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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요 해설
• 가야금(伽倻琴) 타령
신라 진흥왕(眞興王)때에 가야국의 임금 가실왕(嘉實王)이 악사(樂師) 우륵(于勒)으로 하여금 만들도록 한 것이 지금의 가야금이다. 신라 때는 3현(絃)이라 하여 3가지의 현악기가 있었는데 거문고, 비파(琵琶), 그리고 가야금이 그것이다. 이 노래는 가야금의 음색이 그렇듯이 애련하고 구슬픈 연정(戀情)이 12줄에 실려 호소되고 있다.
• 까투리 타령
‘까투리’ 라 함은 암꿩을 말하며, 수꿩은 ‘장끼’ 라 한다. 전라도 지방의 너무도 유명한 민요로서 대개「둥가타령」에 이어서 불리어지며, 까투리를 지칭해서 부르게 된 것은 남도(南道) 12마당 중에「장끼타령」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전라도를 시작으로 해서 전국 8도가 나오는데, 1절의 형태에 각 지역 산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시원스럽고 재미가 있으며 매우 급하게 서둘러지는 노래다.
• 각설이 타령
각설(却說)이란 장타령꾼을 낮추어 부르는 소리로, 장터나 마을을 돌면서 구걸을 하던 걸인이 입심 좋게 장타령을 부르며 동냥을 했는데 이때 불렀던 노래가 바로「각설이타령」이다. 곡은 단순하지만 사설(辭說)의 내용이 좋고 청승스러우며 구수한데가 있어 익살스러움을 요하는 자리에서 많이 불린다. 요즘에 와서는「각설이타령」을「월령가」라고도 한다.
• 강강술래(잦은 강강술래)
팔월 보름달이 중천에 덩실 걸쳐 있노라면, 바닷가,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동그랗게 모여서서 손에손잡고 빙빙 돌며 장단도 흥겹게 부르던 노래, ‘하늘에는 별도 총총... 대밭에는 대가 총총...’,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의 노래를 인근 해안 아녀자들에게 가르쳐 군호(軍號)로 사용했다는 설이 있지만, 악속(樂俗)이 원시적인 것을 보면 기원은 그 보다 훨씬 오래 전인 것으로 보인다.
• 강원도(江原道) 아리랑
가락으로 따지자면 서울지방 아리랑을 따를 수는 없겠지만, 수양버들처럼 곱게 다듬어진 가사만은「강원도아리랑」이 으뜸이리라. 순박한 사랑을 노래하는 절박한 사랑의 넋두리가 어찌 이토록 핍진(逼眞)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디마디마다 한스럽다 못해 피멍울이라도 질듯 함이 그 뜻을 씹을수록 가슴에 맺혀온다.
• 경복궁(景福宮) 타령
북악산 기슭에 있는 경복궁은 이태조(李太祖)의 한양 천도(遷都)와 함께 세워진 궁궐이지만 임진왜란 때 타버린 후, 280여년만에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고종 2년 중건(重建)에 착수했다.
「경복궁타령」은 이때 부역에 참여했던 인부들이 부모처자가 있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으로 불렀던 노래이다. 우리는 이 노래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원군의 무리한 공사 강행에 대한 원성을 들을 수가 있으며 이러한 원성이 대원군 시대 종막(終幕)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민요는 역사보다 더 정직한 면도 있다. 요즘에 와서 이 한스러운 노래가 신민요와 같이 다른 의미로 불리어지는 것은 볶는 타령 장단과 경쾌한 선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 꽃 타령
판소리「심청가」중의「화초타령」이 곧 이「꽃타령」이다. 남도창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민요로서 한문(漢文)체의 어려운 가사로 되어 있는「화초타령」에 비해 아주 쉬운 가사로 되어 있다. 말이 화려하고 곡도 흥겨워서 많이 불린다.
• 군밤 타령
원래의「군밤타령」은 원절(元節)과 후렴의 마디 수가 같도록 되어 있었으나 양악(洋樂)의 영향을 받아서 후렴의 마디수가 줄어들었는데, 요즘 알려진「군밤타령」이 바로 그것이다. 사설과 율조에 재치가 있는 밝은 노래로 볶는 타령 장단에 속한다.
• 궁초댕기
함경도 민요의 대표적인 것으로「신고산타령」과 이「궁초댕기」를 꼽는다. 이 지방의 민요가 그렇듯이 가락은 한없이 구슬프며 구성지고, 가사는 개화(開化) 문명에 의한 남녀의 별리(別離)를 애절하기 짝이 없게 그려내고 있다.
