않으려면 고글을 써야 한다는 게 피부로 와 닿는다.
설면에 반사 광도가 우리나라와 확연이 틀려 사람 지나간 흔적이 잘 보이지 않더니 고글을 쓰고 나니 바로 선명하다.
9시35분 온난화 때문인지 무너져 내려 웅덩이가 된 크레파스 지역을 지난 설 사면에서, 코스가 달라 해어 쪘던 조 여사님과 포타 가지, 예상치도 않은 재회를 한다.
따뜻한 차 한 잔주시며 별 탈 없는 그동안 안부와 서로 지나온 길의 위험 지를 공유하고 또 아쉬운 작별이다.
10시45분 촐라페스 5290M 27℃ 531mbar 눈 위에 오색 룽다, 고개 마루는 어딜 가나 바람통이다.
눈은 사라지고 물기가 많아 미끄러운 너들 급경사, 지나온 이의 조언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넘어졌다간 어딘가는 부러질 위험천만한 구간이다.
앞에 보이는 구릉지로 가나 했더니, 오른쪽 밋밋한 능선을 넘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크들 뒤로 수월찮은 오름이 기다린다.
12시05분 앞서가던 서양인 3명을 제치고 5085M 고개언덕에 선착, 한국에서 가져온 유일한 간식 땅콩을 나누어 주니 초코바를 답례로 권한다.
1시04분 당락로지 도착, 안면을 튀었던 외국인들도 같은 로지에 식사를 하러와 대화를 나누니 서로 스케줄이 거의 같은 것 같아, 라츠 고쿄에서 다시 만날 로지를 알려주고 1시50분 먼저 출발 한다.
먼지 펄펄 풀한 포기 없는 삭막한 빙하 침식 구간, 염방 옆에서 우루 루 무너지는 크고 작은 빙하호 사이를 돌고 도는 길, 자금 자그마하게 쌓아 놓은 돌탑이 없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한 돌밭 계곡을 건너는 협곡이다.
4755M 대여섯 개 로지가 있는 고쿄, 솥을 올려 물을 더울 수 있는 둥그런 스텐 태양 발열판과 태양열 전지판, 이곳이 오지만 아니라면 전기 줄 하나 없는 첨단 에너지 자족 청정마을로 보인다.
3시58분 커다란 호숫가 나마스떼 로지,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룸에 짐을 내려놓으니 주인아주머니 주문도 하지 않은 밀크 티부터 한잔 주신다.
히말라야에선 워낙 에너지가 귀하다 보니 냉수 아니고는 공짜라는 게 없었는데, 트래킹 후 항상 차 한 잔으로 노고를 풀었으니 계산은 나중에 두고 볼 일이고, 창가에 앉아 억지춘향분위기를 잡아 본다.
낮에 만났던 3분은 어둑어둑 해질녘 오셨는데, 한분이 거의 탈진 상태다.
자세히 보니 한분은 콧물을 훌쩍훌쩍 감기인 것 같아, 유어 콜드 코리아 메디슨 프리즈 하고 물으니 OK, 룸에서 감기약을 가져와 복용법을 설명하는데 처음에는 못 알아들어도 3번쯤 반복하니 콩글리시도 먹혔는지 우얏던 땡큐 쏘마치 란 다.
타국에서 만난 우연한 인연이지만 모처럼 따뜻한 난로 옆에서 같이 식사를 즐기며 내일을 기대하는 하루를 마감한다.
2012년 9월 23일
옆방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에 잠을 깨 시계를 보니 5시18분 어제 5시 출발하기로 했는데, 부랴부랴 랜턴 챙기고 뒷주머니에 지도 꽂고 방문을 나서니 복도에서 마주친다.
굳 모닝 내 생에 외국인과 아침인사를 이렇게 흔하게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가 않다.
