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문학』 19호 출판기념회에서
민문자
지난여름 어느 날 이가을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갯벌문학』19호에 수필 한 편을 써 달라는 청탁과 함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달라는 이야기였었다.
갯벌문학, “갯벌”이란 단어에서 갯내음이 실려 왔다. 젊은 날의 대부분을 인천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연안부두나 월미도 작약도의 기억이 친밀감을 불러와 흔쾌하게 참석하게 되었다.
갯벌문학 출판기념회의 행사장은 특이하게도 인천시청 장미홀이었다. 제일 먼저 서부길 갯벌문학 회장님이 반겨 주었다. 장중한 느낌이 드는 홀 안에서 이가을 시인을 비롯한 몇몇 지인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제1부 <갯벌문학 19호 출판기념회>는 갯벌문학회 주간이자 총무이사인 한기홍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우선 정상기 뮤지컬 배우이며 시낭송가의 축가 <그 여자에게 내 말 전해주오> 이태리 가곡으로 장내 분위기를 모았다.
서부길 갯벌문학회장은 기념사에서 정상기 선생이 오프닝을 멋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로 시작, 원로문인과 여러 문인들의 참석에 감사하다고 했다. 장현기 명예회장이 와병으로 참석지 못해 못내 아쉽고, 이 자리가 조촐하고 부족하지만 정다운 이야기로 회포를 풀기 바란다고 하였다. 내년에는 문운이 왕성하여 뜻하는 글 많이많이 써 주길 희망하며 모두 건강해서 내년에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기홍 사회자로부터 참석자 소개가 있었다. 서부길 갯벌문학회장, 김윤식 인천문협회장, 이준구 갯벌문학고문, 이준규 갯벌문학고문, 심종은 서구문학회장, 김철우 인천시공무원문학회장, 한지혜 시인, 함용정 이사, 윤태혁 선생, 정상기 뮤지컬 배우, 최대남 시인, 안은주 시인, 민문자 시인, 김기영 성산문학회장, 충남 보령의 최복내 수필가, 표지화를 그린 최은주 화가, 김 광 이사, 문지숙 시인, 전재은 시인, 부인과 동행한 이덕재 시인, 중국교포 전하연 작가, 정경림 시인, 강원도 홍천의 장기만 시인, 정경해 시인, 김선근 시인, 김영환 시인, 이의웅 시인, 이가을 시인, 최재효 소설가, 인천문협부회장이자 갯벌문학 감사인 최제형 시인. 전 남양주시인협회장 서병성 시인, 유영신 시인, 그밖에 동행한 가족들 몇 분이 있었다.
사회자는 회원의 회비로 하는 갯벌문학 출판에 모자라는 부분 금 일백오십 만원을 서부길 회장이 쾌척하여 해결해주고, 경품마련도 해주어 오늘 경품권행사도 할 수 있게 해준 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를 모두에게 알렸다.
김윤식 인천문협회장, 심종은 서구문학회장, 김철우 인천시공무원문학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김윤식 인천문협회장은 축사에서 초대해 주어 고맙다면서 『갯벌문학』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오겠다고 하였다.
「2008년 갯벌작가」로 뽑힌 이의웅 시인이 서부길 갯벌문학회장으로 부터 상패를 받았다. 이가을 편집이사가 이의웅 시인에 대한 이창년 시인의 촌평을 낭독하였다.
이 시인의 섬세한 감성의 눈은 지극히 미세한 사물을 관류하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 속의 의식으로 찰나적 표현으로 시를 형상화하고 있어 마술적인 신비성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인의 시적 피부는 차라리 여린 꽃잎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인은 일단 흡입력을 가지고 시를 가까이할 수 있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는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으로 표출하여 감성에 자극되는 것이 시의 전통적 본질이라고 한다면 정서적 감동은 자연과 인생의 일체 내용의 아름다움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의웅 시인은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자작시 「소래포구의 밤」을 낭송하였다.
“갯벌과는 먼 인연이 있습니다. 한기홍 시인과의 인연으로 갯벌같이 진득한 관계를 십여 년째 맺고 있습니다. 갯벌 속에 바지락 등 여러 가지 보물이 수없이 있듯이 저는 갯벌바다를 사랑합니다. 시를 사랑합니다. 앞으로 갯벌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소래포구의 밤 / 이의웅
내려 쏟는 빗줄기 사이
불빛이 길게 늘어져 허우적거리는데
석쇠위의 조개는 발버둥을 치고 있다
벌어진 입가에 허연 거품을 뿜어내는 바다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흰 장갑을 낀 채 바다의 속살을 후벼 판다
빗물 같은 맹물이 싫어
입을 앙다문 채 삶의 인내를 끝내 견디다가
피어오르는 연탄난로 불에
퍽! 마지막 끈을 놓으며 쏟는 조개의 눈물이
비가 되어 주룩주룩 내리는 것일까
비 오는 날 밤의 고즈넉한 포구
긴 갯벌은 썰물에 갈비뼈를 시커멓게 들어내고
협궤철로는 덩그러니 서서 쇳물만 흘리고 있다
밴댕이회집의 불빛은 가물가물하게 비춰오고
축하떡케이크 자르기 순서가 있은 다음 2부 순서는 함용정 섭외이사의 사회로 갯벌 <시낭송 및 송년의 밤>이 진행되었다.
오프닝 하모니카연주는 이준규 고문이 ‘황성옛터’를 연주하였다.
이어서 초대시인 4인과 갯벌작가 3인의 시낭송이 진행되었다.
