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1박 2일 [뜀꾼] - 2일- A (양동마을)
제2일(토, 4월1일)
06:00 기상
08:00 경주벚꽃마라톤 하프코스출발
10:40 필자 결승선
11:25 숙소
12:30 식사(산해식당)
13:50 양동마을 도착
15:51 양동마을 출발
선산휴게소
18:58~19:23 충주휴게소(저녁식사)
21:33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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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대표적인 임진왜란(1592) 전 4채의 고옥 중 하나인 관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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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후 호텔 방
호텔로 들어왔더니 제일 먼저 도착한 미산은 목욕을 하고 요위에 일자로 누워 시체놀이를 하고 있고 일강도 편하게 옷을 갈아입은 상태이며 도마는 물속에 몸을 푹 담가 피로를 뽑아낸 뒤였다.
필자도 샤워실에서 땀을 씻어내고 물이 차있는 욕조에 들어가 피로를 풀었다. 평소 하도 뛰지않아 삭신이 다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그래도 처음 와본 보문단지와 북천을 따라 달려봤다는게 여간 기쁘지 않다. 서울과 확연히 다른 산소만 있는 것 같은 공기와 신라 1,000년 수도에 깔려있는 역사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호텔방에서 밖을 다시 한번 보고...
점심은 산해(山海)에서
아쉽지만 뜀꾼 4명은 5성 호텔을 나와야만 했다. 어제 식사했던 산해(山海)로 갔다. 경주 시내와 보문단지 중간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북천 남쪽이다.
이쁜 여사장은 없고 어제 보지 못한 또 다른 이쁜 여인이 도마를 반긴다. 내공이 얼마였으면 보는 여인네마다 얼굴이 목련꽃처럼 활짝 피는가. 만나지 못할 애인을 만난듯, 성춘향이 이도령 본듯 한 모습들이다.
필자는 국물을 먹어 뒤틀린 속을 진정시키고 싶다. 게장과 석쇠구이를 2인분 시킨다. 된장국물이 있단다. 동동주를 한동이 시켜 막걸리잔에 가득 담아 ‘위하여!!!’ 시원하고 좋다. 옆에 앉은 꼬마가 우리와 똑같은 황금색의 하프완주 메달을 만지작거린다. 부친이 뛰고 온 모양. 이쁜 주인 언니가 나타난다. 잘 뛰었냐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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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쪽 강동면 양동마을로
이번에는 경주에서 북동쪽 20여km 떨어진 조선조 전통 양반 마을 양동마을로 향한다. 일강이 TV에서 봤다며 꼭 가고 싶다고 해서 방문하게 된 것.
미산이 운전석에 앉고 조수석에서 도마가 스마트폰에 네비앱을 꺼내 길을 안내한다. 4번도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7번국도로 갈아타고 북으로 진격. 30분도 채 달리지 않아 포항으로 흘러나가는 형산강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 좌회전해 철도를 지나니 기계천(안락천) 동쪽으로 주차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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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2012년 쓴 이명박대통령의 친필 휘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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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대사의 특혜
앞서 간 미산과 일강이 지공대사라고 하며 대사증을 내보이니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란다. 뒤에 또 두 명이 있다고 하며 일강이 모자를 벗어보란다. 증이 없는데 겉모습으로 자동 통과가 된 것이다. 웃지를 말아야 하는데 자꾸 웃는다. 매표원도 웃음을 짓더란다. 두 명이니 2,000원을 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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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대사가 아닌분은 누군가요?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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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해설사
조그만 부스 두 개가 나온다. 처음 것은 해설사를 안내하는 곳이고 다음 박스는 해설사들이 쉬며 대기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의집.’ 정면과 측면에 영어로 달리 쓰여있는데 정면의 Korean Culture &Tourism Guide'보다 측면의 ‘Free Tour Guide for Yangdong Village'가 좀 더 세련되어 보인다. 9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5시까지 무료 해설 제공.