영국인 2명중 감기에 걸린 엔드루는 빠지고, 에난다씨와 미국인 존 헨리씨 나 셋이서 로지를 나서는데 호수 건너 산길에 불빛이 몇 보인다.
호수 상류 징검다리를 건너다 세수를 하고, 5시30분 영국인 에난다가 앞장서고 미국인 존이 뒤에서 산행을 시작 날씬한 영국아저씨 경사지를 정말 잘 오른다.
느리긴 해도 존은 쉬지 않고 꾸준히 오르는 스타일, 고쿄리봉은 어제 대충 보긴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다.
두어 번 쉬며 40분쯤 지나니, 날도 밝아졌고 몸도 풀렸다.
한국의 매운 고추 맛 을 보여주기로 작정, 치고 올라가니 에난다 간격이 서서히 멀어지고 앞서 가는 사람들을 하나 둘 따라 잡으니 어느새 룽다가 펄럭이는 정상이다.
6시40분 고쿄리 5320M 9℃ 529mbar 정상엔 벌써 사람이 제법 많다.
그런데 저긴 뭐야 10여 미터 전방에 더 높아 보이는 봉우리 “길이 없어 못가는 봉우린가” 바위틈으로 어렵사리 길을 찾아 올라서서 고도계를 보니 지도상 5357M와 거의 맞아 진다. 5분쯤 있으니 에난다가 보여 손짓으로 불렀더니 건너오고 또 5분쯤 후 미국인과 세 사람이 뭉쳐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이동해 온다.
내 카메라는 밧데리 오링이라 없고, 존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이 양반 카메라도 말짱 꽝이다.
아! 아쉽다 눈에만 담고 가야 하다니, 그런데 성격 급하다는 한국인 제쳐두고 존이 먼저 우물을 판다.
존 옆에서 멋진 니콘 카메라로 경치사진만 찍고 있는 젊은 동양인에게 말을 붙이니 일본인 이다.
아이엠 코리언 했더니 아버지가 제일교포인 소 마쓰다 란 다.
사진은 이메일로 보내 주기로 소통하고, big mount을 배경으로 함께 어우러져 카메라 속에 岳友가 되었다.
히말라야 산행기간 2번 한가하게 보낼 수 있는 날이 남체에서 고소 적응 한다고 관광하던 날과, 산정호수의 고요함에 심신의 피로를 풀고 가라는 오늘이라 하산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적한곳에 자리해, 고쿄 Dudh Pokhari호수를 보노라니 물 빛깔은 수정처럼 푸른 비경이지만 나무 한그루 없는 주위 배경은 무언가 허허로운 풍경...
양반도 팔자에 맞아야 한다고 감성 바닥에 진득한 체질도 아니다 보니 10분도 채 않되 좀이 쑤신다.
9시30분 로지에 돌아오니 라츠와 엔드류씨가 볕을 쬐고 있다.
감기는 나아 졌냐고 물었더니, 코리아 메디슨 굿 제스처가 약 먹고 푹 자서 콧물은 멎었고 한결 좋아 졌단다.
Gokyo 호숫가에 돌을 허리 높이로 넓게 깔아 놓아 무엇 하는 것일까 했더니 옷도 말리고 곡식도 널고 야크 똥도 말리는 다용도 시설이다.
네팔만두 Momo로 아점(아침&점심)을 먹고 식곤증이 밀려와 스르르 눈까풀을 내리고 오침 든다.
어제부터 이집 주인 아들이 오면 밧데리를 충전 할 수 있다 했는데 오늘 온다던 사람이 내일 온다니, 카메라 밧데리 호완되는 충전기를 찾아 작은 동네를 다 훌터도 방법이 없다.
로지로 돌아와 삼성을 쓰는 사람이 있겠지 싶어 콩글리시로 물어보니 인도네시아 사람 중에 삼성제품은 쓰는데 호완이 안 되는 기종이라, 결국 충전을 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더 이상 사진을 남길 수 가 없게 되었다.
