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2. 09,09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도상거리 17 km / 8시간50분 소요
☞ 산행코스: 지티고개-201봉-임도-287봉-337봉-373봉-397봉-월명산-417봉
405봉-큰낫고개-작은낫고개-326봉-344봉-천덕산-비득재-병목산-333봉
새재-280.8봉-247봉-244봉-옥녀봉-232봉-잿말재-부시치고개
☞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내산면, 외산면,홍산면,옥산면 / 보령시 미산면 /서천군 판교면
올 초에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불거진 경기침체가 전 세계로 감염되는지
내가 하는 건축계통에도 상당히 침체가 되어있는 상태이다.
30여년을 해온 이 業이 올해처럼 경제적으로 힘이 든 적은 없었다.
지난주 목요일에 같은 업종에 있는 CEO들끼리 세미나 형식으로 위기타파를
하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질 않는다.
해답은 지출을 줄이는 방법인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아서 고민이다.
이럴땐 마음 편히 먹고 열심히 건강을 챙기는 방법밖에 없을 듯 쉽다.
건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래! 건강을 지키려면 가장 돈이 적게 들면서 운동이 많이되는 산행이 정답이다.
그래서 범여는 오늘 저녁에도 베낭을 메고 언제나 싫은 내색없이 반겨주는
멋진 애인(산)을 만나러 부여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에서 부여가는 버스티켓
서울 남부터미널(9월 8일 18:10)
부여가는 버스
오전에 고객과 미팅을 끝내고 이것저것 마무리하고 나니 진이 빠진다.
원래 오늘은 산에 안가고 장성 백양사에서 열리는 포교사 팔재계에
참석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온 고객이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고 하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리고 먹고 사는게 우선인지라 하는 수 없이
팔재계에 불참을 하는데 같이 가기로 한 도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여행 버스에 오른다.
부여시외버스 터미널(20:20)
부여행 버스에 올라타고 1시간 정도의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부여이다. 난 부여는 이번이 2번째다.
지난해 가을 한남정맥 졸업을 하러 오곤 이번에 오니...
백제의 마지막 古都인 부여... 슬픈 역사를 많이 간직한 곳이다.
늘 역사란 勝者에 의해 기록되기에 敗者의 역사는 늘 초라할 수 밖에
없는 그곳이 바로 부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부여 그린피아 찜질방(22:30~06:00)
충청도 사람들의 두리뭉실한 표현... 참으로 맘에 안든다.
부여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니 잠을 청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버스터미널 건너편에 호프집에 들려서 저녁을 겸해서 치킨 반마리에
생맥주 500cc 2잔을 마시고 호프집 주인에게 찜질방
위치를 물으니 사거리를 돌아서 저쪽으로 가란다
거기를 가서 찜질방을 찾으니 아무데도 없다... 이런 제기럴
부여가 대도시도 아니고 조그만 읍에 불과한데, 또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모른단다. 또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저쪽으로 가란다.
한 20분을 헤맨끝에 찜질방에 도착하여 사워를 하고 잠을 청한다.
이곳은 손님이라곤 10여명밖에 없고 그나마 밤 11시 30분이 지나니
잠을 자라고 하는지 TV와 불을 끄는 바람에 잠자기는 좋은데 어제부터
이상하게 허리가 아파오는게 밤에 잠을 통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는다.
이튿날 버스 터미널(07:00)
사워를 하고나서 06시에 찜질방을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찜질방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약 20분정도가 걸린다.
버스 터미널 맞은편 골목에 있는 김가네 김밥집에 들려서 돌솥비빔밥으로
아침을 먹고나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07:25발 외산면가는 버스에 오른다.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다.
괜스레 기사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부여대교를 건너 규암면과 구룡면을
지나 지티고개로 향한다. 이 지역은 온 천지가 밤나무 단지이고
밤 저장창고만 보이는것 같다. 기사의 얘기로는 부여가 밤나무로 성공한 곳이란다.
흔히들 밤하면 공주 정안밤을 알아주는데 기사의 말로는 부여가 토질이 좋아서
공주밤은 부여의 밤에 비해 쨉이 안된다고 자랑을 늘어 놓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08시에 지티고개에 도착한다.
원래 버스 정류소는 지티고개에서 700여m 아래에 있는 고갈마을 입구인데
기사에게 사정을 하니 지티고개에서 버스를 세워준다... 고맙기만 하다.
버스 요금표
지티고개(08:00)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와 내산면 지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보령시와 부여군을 잇는 40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8:20)
오락가락하는 이슬비같은 비가 내린다.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능선을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돌아 의성동산이 있는 좌측 임도로 접어든다.
원래는 좌측으로 절개지로 올라서 잣나무 군락지로 올라서는게 맞지만
의성동산 쪽으로 올라가는 산꾼들도 있어 초반부터 신발에 물들어
오는게 그렇것 같아 기맥길이 아닌 변칙적이 방법을 쓴다.
정통 산꾼이란 자존심을 접어가면서...
임도로 접어드니 우측에 폐가처럼 보이는 가옥 한채가 보이고
의성김씨의 가족묘인듯한 의성동산 표지석과 詩가 새겨진
돌비석이 2개나 서있다. 이곳에서 밭 가운데 임도를 타고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盤橋里)
백제 때는 대산현에 속하였으나 그 후 홍산권에 속하는 지역이고 조선시대는 홍산현 내산면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손대리(遜臺里) 일부를 병합하고는 이곳에 널판으로 놓은
다리가 있다 하여 판교(板橋)라 부르다가 반교라고도 불렀는데 그 이름을 따서
반교리라 하고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하였다.
