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한국화와 한국미학에 대한 단상(断想)
-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金 基珠(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미학은 예술을 정의하며, 가치척도를 제시하고, 그 척도에 의해 예술을 평가하게 한다. 흔히 한국 땅에 한국예술은 번성하나 예술을 평가할 미학은 없다고 말한다. 또 한국화는 침체되었다던가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그 정체성은 물론 존재가치조차 회의하게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떠한 의미이며, 왜 그러한 현상이 있게 되었을까?
미술은 동아시아에서는 20세기 후반에도 낯선 개념이었다. 서양언어인 fine arts의 번역어인 미술 개념에 의해 미술사를 기술할 경우, 우리 미술은 그 개념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인데, 그러한 개념 정리가 안된 채 서양의 미술로 미술사나 미학이 정리되었고 비평되었으므로 아마도 혼란은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동아시아에서는 예술가와 장인을 오랫동안 구분해 왔고, 현재의 구분 중 ‘書画’만 미술이었다. 회화의 경우, 서양에는 없는, 정신성과 추상성면에서 고도의 예술성을 자랑하는 書라는 장르와는 같은재료를 사용하고 書画同源에 의해 오랫동안 상보적 관계로 발전해 왔는데, 서양기준으로 미술을 구분한 결과 서(書)의 상보적 역할이 갈수록 빈약해져, 회화에도 그 영향은 컸다. 더욱이 중국의 한자나 일본의 가나와 달리 한글은 의미와 조형성 면이 없거나 부족하고, 80년대 후 한글전용은 그 많은 찬란하고 막대한 동양 회화이론의 학문적 자료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대학 졸업자조차 전통에 대해서는 문맹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연구가 거의 불가능해졌으니, 전수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리는 없이 몸만 남은 모양새가 되었다.
반도라는 입지 때문에 가야, 고구려, 고려시대 외에는 고대부터 대륙으로부터의 영향 외에는 별로 다른 영향을 받은 적이 없는 한국화가 일제강점기에 서구로부터의 영향을 받은 일본화의 영향이나, 해방 후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 두 계통의 것이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서양화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유럽과 미국 미술에 의해 혼란을 겪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과 한국의 경제성장은 외국미술이 거의 실시간으로 보게 한 결과 개념에 대한 이해와 이론의 부재는 더 큰 혼란을 겪게 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은 해방 후, 짧은 반 세기동안 우리 미술로 하여금 대혼란을 겪게 했으며, 80년대의 국전(国展)의 폐지는 그 나마 있던 근거기준마저 흔들어 놓아, 현대 한국화 하면, 침체, 부진이 마치 대명사인 냥 진단하게 하였고, 심지어 정체성은 물론 존재가치조차 회의하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화에도 전통적인 미학이 있었는데도, 한국화의 경우, 이제까지 ‘한국화’의 미학적 정의(定義)마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 미학에 의해 미술이 평가되었으므로 서구의 현대를 받아들였다해도, 한국화도, 서양화도 온전할 수는 없었다.. 중국의 회화가 숭고(崇古)와 대자연에서 중요한 자극을 얻는 것과 달리, 한국화는 전통미학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감각만으로 기능만의 전통이 전승되고 있으니, 활력이나 열정이 주 흐름이 될 수는 없었다.
일본은 일찍이 미학, 미술사 연구는 수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발달했고, 중국도 1980년대부터 철학 쪽에서 중국미학의 서구미학과의 조응을 시도해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한국의 경우는 미학은 아직도 서구미학 일색이고 미술사 쪽에서 그 나마 한국미술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야 조금씩 학제가 기초가 잡혀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한국미학, 특히 한국의, 또는 동양의 회화미학으로 우리 그림을 평가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한국화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어떤 가치기준에서 평가해야 할까?
Ⅰ. 현대 한국화: 현대-한국-화(画)의 의미
필자는 현대 한국화를 잘 이해하려면, ‘현대’라는 시간성의 시대구분과 ‘한국’이라는 의미, ‘画’라고 할 경우와 그림이라고 할 경우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한다. 현대라는 시간적 구분은 modern과 contemporary 사이에서 여러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 교육이 정상화되고 정보취득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공간상 별 문제가 안되면서 세계와 사유가 공유된 1970년대 이후, 또는 ‘無題’시대와 ‘씨리즈(series)시대"가 이어진 1980년대 후를 지금의 의미에서 현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화이다.