2012년 9월 24일
6시44분 나물 캘 들이나 밭도 없는데 로지에서 일하는 아낙, 빈 망태 메고 어딜 저리 바지런히 가시는 고?
서쪽으로 솟아있는 봉우리는 가까운 듯 보여도 다가가면 갈수록 “나잡아 봐라” 가까이 하기에 머~언 산, 가파른 중턱에 트레커 두세 명이 붙어 있다.
8시54분 526mbar 21℃ 5355M 렌조페스, 앞서 오르던 트레커들을 따라잡아 보니 에난다와 헨리 그리고 필리페라는 칠레인, 서양인들은 국경에 관계없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이 신기하고 부럽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영어도 안됨시롱 무대보로 달려든 내가 개념상실 crazy 놈놈놈
아직 저 아래서 허우적이는 나의 포타, 네팔 사람들 살림살이 고만고만 어렵다보니 영양상태 부실 체력이 좋을 리 만무하고, 강점이라고는 외국인 트래커들 보다 고소에 적응 되어 있는 것이 전부라면, 내가 고소에 시달려야 여유를 부리련만 독한 놈 만나서 라츠 재수 옴 붙은 격이다.
약간이라도 높은 곳이 보이면 본능적 자동, 5380M 꼭대기에 기어올라 발아래 키다리 친구들에게 컴온, 반응은 무언의 거부 “너나 조심 하세요” 다.
오르막 보다야 낮겠지만 히말라야의 돌무덤 급경사 내리막은 별로 반갑지도 않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더니 키다리 아저씨 아난다 성큼성큼 걸어갈 뿐인데, 2시간여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을 뛰다 시피 해야 보폭을 맞출 수 있으니, 숏 다리 삐에로의 비애를 절감한다.
10시55분 lungden view 로지 유어 롱 바디 롱 피치 하이템포, 아엠 숏 바디 스몰 피치 하이템포 마이Heart 핵핵 익스파이어 하며 꼴까닥 죽는 시늉을 했더니, 머라고 하는데 엄살떨지 말라는 제스처다.
걸리버 아저씨들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니 먼저 나서는데, 간 큰 칠레아저씨는 로지 담밖에 버너를 피웠다.
라츠 말로는 고발이 있는 경우 공원관리법 위반으로 남체에서 체포될 수도 있다는데, 사실인지는 미확인, 믿거나 말거나...
12시00 RIVER VIEW로지 닭 스프를 주문하고, 가져간 라면을 넣어 끓여 달라고 주면서 이곳 음식이 너무 짠 편이라, 염려스러워 스프는 빼고 면만 주었건만 국물이 소태다.
얼마나 짜던지 국물은 아예 먹지를 못하고, 라면 건더기만 건져 먹었는데도 저녁때까지 바닷게가 거품 개어내듯 느물느물 소금에 절 은 밥통이다.
1시55분 3915M Taranga마을을 접어들면서 수목지대로 변하고 산 골짝사이 흐르는 맑은 물, 어찌나 반갑던지 벌컥벌컥 소금기를 달래려 밥통에 채워 넣는다.
강 건너 마을도 그림 같고 완만하고 널찍한 길, 언덕 을 올라서니 멀리 거북바위가 보인다.
발아래 여남 어채 THAME마을의 수호신 인가, 가까이서 보니 거북등에 경문을 빼곡히 새겨, 부처의 영험과 내세의 發福을 비는 바위두개가 절묘하게 조화를 부려 머리와 몸통으로 한 마리 거북이 되었다.
하필 이곳 이름을 적어 놓지 않았네, 다른 로지와 달리 나무로 탄탄하게 지어진 2층 집, 식당 벽엔 힐러리경과 최초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셀파 텐징은 아니지만, 설 사면을 등반하는 장면과, 국왕을 알현하고 훈장을 받는 사진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에베레스트 등반 개척초기 유명한 셀파 집안인 것으로 보인다.
