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龍飛御天返歌
정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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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떨어진 명성보다 어깨 겯고 합 맞출 때 공덕문을 지운만큼 석자 이름 높일 것을 막바지 한 걸음까지 고꾸라지지 않게끔.
- 《오늘의시조》 2023. 제17호
출처: 사단법인한국시조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