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위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그의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이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서였을까? 목사님 대신 예배를 인도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래전에 그는 목회자의 길을 가고 싶어 했다. 처음 유학 생활을 했던 곳에서 다녔던 교회는 여러 나라의 유학생들을 섬기는 작은 교회였다. 그 지역의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외국 학생들에게 영어도 가르쳐주고 미국 생활의 지침도 안내해 주었다. 그 교회에는 두 분의 장로님이 계셨는데 한 분은 미국분이고 또 한 분은 한국분이었다. 그 대학의 화공과 교수님인 그 한국 장로님은 예배 후와 매주 토요일 아침에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주셨다. 그 시간에 하나님 안에서 가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부부생활은 어떠해야 하며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잘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전공책보다 성경책을 더 많이 읽던 남편은 그 교수님의 가르침을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우리 가정에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박사과정 도중 학교를 옮기게 되어 워싱턴 주에서 엘에이로 이사하게 되었다. 방을 얻고 살림을 풀고 보니 가까운 곳에 유명한 신학대학이 있었다. 그는 그 대학의 입학지원서를 받아 작성해 놓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기독교를 접한 나는 내 자신의 믿음도 잘 모를 때였다. 그때는 사모라는 자리가 낯설고 버겁게 보여 난 그 길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니 목회자의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했다.
나의 동의를 얻지 못한 그는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 평신도의 길을 걸었지만, 삶의 많은 분량을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없어 보였다. 요즘에는 토요 새벽기도 시간에 한 달에 한번 나눔의 시간을 맡아서 진행해 왔다. 그의 진솔한 나눔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기도 하고, 자기 틀에 갇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도 했다. 더 많은 교인에게 그의 나눔을 전하고 싶어 하던 목사님이 마침 한국방문을 하시게 되어 남편에게 주일예배 인도를 부탁했던 것이다.
예배가 끝내자 많은 사람이 내게로 와서 물었다. 원래 목사님이셨냐고? 칭찬으로 들려 웃으면서 아니라고 답하면서 혼자 생각했다. 그 때 그의 길을 막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신기루의 모습으로 저만치 서 있다. 그래도 그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보인 적이 없다. 평신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충실하게 했으니, 여한이 없다고 한다. 내가 반대해서 저렇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머물던 나에게 그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얼마 전에 작은딸이 ‘엄마 난 이제 마음을 정했어요.” 했다. 고등학교 때 콜링을 받았다는 사위는 기독교 학교에서 설교와 상담교사로 일하다 최근에 중고등부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나님께서 아내의 마음을 정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난 거부한 그 길을 작은딸은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족 카톡방에 작은딸 부부의 사진이 올라왔다. 교회 마당에서 둘이 찍은 사진 속에서 사위는 온 세상 빛을 다 품은 듯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남편의 길을 막았던 그때를 사죄하는 마음을 보태 딸과 사위를 더 축복하고 응원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날마다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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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가운데에도 전혀 목사님 같지 않은 사람이 있고, 스님 중에도 스님 같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상으로 보아서 그는 꼭 ‘무엇‘ 같다, 혹은 ’무엇‘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러한 느낌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에게서 그 직종의 분위기가 풍긴다는 것이니까 그의 언행이나 인품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동료 가운데 늘 “선생 냄새 나는 게 나는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도 전혀 교사 같지 않은데도 혹시 그럴까봐 미리 조바심하였습니다. 한번은 그와 같이 양장점에 갔는데 “선생처럼 보이는 디자인은 질색이니까 달리 해주세요”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양옆이 많이 터지고 반짝이가 박혀 있는 노랑 원피스를 맞추었습니다. 나는 그가 교단에서 물러나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을 위해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전에 광주에서 활동할 때 외부 강연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직장여성을 위한 직업의식 강연이 많았는데 강사은행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멀리 섬 지방까지 불려다녔습니다. 직접 왕복 운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 영어로 직업을 뜻하는 말에 Calling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직업‘이라는 어휘를 쓰고 찾아보면 아주 많지요. Occupation, Job, Work, Profession(전문직), Career (in), Vocation 등의 말이 나오는데 소명 의식을 가진 직업을 지칭하는 말에 Calling이라는 말이 있다니, 누구의 부름일까요? 삶도 콜링이고 죽음도 콜링입니다.
목사님이 한국에 일이 있어 출타하시면서 그 많은 교인 중에서 그분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 또한 콜링이지요. 어렸을 적에 친척 형제들이 모여 미래를 그리면서 “너는 목사님 사모님 될 것 같아.”라고 했더니 울었던 동생이 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라는 말이 그토록 싫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고 놀라운 일이지요. 그는 정말로 목사님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세상을 먼저 떴습니다.
남편이 신학을 공부할까 물었을 때 언뜻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때 그의 길을 막았다고 자책할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수십 년 많은 시련도 있었지만 결코 헛되이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정식 사역자는 아니지만 그동안의 삶이 봉사와 안내와 교육의 삶이었으니 본업이 아니면서도 보탬을 주었습니다. 교역자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그리고 딸이 사모의 길을 결심했다니 대견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콜링에 대한 수행입니다. 우연 같아도 전혀 우연이 아닌 일들,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남편은 직업으로 정해진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보였고, 그 일을 잘 수행하고 있다면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그에게는 성직자의 특성이 참으로 우세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우세함으로 앞으로 봉사하는 생활을 하면 될 것입니다.
라일락의 글은 늘 흐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맨 마지막 종결은 몇 번을 읽어도 너무 다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생활을 돌아다보기도 하였고 혹시 내가 잘못 했는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원래 목사님이었느냐는 교인들의 칭찬이 섞인 말에도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라일락은 2대에 거쳐서 특별한 은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더
진지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작은딸이 ‘엄마 난 이제 마음을 정했어요.” 라고 말했을 때 딸에게 한 말,
“그래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남편의 길을 막았던 그때를 사죄하는 마음을 보태 딸과 사위를 더 축복하고 응원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날마다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라고 끝을 맺은 것이 어딘가 성의가 부족한 듯이 보입니다. 넘치는 기쁨이 빠졌다고 할까요? 남편에게 못했던 응원을 딸과 사위에게 쏟아야겠다는 결심이 빠졌다고 할까요. 다시 읽어보면서 보충했으면 합니다.
첫댓글 네. 선생님. 다시 읽고 종결을 다듬겠습니다. 너무 일이 많아 미리 쓰지 못하고, 그렇지만 제가 맡은 날짜를 넘기기 싫어 밤 한시에 감기는 눈을 부릅떠가며 글을 썼습니다. 빨리 자고 싶은 마음이 좋은 글 쓰고 싶은 마음을 이겼네요. 그것을 또 정확히 알아 보시는 선생님!!
다 들키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