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刺客 對 刺客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마영의 표정이 참담해졌다.
{무...무엇을 알고 싶소?}
조중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스쳤다.
{별 것 아니네. 자네가 노린 표적과 자네를 제외한 다른 자객들 의
이름만 말하면 되네.}
{대가는?}
{생명이네.}
비마영의 표정이 비감에 잠겼다.
{물론 무공은 남겨두지 않겠지?}
조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인터라 비마영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표적은 범천대공 연대강이고, 이번 일에 고용된 다른 자객들 중
추명사(追命蛇)가 끼어있다는 것밖에 아는 것이 없소.}
순간 조중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암살 표적이 삼태상(三太相) 중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소맹주인연대강이라니?
조중이 제정신을 차리기에는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이튿날 아침, 서생으로 변장한 담사는 자신이 묵고 있는 절을 향했다.
빌어먹을 청부자놈들같으니...!
비마영이 무림맹에 잡혔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는 다시 한 번이번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중이란 사나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비마영으로부터 한 방울의기름까지 다 짜낼 것이다.
조중은 귀견수(鬼見手)라는 그의 별호대로 사람을 쥐어짜는 데는 전문가다. 아마도 지금쯤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났을 것이다.
비마영이 또 다른 자객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존재는 모른다.
그렇다고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자신의 위협은 그렇다 치고라도 이제 표적대상을 알았으니
그들은 천라지망을 펼칠 것이다.
사실 그들이 암살대상을 모르고 있더라도 연대강의 암살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헌데 이제는 어느 정도 사실이 드러났으니 아예 불가능이 아닌가?
그러나 일은 이미 시작된 것, 이제 와서 멈춘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신(神)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부터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연대강은 신이 아니다.
그도 피와 살로 된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인간인 것이다.
이제 남은 자객은 자신 외에 두 명뿐이다.
추명사와 비마영이 서로 연락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림맹이 추명사를 찾기 전에 그가 먼저 찾아내야 한다.
그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비마영은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몇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천갈(天蝎), 추명사(追命蛇),
그리고 철혈무정(鐵血無情) 석무심...
모충이 살해된 지 삼십 이 일째,
무림맹 감찰전은 아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조중의 보고를 받은 감찰전주 막대승(莫大昇)은 비로소 일의 심각성을 느꼈다.
철혈무정 석무심이란 이름은 감찰전에 비치된 문서에 의하면 무림맹의 적들 가운데서도 제일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감찰전에는 하나의 비밀서고가 있다.
이 안에는 강호 각대문파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무림맹에 반기를 드는 위험인물에 관하여 신상내력이 파악된 각종 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감찰전주 막대승은 이번 일에 문서담당의 책임자인 문창필(文昌筆) 학만궁(鶴萬弓)을 합류시켰다.
-문창필(文昌筆) 학만궁(鶴萬弓)!
문무쌍절의 인물로 문예도 조예가 깊지만
붓으로 시전하는 문창필번(文昌筆法)은 강호일절(江湖一絶)이다.
성격은 부드러운면서도 신중한 면이 있고 죄를 싫어하는 경향이있다.
나이는 사십 칠 세,
그는 우내삼기 중 태허천존(太虛天尊)의 기명제자이기도 했다.
조중과 감찰전주 막대승은 학만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만궁은 귀가 크고 각진 모습은 무뚝뚝하게 보였으나 전체적인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학만궁이 입을 열자 두 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그 동안 자료에 의하면 천갈(天蝎)이라는 이름은 아직 한 번도강호상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추명사(追命蛇)라는 이름은 과거 몇몇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것은 제가 여기 사본을 준비했으니 나중에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탁자 위에 꽂인 똑같은 내용이 담긴 다섯 장의 종이를 가리켰다.
{다음은 철혈무정 석무심인데 이 자에 대한 자료는 충분합니다.}
그는 말하며 두 장의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이름: 석무심,
나이: 이십 삼사 세 가량,
성격: 잔인한 성품에 수법이 독랄한 자임.
특징: 수려한 미목에 무심한 표정, 흑색장삼을 즐겨 입음.