• 금강산(金剛山) 타령
우리나라의 다섯 명산을 말하는 오악(五嶽)으로는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백두산, 삼각산이 있으며, 이 노래는 이 가운데 ‘금강산’을 노래한 것이다. 명산인 만큼 그 이름도 다양해서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리며, 지경(地境)에 따라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구분한다. 이 노래는 금강산의 절승(絶勝)을 부른 노래로서 비교적 근년에 지어진 것이다.
• 남포(南浦) 타령
원 제목은「남포의 구름」이었으나 후에「남포타령」으로 바뀌었다. 이 노래는 영주명승(瀛州名勝) 제주도를 소재로 하여, 성산포(城山浦), 서귀포(西歸浦), 모슬포(暮瑟浦), 한라산(漢拏山), 백록담(白鹿潭)의 자연 풍경을 희애조(喜哀調)가 뒤섞인 가락으로 읊고 있다.
• 널뛰기
‘널 뛰자 널 뛰자 새해맞이 널 뛰자’ 의 후렴 뒤에 많은 새해의 덕담(德談)이 나온다. 젊고 어린 여자들이 널의 양 끝에 서서 하늘을 향해 번갈아 치솟아 오르며 ‘만복무량 소원성취 금년 시절이 좋을씨고...’ 를 노래할 때마다 화사한 치맛자락은 원색의 화엽(花葉)이 되어 날렸다.
• 노들강변
한강(漢江)의 어제를 회상하고 오늘을 비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서정시(抒情詩)이다.
얼마 안되는 짧은 역사의 이 노래가 대표적인 신민요로서 불리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강안(江岸)의 버들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인생을 관조(觀照)한 알맞은 감상(感傷)이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노들강변」의 ‘노들’이라함은 노돌(老乭)이 변한 것이요, 지금의 노량진(鷺梁津)을 일컫는다. 요즘이야 노량진에서 버들을 구경할 수도 없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는 것을 이 노래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 노랫가락
조선말엽 고종(高宗) 때, 대궐 출입이 잦은 무당들이 임금에게 들려 드리기 위하여 고상한 시조시(時調詩)를 얹어 부르면서 서울 지방의 속가(俗歌)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즘이야 아무나 쉽게 부르곤 하지만, 원래는 신사(神祀)에서 무당이나 불렀던 신가(神歌)라고 할 수 있다.
「노랫가락」의 ‘노래’ 는 시조시를 얹어 부르는 관계로 ‘노래’ 라 한 것이며, ‘가락’ 은 선율을 의미
한다. 따라서「노랫가락」은 시조시를 읊은 가락이라는 뜻이다.
• 농부가(農夫歌) - 잦은 농부가
「농부가」란 농민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전국 각 처에 이런 농요(農謠)는 많지만 그 많은 것 중에서도 전라도의「농부가」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옥토 평야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곡조의 짜임새에 멋과 흥치(興致)와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세련됨이「농부가」로서는 너무도 탁출(卓出)하기 때문이다.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부지런하고 힘이 있고 건강한 삶이 있는 곳에 농부가가 있었다. 농부가는 여러 사람이 북, 장구, 꽹가리 등을 두드리며 춤을 추고, 한 사람이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 신명나는 노래다.
• 는실 타령
「는실타령」은 서울 지방에서 불리어지던 민요로써 ‘는실’ 이라는 말 그대로 흥이 절로 나는 노래이다. 닭, 개, 봉황(鳳凰), 명매기, 솔개, 꾀꼬리, 봉접(蜂蝶), 비둘기, 제비 등을 엮은 타령 장단의 흥겨운 가락이다.
• 늴리리야
기원(起源)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고, 아리랑과 함께 일제 학정(虐政)에 대항하여 분노와 비애를 실어 호소했던 노래이다. 특히 감옥살이에 시달리던 애국 동포들의 애절한 하소연이기도 했다. 원(元) 마루와 후렴이 같은 단조로운 곡이지만 취악기(吹樂器) 피리의 구음(口音)인 ‘닐리리야’ 를 재미있게 엮은 쾌상명랑(快爽明朗)한 노래이다.
• 달맞이
정월 대보름 앞동산에 둥근 달이 솟아오를 즈음 횃불을 밝혀들고 달을 맞이하러나가, 그 달을 보고 길흉을 점치고 소원성취(所願成就)를 빌기도 했다. ‘가세 가세 달맞이 가세...’, 근년에 지어진 노래치곤 적이 멋드러진 노래다.
• 담바귀 타령
‘담바귀’ 라는 말은 ‘담바고’ 즉 담배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담배가 들어온 것은 이조 광해군(光海君) 원년(元年)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노래의 발생은 임진왜란 때, 침입자 왜군에 대한 적의심 에서 불려졌다고 하지만 가사에서 나오는 ‘대한 제국’ 이라는 대문으로 보아 구(舊) 한말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단조로운 가락에 수수함이 돋보이는 노래다.
