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의 쓸모
배두순
부안 바닷가, 키 작은 사내의 굽은 무릎을 감싸고 있는 브래지어 90A 편견 심한 땅보다는 차라리 바다 위의 삶을 택하고 싶다는 사내가 기어다니며 배를 만들고 있다 세상의 어떠한 돌부리도 어떠한 칼바람도 갈망의 무릎만은 꺾지 못하고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사내를 감싸 주느라 브래지어는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비비안과 와코루를 제친 시장 바닥의 브래지어들은 고래 힘줄 같은 질김으로 공헌한다
몇 개의 브래지어들이 사내의 무릎을 거치는 동안 조그만 배는 완성되어 바다에 오르고 파도를 부리기 시작하는데 모른 척할 수 없다는 듯 순풍이 밀어주고 당겨 주며 동행을 한다
여전히 아득하기만 한 수평선
배두순 시집 『황금송아지』,《한강》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 그 쓰임의 용도에 맞게 만들어진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본다. 가장 원시적인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 성기를 가려주는 속옷이고 그다음 신발 등의 순서로 발달이 되었을 것이다. 배두순 시인의 시 「브래지어의 쓸모」는 갯벌에서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비싼 유명 브랜드보다는 시장에서 질기고 값싼 브래지어를 골라 고래 힘줄 같은 사내의 삶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여자의 가슴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브래지어가 갯벌에서 일하는 사내의 무릎을 보호하는 기능으로 탈바꿈하여 사용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브래지어는 한 척의 배가 되어 있는 것이고, 순풍이 밀어주고 당겨 줄 때 동행을 한다. 세상은 이렇게 본래의 용도와 다른 용도로 사용을 하면서 더 새로운 발상의 물건들이 만들어진다. 장날 시장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보면 별의별 물건이 다 나와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시인에게 필요한 물건이 종이와 연필 외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시인들은 실생활에서 그 쓸모가 그리 많지 않다. 시집은 냄비 받침이나 하고, 가구 기울기를 맞추는 용도가 전부다. 세상에 필요한 쓸모로 따지면 걸레나 빗자루처럼 많이 쓰이는 것이 없을 것이다. 더러운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사람 살아가는 일이 다 쓰레기만 배출하고, 먼지만 날리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 우정, 진실, 이러한 말도 그 쓰임의 용도가 제한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쓸모를 생각하면 삽과 괭이처럼 자신의 살을 희생하고 땅을 일구어 내는 것쯤은 되어야 쓸모가 있다고 할 것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그 쓸모가 빈약해져가다 보니 외로움이 깊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브래지어를 무릎에 차고 갯벌이라도 기어나니는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