방문객이 4명밖에 되지 않지만 해설을 해달라고 부스안 해설사에게 해설을 부탁했더니 이쁜 아주머니가 조금만 기다리란다. 해설사 순서가 있단다. 야무진 중년남성 해설사가 나온다. 이 마을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는 손씨와 이씨 문중 이씨 계열이다.
양동(良洞), 임금을 보좌하는 어진이가 사는 동네
양동(良洞)마을의 뜻을 물으니 임금을 보좌하는 어진이가 사는 동네. 임금을 향한 마음은 한양에서나 낙향해서나 같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7곳의 국가 지정 민속마을이 있는데 안동의 하회마을과 이곳 경주의 양동마을이 대표적인 곳으로 1984년 12월 20일 최초로 지정되었다.
150채 300여명 주민이 사는 민속마을
하회마을은 평지에 있고 양동마을은 야산인 설창산(163m)의 물(勿)자형 능선과 계곡을 따라 둥지를 틀고 있다. 하회마을은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징비록(懲毖錄)을 쓴 서애 유성룡(1542~1607)선생이 살았던 곳이지만 하회탈로 일반에 잘 알려져있다면 양동마을은 경주(월성)손씨와 여주(여강)이씨 두 양반 가문이 경쟁을 하며 집성촌을 이뤄 현재도 150여가구 300여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고 독특한 취락구조로 옛날 문화를 전승하고 있어 한국인의 유산일뿐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보호유지할 가치가있다는 이유를 들어 7년 전인 2010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단다.
양동초교 학생 고작 47명
마을 입구에 동향(東向)으로 양동초등학교가 넓게 들어서 있다. 해설사는 48회(1962년 졸업)라며 자신이 다닐 때는 전체 학생수가 1,000여명에 이르렀는데 현재는 유치원생 12명 포함 69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500년 전통의 양반 마을이라고 해도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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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밖에서본 양동초교, 담안으로본 양동초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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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길 따라 올라가
왼쪽으로 초가집이 층층이 언덕을 따라 평화스럽게 자리잡고 있으며 맨 위쪽에는 솟을대문의 기와집이 눈에 띈다. 해설사는 일행을 넓은 공터(주차장?)를 오른쪽으로 끼고 마을 토담길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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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교회 마을과 어울리지 않아
해설사에게는 마을 아래에 보이는 양동교회가 눈에 가시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조선시대 한옥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덕윗쪽에 있는 것을 돈을 들여 아래쪽으로 옮겨짓게 했는데 교회는 조선양반사회를 침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일제강점기에는 양동초등학교를 보통학교로 개칭하며 신학교로 만들어 이곳 골수 양반들을 교화시키려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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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은행나무 아래로 양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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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철로와 높은 최신의 고가 도로가남쪽으로 보인다
입향조(入鄕祖) 차남집 관가정(觀稼亭)
첫 기와집 관가정(觀稼亭)으로 안내한다.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1592년) 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4채가 있다. 경주손씨의 종택 서백당(書百堂),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선생의 종택 별채 무첨당(無忝堂), 회재가 경상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준 향단(香壇) 그리고 관가정이다. 서백당은 중요민속문화재, 그 외 3채는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이 관가정은 이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襄敏公) 손소 (孫昭)의 둘째 아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이 분가하면서 지어진 집이다.
그런데 가(稼)자가 낯설다. ‘농사짓다’ ‘벼를 심다’는 뜻. 농사짓는 것을 보는 정자. 마을 서쪽으로 형산강의 지류인 기계천이 흐르고 산이 많은 경상도에서는 드문 안강평야가 드넓다. 이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들판이다.
관가(觀稼), 임금이 들에 나가 백성이 농사짓는 것을 살피는 일
“곡식을 심어 잘 자라는 것처럼 후손들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나, 한국고전용어사전에는 ‘관가(觀稼)’를 “임금이 들에 나가 백성이 농사짓는 것을 살피는 일”이라는 더 큰 속뜻이 담겨있단다.