TV에 쿰부 히말랴야의 눈사태로 사상자가난 방송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로, 불이의 사고는 당했지만 갈망하는 목표를 향해 과감히 뛰어든 용기 있는 그분들이 부럽다면 이율배반의 惡童 이려나!?
작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실종되어, 안나푸르나의 山神이 되신, 산악 그랜드슬램의 사나이 故 박영석 대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2년 9월 25일
네팔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새털처럼 몸이 가뿐하다.
오늘은 또 한 번 스케줄을 조정 몬조에서 1박하지 않고 루클라 까지 내려가 리얼 체험현장 에베레스트 서민의 삶을 경험하고자 포타 라츠의 집에서 원 나이트를 목표로 한다.
카메라가 아쉽게 느껴진 곳이 거북바위와 이곳 협곡사이 이름 모를 폭포, 수목이 우거진 산등성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니 9시15분 남체에 돌아왔다.
짐 운반을 맡아 팡보체로 향한다는 라츠의 동생도 만나고, 근처 허름한 집에 들어서니 고소한 기름내, 삼각형으로 튀긴 스프링롤 이라는데 주먹 만 해,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볼록한데, 라츠 서너 개 마 바람에 게 눈 감추듯 꿀꺽이다.
알고 보니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있지만, 자기 이모 집 이란 다.
로르살레 마을로지에 맡겨둔 짐도 찾을 겸 간단한 간식을 주문하고 앉으니, 건너편 자리에서 스님 두 분이 한국산 차를 한잔 권하시며 반가운 인사를 하신다.
옛말에 통시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 틀리다더니, 맡겨둔 짐을 달라고 하니 파킹 머니를 달랜다.
짐을 포기 하겠다고 했더니, 라츠 자기라도 찾아 가겠다고 나서는 분위기가 짜고 치는 고스톱, 어째 쬐끔 거시기하다.
2시18분 몬조 게이트를 내려서니 시끌벅적 우렁찬 한국부대, 광주기아자동차 산악회 일행들, 벙어리 10일의 외로운 떠돌이 신세와 달리 단체산행의 즐거움을 맘 것 누리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고행의 시작이라 염려스럽기도 하여. 나의 산행을 참고로 말씀드리며 일정을 들어보니 여유로운 여정에 우기도 끝났으니 Good Luck을 빈다.
3시30분 팍팅을 지나 미끄러운 경사 길에 마주 내려오던 여자애가 위태로워 보이더니 앞으로 꼬꾸라져 짐 아래 깔렸다.
본능적으로 달려가 일으켜 세우는데 짐무게가 만만치 않다.
발에 통증이 있는 것 같아 발목을 만져보니 다행이 골절은 아닌듯하지만, 딛고 서는 것이 약간 삔 것 같은데 절룩이면서도 고통을 참고 짐을 지고 가는 뒷모습이 애처롭고 짠~안하다.
3시50분 토토 마을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태극기가 펄럭펄럭, 유심히 보니 한국의료원 토토하얀병원 이라 쓰여 있다.
“내려가시는 길에 필요 없으신 물품이 있으시면 무엇이던 기부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주섬주섬 구급약과 고추장, 라면, 가스, 등을 챙겨 문 을 노크했지만 아쉽게도 잠겨있어 돌아서려는데, 건너편 가게 아주머니가 코리언이냐고 물어보더니 의사가 카투만두에 일 보러 같다며 문을 열어주신다.
그리고 고맙게도 밀크티를 라츠와 내게 권하시기에 돈을 드리려니 손사래를 저어 신다.
그렇다고 그냥은 도리도 아닌 것 같고 앞으로도 좋은 이웃, 병원 잘 돌봐주시라는 마음으로 싸구려 아쿠아샌달을 드리고 루크라에 한달음에 내려왔다.