의성동산 조형물
의성동산은 가족묘지처럼 보이나 이곳에는 여느 묘지와는 달리
詩가 쓰인 돌비석이 여러개 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손 조형물과
독수리 조형물도 있다. 손 조형물에는 왕벌집이 붙어있고 벌들이
날아 다니면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내 친구 심마니가 보면 왕탱이에
눈독을 들인텐데.ㅋㅋㅋ... 저 왕탱이는 산꾼에게 정말 위협적인 존재인데.
의성동산 묘지의 모습
이곳에서 우측으로 길이없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능선으로 치고 올라간다.
비는 조금씩 줄어든다. 그렇다고 우의를 입을 정도는 아니라 비를 맞는다.
초반부터 가시덤불과의 전쟁이라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한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올라가니 의금부도사를 지낸 선산김공의 묘지가
나타나고 희미한 등로에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201봉(08:45)
정상에는 의미를 알 수없는 사각돌이 하나 박혀있다.
201봉에서 다시 금지사가는 임도를 바라보면서 내려가는데
길은 보이질 않고 청미래(망개나무) 넝쿨이 엉켜있고
거기다가 간벌을 한 나무들을 등로에 있어 걷기가 힘든다.
금지사로 통하는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너머로 가야할 373봉이 보인다.
산행시작 30분만에 비와 나무에 묻어있는 빗물로 인해서
바지와 신발이 다 젖어 버렸고 신발에 물이 흥건하다.
임도(08:55)
금지사로 통하는 임도에서 한동안 도로로 계속 올라간다.
도로 우측으로는 밤나무 단지가 있고 반교리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임도를 올라가니 S자로 꺽이는 부분에 무슨 의미인지 알 수없는 빨간색으로
쓰인 3이란 숫자가 보이고 이곳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고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3번 숫자에서 100여m쯤 올라오다가 좌측의 조그만 구멍을 따라
숲길로 올라서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그냥 놓치기 쉬운 곳이다.
20여m 정도 진행을 하니 뚜렷한 등로가 나오고 조금 더가니 Y자형 길이
나오는데 좌측 선명한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길이없는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조금을 치고 올라서니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는데 길을 막아놨다.
약간 우회하여 밤나무 단지 임도로 올라서서 다시 밤나무 단지를
치고 오르는데 얼마전에 태풍 볼라빈으로 인해 밤들이 많이 떨어졌다.
밤나무 단지에서 바라본 부여군 외산면과 만수산의 모습
만수산(萬壽山:499m)은 충남 보령시 미산면과 성주면 그리고 부여군 외산면의 경계에 있다.
북쪽으로 무량산, 성주산 남쪽으로 아미산과 월명산으로 이어진다.
남쪽 기슭에는 신라 문무왕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무량사가 있으며 무량사극락전(보물 제356호)
에는 동양 제일의 좌불이 모셔져 있고 극락전 앞에는 무량사오층석탑(보물 제185호)과
무량사석등(보물 제233호)이 있다.
무량사는 신라시대에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사찰내에서는 이를 증명할만한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층으로 지어진 극락전은 청양에 있는 장곡사 상대웅전, 서산에 있는
개심사 대웅전과 함께 충남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건축물로 손꼽힌다.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과도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김시습은 생육신 가운데 한사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던 분이다. 단종의 죽음과 세조의 등극과정에서
스스로 속세를 떠나서 출가하여 승려의 길을 걸었다.
공주 마곡사, 경주 기림사 등을 거쳐 이곳 무량사에서 살다가 生을 마감했다.
무량사의 경내에는 매월당의 자화상(초상화)가 봉안되어 있고
사찰입구에는 그의 부도(사리탑)가 세워져 있다.
산의 북쪽에는 대보탄광이 있으며 남쪽에는 보령호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홍산)에 “현 북쪽 47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산경표」에는
금북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수록되어 있고 「여지도서」(홍산)에는 관아 북쪽 37리에 있다.
홍산 성태산(星台山) 에서 뻗어온다는 기록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고승이 홍산과
남포사이에 萬人이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만수산이라 하였다” 고 한다.
1구간에 지나온 산그리메
금북기맥은 청양, 부여, 보령, 서천 등 충남의 서남부 지역 4개 군을 가로질러 가는 산줄기다.
그런데 이 금북기맥을 답사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외산면, 은산면, 미산면,
내산면, 홍산면, 옥산면, 문산면, 마산면, 주산면, 기산면 등 산줄기 주변의 지명에 유난히
뫼'山'자가 많고 대천, 웅천, 서천 등 내 '川'자를 사용하고 있는 지명이 많다.
속해 있는 행정구역은 제각각이지만 워낙 산이 높고 골이 깊다 보니 이렇게 뫼'山'자와
내 '川'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청양이야 예전부터 오지라는 명성이 있어 예외로
하더라도 부여나 보령, 서천 등에 산이 많다고 하면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산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첩첩이 산중이라 뫼 '山' 자나 내 '川' 자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70km가 채 안 되는 이 짧은 산줄기에 백월산, 성태산, 조공산, 월하산, 월명산, 옥녀봉, 봉림산,
오석산, 남산, 중대산 등 이름을 가진 산이 10개나 되고, 지천천, 금강천, 은산천, 금천, 구룡천,
길상천, 성주천, 웅천, 화산천, 판교천, 송림천 등 이름을 가진 하천이 10개가 넘는다.
마루금에 속해 있지는 않으나 성주산, 만수산, 아미산, 문봉산, 옥마산, 축륭산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떡여 지는 산들이 금북기맥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태백, 정선 못지 않은 대규모 석탄 광산이 성주산을 중심으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석탄 사용량이 적어 성주면에 있는 석탄 박물관과 광산 사택만이 그 명성을 지키고 있지만
월명산과 맥을 나누고 있는 아미산도 그렇고 아미산에서 건너다 보이는 성수산이나 만수산
주변에도 대규모 석탄 광산이 있어 사람의 왕래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287봉(09:25)
밤나무 단지 위에 오르니 287봉이 나타난다.