1. 한국화: 한국화는 한국화라고 할 경우와 우리 그림, 또는 한국그림이라고 할 경우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국적 취득에도 국지주의가 아니라 혈통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화는 한국 혈통, 즉 한국전통을 잇는 그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화(画)’라고 할 경우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같이 사용하는 ‘画‘의 정의가 통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림’이라고 할 경우, 그림은 ‘그리다’ 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므로 실제로 한국화의 영역에 속하는 그리지 않는, 많은 그림들은 그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한자로 화(画)는 회화(絵画), 화(画)이지만, 지금도 화(画), 도(図), 회화(絵画), 회(絵), 사(写)- 특히 낙관의 경우에 ‥년(年) 사(写), 또는 누구 사(写)는 보편적인 표현이요 사군자(四君子) 또한 사(写)로 쓰인다- 는 혼용되고 있다. 과연 그들 문자의 의미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떠한 의미로 쓰여졌는가? 의 정의(定義)의 이해와 역사적으로 회화가 어떻게 품평되어 왔는가 하는 품평기준을 이해한다면, 현대 한국화를 제작하거나 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1. 화(畵)의 정의: 중국 화론상, 화(画)에는 육기(陸機, 261-303)의 ‘사물을 선양하는 데는 말보다 나은 것이 없고, 형상을 후대에까지 보존하는데는 그림보다 나은 것이 없다(存形莫善於画)는 존형(存形)의 기능과 상형의 기능으로서의 画외에, “画(그림)는 類(류)이다 (종류의 형태대로 그린다,『광아(広雅)』); “画는 形(태를 부여하는 것)이다”(『미아(爾雅)』) ;“画라는 글자는 밭 사이에 생긴 경계(畛)(로부터 도출된 글자)라는 뜻이다. 글자 자체는 밭의 경계와 밭두둑을 묘사한 것으로 그 자체가 그림이다”(『설문(説文)』),; “画는 挂이다. (윤곽을 취해) 채색을 사물의 형상에 거는 것이다(『석명(釈名)』)는 정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회화나 화가에 대한 높은 평가는 당(唐), 장언원(張彦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畵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던 듯,『역대명화기(歷代名画記)』巻一「서화지원류(敍画之源流)」모두(冒頭)에서 화(畵)의 정의(즉 夫画者…成教化 助人倫 窮神変 測幽微 与六籍同功 四時並運)는, 畵를 육경(六經)과 같은 서열로 보았고, 그 발현을 “自然에서 나와야지 지어서 만든 것(述作)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예술을 인간의 자연적인, 즉 인간본연성의 표현으로 봄으로써 그 후 중국화 내지는 동아시아 회화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그 후 형호의『필법기』의 “그림은 획이다(画画也)”는 언급이나 『석도화어록(石도 画語録)』의 「일획장(一画章)」에서 그림의 법이 중유(衆有)의 근본이요, 만상(万象)의 근원인 일획에서 서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화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일획의 법은 나로부터 서는 것으로, 귀신에게나 보이는 쓰임을 아는 예술가가 무법(無法)으로 무한한 법을 만든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국화는 창조성을 높이 평가하고, 동시에 근본에 대해 중시한다. 이러한 일획의 특성이 문인화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고, 채색을 형상에 거는 “画는 挂이다는 후대에 수묵이 주가 되면서 거는 것은 근본을 중시하는 쪽에서 보면, 색이 무시되고, 수묵․선 위주로 중국화가 진행되게 하였을 것이다.
1-2. 도(図)의 정의: 장르로 말할 때는 산수화, 인물화 같이 画이지만 작품명칭은 <몽유도원도><금강산전도>처럼 도(図)이다. 図란 무슨 의미일까? 장언원은 안광록(顔光禄, 즉 안연지: 384-456)의 図의 정의를 인용해, “도(図)의 뜻에는 다음 세 가지, 즉 첫째는『역(易)』의 괘상(卦象)같이 이법(理法)을 그림으로 한 것(図理), 둘째는 문자학(文字学)같이 개념을 그림으로 한 것(図識), 셋째는 회화같이 형상을 그림으로 한 것(図形)이 있다고 함으로써 중국의 図의 영역이 상형인 사실(写実)로부터 이법․개념까지 상당히 광범위함을 보여주었는데, 이중 도리(図理), 도식(図識)은 현대 한국화에서의 추상의 광범위한 분야의 작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외에 또 図․画를
ⅰ) 하나로 볼 경우, 조식(趙植, 192-232)의 말을 인용하여 “감계(鑑戒)의 의미로 보존하는 것이 도화(存乎鑑戒者 図画也)”라고 하여 예술의 교화(教化) 역할을 설명했고,