4시30분 ‘미스타 오’ 설마 나를 부르는 소리 일리야, 무심결로 흘리는데 ‘코리언’ 하는 소리를 따라 눈을 돌리니 셀파 파룰루 베드민턴 채를 흔들며 팔짝팔짝 손짓발짓이다.
짐을 두고 잠시 후 보자는 바디 랭귀지를 하고, 라츠를 따라 상점가 뒷골목으로 접어들어서니 루크라의 슬럼가로 단박에 배경이 반전한다.
양철로 벽을 두른 집 2층으로 겨우 한사람 오를 수 있는 나무계단을 올라 실내로 들어섰는데 어두침침, 천장 어딘가 머리를 부딪쳐 눈앞에 불이 번쩍하니 시야의 집안 공간이 2평이 될까 말까 정도, 내가 머물면 불편만 줄 것 같아 로지에 가겠다고 나서니 한 귀퉁이에 작은 문을 열더니 여기서 자고 가라 한다.
잠시 생각의 시간도 벌 겸 산행 내내 라즈가 힘들게 지고 다녔던 카고빽을 열어, 산행 후 주려고 마음먹었던 옷가지와 세제 등, 특히 미니어처 샘플 로션에 라츠 와이프 입이 함박만, 라츠에게 도 약속했던 13일치 임금을 쥐어주니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파눌루를 만나고 오겠다고 베트민턴 장으로 가보니 그새 사라져버렸다.
상점가와 로지거리를 오가며 파눌루 파눌루 좁은 골목이 들썩 거리게 고함을 질러봐 도 오리무중 행방이 묘연하다.
콜록콜록 집안이 오소리 굴이다.
좁은 공간 한 켠 흙으로 만든 굴뚝도 없는 아궁이에 나뭇가지를 지펴 음식을 만드니 그 연기가 어디로 갈까, 인간은 환경에 적응 하는 동물이라지만 3살배기 꼬마숙녀 눈도 깜짝 않는 것이 신통방통, 언제 사왔는지 손님대접 한답시고 닭고기 볶아 카레를 부어 만든 음식과 럭시(막걸리)로, 정말 조촐한 저녁만찬에 단출한 가족들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행복 지수는 저소득국가 가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너나없이 고만고만하니 상대적 박탈감이 적어 보편적 현실에 만족하기 때문 이련가?
이 작달막한 人士도 발 뻗고 자기도 힘든 공간, 액자만한 창틀 에 비친 장중한 산처럼 범사에 감사 하라고 별이 총총 히말라야속의 이 작은 공간을 허락 했나보다.
2012년 9월 26일
내생에 가장 심장을 벌떡이게 하던 11일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무리하는 날...
요란한 비행기 기상 소리가 불청객 이었지만, 좁고 볼품없어도 가정이라는 안정된 공간과 술기운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달개 잠을 자고 나니 심신이 개운하다.
창가에 활주로 끝 계곡 사이로 곡예 하듯 이륙하는 작은 비행기는 우아한 학의 飛翔이다.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며 작지만 500루피를 인사치레로 쥐어 주었더니 라츠 공항 사무실을 이리저리 오가며 가장 빠른 보딩 카드를 내손에 쥐어준다.
사실 일정을 앞당겨 내려왔기에, 콩글리쉬로 항공기 날짜 변경이 부담 이었는데 깔끔히 정리 해주니 감사한 마음이 以心傳心이라면 아전인수 일까나?
고락을 함께한 나의 포타 라츠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수작업으로 하는 수화물 검색대에서, 코라셉 부터 힘들게 가져온 히말라야 돌을 빼앗길까봐 조마조마, 다행히 배낭 깊숙이 코펠 안에 숨겨둔 보람인지 수색에 걸리지 않아, 압수 모면하고 한국까지 무사히 가져왔다.