숲속에 꽁꽁 숨어 있어서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나무를 다 벌목해놔서 버려서 앙상한 나무에 시그널이 걸려있고
4등 삼각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287봉 삼각점(△ 보령 467)
조그만 밤나무에도 밤이 참으로 많이 열려있다.
반교리 마을너머로 우측에 만수산과 함께 아미산도 보인다.
충남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내산면 경계를 이루는 아미산(峨嵋山, 635m)은
미인의 눈썹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봄이면 진달래 향취가 가득한 곳이다.
보령호 동쪽에 위치한 아미산은 이 지역의 등산인들만 찾고 있을 뿐
외지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1998년 보령댐 완공과 함께 보령호반을
한 바퀴 도는 도로가 생기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미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서쪽으로 도화담리 분지뒤로 옥마산이,
북으로 만수산과 성수산이 보이고, 그 뒷편으로 금북정맥 오서산이 조망된다.
북동으로 청양 방면의 감봉산, 월하산, 칠갑산이 산너울을 이루고,
남으로 장군봉 오른쪽에 거울 같은 보령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미산에는 고찰인 중대암과 상대암의 마애불, 도화담약수와 함께 보령 2대 약수인 영천약수가 있다.
중대암과 상대암은 신라 헌강왕 4년(879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이 중대암을 창건하면서 산이름을 아미산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후 고려 숙종 21년에 중수하면서 남쪽과 서쪽에다 지장암과 미타암을 더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입으로 모두 전소됐다고 한다. 이때 인근 주민들이 중대암 계곡으로
피난했는데, 사찰이 불타면서 왜군들로부터 피해를 보아 계곡 이름을 적시골이라 지었다 한다.
부정한 사람이 오르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수리에는 용암영당과 수현사가 있다.
용암영당은 보령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용수리로 옮겨졌는데 고려말의 명신인 익제 이제현을
모신 사당이고, 수현사는 고려말 명신인 염제신과 염국보를 봉안한 사당이다.
오늘 내가 가야할 월명산은 멋진 운해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287봉에서 등로를 찿기란 쉽지가 않다.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잡동사니와 함께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있어 상당히 지체가 된다.
밤나무 단지에는 씨알이 굵은 토실토실한 도리지 서너뿌리를 수확하고...
힘든 길을 헤치고 나니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얼마전에 지나간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나무들이 많이 넘어져 있다.
특히 소나무같은 침엽수들의 피해가 많다. 오늘 산행은 허들경기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산행을 하면 초반부터 지치는데 걱정이다.
대산꾼 준.희님의 반가운 시그널도 보이고...
커다란 나무들의 수난이 특히 심하다.
무엇이 저렇게도 좋을까?
337봉(09:45)
등로에는 언 놈이 이렇게 많은 똥을 싸놨다.
오지산행에서 자주 만나는 시그널의 주인공
보령 잡도리님, 감마로드 등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다.
이 오지의 등로를 귀신같이 알고 계시니 정말 존경스럽다.
이곳에는 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태풍으로 인하여 떨어진 나무가지와 넘어진 나무들이
산행 속도를 내는데 상당한 지장을 준다.
자꾸만 예상한 시간이 지체된다.
373봉(10:05)
이 험한 오지에도 어김없이 준.희님은 표지판을 붙여놨다.
이 표지판이 없으면 아무것도 그냥 모르고 지나갈 곳이다.
350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는데 길은 보이질 않고
사람키보다 훨씬 큰 나무들 사이로 빠져 나갈려니 베낭을 자꾸만
잡아 당긴다. 산초나무란 놈은 가시로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 미치겠다.
급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금지사로 통하는 도로가 나온다.
금지사 임도 삼거리(10:20)
부여군 외산면 가덕리에서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금지사까지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이곳에서 금지사 표지판이 있는 뒷쪽으로 올라가면 기맥길
등로가 이어진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부터 금북기맥길에서 헤어졌던 보령시와 다시 조우를 한다.
이곳부터 우측으로 부여군 외산면과 작별을 하고 보령시 미산면과 함께한다.
임도 삼거리에서 바라본 부여군 외산면 가덕리의 모습
임도 삼거리 아래에는 엄청나게 큰 밤나무 단지가 있고 그 아래에는
아미산 자락에 들러싸여 아늑하게만 보이는 가덕리가 보이고
저 멀리로는 지난구간에 지나온 성태산과 성주지맥 능선이 보인다.
가덕리(加德里)는 조선시대 홍산현 하서면 지역으로 한산이씨, 경주김씨, 진주장씨,
전주이씨 등이 설촌한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이곳이 갈대만 무성하고 황폐하여
갈때기 또는 가덕이라 칭하였고, 그 뒤 노덕(蘆德)이라 부르다 1914년 군폐합시
남면의 선서리(船西里) 일부를 병합하여 가덕리라 하고 부여군 미산면에 편입하였다.
특히 부개촌(富開村) 마을은 일제 때 형성된 마을로 그 전에는 사람이 별로 거주하지 않고
솔밭만 많이 우거져 청재[靑峙]라 일컬었으며 1930년대 일본인 도미나가 고우츄[富永光中]가
거주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고용하여 개간에 참여할 때에 앞으로 부를 알리기 위해서 개간하는
마을이라 지칭하여 부개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마을이다.
또한 마을의 형태가 가늘다 하여 세동(細洞)이라 칭하였고, 앞산이 소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오양골, 전쟁시 이곳에 군사들이 진을 쳤다 하여 진등(陣燈)이라 하는 마을들이 있다.
