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두목사/예배,온 힘 다해 섬기기 (골 3:23)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을 갖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우리 울산교회는 올해, 구주대망 2008년의 연간 표어를 예배의 영광이 충만한 해로 삼고, 이 달 들어 세 번째로 예배가 무엇인지를 다시 살피고 있습니다. 첫 시간 예배, 관심 집중하기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예배란 하나님께 사랑 표현하기란 제목으로 살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 온 힘 다해 섬기기란 제목으로 세 번째 예배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인은 하나님께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신앙이 없는 사람과 확연한 차이를 내는 부분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관심을 쏟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배란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는 행동입니다. 성도는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관심을 쏟는 동시에 엿새 동안에도 하나님께 관심을 쏟는 예배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또한 예배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반응입니다. 그 크신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기쁨으로 반응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분들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을 드리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나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서 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필 주제 예배, 온 힘 다해 섬기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삶 전부를 주님의 손에 내어드린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우리 자신을 드리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뜻을 다해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힘을 다해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말로 하는 고백만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입맞춤도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남편들은 “뭘 꼭 말로 해야 하느냐!”라고 말하지만 동서양의 모든 아내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입맞춤을 통해서 신체적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랑을 나타내는 또 다른 종류의 표현이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친절한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귀찮은 일도 있습니다. 집안일 가운데는 정말 하기 싫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고쳐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바로 달려가서 해야 하는 심부름도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거들어야 하는, 책임을 나누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로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힘을 사용해서 보여주어야 할 사랑이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고치고 상대방을 도와주고 서로 섬기며 함께 나누는 일들을 통해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3절은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놀랍게 변할 것입니다. 이 구절을 바로 이해한다면 오늘 예배의 자리에 들어오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문자 그대로 어떤 일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꼭 중구 복산동에 있는 예배당이나 숲 속의 기도원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쏟고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아는 것이 하루에 3시간씩 큐티를 하고 8시간씩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날이면 날마다 교회당을 찾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해도 누구를 위해서 하는지를 바로 알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일은 예배가 됩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의 삶을 피자처럼 나누지 마십시오. 경건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직업 활동, 신앙활동 등으로 조각을 내지 마십시오. 새벽기도시간, 큐티시간, 구역모임시간, 주일이면 예배드리러 오는 시간으로 조각 조각내어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마다 초대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모든 활동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하루 삶 스물 네 시간, 일주일 168시간 모두에 동참하기를 바라십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시간에만 하나님 되시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여느 이웃집 아저씨처럼 살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여느 이웃집 아줌마처럼 살아가기를 바라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순간순간마다 동행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사실을 잘 알게 되신다면 여러분의 삶은 전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살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위해서 어떤 자세로 그 일을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십시오. 하찮은 일이라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일은 예배가 될 것입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팔든지, 빵집에서 빵을 팔든지, 음식점에서 음식을 팔든지, 정육점에서 고기를 팔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고객을 하나님 맞이하듯이 대하십시오. 고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듯이 하십시오.
그러면 바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비록 옷 수선 집에서 바지를 고쳐주든지,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듯이 하십시오. 의사로서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도,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도 예배가 됩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든지, 법정에서 변호사로 일하든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트럭을 몰든지, 택시를 운전하든지, 세일즈를 하든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여 하면 그 사역은 예배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진로를 두고 염려합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직업을 인해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을 해야 하나, 저 일을 해야 하나로 생각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실까에 대해서 고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오늘의 우리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특정한 일에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우리를 지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부분에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관심과 능력에 따라서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사냐고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머리를 쓰고 움직여서 먹고 살았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인본주의자입니다. 하나님은 땅 위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먹인다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일로 쉬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6년을 일하고 한 해는 쉬도록 하셨고, 49년째와 50년째는 2년을 연달아 쉬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분인 것을 우리가 알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을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 충성을 하시고 먹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감당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하면 사는 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가 문과를 가든지 아니면 이과를 선택하든지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트럭운전사가 되든지, 변호사가 되든지, 의사가 되든지, 간호사가 되든지 보다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그 일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그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수선공이 된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다하여 주님 섬기듯이 이 일을 하겠습니다.” 그 때 옷 수선이든, 구두 수선이든, 우산 수선이든 목사가 설교하는 것과 꼭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음식을 잘 만드십니까? 식구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든지, 아니면 손님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든지 상관이 없이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십시오. 혹시 서류를 잘 챙기고 분류하는 일을 잘 하십니까? 마치 하나님을 위해서 하듯이 그 일을 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루 스물 네 시간이 예배하는 시간이 됩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처럼 예배하는 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일주일 엿새 동안 교회당 밖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배가 교회당에서만 드려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예배되기를 바라십니다.
