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장 ------ 野望의 부산물들
석청루!
오직 술만을 파는 주루이다.
또한 황석진에서 가장 주루가 큰 주루이기도 하다.
특히 이 석청루는 여러 면에서 가장 유명해진 주루 가운데 하나였
다.
첫째, 으례 주루에서 술을 팔기위해 몸과 웃음을 파는 기녀를 쓰
지 않는 유일한 주루라는 점.
둘째, 주루의 이름이 말해주듯 바위틈에서 서식하는 벌집에서 채
집한 꿀 즉, 석청으로 빛은 술 한 가지만 팔고 있다는 것.
셋째, 벌꿀로 빛은 것과는 달리 세잔을 마셔도 뒷머리가 확 달아
나는 듯한 석청주의 강렬한 화기.
때문에 진짜 술맛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주걸들이 석청주의 쏘
는 듯한 강렬한 맛을 보고자 언제나 손님으로 가득찬 주루였다.
헌데 지금, 또 하나 때문에 석청루의 유명함이 늘어날 광경이 벌
어지고 있었으니......
묘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들어선 주루가 마치 숨 죽인양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분위기가......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쏠
려 있어 도저히 술집의 풍경이라 여길수 없는데다 그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놀라움과 흠모의 빛으로 일렁이고 있다는 점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린 곳.
그곳은 다름 아닌 주루의 이층가변에 자리 잡고 있는 탁자였다.
여인.
탁자 하나를 통째로 하여 자리 잡고 있는 인물은 색이 바랬다고
느낄 남의당군을 걸치고 있는 이십대의 여인이었다.
원래 주점이란 객잔과 달리 술만을 팔고 있기 때문에 여인들의
출입이 희귀한 법이다. 그런만큼 여인이 탁자의 하나를 차지한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눈에 거슬리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여인만은 달랐다.
예쁘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에 병적일 만큼 누렇게 뜬 피부가 결
코 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가려린 어깨에서 허벅지까지 이어
진 선이며 허리에서 확 터진 둔부가 혈란하리만큼 눈부시기 때문이
다.
더우기 한없는 상념과 고뇌의 물결 속에 잠겨있는 듯 살포시 미
간을 모은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기묘
한 매력이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헌데 놀라운 것은...... 탁자 위에 비어있는 다섯 개의 술잔이다.
한다하는 웬만한 주량의 호걸들도 석잔을 마시는데 한 시간은 족
히 걸리고 석잔을 들이키자 마자 나가 떨어지고 만다. 뒷머리가 날
아가는 듯한 강렬한 석청주의 주기에......
덧붙여 설명하자면 지금까지 석청주를 다섯 잔까지 마신 사람은
세 손가락을 꼽을 정도일 뿐이다.
헌데...... 술병!
놀랍게도 비어있는 다섯개의 잔 외에도 탁자 위에 적지 않은 술병
이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다섯개의 잔을 비우고도 만족하지 못해 아예 통째로 술병
을 주문했다는 말인데......
쪼르르......!
여인은 잔에 술을 따르고는 석청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소리없
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손님들. 그들은 눈을 부릅뜨며 서로의 얼굴
을 돌아보았다. 비록 말은 없지만 그런 그들의 눈에 떠오르는 놀라
움은 경악을 터뜨리고 있었다.
------ 취한 기색도 없어!
------ 자그마치 여섯 잔 채인데도 얼굴색 하나 붉히지 않다니!
감탄과 놀라움의 소리 없는 분위기가 석청루를 지배하고 있는 어
느 한순간.
뚜벅...... 뚜벅......!
단조롭기 짝이 없는 발걸음 소리가 주루 안을 가만히 흔들어 놓았
다.
그 발소리가 너무나 단조롭기 때문일까?
한시도 여인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던 사람들이 발소리의 주인을
돌아본 것은.
어둠을 몰고 오듯 음습하게 느껴지는 인물.
그가 걸치고 있는 것은 밤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흑포.
야우, 죽음의 사신이라 불리던 그였다.
털썩------
조금도 스스럼없이 여인의 앞에 앉은 야우.
그는 음울하나 약간은 격동의 빛이 어린 눈길로 여인의 얼굴을
주시하였다.
헌데도 여인은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듯 여전히 다시금 한잔
의 술을 들이키고는 예의 조용한 자태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탁......!