임도 삼거리에서 숲을 헤치고 올라오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이곳도 태풍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단 몇시간에 걸쳐 지나가는 바람에 이 정도인데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얼마나 나약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가... 정말 下心으로 살자.
준.희님의 응원을 받으면서 힘차게 월명산으로 향한다.
멋진 나무도 만나고...
계속 고도를 높혀서 올라간다. 이곳에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꽤나 건강한 모습으로... 갈비(솔잎)가 많이 쌓여있어 혹시나 송이라도
보이나 하고 유심히 보지만 송이는 보이지 않고 수십가지의
독버섯만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버섯이란 놈은 독이 많을수록 화려하기 그지없다.
헬기장(10:40)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는데 관리가 잘 안되어 잡초만 무성하다.
아미산 갈림길(10:45)
수리바위 표지판이 아미산 가는 길이고 기맥길은 금지사 방향으로 직진한다.
두번째 헬기장(10:50)
걸어서 10분 거리에 헬기장이 2개나 있다. 이건 좀 낭비라는 느낌이다.
이곳은 첫번째 헬기장과는 달리 관리가 잘되어 있다.
월명산(月明山:544m:10:55)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와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車嶺山群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우측으로 보령호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산자락 9부 능선에 창건연대가 알려지지 않은 마곡사의 말사인 금지사가 있다.
예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는데 보령댐이 완공되고 금북기맥 산꾼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는 조망도 별로없고 2등 삼각점만 있다.
월명산 삼각점(△보령 27. 1993 복구)
이곳에 오르니 여태껏 가랑비를 많이 맞은 탓인지 갑자기 寒氣가 든다.
베낭에서 바람막이 자켓을 꺼내입고 직진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지도상과 팻말에는 544m라고 표시해놨는데 삼각점에는 543m라
어느 장단에 춤을 할지를 모르겠다.
야생화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산꾼을 유혹한다.
금지사 가는 길(11:05)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금지사로 향한다.
지금이 한창 사시예불 시간이건만 금지사는 말 그대로 절간이다.
조용하다. 급한 내리막을 내려서 절 마당에 들어서니
개새끼 한마리가 엄청 반겨준다. 아마 저 넘도 전생에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금지사(金池寺:11:10~30)
충남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 월명산 9부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6 교구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금지사의 창건년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며, 다만『여지도서』 홍산현 사찰조에
“금지암 재월명산”이라는 기사가 있어 늦어도 18세기 중엽 경부터 이 암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6,25 동란의 어수선한 시기에 사찰 땅이 개인 소유로 등기 이전되 있었는데,
현 주지인 도진스님이 7년 여 긴 소송 끝에 다시 되찾았고, 1990년대 들어 법당을
중건하는 등 오늘에 이르렀다. 현존 건물로는 나한전과 법당, 산신각과 요사가 있으며,
유물로는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석조반가사유상과 불상이 있다.
금빛 잉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독성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법당 뒤 바위틈 사이에서 물이 나오는데 황하에서만 사는 금빛 잉어가
살았다고 하여 사찰 이름을 금지사(金池寺)로 불렀다고 한다.
우측 위로 보는 곳이 해후소이고, 그 아래가 나한전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사찰 주위를 몽땅 벌채를 해버려 민둥산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아닌것 같다. 나무들이 1~2년에
크는것은 아닐지언적... 적어도 사찰 경내에 들어오면 숲이 우거져
있어야 衆生들이 포근하게 마음의 안정을 찿을 수 있을터인데...
그 부분에서는 불자인 이 범여도 정말 마음에 안들어도 한참 안든다.
산꾼 범여를 무지하게 반겨주는 개쉬끼... 멋져부러요
금지사 법당
법당에서 3배의 예를 올리고 5분정도 법당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나오니 백양사에 참석하지 못한게 조금은 마음이 풀어진다.
법당 내부에는 독성기도도량이라서 그런지 독성님을 모셔놓았고
우측에는 조선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반가사유상을 모셔놨다
그리고는 반가사유상 뒤쪽에 있는 금지샘이 보이도록 유리창을 해놓은게
마치 마치 통도사나 법흥사 적멸보궁의 형태와 똑같다.
금지샘(金池泉)
법당뒤로 돌아서니 금지샘이 나타난다. 옆에 부처님 공양수라고
적어놓아 선뜻 바가지들기가 망설여진다.
일배의 예를 갖추고 물한모금을 마신다. 물맛이 기가 막히다.
말 그대로 甘露水이다. 물을 마시고 산신각으로 향한다.
산신각 가는 길에서 바라본 금지사 법당과 금지샘
산신각 가는 길에는 철계단으로 해서 올라간다
금지사 산신각
산신각 문을 열고 오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예를
산신님께 올리고 베낭을 벗어놓은 등로길로 복귀를 한다.
산신각에서 저 멀리 서천 앞바다가 아련히 보인다.
2번만 더오면 서천 앞바다에 발을 담그겠지.
다시 등로에 복귀를 하여 금북기맥길을 이어간다.
520봉(11:35)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피해서 도착한 곳이 520봉
이곳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커다란 암릉군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우회해서 내려오는데 비 때문에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낙엽에 미끄러져 한바퀴 구르는 바람에 바지가 흙투성이다.
꽤나 멋있는 바위가 보인다.
이곳에서 아홉사리 고개 표지쪽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잠시후에 소나무가 멋있는 안부 능선이 나타난다.
원주 원씨의 묘지를 지나고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어 간다.
다시 오름길을 올라가는데 등로 주위에 잔대들이 많이 보인다.
베낭을 벗어놓고 가져온 휴대용 호미로 잔대 5뿌리를 캐서 베낭에 담는다.
예쁜 달걀 버섯도 보이고... 비온뒤라 그런지 이름모를 버섯이 지천이다.
