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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월) Daily Golf News
1. 앙헬 히메네스, 유럽프로골프투어 최고령(50세) 우승 - 스포츠조선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가 유럽프로골프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히메네스는 19일(한국시각) 스페인 지로나의 카탈루냐 리조트(파72·7172야드)에서 열린 스페인오픈 4라운드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리처드 그린(호주), 토마스 피에테르스(벨기에)가 히메네스와 함께 최종합계 4언더파 284타를 기록했다. 18번홀(파4)에서 열린 연장에서 히메네스는 가볍게 파를 낚으며 그린과 페에테르스를 따돌렸다.
지난해 12월 유럽프로골프투어 홍콩오픈에서 49세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한 히메네스는 스페인오픈 우승으로 최고령 우승 기록을 50세로 끌어 올렸다.
1964년 5월 1일생인 히메네스는 40세 이후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유럽투어 21승 중 14승을 40세 이후에 수확했다. 히메네스는 "21번째 우승도 기쁘지만 스페인오픈에 27번째 도전해 첫 우승을 따내 더욱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성룡 기자
2. 대한민국 골프 트렌드 18 - 골프다이제스트
한국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골프는 유독 순식간에 평가 받고 유행을 탄다. 2008년에 ‘골프 트렌드’라는 테마를 시작했고, 2년마다 가장 핫한 트렌드를 18가지씩 뽑았는데 맙소사. 매번 거론된 이슈 중 상당수는 한두 순번을 거쳐 지나간 올드 패션이 되었고, 당시에는 상상도 못하던 내용이 이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네 번째 시리즈를 꼽자니 세월의 변화가 이런 것인가 싶다. 6년밖에 지나지 않았어도 말이다.
8년 불었던 와인 열풍은 10년 막걸리를 거쳐 지금은 사라졌다. 10년엔 스마트폰을 통한 골프앱이 반짝하더니, 그 동력을 스마트 매거진이 이어받았다. 08년엔 골프장마다 이색 홀을 경쟁적으로 만들더니, 10년엔 ‘리모델링’이 이슈였고, 12년엔 어두운 경기를 반영해 ‘그린피 할인’과 ‘셔틀 서비스’가 화두로 떠올랐다가 올해는 ‘9홀 코스’나 ‘노 캐디 풀카트’등의 실용성이 이슈가 된다.
장비의 변화를 살펴보면, 한국은 첨단 제품의 테스트 마켓인 것 같다. 08년 장비가 화려해지고 디자인이 관심받더니 10년 ‘셀프튜닝’, ‘감성’, ‘하이브리드’가 대신했고, 12년엔 ‘커스텀메이드’ ‘저중량’, 올해는 ‘비거리 아이언’과 ‘그립의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한번 주목받은 트렌드는 그 자체의 성장 논리를 타고 시장성을 확대해나간다. 한국만큼 새로운 장비에 대한 흡수력이 빠른 나라도 없을 것이다.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보자면 다채로움과 개성의 강조다. 08년 기능성을 살린 ‘웜 웨어’가 나오더니 10년 ‘컴프레션 웨어’로 12년엔 ‘프로 패션 라인’으로 발전해 이제는 ‘프로 컬러’, ‘하이브리드 의류’가 등장했다.
우리가 트렌드 기획을 2년의 새 시즌마다 거창하게 내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선 트렌드 세터는 자신감을 가지고 유행을 선도할 수 있다. 약간 뒤쳐진 골퍼라면 유행을 파악해 능히 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이 뒤쳐진 골퍼라면 트렌드에 따르려 분발하는 자극제가 된다. 트렌드를 알아서 좋을 게 뭐냐고? 그게 한국의 역동성이고 경쟁력 아니던가.
스마트 잡지 : 아이폰에서 메일링 매거진까지
2007년 1월9일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문화 정보 콘텐츠를 소비, 공급하는 형태가 급변했다. 골프 콘텐츠 역시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골프 인쇄 미디어 중 가장 앞서 있는 <골프다이제스트>만 해도 2011년부터는 종이 잡지 외에 아이패드 버전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키우고 조작하는 능동적인 잡지가 시작된 것이다. 예컨대 톱 프로 연속스윙은 하나의 스윙 동작을 70여개의 순간 스틸 컷으로 만들어 손가락으로 움직일 때마다 세부적인 동작이 따라 움직이게 했다.