무예: 검에 대단한 조예가 있으며 수법은 잔인하면서도 괴이한검법을 구사함,
간혹 지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의 무예 근원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없음.
무예의 수준은 일류고수임.
그 밑으로 그가 강호에 나타난 이래의 활동상황과 자세한 행적 이 기록되어 있었다.
{여기서 보다시피 철혈무정의 내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으나
사실 별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한 달 전 완전히 종적을감추었기 때문에 행방을 다시 추적하자면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 해야 할 일은 암살에 동원된 자객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은 없으나 추명사의 특징과 그의 모습에 관하여 설명이 있으니 다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중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더 없나?}
학만궁은 생각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 가지 더 있기는 한데....}
그가 뒷말을 흐리자 조중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말인가?}
{그것은... 부전주께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모충은 죽었고 월화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는 말인데, 철혈무정이 청부자라고 가정할 때. 모충이 죽음으로 그자의 계획에는 심각한 차질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감찰전주 막대승과 조중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한 가지는 모충의 죽음으로 어느 정도 비밀이 밝혀졌으니 그들은 연막을 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공동파 장문인에게 은밀히 모충의 자취를 전했고. 진산도인이 향주지부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막대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추측은 그럴 듯하군.}
학만궁은 빙그레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두 번째, 모충이 살해된 후 철혈무정은 당장 모충을 대신할 자객이 필요했습니다. 그로 인해 월화는 철혈무정으로부터 더욱 유능한능력자를 구해 보라고 독촉했을 것이고, 시간이 없었던 월화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조중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쳤다.
학만궁의 말은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시 그녀는 약 서너 시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제생각으로는 그 시각에 월화는 누군가와 은밀히 만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또 다른 자객을 구하기 위해서...!}
막대승과 조중은 바보가 아니다.
학만궁의 말이 무슨 말인지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그 다음 말의 뜻을 환히 알고 있었다.
{세 번째, 현재 이 일에 관계된 이름은 죽은 자들을 제외하고
철혈무정, 추명사, 비마영, 천갈입니다.
이 중에서 자객으로는 비마영은 잡혔으니 제외되고 철혈무정은 청부자,
천갈은 월화가 잠깐 실종되기 전날 사라졌으니 그도 해당은 안 됩니다.
허나 이 자의 정체가 신비하니 제외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로써 남은 것은 한 명의 다른 자객 몇 명 더 있을지는 모르나 제 생각으로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급히 해야 할 일은 두 가지군.}
조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추명사의 추적과 월화가 만났던 의문의 인물..}
{그렇습니다.}
학만궁이 말했다.
{추명사는 저의 수하들이 지금 추적 중이고 의문의 인물을 찾기위해서는 제가 직접 항주성으로 가겠습니다.}
학만궁의 말에 막대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것으로 각자 해야할 일은 결정됐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조중에게 말했다.
{떠나기 전에 한 마디 해줄 말이 있네. 알고 있다시피 현재 구파일방은 우리의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위협을 느끼고 협조를 회피하고 있는 실정에다 시간에 쫓기고 있어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느 정도 수단이 조금 나쁘더라도 상관치는 않을 생각이네.}
잠시 말을 멈춘 감찰전주 막대승의 눈빛이 비수같이 날카로워졌다.
{나의 신념은 단 하나 뿐이네. 무림맹을 적대시 하는 자는
설사황제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네.
그리고 만일 연공자에게 무슨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아무도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를..}
조중과 학만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감찰전주 막대승의 침중한 말을 혈풍(血風)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무림맹은 전륜교(轉輪敎)와의 대결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별다른 큰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왔다.
간혹 크고 작은 시비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문제시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림맹의 전체를 뒤흔들려는 음모가 시작된 것이다.
감찰전의 분위기는 전례없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며칠 동안 담사는 자신의 처소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지는 않았다.
비마영의 사건 이래 그는 추명사의 행방을 탐지하기 위하여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 대가로 추명사의 행방에 대한 조그만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팽노대의 정보에 의하면 추명사는 분명 비마영과 연락이 있었다.
그렇다면, 혼자서 행동하는 그로서는 비마영과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먼저 성문을 지키는 관인들을 매수했다.