전에 없이 술잔이 탁자를 진동시키며 미미하게 소리를 발한 직후
여인의 퇴색된 빛이 어린 입술이 미미하게 움직이는가 싶자 지극히
건조한 음성이 한줄기 바람처럼 흘러 나왔다.
"그녀가 보내서 왔나요?"
정말이지 세상에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무미하고도 건조하게 느껴
지는 음성.
그러한 여인의 음성 탓일까?
야우의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은 것은......
"내가 찾아올 것을 짐작했다면...... 왜 피하지 않았지?"
"호호......"
시종 음울한 안색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여인은 처음으로 피식 실
소를 떠올렸다.
"누구보다도 사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제가 그런 어리석은 짓
을 하리라고 믿었나요? 마음만 먹으면 설사 지옥의 염라대왕이라해
도 목을 베어올 수 있는 사형을 피해 다녀야 결국 내 자신의 더욱
초라해진 모습만 보이고 말 것이예요."
"변했구나...... 음월."
순간이다.
주루 안의 이곳저곳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지금까지 조용했던 것
과 달리 우뢰처럼 터져나온 것은.
"음월...... 아니 그럼 저 여인이 바로 귀문의......!"
"암천오제 가운데 여살수인 월제......"
차라리 놀라움이라 하기보다도 공포의 그 자체와도 같은 외침.
그것은 이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여인의 이름과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 주루를 뒤흔들 듯이 울린 외침인 것이다.
허기사 그 누가 모르겠는가?
공포의 살수집단인 귀문의 여살수인 월제 음월의 그 공포적인 이
름을!
움월...... 그러나 이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여인이 음월이라는것
은 확실히 의외였다.
"그럴지도 모르죠."
음월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니예요. 단지 나 자신을 찾은 것 뿐이니까
요. 사람을 죽이는 도구...... 살수가 아닌 한 인간의 모습으로 되
돌아 온 것이라 할까요?"
"......!"
"하긴 사형은 이 말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이 어떠
한 감정을 지니고 살아야만 하는 동물인지 느끼지 못할만큼 무감각
하게 되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겪어온 지옥수련에 의해서...... 그
렇게 단련되어 왔으니까 말이예요."
"......!"
순간이다.
야우의 눈빛이 한차례 물결처럼 일렁인 것은.
그는 본 것이다.
말을 하고 있는 음월의 전신에서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자기비
애와 고독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그것은 아픔이었다.
살수로 지옥훈련을 겪어 이미 인간의 본연적인 감정마져 상실했
던 여인이 그러한 우수를 다시 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러기까지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느꼈기에......
허나 그것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을 뿐, 그의 흔들리던 눈빛은 예
의 무심하고도 심유하게 변했다.
"천상천비만 내놓아라. 그리고 공주를 찾아가 사죄한다면 일백명
의 동문사형제 가운데 오직 다섯만 살아남은 너이니 그녀도 너를
용서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너의 죽음
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호호! 뜻밖이군요? 사형."
음월은 다시금 예의 건조하고 평범한 미소를 떠올렸다.
"언제나...... 어떻게 가장 빠른 시간내에 사람을 죽일수 있느냐
하는 것만을 배우고 생각해온 사형이니 나란 하찮은 계집을 위해
그런 말을 할줄도 알다니......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기쁘게 죽을
수 있어요. 사형의 그 한마디만으로도...... 하지만 천상천비를 드
릴 마음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군요."
"......"
야우는 잠시 음월을 말없이 주시하다가 술병을 집어들었다.
쪼르르......!
냄새만은 향기로우나 강렬한 화기를 담고 있는 석청주는 찰랑거
릴만큼이나 잔에 채워졌다.
그리고 야우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나온말......
"내가 사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라주는 술이 될 것이다.
그 술은......"
말.
그것은 곧 음월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 아닌가?
순간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음월이 음울하게젖어드는 웃음을 흘린 것은.
"호...... 호홋......!"
"......!"
"사형은 언제나 두가지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지요. 하나는 살인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검학과 공주에 대한 충성......"
"......!"
"공주는 지금가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했고 그 소유를 위
해 남의 희생만을 요구하며 살아온 여자예요. 사형의 그 충성심도
그 하나의 범주에 속하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잃게 될 것이예
요. 그 하나가 이 사매의 죽음이 공주의 뜻대로 되지 않는 하나의
시작이니까요."
"결국 나에게 검을 뽑으라는 말이구나. 사매."