• 도라지 타령
아리랑과 같은 3박자로서, 아리랑보다 명쾌한 율조(律調)가 특징이다. 황해도 은률(殷栗) 지방에는 아주 느리게 불리어지던「도라지타령」이 있고, 서울 지방에도 같은 이름의 도라지 타령이 있으나 아리랑 곡조와 유사한 점이 많아 강원도 지방에서 유래되었으리라는 얘기가 많다. 서울 지방에서 부르는「경기산타령」에서「앞산타령」「뒷산타령」다음에 부르는 노래가 도라지 타령으로서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산골 처녀의 순정을 노래한 것이다.
• 동백(冬柏) 타령
예로부터 동백꽃은 수줍은 산골 처녀라든가, 굴과 소라를 따는 순박한 섬 처녀에 대한 서정(抒情)을 노래할 때 많이 등장한다. 온난한 도서(島嶼) 지방에서 자생(自生)하는 차나무과의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5월경에 붉은 빛의 꽃과 열매가 열리며 그 기름을 짠 것이 동백기름이다.
• 둥가 타령 - 남원산성
첫 절에서 나오는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의 ‘남원산성’ 때문에「남원산성」이란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사설(辭說) 내용에 나오듯이 화락(和樂)한 희열(喜悅)과 애정의 열락(悅樂)을 좇는 율조가 사랑가의 한 토막을 연상케 한다.
• 둥그래당실 - 오돌또기 -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이라고도 하고「오돌또기」라고도 한다. ‘둥그대 당실을 한자로「童妓大當室)」로 쓰는가 하면 ’최고로 즐겁고 기쁘다‘ 라는 뜻의 제주도 토속 언어라는 설도 있다. 제주도 지방의 특유한 방언과 내륙과는 사뭇 그 정을 달리하는 소박한 가락이 특징이며 이런 지역적 특성에서 파생된 제주도 민요는 약 1600여 수에 이른다.
• 둥둥게 타령
‘둥둥게당 둥둥게당 둥둥게당 둥당기...’ 거문고나 가야금의 의음(擬音)인 이 소리에 건들건들 거리는 흥이 솟는다. ‘사람을 칠라면 요렇게 친다냐...’ 사투리가 말하듯 남도창의 율조가 풍기는 신민요이다.
• 들국화 타령
이 노래는 들에 자생하는 산국화, 즉 야국(野菊)을 산골의 순박한 처녀에 비유했는가 하면 청초(淸楚)한 멋을 풍자하여 그리고 있다. 국화는 관상용 식물로서 잎이나 꽃을 먹는 종류가 있으며, 서리 속에서도 애련(哀憐)하게 핀다하여 사군자(四君子), 즉 매란국죽(梅蘭菊竹) 속에도 든다.
• 매화(梅花) 타령
서울 지방의 속가에 앉아서 부르는 12잡가가 있는데, 이 중 하나인 ‘달거리‘ 끝에 불리었던 노래가 곧「매화타령」이다. 예로부터 꽃에 대한 타령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매화타령‘ 이 뛰어난 편에 속한다. 사설 내용은 남녀 상사(相思)의 정을 엮었으며 노래의 제목은 후렴에서 나오는 ’좋구나 매화로구나‘ 에서 따온 것이다.
• 몽금포(夢金浦) 타령
몽금포 지방에서는「장산곶(長山串) 타령」이라고도 하며, 가사의 내용은 어항(漁港)의 정경(情景), 어부(漁夫)의 기원(祈願)과 그들의 생활상을 그린 것이다. 곡조도 뱃사공이 노를 젓기에 알맞도록 운율적(韻律的)으로 되어 있으며 몽금 포구를 중심으로 성창(盛昌)되었다. 몽금포는 백사청송(白沙靑松)과 벽파(碧波)가 눈부시며, 춘삼월의 명사십리(明沙十里)는 불타는 듯한 진홍색 해당화가 일품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황해도 장연군의 장산곶 북쪽에 위치한 몽금포의 풍광(風光)과 풍취(風趣)를 읊은 것이다.
• 물레 타령
이 노래는 전라도 민요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며, 민요라기 보다는 푸념거리로 생각된다. ‘워리렁 워리렁...’ 한 바퀴 돌 때마다 섬섬(纖纖) 명주실은 그 옛날 물레질을 하던 아낙네들의 시름과 한숨속에 그렇게 뽑아졌으리라. 율조는 부르는 사람의 심사(心事)에 따라 각양각색이며 사설(辭說)도 그때그때마다 아무 말이나 갖다 붙여서 부르는 것이 특색이다.