지난해부터는 잡지를 내려받는 방식이 보다 다변화했다. 기존의 아이패드에서 올레매거진으로 내려받을 뿐만 아니라 삼성리더스허브를 통해 갤럭시탭에서도 볼 수 있었고, 안드로이드 마켓, 앱스토어를 통하면 스마트폰에서도 무료로 잡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물론 전체 콘텐츠는 잡지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자투리 시간에 간단하게 볼 만한 레슨과 골프 관련 읽을거리는 다양한 디지털 매거진 버전으로 만들어졌고 유통됐다.
지난해 6월부터는 ‘골프다이제스트티브이 GolfDigestv’가 등장했다. 외국 유명 교습가의 동영상 레슨 뿐만 아니라 국내 톱 교습가나 선수의 레슨과 인터뷰 동영상이 만들어졌다. 우리 잡지에서는 QR코드를 통해 즉시 볼 수 있었다. 유튜브나 판도라TV 등의 동영상 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디지털 매거진을 통해서도 부치 하먼, 데이비드 레드베터 등 시간 당 수천 달러 이상 주어야 하는 톱 교습가의 레슨을 볼 수 있었다.
올 들어 새로운 매거진이 추가됐다. 2월13일부터 최신 용품과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을 특화한 격주 e매거진 ‘골프다이제스틱스 GolfDigestix’가 창간됐다. 40만명의 골퍼에게 2주에 한 번씩 무료로 발송되는, 기존 <골프다이제스트>와도 다른 내용과 콘셉트의 매체다.
이를 통해 달라진 것은 다양성이다. 책으로 인쇄되는 콘텐츠가 있고, 디지털화 해서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간단히 전달되는 콘텐츠가 있고,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시청되는 콘텐츠가 있고, 메일로 발송되는 콘텐츠까지 있다. 실제로 하는 스포츠인 골프만큼 다양한 양식으로 만들어지는 플랫폼을 가진 종목도 없다. 또한 국내에서 <골프다이제스트>만큼 최신 툴을 활발하게 콘텐츠로 활용하는 미디어도 없다.
전자 캐디 : 골프버디에서 부시넬까지
위성항법장치 GPS를 통한 전자 거리 측정기는 2004년 8월에 국내에 첫 선을 보였고 이제 10년이 넘었다. 영국골프협회 R&A에서도 거리 측정기 사용 여부를 로컬룰로 정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올해부터는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쓸 수 있게 허용하면서 보급은 급격히 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캐디 선택제 논의가 활발해지고 실제로 노 캐디로 운영되는 골프장이 늘고 있다.
해외 골프 여행에서의 효용성으로 인해 전자 캐디의 수요는 급격히 늘었다. 대표적인 업체는 골프버디다. 지난해 출시된 골프버디보이스플러스는 전 세계 4만개 코스의 거리 정보가 모두 입력되어 있으며 그린 가운데뿐만 아니라 프론트와 백까지의 거리도 표시된다. 모자 챙에 끼워 쓰기도 하지만 손목시계 형태로 부착할 수 있는 워치도 나왔다. 지난해 미국 PGA용품쇼에서 나온 제품은 <뉴욕타임즈>에 상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유컴테크놀러지의 보이스캐디 역시 손목 시계형으로 GPS 거리 측정은 물론 스윙 템포 측정 기능을 담은 보이스캐디워치, 망원경으로 나오는 레이저, 종전처럼 모자 챙에 다는 VC350 제품을 내놓았다.
GPS를 이용한 전자 캐디 대신 레이저 방식을 이용해 실제 핀이 꽂힌 곳까지 측정하고 높낮이까지 반영하는 부시넬 등의 측정기 보급도 확대되고 있다. 부시넬 투어Z6 슬로프 모델은 특히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까지 계산된 거리를 알려주기 때문에 산악 코스에서 편리하다.목표물을 최대 6배까지 당겨볼 수도 있다.