그 결과, 오 일 전추명사의 모습과 비슷한 인물이 악양성을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황계(黃啓)는 악양성 토박인 동시에 야효방(夜梟幇)의 향주급 인물이었다.
야효방은 악양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흑도(黑道)의 세력 중 하나로 이들은 주로 도박장과 주루 등을 상대로 기녀를 공급하거나 여파 세력으로부터 보호 또는 협박으로 금전을 갈취하는 하오문의단체다.
초경(初更) 무렵,
언제나 즐겨 찾는 주점에서 황계는 수하 두 명과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술을 마셨다.
그들의 이야기는 추잡했고 행동은 방약무인했으나 다른 손님들도 거의 같은 수준의 거친 인간들이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삼십대의 험상궂은 사나이가 황계의 좌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왼쪽 뺨에 긴 칼자국이 지렁이처럼 나 있어 음침해 보이는 인상에 녹삼(綠衫)을 입고 있는데, 허리에 걸려 있는 장도는 그가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황게 일행을 살펴보던 그 녹삼인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황계의 좌석으로 다가섰다.
{잠시 실례하겠소.}
녹삼인의 목소리는 약간 탁하면서도 굵직했다.
황계를 비롯한 두 명의 수하는 어떤 놈이 흥취를 깨느냐 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황계는 힐끗 그를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았다.
{무슨 일이오?}
녹삼인의 일신에서 풍기는 기세가 험악해 보였는지라 황계의 목소리는 떨떠름했다.
{혹시 야효방의 형제 아니시오?}
녹삼인의 물음에 황계는 흠칫했다.
그의 어조는 녹림도가 쓰는 용어가 아닌가!
{그렇소만, 형제는 어느 도상(途上)의 사람이오?}
녹삼인은 반가운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나의 눈이 잘못 보지 않았구료. 나는 하북(河北)승가채(丞家寨)에 속해 있소이다.}
이 말에 황계의 눈이 놀라움에 커졌다.
하북 승가채라면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에서 두 번째로 가는
강력한 세력이다.
야효방을 승가채에 비교한다면 아이와 어른의 차일 것이다.
황계는 급히 일어나 포권을 했다.
{야효방의 황계가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녹삼인도 함께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를 했다.
{하북 승가채의 하복(河福)이라고 합니다.}
서로 수인사가 오가고 자리에 앉자 자신을 하복이라고 밝힌 녹삼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황형제, 오늘의 술은 내가 살 터이니 마음껏 마십시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주인이니 당연히 내가 사야지요.}
서로 한 동안 사양을 거듭하며 술잔이 오갔다.
야효방도 따지고 보면 녹림도상의 방파이다. 게는 가재 편이고,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녹림인들의 단결력은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하복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보기에 몹시도 근심에 찬 표정이었다.
{하형제께서 무슨 근심이라도?}
황계가 말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으니 말씀해 보시오.}
처음부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복은 쓴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황형제의 의리는 제가 높이 사고 있지만... 이 일은 사적인 일이 되어서...}
그가 짐짓 말 끝을 흐리자 황계는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형제 무슨 소립니까?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간에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끓는 물이 아니라 불 속이라도 뛰어 들겠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외치며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이거...황 형제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말끝을 흐리며 한 차례 세 사람을 일별하고 난 다음 은근한 어조로 설명했다.
{사실 저는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님의 남편인데 정혼을 했을 때는 가난 했으나, 그 동안 누님의 고생으로 어느 정도 살만 해지자 한 달 전 갑자기 돈을 챙겨 가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복은 탄식하며 허탈한 빛을 띠었다.
{그래서요?}
황계와 두 사람은 앵무새처럼 말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누님은 열 명이나 되는 조카들을 거느리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병으로 드러눕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일을 제가 몰랐다면 모르지만 동생된 도리로써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형제께서는 자형을 찾고 있는 셈이로구료?}
황계가 말하자 하복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며칠 전 그 사람이 악양성에 있다는 소식을접하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어디 악양성이 조그만 마을도 아니고...며칠 동안 찾아보았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황계가 걱정 말라는 듯이 분연히 외쳤다.