• 밀양(密陽) 아리랑
‘밀양 아리랑’ 은 경상도 민요이나 지금은 전국적으로 불리어지는 대중 민요가 되었다. 이 노래에 대한 유래는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그 옛날 밀양부사 이 아무개에게 ‘아랑’ 이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 얼굴이 아름답고 마음이 어질며 재주 또한 많아서 원근(遠近) 동리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관아(官衙)에서 심부름하던 젊은 관노(官奴) 허씨가 아랑의 고운 자색에 반해 급기야는 아랑의 유모를 꾀어 아랑을 유혹토록 하니, 그 곳이 3월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던 영남루(嶺南樓) 였다. 백화난만(百花爛漫)한 그 곳에서 싸늘한 강바람을 쐬며 하는 달구경 또한 정취(情趣)여서 아랑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유모는 간 데 없고 느닷없는 사내가 나타나 연모(戀慕)의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 무례함을 꾸짖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애원하는 지라...
결국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챈 허씨는 이제까지의 연정을 증오하면서 단도(短刀)로 아랑을 찔러 죽인 것이다. 그 후로 밀양에 신임 사또가 도임하면 그 첫 날밤에 아랑의 넋이 나타나 억울함을 통곡하는데, 그 때마다 신임 사또들이 혼절해서 죽고 말았다는 것, 이런 소문을 들은 한양 남산골의 어느 젊은 선비가 그 내막을 캐기 위하여 자원하여 밀양 부사로 내려왔다. 이 신임 사또가 초야에 촛불을 밝히고 기다림에 아니나 다를까 아랑의 넋은 또 다시 나타났고, 자초지종 하소연을 듣고난 젊은 사또는 이튿날 허씨와 유모를 잡아 가두어 아랑의 넋을 위로해 주고 영남루 아래에 ‘아랑각’ 이라는 사당을 지어 주었다. 이 후로 밀양의 아낙네들은 아랑의 정절(情節)을 찬미하게 되었고 그 때 불렀던「아랑가」가 세구연심(歲久年深) 하여 오늘날의「밀양 아리랑」이 되었다 한다.
• 박연폭포(朴淵瀑布) - 개성난봉가(開城難逢歌)
첫 절 수구(首句)가 ‘박연폭포’ 로 되어 있어「박연폭포」라 부르지만 원 제목은 서도민요(西都民謠) 난봉가의 하나인「개성난봉가」이다. 이 노래는 경기 민요에 속해 있긴하나, 황해도 난봉가의 영향을 받아서 황해도 민요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겠다. 박연폭포는 일명 산성폭포(山城瀑布) 라고도 하며,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송도3절(松都三絶)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 방아 타령
신라의 자비왕(慈悲王) 때, 서울 낭산(狼山) 기슭에 살던 백결(百結) 선생이 세모(歲暮)를 맞이하여 떡방아 찧을 양식이 없음을 탄식하는 그의 부인을 위로하기 위하여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내었던 것이 세상에 알려진 바, 이것이 후에 대악(碓樂)이라 불려졌으며, 확실치는 않으나 ‘방아타령’ 의 원조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노작가(勞作歌)로서 그 연원(淵源)은 오래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 노래는 서울과 황해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로 세마치장단에 경쾌하면서도 굴곡이 많은 멋드러진 민요이다.
• 뱃노래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선잠을 깨고 보니, 망망대해(茫茫大海)를 순풍(順風)따라 흘러가는 작은 배는 물새 소리가 유일한 벗이라, ‘에야누 야누야 에야누 야누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뱃전을 넘나드는 물결소리에 풍류가 있고 달빛에 물든 먼 바다에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뱃사공의 노래 소리가 처량하고 서럽다.
• 베틀가
베틀가는 부녀자들이 베를 짤 때 조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노작가(勞作歌)이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세속화되어 서울 지방의 속요로써 유명해진 것이다. 밝은 노래에 속하는 음률(音律)이지만 가사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그 옛날 베를 짜던 부녀자들의 꿈과 희망과 사랑과 수심이 함축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 보리타작 - 옹헤야
보리타작 때 부르는 노작가(勞作歌)로서 후렴의 ‘옹헤야’ 를 따서「옹헤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지금이야 기계 문명의 발달로 농기계가 모든 일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보리타작을 하면서 부를 기회는 없겠지만, 그 옛날에는 이 장단에 맞추어 도리깨를 넘기며 보리타작에 신바람을 냈으리라. 경상도에서 성창되었으며 고박(古朴)한 농요(農謠)의 백미(白眉)라 해도 한 치의 부끄럼이 없다.
• 뽕따러 가세
남도창에 속한 새로운 민요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누에치기는 먼 상고 시대부터 연원(淵源)하여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 초에는 뽕나무를 가구마다 심도록 권장하는 법제(法制)를 펴, 어디를 가나 누에를 치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였으며 궁궐의 비빈(妃嬪)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아녀자에 이르기까지 여인의 아름다운 구실로 삼았다. 이 노래는 뽕을 따는 여인의 낭만과 기쁨을 화락(和樂)한 성조(聲調)로 노래한다.