스크린 골프 : 골프존은 골프계의 공룡
스크린골프는 새로운 골퍼를 배출하는 공장이다. 시장 지배적 독점 기업으로 성장한 골프존이 그 역할을 도맡고 있다. 2000년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골프존은 07년 골프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합친 골프존라이브토너먼트 GLT로 급성장했다. 2011년 5월 코스닥에 상장할 당시 시가총액은 1조1000억원이 넘어 코스닥 8위 기업에 올랐다.
시뮬레이션 골프 시장의 90퍼센트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골프존은 이후 사업 영역을 문어발처럼 넓혀나갔다. 기존 ‘리얼’ 버전에서 기능성과 화면을 대폭 향상시킨 상급자용 ‘비전’ 시스템을 12년에 출시하면서 G투어를 만들었는가 하면, 골프존마켓을 수도권에 대거 론칭하면서 골프 용품 유통의 판도 변화를 이끌었다. ‘플래그원’이라는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는가 하면, ‘트루핏’을 통해 피팅 영역까지 침투해 거대 자본을 통한 골프 유통업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11년 말부터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골프장 인수와 운영 사업도 시작했다. 전북 고창의 선운산CC를 인수해 골프존카운티선운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후 골프클럽Q안성과 클럽Q햄튼 등을 사들였다. 클럽Q안성은 지난해 퍼블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회원의 입회금을 17퍼센트만 인정한 법원 판결을 놓고 논쟁의 중심부에 놓이기도 했다. 함께 인수했던 햄튼은 ‘골프존카운티안성’으로 이름을 바꿔 올 상반기 중 개장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는 GDR을 통해 골프연습장 시장까지 진출했다. 전국의 실내외 연습장이나 스포츠센터에 골프존 시스템을 보급시킨다는 포부다. 골프 게임 관련 계열사인 ‘골프존엔터테인먼트(가칭)’도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골프 전 산업에 걸쳐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가운데 스크린골프 매장 점주는 점차 어려운 영업 환경에 직면했다. 골프존은 프랜차이즈 이상의 권력을 발휘하면서도 프랜차이즈가 아닌 판매 사업체라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지난해는 정치권에서까지 ‘갑의 횡포’를 질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여론이 악화되자 골프존은 올해 신규 제품 판매는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스크린골프는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으로 젊은 세대와 신규 골퍼를 양산하는 점에서 골프계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골프존의 자본력을 앞세운 전방위의 시장 장악은 장기적 차원에서보면 자생적인 골프 산업 생태계의 발전을 막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미니 코스 : 저렴한 9홀 퍼블릭 확대
미국에서는 9홀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잭 니클러스는 ‘18홀이 아니어도 12홀, 9홀이라도 라운드하도록 만들자’면서 자신이 공들여 만든 뮤어필드빌리지 골프장에 12홀, 9홀 스코어카드도 비치하고 있다. 골프 인구가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라운드 시간이 줄더라도 골프 인구 자체를 늘리자는 것이 9홀 캠페인의 목적이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형태와 운영의 9홀 코스가 모색되고 있다. 종전까지 접대용 비즈니스 골프의 자리를 시니어, 여성층과 주니어를 포함한 가족 골프 형태가 확대되면서 그들에게 9홀 골프가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 등장했다. 시간대에서도 새벽이나 오후 늦게 트와일라이트 9홀 라운드의 수요가 늘고 있다.
경기 안성베네스트의 9홀 부설 퍼블릭인 ‘동 코스’는 지난해 7월 노 캐디 시스템을 표방한 놀이공원형 ‘그린몬스터 Green Monster 코스’로 거듭났다. 코스 내 곳곳에 인형 캐릭터와 함께 홀마다의 이벤트도 다양하다. 이미 일동레이크의 락가든GC는 노 캐디에 카트비를 받지 않는 완전한 미국식 퍼블릭 운영으로 부설 코스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용인 에버랜드 부설 글렌로스는 이웃한 호암미술관 관람객에게 레스토랑을 개방한다. 가족이 이용하되 자녀는 에버랜드나 캐리비안베이, 로스트밸리 등 놀이공원을 이용하고 부부 내외가 라운드하는 상품도 있다. 혹서기에는 오후 4시 반을 넘어 9홀을 라운드하는 고객으로 붐빈다.
