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카페에서는 따라님,러버님, 바람님, 그리고 미호님께서 6~70년대 고교야구에 대한 언급들이 계셔서 특히 따라님이
뽐내시며 출신학교 자랑을 하시기에 당시를 회상해보며 글을 올리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한국 고교야구 초창기때는 전국적으로 보급이 되지않아 서울의 중앙고,선린상고,휘문고 배명,배문.배재.,,등 일부와
인천 동산고,제물포고 부산상고 대구 대건고등 전국적으로 몇 안되는 학교가 동아일보주주최 청룔기, 조선일보주최 황금사자기
우승를 다투었다. 그후 중앙일보주최 대통령기 지역 예선없이 모두 참가할수있는 서울신문 일간스포츠주최 봉황기 대회가있었다
부산일보주최 화랑기가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대회로는 역사가 깊다고 기억이 됩니다. 뒤에 영남일보 대붕기도 생겼다.
한마디로 집안잔치 정도의 대회였지요 그러다 대구지역과 부산지역의 활성화로 팀이 늘어나면서 서울의 전성시대는 가고
경북고가 대구상고 부산상고 경남고 부산고등과 자웅을 겨루며 전국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호남은 야구 불모지로 고등학교 야구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호남야구의 기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군산상고가
70년도에 인천 동산고출신 국가대표 투수였던 최관수씨를 감독으로 영입하며 팀을 창단 했다.
창단 첫해에 전국대회에 출전한 청룔기대회에서 당시 최강 경북고와 겨뤄 1:0으로 석패를 당하고 경북고는 매운 승리를 거두어
야구팬들을 놀라게하며 기억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창단 3년째 황금사자기 쟁탈전에서는 부산고와 결승전에서 9회말 투아웃 카운터에서 4:1로 뒤지던 경기를 5:4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하여 전국 고교 야구팬들을 열광게 하였다.
부산고투수 편기철은 마운드 위에서 무릎을 꿇은채로 흐느꼈고 스마일핏쳐 송상복은 김일권 김봉연 김준환등과 얼싸않고
감격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사진과 함께 각 신문의 첫면을 승자도 울고 패자도 울었다라고 대서 특필 했었다.
군산상고의 우승으로 강원도를 제외한 지방으로 야구팀 창단이 급속도로 전파되어 전국에 50여개의 고등학교 팀이 되었다
우승이후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역전승을 계속해서 거두자 야구의 묘미인 역전승의 의미를 부여 군산상고 역전의명수라는
닉네임을 얻게되었다.
라듸오 중계방송은 TBC(동양라듸오) 박종세 아나운서와 해설 김동엽씨가 짝을 이루어 멋진 중계로 팬들의 찬사를 들었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씨는 5공때 프로야구 출범시 해태타이거스 초대 감독을 역임했다가 그리많지 않은 나이에 작고하여
뭇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었다.
텔레비젼은 미호님이 말씀한 이규황 아나운서가 김동엽씨와 중계하다가 프로야구 출범후에는 하일성씨와 함께 중계를 했었다.
프로야구, 프로씨름이 등장하면서 고교야구는 급속도로 몰락되었고 지금은 추억속으로 그 명성과 영광은 기억속으로 사라져갔다.
그후 이규황씨는 젊은 아나운서에게 필드경기 방송을 넘기고 실내경기 프로씨름 중계를 해설 오경의씨를 거쳐 김태성씨와
짝을 이루어 오랬동안 일해오다 현재는 당시 현역이었던 이만기, 이태현씨와 뒤를이어 중계를 하고있다.
한편 호남야구의 기수로써 돌풍이 개기가되어 광주상고 광주일고 전남고 숭의실고 동신고등이 광주 전남지역에서 창단되었고
대전고 공주고 세광고등이 충청지역에서 창단하여 전국 고교야구가 평균화 되어가는 과정을거쳐 지금은 평균화 되었다.
군산상고 야구 명문으로 명성이 높아져 영화 하명중주연 영광의 9회말, 영화 역전의명수는 군산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였다.