• 사발가
이 노래를 왜「사발가」라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설이 없는 실정이다. 다만 서울 근교에서 불리어졌으며 가사에 나오듯이 우리 민족의 울분이 응어리져 있다는 것이다. 70여년 전, 한일합병 당시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온 울분의 한 구절 ‘석탄 백탄 타는데는 연기나 퍼벌석 나구요, 이네 가슴 타는데는 연기도 김도 아니 나네...’ 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共感), 구전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 사설난봉가(辭說難逢歌)
사설 난봉가는「난봉가」의 변체이며 제목에서 말해주듯 많은 말의 가사로 엮어져 있다. 또 서도(西道)의「병신난봉가」「경복궁타령」과 비슷하며 사설 전반에 걸쳐 풍자와 해학이 넘쳐흐른다.
※ 말을 한꺼번에 몰아 붙여 엮어 나가는 가락을 사설, 엮음, 또는 휘몰이라고 한다.
• 사설(辭說) 방아타령
방아타령에 비해서 후렴은 길고 원절에는 좀 더 많은 사설을 붙인 방아타령의 파생곡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아타령은 경기도 민요인데 반해「사설방아타령」은 끄는 소리라든가 짜는 소리 등을 필요로 하는 서도(황해도) 창이라야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 산염불(山念佛)
이 산염불은 황해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느리게 펼쳐지는「긴 염불」과 조금 빨라지는「자진(잦은) 염불」의 두 가지가 있으며, 불가(佛家)의 소리인 이 노래들이 세속화되어 관서지방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성창된 노래이다. 하염없이 슬프게 늘어지는 것이 진정 허무와 무상을 느끼게 하며 굴곡도 많고 해서 듣기에도 구성지고 멋이 넘친다.
• 새 타령
흔히「새타령」하면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원작은 ‘삼월 삼짖날 연자 날아들고 호접은 편편 송림 나뭇가지 꽃이 피었다.’ 로 시작된다. 봉황새, 풍년새, 앵무새, 명매기 등 온갖 새들을 형용(形容)하여 노래를 부른 다음, 이러한 새들의 울음소리를 노래로 표현하는데 그 흥치(興致)가 있다.
• 성주풀이
성주풀이의 성주는 ‘성주신(城主神)’ 을 말하며, 풀이는 ‘굿’ 이라는 뜻이다. 음력 10월을 상달이라 하여, 길일(吉日)을 택한 다음, 일가의 평안무사(平安無事)를 기원하는 굿으로, 햅쌀과 주식(酒食)을 갖추어 성주신에게 바친다. 무당이나 판수들이 입담 좋게 주워섬기던 이 풍속은 토속적인 농악놀이로 발전하여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성해 성창되고 있다.
• 신고산(新高山)타령 - 어랑(漁郞)타령
‘신고산이 우루루~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구고산(舊高山) 큰애기 반봇짐만 싼다네...’ 구성지고 소박하며 향토색 짙은 이 노래의 첫 절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개화(開化)의 물결이 함경도 두맷골 고산(高山)에 찾아와, 철로가 생기면서 고산(高山)은 구고산(舊高山)이 되고 새로운 정거장은 신고산(新高山)
이 되니,「신고산타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명 ‘어랑 타령’ 이라고 부르며 함경남도 각 지방에는 이 노래가 없는 곳이 없다.
• 아리랑
민족의 숨결과 발자국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한「아리랑」은 한말 이후, 일제40년을 통하여 억눌려 왔던 우리 민족의 감정과 분노만큼이나 종류와 어원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긴 아리랑」「별조아리랑」「밀양아리랑」「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등이 있다. 어원에 대한 몇 가지의 유래를 살펴보면,
악랑설(樂浪說) : 태고적, 우리 민족이 북에서 남으로 이동해 올 당시에 넘던 고개 즉, ‘악랑 고개(자비령:慈悲嶺)’ 일 것이라는 지리사학적인 측면에서의 고찰(考察)이다.
아랑설(阿娘說) : 밀양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로서, 그 옛날 밀양 부사의 외동딸 ‘아랑’ 이 젊은 통인(通引)의 요구를 거절하다 죽자, 그 절개를 애도, 찬미한 데서 나왔다는 얘기다.