고양, 일산 인근엔 몇 년 새 스프링힐스CC, 베스트벨리GC, 노스폴CC, 고양CC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국내 골프장 중에 가장 오랜 서울한양CC도 퍼블릭 9홀인 한양파인CC를 10월에 추가 개장한다.
경기도 이천의 더반CC처럼 처음부터 9홀을 표방하고 신설되는 코스도 있다. 좌우 2개의 그린을 만들어 전후반 라운드가 다른 느낌이 들도록 처음부터 설계됐다. 페어웨이만 동일하지 홀 공략법은 달라 인기다. 경주 안강레전드GC 역시 하나의 페어웨이에 두 개씩의 그린과 티잉 그라운드를 둔 18홀 느낌의 코스다.
원래 파3 코스이던 곳을 부지를 추가 확보해서 9홀 코스로 운영하기도 한다. 영천의 시엘GC는 2006년 개장할 때는 파3 코스였으나 10만제곱미터이던 부지를 19만제곱미터로 추가 매입해 올리고, 확장 공사를 거쳐 전장 2532미터의 9홀로 재개장했다.
체육진흥공단은 11년부터 전국에 9홀 골프장인 에콜리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6홀이던 광주광역시의 광산에콜리안을 9홀로 확대해 개장한 것을 시작으로 12년에는 정선과 제천에도 추가했다. 제천의 경우 쓰레기 매립지이던 곳을 친환경 방식으로 조성해 운영중이다. 공단 측은 전남 영광과 경남 거창에도 에콜리안 9홀 골프장을 개장할 예정이다. 그린피는 주중 3만원에 주말 4만원이며 노 캐디, 풀카트 운영 방식은 동일하다.
글_남화영
3. [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17>영원한 현역 김운용 대표 - 동아일보
진주공고 졸업 후 배구 선수로 제일제당에 입사한 건 1966년이었다. 무릎이 아파 3년 만에 코트를 떠나 총무과 말단 직원이 됐다. 그렇게 사회의 문을 두드린 지 48년이 흘렀어도 그는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김운용 중국 지린 성 완다(萬達) 창바이산(長白山)리조트 골프장 대표(67)다. 지난해 12월 CJ그룹 나인브릿지골프장 대표에서 물러난 뒤 올 2월 중국으로 건너간 그를 처음 맞은 건 영하 26도의 칼바람이었다. 60대 중반을 넘긴 김 대표는 옷깃을 여미며 새 길을 향한 첫발을 뗐다.
17일 골프장 그랜드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던 그를 이달 초 백두산 서파 산문(山門)에서 1시간 거리인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은 이미 반팔 차림이 흔해졌지만 백두산에는 아직도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이 리조트는 세계 2위의 부동산 기업인 완다그룹이 200억 위안(약 3조3000억 원)을 투자해 조성하고 있다. 3300객실을 보유한 호텔 9개, 슬로프 43면을 갖춘 스키장, 54홀 규모의 골프장 등으로 이뤄졌다.
대형 리조트의 고문 겸 골프장 최고경영자(CEO)가 된 김 대표는 “한국인으로 중국 골프 산업을 개척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다. 내가 잘해야 한국인의 중국 골프시장 진출도 활발해질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문을 열었다.