{하형제, 걱정 마시오. 나 황계는 악양성의 정보통이오. 여기서 많이도 말고 두 시진만 기다리시면 제가 그 사람을 찾아오겠소이다.}
하복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황망히 두 손을 모았다.
{이 하복, 죽는 한이 있더라도 황형제의 의리는 절대 잊지 않겠소이다.}
{별말씀은...그것보다는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인상착의나 가르쳐 주시오.}
하복은 연신 감사를 표하며 품속에서 열냥 정도의 금자를 꺼냈다.
{이것은 제 성의니 경비로 써 주십시오.}
한 순간, 황계와 두 명의 장한들 눈에 탐욕의 빛이 스쳤다.
황금열 냥이면 쌀이 삼십 가마는 족히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황계는 처음에는 사양을 했지만 하복이 계속 권하자 짐짓 못이기는 채 받아 넣으며 인상착의를 듣고는 황망히 수하들과 뛰쳐나갔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날 밤 야효방의 패거리들은 온 악양성을 뒤졌다.
하복은 물론 담사가 변장한 것이다.
그는 추명사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악양 일대의 흑도 무리인 황계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황금 열 냥의 위력은 그로부터 두 시진 후에 나타났다.
얼굴에 가득 땀을 흘리며 황계가 주점으로 뛰어 들어왔다.
일순 담사의 눈에 광채가 스쳤지만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 더욱빨리 사라졌다.
황계는 맞은편 좌석에 털썩 주저 앉으며 술을 물마시듯이 들이마셨다.
{크_ 좋군.}
황계는 의기양양할 표정으로 트림을 하고는 말했다.
{하 형제, 찾았습니다.}
담사는 벌떡 일어서면서 환한 표정으로 감사를 했다.
{이거 정말 황형에게 무어라 감사해야 될지..}
{하하하 다 같은 동도끼리 무슨 말을 제가 하북으로 가면은 그때 잘 부탁합니다.}
{그거야 이를 말씀입니까? 오시기만 한다면 제가 화끈하게 모시지요.}
{하하 기대가 됩니다!}
한 동안 두 사람은 호통한 웃음을 터뜨리며 술을 마셨다.
삼경(三更) 무렵,
담사는 서생 차림으로 만송루(萬松樓)란 객점으로 들어갔다.
그 는 어느 새 악양성에 처음 올 때의 차림으로 돌아간 것이다.
숙박과 함께 술도 파는 만송루는 이미 삼경이 지났지만 제법 많은 주객(酒客)들로 여전히 흥청거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는 돈푼 꽤나 있는 듯한 담사의 풍모에 강아지처럼 살살거렸다.
그의 오랜 점소이 생활로 지금 이런 시간에 오는 손님들은 거의대부분 여자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헤헤 저의 집에는 미주가효와 기막힌 미녀들이 있지요.}
담사는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은자를 점소이 손에 쥐어 주었다.
{마침 제시간에 왔습니다요. 저를 따라오시지요.}
점소이는 신바람 난 걸음으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안에 들어선 담사는 점소이가 나가자 두 눈을 빛내며 청력을 집중시켰다.
(황계의 말에 의하면 바로 옆방에 추명사가 있다.)
한 동안 옆방의 동태에 귀를 기울이던 담사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똑똑!
그때 문득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청초한 미모를 지닌 이십세 가량의 기녀가 술상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소녀 난향(蘭香)이라고 하옵니다.}
{내 성은 하씨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난향은 눈을 곱게 흘리며 그의 옆에 앉자 담사는 호색한처럼 설쳤다.
{흐흐 너의 몸이 일품이구나.}
{하 공자님, 우선 술부터 드시와요.}
난향은 싫지 않은 듯 몸을 피하며 술잔에 술을 따랐다.
담사의 행동은 완전히 방탕한 탕아처럼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연신 그의 손은 난향의 몸을 더듬었다.
겉으로는 가냘프게 보이던 기녀 난향의 몸매는 막상 옷을 벗겨내자 의외로 풍만했다.