야우의 무심하기 그지없는 말에 음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대사형의 적수가 되지 않지만 공주의 뜻대로 해줄 수야
없지 않겠어요?"
"좋아. 한때 처절한 지옥수련의 동반자였던 우리의 비정한 정리
를 생각해 내 검에 너의 피를 적시겠다."
말.
정말이지 비정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 말일진
대...... 그러나 음월은 오히려 입가에 잔잔하고 그윽한 미소를 떠
올렸다.
"그런 정리보다는...... 차라리 연인의 정리로 사형의 검날에 피
를 적셔주고 싶군요. 나의 아름답지 못한 피를......!"
"......!"
일순 야우의 안색이 참혹하게 일그러지며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 원한다면...... 아니 나 또한 바라던 바다. 연인의
이름으로...... 한때 사랑했던 사랑의 이름으로 너의 피를 나의 검
에 적시겠다."
야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허리에 찬 목검의 자루를
잡아갔다. 단지 자연스러운 일련의 동작만으로도 그의 주위에 있는
공기가 몸서리치며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 주위에 대신 차오르는 것은 습습하고도 죽음의
기운이 담고 있는 어둠이었다.
음월 또한 서서히 일어서며 품속에서 약 한자 가량에 불과한 만
월형의 금도를 꺼내 들었다.
흡사 여인의 아미와도 같은 상큼하게 휘어진 도인데......
그러나 일단 그녀가 비스듬히 치켜올리자 싸늘한 예기가 가공할
살기로 변하면서 칙칙한 그리고 음유로운 죽음의 빛을 띠기 시작했
다.
이미 그들 두 사람의 신분이 어떠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 무슨 가공할 죽음의 기운들이란 말이냐?
뼈골까지 치미는 살기와 죽음의 기운에 질려버린 주루의 인물들
은 썰물처럼 그들 남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한차례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리고 난 후, 주루 안엔 다시금 예의
죽음과도 같은 적막감으로 감싸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이었을까?
한줄기 무심한 바람이 스쳐가듯 나직한 음성이 주루 안을 흔들어
놓은 것은.
"어둠만이 죽음의 세계를 지배한다! 혈천야우------!"
파파팍------!
츠리리리리릿------!
한 순간 시커먼 빛이 허공을 덮으며 천지간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단숨에 음월을 쓸어갔다.
보는 검만으로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가공할 검세!
그 순간 음월의 만월금도 또한 휘황한 금광과 살을 에일 듯한 예
기를 담고 허공에서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단지 금광이 찬연하게 폭발했다고만 느낄 검세!
카카카카캉------!
쿠우우우------ 우우------!
천지간에 함몰할 듯한 굉음.
심혼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굉음이 울린 것은 귀를 찢는 듯한
금속성과 불꽃이 주루 안을 뒤덮을 듯 작렬하고 난 바로 직후였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볼 사이도 없이 금광과 흙빛의 검
광이 사라지고 두 사람의 자테가 완연하게 드러났다.
야우.
약간은 흐트러진 자세의 그는 본래의 자리보다 약 일 장 뒤에 서
있었고......
음월.
그녀는 머리가 산발된 헝크러진 모습으로 역시 본래의 자리에서
일장이나 밀린 거리에 선채 어깨를 간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피!
그런 그녀의 어깨에서 배어나오는 것은 붉은 선, 그래서 죽음을
연상케 하는 피가 스멀거리며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음월, 그동안 대단한 진전을 보았구나. 서로가 바빠 못 만난 사
이에......"
"사형의 그 묵검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검예도 놀라운 것이예요.
나 음월마져도 공포를 느낄 만큼이나......"
야우의 말에 음월은 여전히 건조한 음성으로 답했다.
야우, 그는 서서히 묵검을 음월의 목을 향해 비스듬히 치켜 올리
며 나직한 음성을 흘려냈다.
"음월, 아마도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묵광야우는 지금까지
한번 노린 자의 목숨을 결코 그냥 스쳐간 적이 없었으니까."
묵광야우------!
검의 끝에서 발하는 검기에 의해 천지간을 휩쓸며 떨어져 내리는
검우.
이미 한번 펼쳐져 가공할 위력과 끔찍한 죽음을 보여주었던 살인
예기가 아니던가?
음월의 안색은 이순간 무섭게 경직되었다.
그녀 자신도 묵광야우의 위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낀 것
이다.