417봉(11:50)
이른 아침을 먹었고 금지사 갈림길에서 쥬스 하나를 먹긴 했지만
허기가 오는 것 같아서 이곳에서 생수와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로
허기를 면하고 5분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의 모습
희한하게 생긴 버섯... 이 놈의 이름을 모르겠다.
이 놈은 아프리카 출신인가? 시커먼스이네
드디어 영지버섯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꽤나 큰 영지 30여개를 수확했으니 손해본 장사는 아니지 ㅋㅋㅋ
큰낫고개(12:20)
417봉에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다 405봉을 만나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 주위에는 간간히 등로에 꽤나 큰 영지버섯이 보인다.
적은 넘은 눈길조차도 안주고 큰 놈만 비닐봉지에 넣어서 베낭에 넣는다.
편안한 등로를 걸어 내려오는데 생소한 이름의 큰낫고개를 만난다.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 자명마을에서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 상로마을을
잇는 고개로 무슨 이유로 이런 지명을 붙였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지역이 고향인 칠갑산님의 산행기에 보면 이 지역의 지명유래를
찾을 수 없지만 일제시대에 자원수탈을 위해서 사용된 고개라고 한다.
아이구 이쁜 넘
편안한 등로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싸리버섯이 보인다.
얼른 따서 비닐에다 넣는다. 조금만 더 따면 한끼 식사는 되겠는데...
등로에서 나무사이로 보이는 꽤나 큰 상천 저수지의 모습
작은낫 고개(12:30)
이곳도 미산면 도흥리와 홍산면 상천리로 연결되는 고개이다.
이곳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간다.
343봉(12:40)
충남 부여군 홍산면과 보령시 미산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다음에 있는 363봉이 천덕산인데 어느 누가 이곳에다
천덕산이란 이정표를 설치하여 놨다. 이것도 이해관계나 이기주의에
의해서 설치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산을 가지고 이해관계를 가지면 안되지.
343봉 삼각점(△서천 424 1980 복구)
343봉에서 직진하여 343봉으로 내려가는데 도저히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내려간 다음에야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천덕산(天德山:363m:12:55)
이곳이 진짜 천덕산이다. 이곳은 부여군 홍산면과 옥산면 그리고 보령시
미산면의 경계가 만나는 3군 경계봉으로 정상에는 2개의 표지판이 있다.
평평한 안부에 별 특징이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내려선다.
이곳은 독도에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천덕산 오르기 전에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아홉사리 고개 가는 길이다.
뚜렷한 길을 버리고 길이없는 정상까지 올라와야 하는 곳이다.
천덕산의 유래를 찾아 보지만 어디에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늘의 덕을 가졌다면 그 분이 부처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묘지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니 이곳도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들 때문에 걷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이곳에서 유심히 살펴보면 나무에 빨간 노끈이 나무에 처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 노끈을 따라가면 확실한 금북기맥 길이다.
조금을 더 내려가면 능선 안부가 나오고 비득재를 가려면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한다. 정면으로 가야 정상적인 기맥길이지만 도로가
개설되면서 절개지가 되어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등로위 절개지에서 바라본 비득재
조금전에 우측 임도를 빠지지 않고 절개지 끝부분까지 와보니 적어도 100m 이상을
파헤쳐 놓아 아찔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곳 지질이 밟으면 그냥 부서지는 썩돌
형태라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조금만 밟아도 그냥 무너져 흘러내리는 형국이다.
이런곳은 터널 처리를 하여 맥길을 이었으면 좋으련만... 도로의 형태로 봐서
개설을 한 지가 얼마안 된 도로이건만 국민의 녹을 먹는 나으리들과 개발론자들은
그렇게 하면 돈이 안되는 모양이다. 나중에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은 생각지도 않고...
하긴 그런자들에게 그걸 바라는 자체가 이 시대에선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르지...
비득재(13:10)
충남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에서 부여군 옥산면 상기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정상에는 부여군과 보령시에서 설치한 자기 지자체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도로개설을 하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깨끗한 2차선 4번 군도가 반듯하고 부여에서
왔다는 40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싸이클족이 반갑다는 인사를 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사람을 처음 만난다. 나 역시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산으로 오른다.
보령시 미산면 도흥리의 모습
이젠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옷을 말릴겸 바람막이 자켓을 벗어서 베낭에
넣는다. 바람도 불지않고 기온도 올라갔는지 땀이 많이나기 시작한다.
도로를 건너서 절개지 위로 올라서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 위로 올라서니 준.희님께서 나무에다 “여기가 비득재입니다”라는 표지판을 붙혀놨다.
부여군과 보령시의 자료 어디에도 비득재에 대한 해답을 찿을 수가 없어서 조금은 아쉽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고개가 비둘기의 형상처럼 생겨서
비득재(鳩峙)라고 부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범여의 생각 中에서)
부여군 홍산면 토정리의 모습
꽤나 큰 상천 저수지가 보이고 토정리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는 지난번 태풍 피해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 풍수설에 의하면 토산지상 유화룡형이라 하여
토정리의 지형이 토끼의 형상에을 한 산에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 한다.
비득재에서 병목산 올라가는 길에도 마구 쓰러진 나무로 인하여 상당히 불편하다.
병목산(343m:13:30)
충남 보령시 미산면 은현리와 부여군 홍산면 상기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대구의 한 산악회에서 붙여논 코팅지가 붙여있지 않으면 이곳이
병목산인지도 그냥 모르고 지나가기 좋을 곳이다.
이곳은 우측으로도 등로가 있고 시그널도 붙여있어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금북기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이어간다.
이런 버섯도 보이고...
이곳 병목산 주위에서 영지버섯 10여개를 수확을 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버섯은 식용인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지나친다.