전체적으로 몸은 호리호리했지만 나올 곳과부풀 곳은 확실히 나오고 부풀어있기 때문이었다.
동산 같은 탐스런 젖무덤, 그에 반해 한줌이나 될까 싶은 가녀린 허리, 그 개미허리 같은 아래쪽에 자리한 평퍼짐한 둔부, 담사의 섬세한 손 끝이 부드럽게 스칠 때마다 난향은 바르르 떨었다.
그녀는 초승달 같은 눈썹을 파르르 떨었고, 살짝 벌려진 붉은 입술에서 짐승 같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집요한 담사의 손길에 나향의 깊은 계곡은 이내 뜨거운 홍수가 일어났다.
[어...어서 제발...!]
집요한 담사의 애무로 인해 몸의 중심부가 얼얼해진 난향은 참지 못하고 애원했다.
그녀는 스스로 담사의 하의를 벗기며 자신의육체를 개방했다.
[훌...훌륭해요!]
하의가 벗겨지며 들어난 담사의 실체를 본 난향은 기쁨과 경이의 탄성을 토해내었다.
담사의 그것은 그녀의 손으로 다 쥘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중량감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장대한 크기와 박달나무 같은 강도하며...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난향은 스스로 자신의 화끈거리는 부분을 벌리고는 그곳으로 담사의 실체를 이끌어갔다.
이미 질펀한 홍수가 진 그녀의 그곳은 흡사 뜨겁게 끓어오르는 늪지와도 같았다.
담사는 미끈한 다리를 허공으로 쳐들고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난향의 중심부로 서서히 몸을 밀어붙여갔다.
자신의 관문이 침탈당하는 순간 나향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길로 들어선 이래 그녀는 충분히 준비가 된 상태에서도 처음으로 뻐근한 둔통을 느꼈다.
하지만 생살이 뜯어지는 듯 한 그 둔통은 이내 후련한 충만감으로 돌변하여 그녀로 하여금 절로 앓는 듯한 신음을 토하게 만들었다.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희열에 몸부림치며 난향의 섬섬옥수가 백사처럼 담사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정작 담사의 뇌리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담사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난향은 완전히 도취되어 열띈 신음소리를 냈다.
사내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자 그녀의 몸도 어느새 연체동물처럼 꿈틀대며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삽시에 절정이 육박해왔다
. 난향은 그 높은 언덕으로 치받혀 올라가며 숨을 할딱였다.
헌데 바로 그 중요한 순간 난향은 갑자기 사내의 움직임이 정지한 것을 느꼈다.
{왜...왜 그래요?}
절정 직전에서 멈춰진 난향은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담사에게 원망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담사를 머금은 그녀의 일부는 별개의 생물인 양 움찔대며 자극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담사는 여체의 교묘한 옥죄임과 흡입에도 아무 반응도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난향은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눈을 떴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갑자기 엄청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무어라고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수혈(垂穴)을 짚어 난향을 잠들게 한 담사는 소리 없이 난향의 몸에서 빠져나온 뒤 재빨리 옷을 입었다.
옆방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가 담사의 방문 앞으로 가까워졌다가 이내 떨어져갔다.
담사의 신형이 재빨리 방을 빠져나왔다.
사경(四更)이 지난 만송루는 간간이 멀리서 들리는 취객의 고성을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담사는 복도를 빠르게 살펴본 다음 소리 없이 옆방으로 스며 들었다.
방문은 문이 잠겨 있지 않아 그대로 열렸고, 불이 켜져 있지 않은방 안은 어두웠지만, 창을 통해 흘러드는 달빛으로 인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다.
왼쪽 벽쪽에 위치한 침상 위에는 알몸의 여인이 풍만한 상반신을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숨소리가 고른 것으로 보아 잠 속에 빠진 듯 했다.
담사의 신형은 고양이처럼 한 점의 기척도 없이 침상 아래로 빠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르륵!
문이 다시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침대 아래로 보니 들어서는 그 인물은 왼쪽 발을 약간 절고 있었다.
사내는 힐끗 침상 위를 쳐다본 뒤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그 사이에 잠 들다니...}
그자는 탁자 위에 찻물을 단숨에 들이켜고 침상에 올라갔다.