알령설(閼英說) : 신라 건국이전 부족국가 시절인 BC 69년 3월, 서라벌 6부의 촌장들이 모여 장차 나라를 세울 것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을 때, 양산 나정 근처의 알속에서 태어난 사내아이와 같은 날 ‘알영정’ 이라는 샘가에 용이 나타나 왼쪽 갈비뼈 밑으로 낳은 계집아이가 있었으니 촌장들은 크게 기뻐하여 양지바른 기슭에 궁실을 짖고 받들어 키우더니 두 아이가 13세가 되던 해인 BC 57년에 사내아이를 왕으로 추대하고, 계집아이를 그의 왕비로 삼으니 그들이 바로 ‘박혁거세’ 요 ‘알령’ 이라. 온 백성들은 왕비인 알령의 수려한 용모와 영특함을 추앙함에 ‘알령’ ‘알령’ 을 외쳤고, 이 후로 알령이 ‘아리랑’ 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또 알령과 사연이 있던 고개를「아리랑 고개」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설화이다.
아이롱설(我耳聾說) :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원납금(願納金)의 독촉에 못 견딘 백성들이 ‘但願我耳聾不聞願納聲(단원아이롱불문원납성/원하노니 내 귀나 어두워져라, 원납소리 듣기도 싫다)’ 를 읊었으며, 구전되는 과정에서 ‘아이롱~아리랑’ 이 되었다는 설이다.
아난리설(我難離說) : 진시황(秦始皇)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그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부역 인부들이 ‘魚游河我多苦(어유하아다고)’, 즉 물에서 노니는 고기떼를 부러워하면서 불렀던 노래가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에 징발(徵發)된 인부들에게는 ‘魚游河我難離(어유하아난리)’, 즉 ‘고기는 물에서 자유롭게 노니는데 우리는 떠나기도 어렵구나’ 로 불리워 졌으며, 여기서 ‘아난리~아라리요’ 로 변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처자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인부들이 향수에 젖어서 ‘아리랑(我離娘)’ 하고 노래하던 것이 아리랑의 발단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알령천설(閼英川說) :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알령천(閼英川)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로서, 이 알령천은 현재의 불국사 서쪽으로 흘러 서천(西川)과 합류하는 내이다. 또 석굴암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아리영정(娥利英井)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아리설 : ‘볼~올~알~아리’로 변형되었다는 언어학적인 면에서의 설득력 있는 고찰이다.
이 만큼 ‘아리랑‘ 의 유래에 대해서 많은 학설이 있지만 어떤 것이 정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다만 한 가지, 위의 많은 아리랑설이 하나같이 엉클어진 민족의 공통된 감정을 표백(表白)하고 있다는 점이다.
• 양류가(楊柳歌/버들노래)
이 노래를 황해도 민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오봉산타령」과 같이 가볍고 맑은 소리로 되어있어 황해도 민요의 특색인 괴롭고 아픈 소리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가사가 말해주듯 남녀의 정감어린 내용을 굿거리장단에 싣고 있다.
• 양산도(陽山道)
양산도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신라 태종왕(太宗王) 때의 김흥운(金興運)이 ‘낭당대감’ 이 되어 백제군과 싸우다 양산 땅에서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당시 신라 사람들이 이를 애도(哀悼)해서 지어 부른 노래가 곧「양산가」였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이조 개국(開國)을 송축(頌祝)한「양산도」가 있다. 또 양산도(梁山刀/양산의 칼)라 하여, 부호가(富豪家)의 첩으로 강제 결혼을 하게 된 누이동생을 만류하다 급기야는 자결을 하려고 하는데, 그의 부친이 ‘에라 놓아라’, 양산은 ‘아니 못 놓겠소’ 하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렸한 설은 아니다. 노작가(勞作歌)로서 원 절을 한 사람이 부르면 여러 사람이 후렴을 부르도록 되어있다.
• 오돌독
서울지방에서 불려지던 민요로서「사발가」와 마찬가지로「오둘독」의 확실한 뜻은 알 길이 없다. 일부에서는 제주도 민요인「오돌또기」가 서울로 옮겨져 밝고 깨끗한 품으로 치장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지만, 제목의 유사성을 제외하고는 가사와 음조, 후렴 등이 확연하게 다르다. 또 제주도의 오돌또기는 ‘할미꽃’ 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노래는 그런 내용하고도 무관하다.
• 오봉산(五峰山) 타령
‘오봉산’ 이라는 이름은 강원도 금강산 등, 각 지방의 크고 작은 산에 많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오봉산은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는 오봉산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지방의 소리가 그러하듯 단아하고 화창함이 특색인데 노래 중간 중간에 의미 없는 입타령 ‘에루화’ 를 삽입해 운치(韻致)를 더하고 있다.
• 울산(蔚山) 아가씨
처용(處容)의 설화가 얽힌 처용암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울산은 예로부터 농산물, 수산물, 광산물이 풍성하여 임심이 좋기로도 소문이 났다. 이 노래는 이 고장 처녀들의 소박한 심경을 세마치장단에 정곡(情曲)있게 그려내고 있다.