이곳 병목산에서 집에서 가져온 카스테라 1개와 바나나 우유 하나에 캔맥주 한캔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젖은 옷을 벗어서 나무에 걸어서 말리고 3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팬티만 입고 앉아 있는데 조금 있으니 산모기가 엄청나게 몸에 달라 붙는다.
시원하여 좋긴 하는데 땀에 젖은 몸에 붙은 모기에 꽤나 많은 피를 보시를 해야했다.
30여분을 점심을 겸한 휴식을 취하고 나니까 몸을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좌측의 등로로 접어드니 등로는 뚜렸하다. 멋진 암릉을 지난다.
쓰러진 나무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묘지도 지난다.
새재(14:10)
충남 보령시 미산면 은현리 새재마을에서 부여군 홍산면 상기리
하립마을을 잇는 고개로 지금은 고개의 역할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고개에서 다시 직진하여 등로로 올라선다.
새재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벌목을 한 바람에 바로 아래에 있는 미산면 옥현리 서당골 마을이 시원스레 보인다.
벌목을 한 밤나무 단지를 우측에 두고 걸어가는데 건너편에
가야할 옥녀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곳 미산면을
빙둘러서 옥녀봉을 올라가는 능선이 이어진다.
280.8봉(14:20)
밤나무 단지 위에 준.희님이 붙혀논 표지판이 있고
표식 확인이 안되는 4등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280.8봉 삼각점(△ 서천 423 확인불가)
보령시 미산면 옥현리 서당골의 모습
밤나무 단지 위에 있는 280.8봉과 삼각점을 확인하고
등로를 이어가는데 숲이 너무 우거져서 도저히 길을 찿을 수가 없다.
밤나무 단지에서 겨우 빠져나와 좌측 10여m 를 빠져 나오니 겨우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좌측으로 꺽어진다.
잡목이 우거진 곳을 헤치고 나오니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정부인 전주이씨의 묘지가 나온다.
246봉(14:40)
희미한 봉우리에 4등 삼각점(△ 서천 425 1980 복구)이 있는데
숲이 가득하여 삼각점을 놓치기 쉬운 곳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등로를 이어가는데 넘어진 고사목과 나뭇가지가 참으로 산행을 힘들게 한다.
우측으로 밋밋하게 등로를 이어가다가 조그만 능선 안부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등로를 이어가는데 이곳은 영지버섯이
꽤나 많이 보인다. 견물생심이라... 베낭을 벗어놓고 꽤나 큰 영지버섯
10개를 수확하여 베낭에 넣고 약간의 내리막길을 가다가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247봉(15:00)
이곳에는 학산.상기(비홍산)→ 옥녀봉 1.4km←라는 이정표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걸 주어들고 카메라에 담고는 우측 옥녀봉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247봉 우측에는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안부 사거리(15:05)
보령시 미산면 옥현리와 부여군 옥산면 홍연리를 잇는 안부 사거리가 나온다.
홍연리(鴻淵里)는 홍산들에 북쪽을 가리고 우뚝 솟은 해발 267m의 비홍산, 서쪽 넓은 들이
지역에 위치하여 옥산저수지 위쪽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 홍연리이다.
조선시대에 처음 정착한 풍천임씨, 경주김씨들이 조선시대 500년 동안 번창하는 집성촌을 이룩했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홍산현 상서면의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도 홍산군 상서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비홍리, 목동, 보곡리, 용연리(龍淵里)를 병합하여 비홍과 용연의
이름을 따서 홍연리라 하여 부여군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임도를 건너 등로에 오르니 이곳에서 옥녀봉 오르는 길은 방화선 임도로
마치 8차선 고속도로 같은 느낌이다. 좌측으로 옥산면의 넓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어머니의 갖은 구박에다 하도 배가고파 몰래 밥을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며느리 밥풀꽃이
오늘따라 참으로 애절하게 보인다.
등로에서는 부여군 옥산면에 위치한 옥산저수지와 수암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수암리(秀岩里)는 본래 홍산군 상서면의 지역으로서 증암리(甑岩里)와 석우리(石隅里)에
원곡리(院谷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수암리로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연안이씨, 청주한씨, 여산송씨 등이 유입되어 개척하면서부터 시루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증암(甑岩)이라 했다. 1958년까지 면사무소가 있다가 안서리로
옮겨갔으며 또한 돌모루는 남평문씨, 연안이씨 등이 1720년경에 개촌한 뒤 마을어귀에
큰 바위가 있어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이 바위를 돌아서 온다하여
돌모루로 칭하였으며 홍산면과 면계를 이룬다.
이 길은 마치 한북정맥 길의 포천 국망봉에서 도마치봉 가는
방화선 임도를 연상케 할 만큼 길이 참으로 좋다.
244봉(15:15)
이정표[옥녀봉0.9km).. 옥녀봉01-02번 표지목이 있다.
이곳에서 옥녀봉 가는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혀가기 시작한다.
용연마을 갈림길(15:25)
화려했던 등골나물도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는구나.
억새도 피기 시작하고...
이곳 옥녀봉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
300m 단위로 구조목이 설치되어 있다.
옥녀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비홍산(飛鴻山:267m)
충남 부여군 홍산면 홍양리와 홍연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나는 기러기 형국처럼 생겼다고 하여 비홍산(飛鴻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비홍함로(飛鴻含蘆)의 명당이 이곳에 있다 하였으며, 동쪽의 숙홍역(宿鴻驛)도
본래 비웅(非熊)이었는데 이 지역이 나는 기러기형국이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고려 우왕 때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동서로 비인(庇仁)·석성(石城)과,
남북으로 한산(韓山)·청양(靑陽) 등과 통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홍산(鴻山) 은 충청남도 부여지역의 옛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대산현(大山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한산(翰山)으로 고쳐 가림군(嘉林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홍산으로 고치고, 1175년(고려 명종 5) 한산감무로 하여금 이를 겸하게 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 현감이 파견되었고, 1895년(조선 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부여군에 병합되어 홍산면이 되었다.