○ “中골프 대중화” 완다그룹 삼고초려 영입
김 대표는 2000년 제주 나인브릿지 골프장 대표를 맡아 세계 100대 코스에 진입시킨 뒤 경기 여주시 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장을 명문으로 키웠다. 평소 그는 중국 골프에 관심을 기울였다. 골프 산업의 블루오션으로 주목했기 때문이다. 중국 골프매거진에 세계 100대 골프장 탐방기를 2년 넘게 기고했다. 중국 골프장 총회에 3년 동안 옵서버로 참석하는 등 한중 골프 교류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이력을 눈여겨본 마춘예(馬春野) 리조트 총괄사장이 김 대표 영입을 위해 한국까지 찾아와 삼고초려의 정성을 쏟았다. 2년 계약에 연봉은 판공비를 포함해 5억 원 정도로 알려진 김 대표는 “중국의 골프 대중화를 앞당긴다면 한국 골프 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이 정체기에 있는 한국 골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낯선 땅에 정착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된장국과 찰밥을 먹을 수 있다.(웃음) 중국 직원이 아침마다 주는 삶은 계란의 온기에서 따뜻한 정을 느낀다. 5시간 연속 회의가 되풀이돼 외로울 여유가 없다. 고향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내가 왜 여기에 있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자문하며 잊는다.”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백화 코스와 로버트 트렌트 존스가 설계한 송곡 코스로 이뤄진 이 골프장은 백자작나무로 둘러싸인 뛰어난 풍광에 맑은 날에는 백두산을 바라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천혜의 조건을 지닌 골프장에 한국 특유의 섬세한 운영 노하우를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캐디 전문 교육기관 강사들을 초빙해 300명에 이르는 현지 캐디 교육에 공을 들였다. 매일 오전과 오후 6시간씩 직원 교육을 마친 뒤 야간 회의와 강의를 끝내면 오후 10시나 돼야 퇴근하는 일상을 되풀이했다. 골프채나 빼주던 역할에 그쳤던 중국 캐디들은 불과 몇 달 사이에 고객 만족과 서비스에 신경 쓸 정도로 달라졌다.
○ 고졸 CEO 신화… 샐러리맨의 롤모델
김 대표는 샐러리맨의 롤 모델로 꼽힐 만하다. 반세기 가까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몸담으며 고졸 CEO의 신화를 이뤘다. 1995년 제일제당 영업이사에 올라 임원으로만 18년을 일했다. 그 비결을 묻자 그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1980년 경기 용인자연농원 식물과장으로 일할 때 이 회장님을 모셨다. 나무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좋아한다는 말씀을 해주시며 정직과 성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 후 내 좌우명이 됐다.”
1992년 골프에 입문하면서 그는 하루에 500개의 공을 치며 집요하게 매달렸다. 한때 74타를 쳤던 수준급 실력에 CJ 임원 골프대회를 하면 ‘롱기스트 1등’을 도맡아 할 만큼 장타를 지녔다. 이런 이력으로 2000년 나인브릿지 골프장 대표가 된 뒤 20년 넘게 피워온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금연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1등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햇반 등을 팔면서 영업왕도 여러 번 했다.” 삼성의 제일주의와 CJ그룹이 강조하는 온리원 정신이 그의 몸 깊숙이 박혀 있었다.
배구 선수 시절 ‘스타’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김 대표는 1970년대 후반 삼성 남녀 농구단 창단에 관여했고 1980년대에는 프로야구 삼성 관리부장 등을 지내며 스포츠 현장을 누볐다. 당시 삼성과 현대는 치열한 농구 유망주 스카우트 전쟁을 펼쳤다. 그 중심에 섰던 김 대표는 비화 몇 가지도 털어놓았다.
“삼성에서 이동균이라는 선수를 뽑기 위해 제주에 피신을 시켰는데 현대가 경비행기까지 띄워 몰래 데려갔다. 그가 울산 현대조선소 영빈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빼돌려 제일제당 씨름 선수 6명을 대동해 서울로 데려간 뒤 외부 접근을 막으려고 호텔 방문에 못까지 박았다. 이충희는 고려대 시절부터 매달 학비 명목으로 월급을 줬고, 아버지를 제일제당에 취직시키고 집도 사줬는데 당시 현대 정주영 회장님의 지시를 받은 현대의 물량 공세에 결국 놓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젠 까마득한 옛일을 회고하던 그의 눈망울은 마치 007작전을 하듯 긴박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번득였다.
손녀의 백일을 앞둔 김 대표는 “앞으론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달라”고 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모습이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는 50대 후반에 늦깎이 대학생이 돼 석사 과정을 거쳐 명예박사까지 됐다.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차 안에서 김밥과 우유를 먹어가며 학교를 다닌 그였다. “최고의 선택은 늦게나마 공부를 한 게 아닐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 도전과 창의는 늘 내 친구였다.”
김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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