• 이별가(離別歌)
‘회자(會者)는 정리(定離)’ 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은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난다는...! 그러나 이별은 쓰리고, 가슴 아프고, 애절하기 그지없다. 차마 이별의 순간을 견딜 수가 없었던 아낙네는 문 첩첩이 닫아걸고서, 가슴 무너져 내리는 한숨에 눈물도 그만큼 뿌렸으리라. 이「이별가」는 그 생긴 연대가 결코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정든 임과의 서러운 이별을 목이 메도록 안타까워하는 비통이 서려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한북행정록(漢北行程錄)’ 에 의하면 ‘수로(水路)만리 험한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가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 이러한 이별가를 불렀다’ 는 기록이 있다.
• 이야흥 타령
최근 대중가요에「정 떨어졌구나」로 불려지기도 했던 이 노래의 ‘이야홍’ 을 ‘이야옹(伊野翁)’ 즉, 농부(農夫)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도에는 내륙의 그 어느 지방보다도 민요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불리는 것이 이「이야홍 타령」일 것이다. 이 지방의 대부분 민요들이 그렇듯이 이 노래도 부녀자들의 독특한 생활에서 빚어지는 구구절절 애절한 사연과 심산한 삶이 표출되고 있는 정가(情歌) 라고 할 수 있겠다.
• 자진 방아타령
본래는「잦은 방아타령」이라고 표기해야 하며 서울지방에서 불려지는 선소리의 경우,「놀령」「앞산타령」「뒷산타령」「도라지타령」「긴 방아타령」에 이어서 나오는 노래이다. 한 사람이 소리를 메
기면 여러 명이 후렴으로 받는 볶는 타령장단의 경쾌하고 재미있는 소리의 하나이다.
• 정선(旌善) 아리랑
정선은 강원도 동남부에 위치한 고읍(古邑)이다. 이 노래에 대한 유래는 대충 이렇다.
옛날 정선 골에 스무 살의 한창 나이로 철부지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신랑에게 시집간 색시가 있었다. 매일 매일 신랑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세상이 싫어진 색시는 세상 하직(下直)을 결심하고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정선 강가로 나갔다. 그러나 문득 돌고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보고 세월도 빙글빙글 돌아 철부지 신랑도 자랄 때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돌아와서 불렀다는 노래가「정선 아리랑」이라 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조선 중종 무렵, ‘을사사화’의 난을 피하여 낙향했던 선비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읊었던 것이며, 고종 2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태백산에서 나무를 나르던 뗏목꾼들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확산 불려졌다 한다.
• 진도(珍島) 아리랑
진도는 평지는 적지만, 기름지고 동백꽃이 많이 피어 예로부터 풍광(風光)이 좋기로 유명하다. 후렴부에 나오는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중 ‘응응응’ 하는 자못 선정적(煽情的)인 감미로운 콧소리가 특색이며 소박한 인심과 향토색이 짙어서 이 곳 사람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 부른다.
• 창부(唱夫) 타령
굿 12거리 중 그 11번째가「창부타령」으로서「노랫가락」과 함께 무당소리가 대중화된 것이다.
노랫가락에 비해서는 노랫말이 길고 짧음에 대중이 없다. 또 원(元)마루는 무당이 혼자 부르고 계대(啓對)는 그저 장구로만 반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몹시 흥이 나는 노래로서 굿거리장단이다.
• 천안삼거리(天安三巨里) - 흥(興)타령
원래는 제목이「흥타령」이었으나 첫 절(마디)에서 나오는「천안삼거리」로 더 알려졌다. 이 곡이 처음 생긴 곳은 충청도 천안일 것이 분명하겠지만, 발생에 대한 색다른 설화가 있어 흥미를 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인 조선조(朝鮮朝)말기, 조성하(趙成夏)라는 사람이 평양 감사로 부임하였으나, 풍광(風光) 좋은 대동강 변에서 선유(船遊)에만 소일하는 터라 백성들이 걱정스런 마음에서 ‘성화가 났구나’ 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 여기서 나오는 ‘성화’ 는 ‘조성화’ 의 이름도 되지만 ‘걱정’ 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어 그럴듯한 얘기이다. 이러한「흥타령」으로는 요즘 흔히 부르는 것과, 그 보다 훨씬 이전의 민요, 그리고 남도 민요에서 불려지는 것이 있다. 무용곡(舞踊曲)으로 많이 사용된다.