옥녀봉 오르는 길에는 예쁜 뚝깔꽃도 많이 보인다.
급한 오름길을 올라간다. 우측에는 꽤나 큰 밤나무 단지가 있다.
옥녀쉼터(15:40)
옥녀 쉼터에는 쉬어갈 수 있는 긴 의자 2개가 있지만
그 앞의 넓은 공터에는 사람들이 잘 안오는지 잡풀만 무성하다.
다시 편안한 등로를 나홀로 호젓하게 걸어간다.
중양리 갈림길(15:45)
중양리(中陽里)는 조선초기 난리가 있어 은진송씨, 강릉유씨 등이 이곳으로 피난온 뒤
개촌한 것으로 추정되며, 호랑이가 저무는 해에 개를 만나 개를 쫓는 형국이라 하여
모흘(毛屹), 마을 앞에 방죽이 있다 하여 방중(防中), 마을에 햇볕이 따스하고 바위가
많다 하여 양암리(陽岩里)로 부른 3개 마을이 있었으나 1914년 군 폐합시에 방중리와
양암리의 지명을 따서 중양리로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의 면적은 1.74㎢에 가구수는 40호에 인구는 90명이다.
자연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지형이 호랑이가 개를 쫓는 형국이라
모흘이라 부르고, 전에 방죽이 있었던 마을이라 방중말, 방중리, 바위가 많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서 따뜻한 마을이라 양암, 양암리, 양수바위라고 부른다.
오늘 내가 지나온 금북기맥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중양리 갈림길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이제 서서히 힘이 들 시간이었지만 병목산에서 30분간의 휴식이
참으로 유익했는지 오늘 훨씬 수월한 느낌으로 산행을 한다.
옥녀봉 정상에 올라선다. 팔각정이 눈앞에 보이고...
옥녀봉 팔각정 준공 표시석
옥녀봉 정상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옥녀봉의 유래 !
옛날 지금의 내대리 들을 앞으로 하고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심한
상처를 입은 노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가엾이 여겨 정성껏 치료한 후 산으로
돌려보내려 하였으나돌아가지 않아 결국 노루 우리를 만들어 주어 기르게
되었는데, 또 다른 노루들이 찾아 들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십여 마리가 되었고
농부의 집은 노루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하루는 농부가 피곤하여 깊은 잠이 들었는데 ,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금지사(지금의 옥산[玉女峰]에서 북쪽으로 8 KM 떨어진 사찰) 계곡 맑은 물에
목욕을 하고 그 중 한 仙女의 탄금(彈琴)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며
노는 것이었다. !
새볔닭이 울자 하늘에서 들려오는 탄금 소리와 함께 선녀들이 멀리 홍산
(비홍산)으로 날아가다 되돌아오더니 농부의 집을 한 바퀴 돈 후 노루우리에
곡식을 듬뿍 주고는 다시 멀리 하늘로 올라갔다. !
잠에서 깬 농부는 기이히 여겨 아내와 함께 꿈이야기를 하며 선녀가
날아간 산 너머를 바라보다가 노루 우리로 돌아와 보니, 곡식으로 보였던
선녀가 준 먹이는 곡식이 아닌 풀이었고 , 노루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사랑하는 아내가 병들어 죽게 되자, 선녀들이 하늘로
올라갔던 山 아래에 아내를 묻고 돌아와 보니 노루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농부는 이상히 여기며 아내의 무덤으로 가 보았더니 노루들이 아내의
무덤 옆에서 놀고 있었다. 그 날 이후부터 노루들은 눈이오나 비가오나 아내의
무덤에서 온 종일 놀다가 해질무렵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
그러던 며칠 후 으슥한 밤, 산에서 아내가 농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산으로 달려가 보니 , 캄캄한 밤인데도 산은 온통 환한 광채로
둘러쌓여 있고 많은 선녀들이 아내를 상좌에 앉히고 금(琴)을 타면서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 농부는 기쁜 마음에 아내를 부르며 뛰어갔으나 선녀들은 급히
아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고 ,노루들은 뛰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에도 아내는 농부를 불렀으나, 가까이 가면 아내가 하늘로
사라질까 두려워 농부는 다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슬하에 자식하나 없는
농부는 노루를 기르는 일과 선녀들과 함께 놀다 하늘로 올라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았다. !
後人들은 농부가 바라보던 산을 仙女가 나타나는 山이라 하여 옥녀
(玉女: 마음과 몸이 玉같이 깨끗한 여자)峰이라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운다. !
옥녀봉(玉女峰:368m:15:50)
충남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옥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옥녀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른다.
이곳 팔각정에 올라서니 지나온 북쪽으로 천덕산과 병목산, 월명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 부여군 옥산면의 넓은 들이 누렇게 보인다.
남서쪽으로 바라보니 장항 앞바다와 장항제련소 굴뚝이 아련히 보인다.
저 멀리 장항 앞바다가 아련히 보이고...
부여군 옥산면의 모습
이곳 옥녀봉 팔각정에서 넋놓고 걸어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서쪽으로는 이렇게 등로 정리가 정말 잘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5m 정도 내려서다가 좌측 숲이 가득한 쪽으로 보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이곳으로 금북기맥길이 이어진다.
칡넝쿨 숲사이로 자세히 보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숲을 헤치고 조금을 더 내려가면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기 시작을 한다.
이곳 등로에는 흔히 차돌이라고 하는 하얀 규암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진행하는데 이곳도 태풍으로 넘어진 나무들과
뿌러진 가지들로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젖은 등산화가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 사거리(16:10)
등로에서 갑자기 뚝떨어지는 절개지 아래로 임도가 나온다.