1. 최대남 시낭송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 최대남
아들아, 아들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너에게 흡족히 준 것이 없구나
무언가를 무언가를 네 손에 가득 쥐어 주고 싶은데 나
아무것도 네게 준 기억이 없구나
힘겨운 세상에
상의도 없이 멋대로 데려다 놓고
힘들게만 했지
어미라는 거룩한 이름이 부끄럽기만 하구나
먹이고 입히는 일이야 나만했겠느냐
아들아, 아들아!
이렇게 부르기만 해도 그냥 좋은데
곁에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아무런 두려움이 없으니
아들아
어찌 이런 아름다운 인연으로 너 내게 왔느냐
저 높은 대문 웅장한 성 다 지나고
좁고 초라한 나에게로 너 어찌 왔느냐
반듯한 밥상 하나 차려 내지 못하는 주변 없는 나에게
어머니란 성스런 이름도 달아 주고
세상 누구보다 믿고 따라 주며 의지해 주니
아들아,
기쁨으로 떨리는 어미 가슴 보았느냐
너를 안고 네 붉은 입술에
젖 물리던 기억들이
내 생애 행복의 극치였음도
고백하고 싶지만
아들아 너 행여 빚진 마음 들어 버거울까 하여
어미는 한마디 말도 아끼고 싶구나
네가 잘 먹으면 내 배도 부르고
네가 아프면 내 살점 점점이 녹아 내렸 단다
이제 미끈한 나무처럼 잘 자라서
이 어미에게 그늘 주고 열매도 주고
보석보다 값진 뿌듯함을 날마다 내어 주니
아들아,
너와나 모자의 인연으로 만난 이 세상이
너무도 고맙고 아름답구나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2. 안은주 시낭송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 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했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3. 민문자 시낭송
갈대꽃 / 이덕영
영롱한 이슬 머금은
하얀 머리 쪽진 어머니
햇살 눈부신 은빛갈대꽃
뜨거운 바람 품고 익어버린 가슴
아름다운 금발의 연인
가을 갈빛 갈대꽃
우렁찬 함성 축제의 행렬
어우러진 형상 현란한 노을 안고
춤추는 금빛갈대꽃
너는 금갈꽃
사랑과 자유의 노을
별빛 가득한 판타지아
사랑과 자유
별빛으로 흐르는 판타지아
4. 정상기 시낭송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5. 김영환 시낭송
그리움 / 김영환
보고픈 사람
병은 이미 들었나보다
오래전 어느 순간부터
눈만 뜨면 또렷이 떠오르는
고운 얼굴 하나
방긋 미소 띠며 다가와
가끔 환한 모습만 바라봐도
1년은 쉽게 흘러간다
짧지 않은 세월을
숱한 추억으로 물들이고
짙은 안개 속으로
풀린 동공을 방황하게 한다
그리움에 지치고
보고픔에 가슴 태우던 날은
찬바람에 날려 보내고 싶다
언제나 끝없이 달려가는 마음
보이지 않는 대화는
종알종알 메아리 되어
그대에게 향하고
식은 커피 한 모금으로
타는 갈증을 달래본다
진한 그림자 희미해지고
어수선한 저녁이 찾아들면
시린 가슴 쓸어안고
설레는 몸부림을 추슬러 본다
눈감고 누운 긴 밤
찬 서리 내리는 동안에도
보고 싶은 그대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6. 한지혜 시낭송
외포리 바닷가 / 한지혜
산이 흘러 산이 가누나
바다 흘러 배가 가누나
물살 가르며
비상하는 갈매기야
삼산에 보문사 가서
향적스님 차를 마시니
향기로운 그대 아리랑
꿈을 실어 나르는 배야
노를 저어 어디 가느냐
물결 따라
노을 빛 익는
외포리 선경이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7. 이가을 시낭송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 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앵콜낭송 이가을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원로문인의 ‘갯벌 덕담’ 순서에서는 교육학박사 이준구 교수께서 강남에서 「사랑시」에 대한 강의를 한다면서 <양손의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남양주 시인협회장을 역임한 서병성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를 쓰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시란 나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속이야기를 감추며 발표하는 이중적 장치가 있습니다. 저는 저의 시작품을 제일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인생에 저의 존재가치는 저의 시작(詩作)활동에 있습니다. 남은 인생 은 문학인으로서의 정당한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저의 일생 중 가장 기뻤던 날은 시인으로서 문단에 등단했던 날입니다.”
사회자는 참석한 원로, 중견작가들에게 모두 덕담을 청하고 싶었지만, 행사 후 만찬장의 예약시간이 이미 경과하여 시간관계상 아쉽다면서, 경품추첨에 들어갔다. 서부길 회장의 따님이 어젯밤 정성스럽게 포장했다는 다기세트를 포함한 경품 열 개의 추첨행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빠지게 했다.
한 해를 접으면서 또 새로운 인물들과 새롭게 인연을 맺었다. 문학이란 동류의식으로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명쾌한 시간이 나의 서정어린 삶의 한 페이지로 곱게 장식되었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안고 경인전철을 이용해서 귀로에 올랐다.
첫댓글 갯벌문학 소식 잘 들었습니다. 바삐 움직이는 민문자 시인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아휴~ 곱기도 하셔라!!!! 너무나 반가워요, 선생님! 요즘 어찌 지내셨어요? 저번 단풍시제때 뵙고 처음인것 같아요. 문학활동을 활발히 하셔서 늙으실 시간도 없으시지요? 선생님!? ㅎㅎㅎ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라 몸을 조심하시어요. 건안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