• 청춘가(靑春歌)
개화기에 불리어졌던「이팔 청춘가」가 있었다. ‘촌음을 아껴 글과 덕을 닦자’ 라는 사설로 되어 있는..., 바로 글방 훈장처럼 의젓하게 청춘을 훈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청춘가」는 이팔 청춘가의 음조를 빌어, 홀로 된 젊은 과부의 공규(空閨)를 달래는 슬픔이 주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씩씩하고 멋스러운 곡조에 청춘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며,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에 하급 화류층(花柳層)에서 남녀 구별없이 크게 성창(盛唱) 되었다.
• 쾌지나칭칭 나네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일대에서까지 널리 성창(盛唱) 된 노래이다.
전해내려오는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유린(蹂躪)해 올 것을 염려해서 백성들이 만들어 불렀다는데, 즉 ‘가등청정 오네~쾌지나 칭칭 나네’, 그러나 ‘쾌지나 칭칭 나네’ 에 다른 뜻이 있기 보다는 막연한 후렴으로서의 구음(口音)에 불과하다.
• 탑(塔)돌이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 대자대비(大慈大悲) 무한(無限)하신 자비(慈悲)로써 중생(衆生)을 제도(濟度) 하시려고 인도의 ‘카필라’ 왕의 태자로 태어나신 날, 이 날은 낮에 행하는 관욕식(灌浴式)과 밤에 행하는 연등(煙燈)과 탑돌이의 행사를 한다. 탐 주위를 백 여덟 번을 돌면 소원 성취한다고 새 옷 입은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은 등불을 밝히고 밤새도록 탑을 돌았다. 꿈과 풍류(風流)와 멋이 설레는 꽃다운 행사였다.
• 태평가(太平歌)
작사, 작곡자에 대한 증빙할만한 육필(肉筆) 악보가 발견됨으로써 해방 이후의 노래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 후로 몇몇 사람이 새롭게 편곡, 정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노래는「창부타령」과 같은 흥겨운 굿거리장단이며 창부타령이 변조된 노래라는 얘기도 많다. 남녀 사랑을 엮은 서정과 인생 허무를 통탄한 비관이 허공을 나는 듯한 흥겨운 가락에 엉클어져 있다.
• 통영(統營) 개타령
통영군은 동(東), 서(西), 남(南)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으며, 세병관(洗兵館), 한산도(閑山島), 용화사(龍華寺), 남망산(南望山) 등의 명승 고적이 있다. 이 고장의 독특한 민요로 전해오는「통영 개타령」은 ‘멍멍멍멍’ 개 짖는 소리를 그대로 묘사해 익살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락에도 장난기가 있어 전반적인 흐름에 흥치가 있다.
• 풍년가(豊年歌)
옛 이름은 ‘길 타령’ 이다. 경기도 민요로서 추수를 끝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징, 꽹과리, 북, 장구 등의 멋진 장단에 흥을 돋우며 올해도 풍년, 명년에도 풍년, 세세년년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소박한 감사의 노래이다. 약동적인 리듬의 흥겨운 굿거리장단이 법열(法悅)과 감격의 한 판을 이룬다.
• 한강수(漢江水) 타령
이 노래는 서울지방에서 성창(盛唱) 되었던 민요의 하나로써 서서 부르는 입창(立唱)에 속한다. 한강의 역사와 대자연을 읊으며, 한강에 배를 띄우고 유유자적(悠悠自適) 선유(船遊)하는 옛 선인들의 애환 등을 엮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한탄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강수는 말이 없으련만 그 위에 부침(浮沈)하는 인간의 영욕(榮辱)이 굿거리장단과 매끄러운 율조에 흐른다.
• 한 오백년(五百年)
강원도 민요의 특색인 소박하면서도 곱게 치장된 곡조가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듯하다.「정선아리랑」과「강원도아리랑」의 중간 중간을 따서 만든 것으로서,「한오백년」이라는 제목은 노래 가사에서 빌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 노래의 가사도 근년에 누군가가 지어서 불렀으리라 본다.
• 함양(咸陽) 양잠가(養蠶歌)
경상남도 함양지방에서 성창(盛唱)된 노래로 양잠에 대한 뜻은 별로 없고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는 경향이 많은 향토적인 소박한 맛이 나는 노래이다. 전반적인 흐름은 뽕나무를 길러서 누에를 치고, 명주 옷감이 되는 과정까지를 엮었으며, 사설(辭說) 중간에 나오는 ‘아이가이가...’라는 입타령이 멋스럽다.
• 흥(興) 타령
이「흥타령」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천안 삼거리~’로 시작되는 일명「천안삼거리」요, 다른 하나는 전라도 지방에서 성창(盛唱)된 ‘흥 타령’이다. 이 두 노래는 곡조도 대조적으로서 천안 삼거리에 비해 전라도의 흥타령은 비애(悲哀)와 한탄(恨嘆)과 한숨과 눈물로 남녀의 정(情)과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그리는 일종의 푸념 타령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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