사내가 다시 옆자리로 들어오자 여인은 일순 몸을 흠칫했지만 그대로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요것.. 밤새 주물러도 싫증이 안 난다 말이야.. 윽!}
잠든 여인의 젖퉁이를 주무르던 그 사내는 돌연 비명을 터뜨리며 벼락같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촤아!
솟구치는 그자의 등 뒤로부터 피분수가 쏟아졌다
. 침상위에 툭 튀어나온 검 끝에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지 않은가?
{추명사(追命蛇)! 도망갈 수가 없다!}
어느 새 침상 아래에서 빠져나온 담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식지(食指)와 중지(中指)로 사내의 기문(氣門), 현기(玄氣) 요혈(要穴)을 찔러갔다.
순간 절름발이 사내는 허공에서 후딱 재주를 넘으며 양손을 뿌렸다.
슈우욱_ 슉!
녹광(綠光)을 머금은 십여 개의 독질려(毒叱犁)가 푹죽 터지듯 무서운 속도로 담사의 전신을 쏘아왔다.
담사의 눈빛이 번쩍 불이 났다.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다니.)
찔러가던 식중 이지를 거두며 쌍수를 풍차처럼 돌렸다.
파_ 파팍_팍!
잠풍에 맞부닥친 독질려는 주춤했지만, 그 중 몇 개가 장풍의 막을 뚫고 그대로 파고들었다.
허나 이때 담사의 신형은 이미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몸을 휘돌려 발로 천장을 박차며 매처럼 절름발이 사내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절름발이 사내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암기를 쏘아 보내려고 했지만 불가사의한 속도로 덮쳐온 담사의 손길에 기문(奇門), 장대(壯臺)의 양 혈도가 점혈 되고 말았다.
갑작스런 사태에 잠이 깬 여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공포에 몸이 굳어졌는지 두 눈을 멀거니 뜨고 있었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에는 절름발이 사내의 등에서 쏟아진 선혈이 벌겋게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담사는 그녀를 아랑곳 않고 재빨리 절름발이 사내를 옆 에 끼고 방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꺄아아악!]
그때서야 여자의 입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추명사는 눈앞의 담사를 쳐다보며 넋을 잃었다.
{네가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등, 그런 것은 아무런 필요도 없다.내가 알고 싶은 것은 비마영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사실이다.}
담사는 일점의 감정도 깃들어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객의 제일 첫째 요건은 안력이 좋아야 하는 사실이다. 즉,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무공수위 등 모든 것을 재빨리 파악해야 된다는 말이다.
추명사로서는 눈앞의 인물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느꼈다.
치밀한 수법과 여유 있는 행동, 그리고 야수 같은 민첩성 등은 이 방면에서는 일류로 통하는 추명사로 하여금 절로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등 뒤 명문혈(命門穴)에 난 그의 상처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명문혈은 치명적인 사혈(死穴)로 심하면 즉사하고 조금만 다쳐도반신불수가 된다.
담사가 그 명문혈을 찌른 깊이는 세치, 추명사는 길어야 이틀을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추명사는 자신보다 더욱 지독한 전문가를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자신도 누구에 못지않은 독심을 지니고 있으나 이런 자 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내 말이 끝난 후 통쾌한 죽음을 달라는것이오.}
담사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스쳤다.
{그 말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 있지.}
추명사는 담담히 설명했다.
그가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월화와 비마영, 그리고 철혈무정의 이름 정도뿐이었다.
헌데,
{천갈(天蝎)이라니...!}
담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나도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소. 다만 그의 이름이 천갈이고, 직접 보지는 않았으나 무서운 절예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것뿐인가?}
추명사는 문득 허공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렇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담사의 좌수가 소리 없이 그의 사혈을 찔렀던 것이다.
풀썩 주저앉는 추명사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십 년 동안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전 속에 숨 가쁜 삶을 살아온 그의 최후로서는 너무나 허망했다.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 속에 쓰러져 가는 자객의 길,
그러나, 그도 한때는 꿈많은 시절이 있었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