계곡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아래로 떨어지던 비행기가, 기류를 타고 창공으로 고도를 높이니, 구름에 걸린 히말라야 산군의 배웅을 받으매 다시 오리라 마음은 굴뚝같지만, 녹녹치 않는 현실이 허락할 런지, 천길 아래로 보이는 산등성이에 보이는 집들은 길도 안보이고 변변한 농토도 없는 것 같은데 사람이 살수 있다는 게 미스테리 불가사의 나라다.
8시40분 공항버스가 짐 검색도 없이 공항밖 까지나와 내려준다.
먼지 펄펄 날리는 카트만두 공항 주차장을 두리번거리니, 역시 택시 호객꾼들이 우루루 달려든다.
라진밧 하우마치 600루피라는데, 이사 한곳 확인 차 이대장님에게 전화를 하니 300루피면 가능하다며 흥정 끝에 성사는 시켰지만, 잠시 기다리란 것이 20분이나 지나서야 중국인 여자 2명을 합성시켜 출발한다.
타멜바자르에 2명을 내려주고, 10분정도 더 가더니 위치를 찾지 못해, 전화도 하고 길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도 보고 이리저리 해매더니, 어딘지도 모를 골목구석에 정차해 처음이야기 한 것보다 복잡하고 먼 거리이니 돈을 더 달라한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이곳이 맞기는 한 것인가 의심 서러워 망설이는데, 생각지도 안은 이대장님 싸모가 보이신다.
수염에 새까맣게 타고 살도 좀 빠진 노숙자 몰골이니 누군지 아리 송~♬ 하신 강 데면데면 하시더니 택배 오가요 하니 `오마나' 하신다.
집안은 아직 공사 중이고, 이삿짐도 아직 못 풀어 엉망이라 반찬이 시원 찬타 시지만, 찌개 한 숟가락으로도 Take Me Home 고향 온 기분이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네팔짱 게스트하우스에 스님이 돌아 오셨나 나서려는데, 게스트 한분이 보이신다.
아직 젊어 보이는 이두현씨 내일 랑탕으로 갈려고 준비 중이란다.
랑탕으로 동행할 사람이 있으려 나 탐색 하러 나서려던 참인데, 혹시 했더니 일정이 길고 출발지도 틀려 “일 없어”(러시아 고려인 아줌마 버즌 별볼일 없다는 뜻)
타멜바자르를 걷다 기념품하나 사고 네팔짱에 들려보니, 스님께서 `살아 왔네?‘ 하시며 반겨주신다.
같이 왔던 따님들은 인도로 갔고 스님은 쿰부히말라야쪽 가실 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랑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참 저분도 랑탕 가신 다 던데 하신다.
네팔에 여러 번 오셔서 랑탕이 마지막 코스라는 이태훈님, 일정을 여쭈어보니 역시 기간이 맞지 않아 내복에 무신 그럼 그렇지 어차피 영어만 아니면 혼자가 편하지 하고 마음을 굳히는데, 그냥 출발지 까지 만이라도 동행해서 각자 일정대로 라도 움직이면 하는 의견에 동조의사를 비치니, 입산 허가신청 시간이 촉박하다시며 산림청인지 관광청인지로 선걸음에 나서신다.
택시타고 가면서 말씀을 들어보니 KT통신 국장님을 지내셨다는데, 네팔에 대한 지식과 포스가 스님 못지않다.
다행히 제시간에 접수처에 도착하여, 1300루피에 초록색 TIMS 한 장을 받아들고, 또 한 번 심장 뛰는 랑탕 히말리야의 설래 임에 불을 붙여놓았다.
지루한 장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일과 러시아 출장에 밀려 산행 기를 제때 적어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랑탕 히말라야는 시간이 오래 흘렀고 메모도 별로 없어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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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홀로 고산 등반이라 대단하십니다. 그정도는 되야 멋사모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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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와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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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째 서울 조여사캉 한번씩 만나나? 히말라야 설산에서 느꼈던 당신의 자존을
우리 회원님들에게,또한 미스터 오!에게도 항상 지닐수있도록~~~
아~~~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