"사형의 그 마의 검예를 몸소 견식해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해야겠지요. 그러나 사형도 조심해야 할 거예요. 나의 이 만월금
도에서 펼쳐지는 만월광무 또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수를 한적이
없는 도법이니까요."
만월광무------!
듣기에도 미려하고 아름다운 이름인데......
그 순간 만월금도가 기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탕!
명쾌한 금속성이 울리자 자체의 기관이 작동되었는지 약간은 두
텁던 도신이 드개로 갈라지면서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도의 자루 끝이 이어져 서로 반대편에 도의 날과 끝을 가진 만월
금도.
츠르르르......
음월의 손이 비스듬히 치켜 올려지자 만월금도는 가운데를 축으
로 하여 두개의 도신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오직 휘황한 금광을 뿌리는 둥근 륜
의 형상만으로 화하였고,
너울...... 너울......
흡사 나비가 꽃을 찾아 헤매듯 음월이 사뿐사뿐 다리를 이동하며
두 손을 움직이자 륜의 환영이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넷에서 여덞으로......
오오...... 현란하다!
수십개의 금빛 광선으로 화한 륜이 점점 음월의 신형을 가리우며
제각기 교차하듯 춤을 추는 광경이라니......
콰우우우------ 우우------!
파파파파------ 파팟------!
강렬한 회전력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듯 울렸고 금
륜이 스쳐간 곳은 벽이고 기둥이고 할것없이 모조리 짤려나갔다.
갈수록 빨라지는 금륜의 환영들, 그것이 한순간 벼락처럼 야우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오오, 해일의 기세가 바로 그러할진대......
순간이다.
엇비스듬히 누운채 금륜의 춤을 겨누고 있던 야우의 묵검이 미미
한 움직임을 보이며 파동친 것은!
그리고 그 묵검이 일수유간에 폭발하듯 수백 수천개의 환영을 일
으키며 무수한 묵광을 토해냈다.
묵광의 폭우!
그것이 있다면 지금 화려하게 폭발하듯 그려지고 있는 묵광의 광
선들이리라.
파파팟------ 치리리릿------!
악마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호곡같기도 한 기음이 무수한 묵광
검영 속에서 터질 때 이미 마도와 검세는 일대격돌을 하고 있었다.
쿠쿠쿠쿠------ 쿠우------!
번쩍! 번쩍!
금속성 따위는 없다.
아예 천지가 무너질 것만 같은 굉음이 토해지면서 검과 도가 일
시간에 교차하며 수천개의 무수하고도 화려한 불꽃이 토해질 뿐이
다.
그리고 주루 안엔 사람들의 비명과 도세에 의해 벽과 기둥, 기물
이 박살나는 소요가 터지는 가운데 도세와 검세는 충돌로 인해 세
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약해졌다고는 하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일뿐 그 위세는 여전히 주
루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릴 것만 같은데......
그 순간이었다.
"멈추시오."
나직하나 벼락처럼 귀막을 파고 드는 낭랑한 음성이 울리며,
휘익------!
하나의 인영이 도세와 검세가 교차하는 속에 전광처럼 쏘아갔다.
그 모습은 사람이 도세와 검세 속에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헌데 그 순간,
카카카캉------!
이번에는 굉음 속에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며 다시금 무수한 불
꽃이 작렬하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대해번복을 일으킨 엄청난 금륜의 춤과 가공할 검은 빛의
검세가 안개가 흩어지듯 소리 없이 소멸되었다.
"으음......"
여인의 짤막한 신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음월과 야우는 양쪽으
로 갈라지며 물러섰다.
음월.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절했다.
전신의 옷은 폭풍속에 헤져버린 듯 갈가리 찢겨졌고 찢어진 사이
로 역시 무수한 검혼이 비치고 있었다.
야우.
그 역시 행색은 음월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의 몸에는 단지 어
깨에 약간의 피만 흘러나오는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승부의 우열이 드러난 셈인데......
언제부터인가?
허리가 부러진 한 자루의 청강장검을 든 채 그들 두 남녀의 사이
에 조용한 자태의 청년이 서 있는 것은...... 흡사 본시부터 그 자
리에 존재해 왔던 양 태산웅자처럼 호발부동하고 구름처럼 유유한
자태의 인물.
금천풍호.
놀랍게도 그는 다름 아닌 금천풍호가 아닌가?
이 새로운 그의 출현은......
어떠한 변화를 예시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