첫댓글 저도 군상상고 역전의 명수 기억합니다.
조계현선수 기억납니다...... 저는 군상상고 응원많이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북고등학교는 그렇게 싫더라구요.
그냥 아무이유도 없이요.
나중에는 선린상고 부산고등학교 응원했어요. 그 역시 아무 이유도없이요. 하여간 고교야구의 황금기였지요.
선린상고는 초창기때 우승도하며 야구 명문으로 명성을 날리다 지방팀이 군웅할거 할쯤에는
침체기를 겪다가 후에 한동화씨가 감독을 맞으면서 박노준등의 선수들을 배출하며 충암고 서울고등과
함께 서울에서는 맹위를 떨쳤지요...
고교야구 정말 대단했죠 동대문 야구장이 매 경기 마다 관중으로 엄청났지요.TV 로는 지금은 상상도 할수없는 무려 3경기를 중계 방송을 하였지요 해설자 하일성씨가 목이 아파 해설을 못할정도 였지요 지금은 그저 추억입니다..
그때가 그립내요..학생들은 대부분 광석라듸오를 이용 수업시간에 듣다가 역전 안타가 터지는순간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바람에 선생님들조차 같이 스코어 및 경기 결과를 물을 정도였지요...
저도 한참 야구에 미쳐 있었던 시절이 기억이 나네요.
동대문 운동장 1층에 사무실에 찿아 가서 [Score Book]을 구입을 해서 기록을 해 가며 보았던 시절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봉황기인지 황금사자기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어떤 학교가 우승(30~40년 전)을 했던 Sign Ball이 집에 어디 있어요. 조만간 찿아서 사진 찍어 올릴께요.... ^<^
그정도면 광팬이었죠.......ㅎㅎ
내 다니던 고등학교시절은 초대형투수 이원국이가 있는 중앙고가 최고였다오.
허긴, 뭐 그때 중사아우님이야 알수있겠냐마는.............ㅎㅎㅎㅎㅎ
실업팀에 농협, 상업은행 해병대...등이 활약했던 시절의 고교 야구는 잘모르죠
문중사도 군산상고 이후로 야구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그냥한번 해봤다오.^^*
하여간 남자분들은 야구이야기 군대이야기 여자이야기 빼면
대화에 꽃이 안필것 같군요
무슨말씀이신지?......
남자들은 신문 사설... 사회문제... 이런것들만 이야기해요.
군대 야그하다가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와 여자친구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는 말이죠......ㅋㅋ
문중사님의 기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문중사님의 설명에 그시절 그추억의 명장면이 스크린처럼 되살아 나네요.
생각 할수록 기분이 UP되어 좋아요. 저도 국민학교때 야구부에 있었거든요.
처음으로 야구 유니폼을 입고 긴 스타킹 양말을 발에 걸고 나갈때가 그리워 집니다. ㅎㅎ
야구 유니폼이 제일 호감이 갔지요..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었죠~~~ㅎ
나도 한 야구 하는디......^<^
중앙고 특활시간에 투수가 던진공이 어찌나 빠른지 돌며 등으로 받았는 디, 다음은 생략.............
지금생각해도 승질이 앞을 가리네..........ㅎㅎㅎㅎ
정식 투수가 뿌려댄 빠른 하드볼을 직접 맞았다면 생각만해도 아~휴 가히 짐작이 갑니다........ㅋㅋ
보석님의 국민학교 야구부 짐작이 갑니다.
이곳 군산은 군산상고 이후 국민학교, 중학교에 각 두곳씩 야구팀이 창단
되었지요 우리같은 시골에서 열차 통학하는 학생들은 야구부는 언강생심이었고
그저 돈이 안드는 축구,탁구 권투부,레슬링부가 제격이었죠........ㅋㅋ
1978년도인가.? 그 때의 고교야구에 관한 생각들이 스쳐가네요..
회사에서 일할때인데..당시 심석종고에서 실습나온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창단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덩달아 일하는 중간 중간 라듸오를 들을려고 몰려 들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