여기 로마서 12장을 풀어서 쓴 성경이 있습니다. “잠자고 먹고 일하러가고 돌아다니는 여러분의 일상생활 모두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십시오.”(롬 12:1상, 메시지성경) 여러분의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의 진수입니다. 신앙인은 자기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진정한 삶은 교회당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역모임이나 소그룹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는 개인 묵상시간이나 기도시간에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삶, 세속적인 삶, 날마다 하는 모든 일 가운데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침에 이 음식 쓰레기를 당신을 섬기는 마음으로 버리러 갑니다.” 그런 마음이면 이불을 개는 일이든, 침대를 손질하는 일이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마루를 닦든지, 승용차를 씻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든지, 빨래를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그러면 모든 일은 예배가 됩니다. 하는 일에 여러분의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그 일은 바로 예배행위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두고 잠자리에 들면서 기도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직장으로 출근할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했던 동일한 일을 또 한 주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십 년 이십 년도 넘도록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일부터 새로운 주인을 섬기듯이 새롭게 일하겠습니다. 이젠 정말 주님 당신을 위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 영광스런 예배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이 하는 일에 능률이 향상되고, 일하는 기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되도록 소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 전부가 예배행위로 변할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변화된 삶의 스타일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 모두는 무엇인가를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은 예배자로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유전인자 속에 예배본능을 심어주셨습니다. 예배하도록 빚어놓으셨다면 여러분은 결코 예배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인간이길 멈추질 않는 한 예배하길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느 지역을 가도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이 아니면 헛된 우상이라도 섬깁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 아니면 인기 있는 연예인이라도 숭배합니다. 참된 하나님이 아니면 가짜 신이라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 자신이라도 숭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 말씀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관심 첫 번째 자리에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애정 첫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을 쏟는 첫 번째의 일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직장일 수도 있습니다. 돈 버는 것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결혼하는 것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적인 쾌락도 여러분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의 관심 첫 번째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바둑일 수도 있습니다. 증권일 수도 있습니다. 낚시일 수도 있습니다. 축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 활동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시간 쓰는 것, 돈 쓰는 것이 아깝지 않는 일이 바로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러분의 사랑, 그 첫 번째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쏟는 첫 번째 일이 바로 여러분의 우상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과 능력을 다해서 섬기는 것이 무엇이든 아니면 누구이든 그것이 여러분의 신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서 겪는 가장 큰 유혹이자 범할 수 있는 최대의 죄악은 하나님 대신 무엇인가를 섬기려는 유혹입니다. 목사는 그런 유혹을 받을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 목사들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모든 문제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문제이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보다 그 무엇을 더 사랑하면 여러분은 혼란과 충돌과 스트레스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바른 일보다 편안한 일을 추구하면 문제에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나의 자아를 보호하려고 들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마련입니다.
하나님보다 내 체면을 중시하게 되면, 이익을 앞세우게 되면,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삶에 각종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거듭거듭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 대신 다른 무엇을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창조주보다 다른 어떤 것에 여러분의 관심을, 여러분의 사랑을, 여러분의 능력을 쏟게 하는 유혹이 우리가 당면하는 최대의 유혹입니다.
여기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관심과 사랑과 우리의 능력을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께 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살펴 주시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은 말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여라. 네 속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을 허락하시리라. 네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걱정하느냐? 오직 여호와께 맡겨라. 주께서 그 모든 것 다 이루어 주시리라.”(시편 37:4-5, 현대어성경)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면 우리의 모든 세세한 일 하나하나까지도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는 것 처럼 딱딱 갚아주시기도 하십니다.
여러분 각 사람의 신앙의 여정에도 돌아보면 이와 같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주 세밀한 일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지 알면 알수록, 우리를 얼마나 세심히 돌보시는지 알면 알수록 그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쏟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온전한 사랑을 쏟을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을 다해 주 하나님을 영원토록 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세상에서 우리가 그 연습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은 성도에게 천국에 가서 드릴 예배 연습장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저지르는 인생 일대의 실수는 여러분의 기본 목적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평상시 여러분의 마음이 자연히 쏠리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예배의 대상입니다.
저처럼 매일 시간 사용하는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면 내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 것인지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일이 바로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며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여러분의 삶의 가장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 여러분의 삶에도 목표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고후 5:9, 표준새번역)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목표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개인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우리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 주어지는 한 주간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우리의 본래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주님을 섬기는 훈련을 하는 기간으로 삼아보십시오. 잠도 줄이고 필요하면 시간도 주님 뜻대로 쓰는 한 주간 삼아봅시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구역별로 내일부터 시작되는 특별기도회 참석계획을 세워보십시오. 새벽 5시, 6시, 그리고 저녁 9시 반에 갖는 고난 주간 특별기도회의 자리에 나오는 것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식구들이 결정해서 한 끼를 금식하든지 각기 용돈을 할애하든지 북한에 있는 결핵 걸린 어린이들을 살리는 3만 원 헌금에 가정별로 참여하는 일도 민족의 고난에 참여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결핵에 걸렸는데 3만 원만 있으면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는데 고치지 못하고 땅에 묻으면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쳐다볼까요?
쉰들러리스트에서 한 독일인이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들이는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영화로 보면서 거기에 감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식만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나라가 세상의 유래가 없는 나라여서 그렇지 그 아이들 또한 귀한 아이들입니다. 3만 원만 있으면 6개월 동안 결핵 치료약과 비타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약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이어서 살려낼 수 있습니다. 3만 원이면 죽는 아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후원하지 못할 분들 있겠습니까? 혹시 그 것이 큰 돈이어서 힘든 분들은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시면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두 사람을 살리는 일, 열 사람을 살리는 일, 백 사람을 살리는 일을 너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우리 공동체 안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답이 나오지 않는 통일 문제이지만 단 하나 우리가 하는 일이 하늘 아버지를 감동시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통일을 주실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길은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주실 것입니다. 열 사람의 의인이 없어서 소돔이 망했지만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숫자가 얼마이든지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여러분의 시간과 여러분의 물질을 드림으로 삶으로의 예배가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이번 고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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