집 앞 수백년된 느티나무, 은행나무, 참나무가 이곳 역사를 말해주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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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와 안채가 같이 있는 가옥
해설사는 일반적으로 정자는 독립가옥으로 필요할 때만 쓰고 관리동이 따로 밖에 있는데 이 정자는 선비들의 휴식 공간으로 누마루가 있고 사랑채까지 있으며 안채가 안으로 들어있는 독특한 형태란다. 솟을대문은 원래 양반이 탄 말이나 가마가 들어올 수 있도록 높게하고 문턱도 없게 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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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왼쪽)와 행랑채 사이의 안채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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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
입향조(入鄕祖) 영정 모시던 영당(影堂)
이 관가정 뒤에는 손소의 영정(影幀)이 들어있는 영당(影堂)이 사당처럼 있다. 그래서 출입대문도 따로 있다. 현재 보물 제 1216 호로 지정된 영정은 종가집 서백당 위에 새로 지은 사당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옆 쪽문으로 나가며 해설사는 여인네는 이 대문을 몇 번 출입하느냐고 묻는다. 시집올 때와 죽어 나갈 때 두 번이란다. 조선시대의 여인이 지금의 여자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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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닫힌 영당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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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관가정 전래석을 복원하면서 세우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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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당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으로 관가정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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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밖에서 본 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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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 일자(日)집 향단(香壇)
나가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게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주었다는 향단(香壇) 기와집이 보인다. 이언적은 조선왕조가 국시로 내세운 유학인 성리학의 태두이자 퇴계 이황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창시자이다.
이언적이 경상감사시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줘
향단은 원래 99칸이었는데 6.25때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 56칸만 남아있다고 한다. 기와집 용마루가 3개가 보인다. 입구(口)자 두 개가 붙어 날일(日)자 형 집으로 다른 지방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형태로 건축가와 목수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안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625로 60% 소실
포항과 안강지구가 6.25때 격전지구로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던 곳으로 양동마을 60%가 이때 소실된 것이란다. 그래도 이정도이니 전성기를 미루어볼수 있다. 1000년 고도 경주시를 피해간 것만해도 천만 다행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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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용마루3개가 나란히 있는 집이 향단
정자 10군데
다시 오솔길을 따로 언덕으로 올라간다. 원형담으로 둘러진 정자 하나가 보인다. 양동에는 정자가 10군데 있는데 옛날 선비가 많았다는 뜻이지만 양쪽 가문에서 경쟁적으로 지은 것도 이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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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이 달린 정자
아이들 노는 물봉동산
넓은 동산이 나와 사방의 조망이 좋다. 물봉동산. 동네 유소년들이 뛰어놀던 곳으로 서당에서 공부하는 외에 노는 일 밖에 없으니 필요했단다. 지금은 어린이집,유치원, 학원으로만 전전하니 불쌍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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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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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종가 서당 안락정(安樂亭), 강학당(講學塘)
건너편에 산 중턱에 서당이 둘 있다. 보이는 게 손씨 문중의 서당(書堂) 안락정(安樂亭)이란다. 이씨 문중의 서당인 강학당(講學塘)은 마을 어귀인 양동초등학교 맞은편 언덕 위 산기슭에 있어 보이지 않는단다.
이 마을 과거 급제자 116명
공부는 쉬운게 아니라서 높은곳에 서당을 지어놓았다는 것. 그래서 선비도 높은 곳에 있단다. 이 마을에서 손씨, 이씨를 합쳐서 문과 26명, 무과 14명, 사마 76명으로 과거 급제자가 총116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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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해택에도 정부 보조 필요.
문화재로 지정되면 일반적으로 개조가 쉽지 않아 부동산가치는 재개발지역과 달리 오르지 않는단다. 그래서 정부의 보조가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돈을 들여도 가치가 올라가지 않으니 개인이 많은 돈을 들여 개보수하여 유지하려고 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재산권 행사하는데는 문제가 없단다. 그리고 취득세,재산세 양도세 등 모든 세금은 면제를 받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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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중인 기와집
후묵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