ⅱ) 구분할 경우, 画는 나라의 그림(画), 図는 나라의 도록(図), 지도나 율령도서를 말하고 있어, 도의 영역에서는 정선의 <금상산도>와 같은 지도도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오히려 장소를 표시하고 그 영역을 표시함으로써 더 정확한 전달이나 감상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1-3. 회화(絵画)의 정의: 회화라는 말은 “(창힐 후에) 유우씨(有虞氏, 즉 순임금)가 (관복의) 오색(五采)을 제작함에 이르러 회화는 그 독자성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洎乎有虞作絵, 絵画明焉)”는 말에 나온다. 이 글은 회화(絵画)가 지금은 画와 같이 쓰이나, 사실은 五采와 관련된 것으로 원래 다른 것이었음을 말한다. 고대에 색채는 등급을 구분하는 복장의 색채로 의(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었다. 공자가 논하고 있는 것은 복장의 색채가 예(禮)를 준수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대에 이미 오행색은 위계, 상징과 방향을 아울러 갖고 있었다. 순 임금은 오채(五彩)를 분명하게 베푸므로써 형상이 아주 형상답게 이루어졌고, 이에 예악이 크게 밝혀지고, 교화도 그로 말미암아 흥성해졌다고 한다. 이는 상형뿐 아니라 오채의 색의 중요성, 회화의 중요성이 의례(儀禮)와 관련되어 고대로부터 발전되어 내려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1-4. 회(絵)의 정의: 갈로(葛路)는 공자가 회화에 관해 이야기 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논어』에서 자하(子夏)가 여인의 미모에 대해 물은 것에 대한 답으로 한,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다음에 한다”(凡画絵之事, 後素功)는 ‘회사후소(絵事後素)’요, 또 하나는 위작의 시비가 있기는 하나『공자가어(孔子家語)』의 “맑은 거울은 모습을 살피게 해주는 것이요, 과거는 현재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夫明鏡所以察形, 往古所以知今)( 卷 3,「觀周 第十一」)이다. 이 경우 문제는 전자(前者)인데, 갈로는 ‘회사후소’는 문(文)과 질(質)의 문제를 이야기 한 것으로 ‘소(素)’는 질(質)이고, 회(絵)는 문(文)이라고 설명한다.
Ⅱ. 画의 품평: 画를 품평하는 기준은 육조로부터 시작되어, 南斉 사혁(謝赫)의 화육법(画六法)-이중 제일법인 ‘기운생동(気韻生動)’의 기운은 동 아시아 회화상 최고의 품평기준이었다- , 唐末 宋初, 형호(荊浩)의 육요(六要), 유도순(劉道醇)의 육요육장(六要六長), 곽약허의 삼병(三病)등이 있고, 품등이나 품격은 사품(四品), 즉 신(神)․묘(妙)․능품(能品)외에 전통적인 테크닉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일품(逸品)이 있었다. 문인․선승(禅僧)들의 회화에의 참여는 북송에 이르러필치가 간단하나 형태가 갖추어져 자연을 획득한(筆簡形具, 得之自然)일격을 최상위 품등이 되었고, 우리는 추사 김정희에게서 그 예를 본다.
Ⅲ 한국화의 形과 色:
전통한국화의 형과 색은 중국과 같이필치가 간단하나 형태가 갖추어져 자연을 획득한고도의 정신성의 표현 밑에 사실적인 도야가 깔려 있으면서, 임기응변에 능해 고구려 벽화나 고려불화, 조선조 그림같이 우리 속성을 만들어 내었다. 일반적으로는 남제(南斉) 사혁(謝赫)의 응물상형(応物象形)과 수류부채(随類賦彩)에 기인하지만, 상술했듯이, 図의 개념은 자연뿐만 아니라 개념이나 인식의 내용까지도 가능하게 폭넓게 열려 있었고, 질․양적으로 풍부한 과거는 현재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 숭고(崇古)를 통해 인식의 전승과 확대를 하여왔다. 현대 한국화의 부진은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의 부족으로도 보인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자긍심이 강했을 때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회사후소’에서 보듯이, 장식적인 문(文)보다는 질(質)로서의 ‘소(素)’의 중시를 생각하여, 이 素를 현대화시키고 과거라는 배경을 활용한다면, 역사에서의 강함이 오히려 한국화의 미래를 보다 밝게 전망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한국화의 형은 자연을 떠날 수 없지만, 골법(骨法)에 의한 線에 의한 형과 몰골로 의한 입체적인 형 이외에 다양한, 추상화된 형의 개발은 전통에서도 가능하다.
색은 자연 색을 기조로 하고, 서양 같은 감정의 색은 없지만, 색채가 의례(儀禮)와 관계되어 전승되었다는 사실과, 오행색이나 수묵 선염, 청록 산수처럼 색의 상징을 지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색을 쓸 경우 동아시아의 그림이 일반적으로 평담(平淡)을 선호했으므로, 수묵 선염(渲染)이든 채색이든, 몰골로 한 번에 그리든 중첩하든, 처음과 끝이 투명하게 읽혀진다는 점은 서양과 차별화되는 특성이 될 것이다.
첫댓글 여긴 음악감상실이예요.경고합니다.이동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