보령시 미산면 풍산리와 부여군 옥산면 중양리를 잇는 고개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올라서서 절개지로 오르는데 상당히 미끄러워
애를 먹으면서 겨우 등로로 올라선다.
함몰된 수직굴
등로에는 엄청난 깊이의 함몰된 수직굴이 나타난다.
굴 안에는 꽤나 큰 나무 한그루가 있다. 야간 산행시 상당히 위험한 곳이다.
등로를 치고 오르니 시원하게 벌목된 산등성이를 만난다.
이곳도 밤나무 단지가 조성되는지 어린 밤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기맥길을 이어간다.
벌목지대를 지나면서 다시 길이없는 곳에서 나무들의 시달림을 받는다.
오지산행은 이래서 힘이들지만 개척자적인 초심으로 산행을 한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우측으로 잡풀이 가득한 임도가 나온다.
키가 엄청나게 큰 산죽 군락지를 지나고...
관리가 제대로 안된 묘지를 지나 도로를 내려선다.
합동재길 공적 기념비가 나오면서 4번 군도로 내려선다.
잿말재(16:40)
충남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옥산면, 그리고 서천군 판교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번 군도가 지나는 곳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잿말재라고
하면 잘 모르고 참새미골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우측 바로 아래에
있는 보령시 미산면 풍산리 참샘골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길을 건너서 밤나무 단지를 넘어서 부시치 고개로 가야하는데
젖은 등산화와 양말 때문인지 발 뒷꿈치가 까져서 상당히 쓰라리다.
그래도 악착같이 밤나무 단지를 올라가면서 판교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17시 30분까지 부시치 고개로 와달라고 하고 밤나무 단지를
빠져 나가는데 잿말재에서 산행을 한 지 10분도 안되어서 언제 내려오냐고
자꾸만 전화질이다.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지 안느냐고 하니까
지나는 길이라 태워가야 한다고 하면서 계속 전화질을 하는 통에 카메라로
기록도 하지 못하고 마라톤 하듯이 부시치 고개로 향한다.
정말 짜증이 난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일도 없기에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부시치 고개(17:10)
충남 부여군 옥산면과 서천군 판교면을 잇는 고개로
서천과 부여를 있는 4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택시기사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막 부분을 제대로 기록을
남기지 못한 부분이 상당한 아쉬움을 남기고 2구간의 산행을 마감한다.
판교역(17:30)
택시로 부시치고개에서 판교역으로 와서 화장실에 들려 간단하게 씻는다.
이곳은 새로 지은 역사라 그런지 역사가 상당히 깨끗하고 수도에는 온수도 나온다.
화장실에도 사람이 사람이 없어서 편한 마음으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열차표를 예매하는데 입석이란다. 좌석이 없냐고 물으니 온양온천까지는
앉아서 가고 나머지는 서서 가란다. 표를 가지고 열차에 올라 온양온천역까지
깊은 잠에 빠진다. 꿀맛같은...
판교역에서 영등포까지 오는 열차표
온양온천역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식당칸에서 캔맥주 하나 마시고 자리로 오니
평택역부터는 빈 자리가 보여서 편하게 앉아서 영등포역까지 온다.
첫댓글 대단하신 범여님, 구경 잘 하고 갑니다.....ㅎㅎ
고맙습니다. 바람대장님 요즘 고향길 걷는 기분 쿨하겠네요
네. 좋아요...ㅎㅎ
어진간히 누비고 다니십니다,,하지만 자유롭게 구속없이 다니는 산행이 그저 부러울뿐,,,난 언제나,,,ㅎㅎㅎ 산길 사진만 봐도 얼매나 고생하셨는지 짐작이 갑니다,,어지간하면 늦가을이나 겨울철에 지맥기맥은 진행하시지,,ㅎㅎ
돌대장님 고마우이... 도 대장님은 잘있소. 서해안 지역 산길은 볼라벤의 영향으로
나무들이 피해가 많더군요. 넘어진 나무 땜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네요
벌도 많고 어제 저녁에는 부여까지 가서 심마니 친구와 함께 의성동산에 있는
왕탱이 수확해서 왔습니다.
그나저나 내년 3월부터 땅끝기맥 시작하시나요 확실히 알려줘요
내년 산행계획을 잡게...
현재로선 제 개인사정으로 불가피하게 진행이 어렵습니다,,도대장은 꼭 하고 싶어하구요..함께 할 사람이 산방에 몇몇 있습니다,..차후 자세한 내용은 함 만나게 되면 얘기나누죠..
아쉽네요. 아무래도 다른 산방을 알아봐야겠네요
좋은데 있으면 소개좀 해주소. 산악랜드란 산방에서
당일 10구간이라 너무 길어서 좀 거시기하네요
돌 대장 좋은곳 있으면 쪽지 좀 날려주소
땅끝기맥은 산악회에서는 잘 진행안하는것 같아요,,여러가지 제한요소가 많으니까요..통상 몇몇이서 승용차나 승합차를 이용해서 많이 하구요..우리도 그렇게 할려구했는데,,ㅉㅉ 언제 함 뵈요,,,땅끝기맥은 2~3월경에 시작해서 5월경에 끝나는것이 가장좋은데,,마지막에 청산도나 보길도를 방문하는것으로 마감..ㅎㅎ 내년에는 제가 여건이 안되고 금년에는 산방일정이 빡빡해서 혼자서 1박2일또는 2박3일로 몰아서 진행할까도 고려중입니다,,
용케도 길도없는곳을 우째그리 잘 찾아댕기십니까?
참 대단 하십니다. 범여님 늘 건강 하시고 완주 하는 그날까지 홧 팅 입니다..ㅎㅎ
렌 총무님 고마버요. 탱크님은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