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9일 월요일 말씀묵상 ♣.hwp
2015년 11월9일 월요일 말씀묵상 ♣
성경:로마서3:19-20(신243P)
제목: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2)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또는 정죄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할렐루야!어제 주일에 받으신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시고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토요일 말씀(롬3:9-18절)은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죄인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주 철저하게 죄인됨을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습니다.
1.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2.의인은 없나니.
이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0절-18절 사이에 “없다”는 단어가 7번 나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인간의 철저한 죄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3.죄를 다스립시다.
죄의 권세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힘을 입으십시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그래야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야 참 평화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 하여 능력을 입고 죄를 다스리어 참 자유를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은혜를 구합니다.하나님은 그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절대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항상 성령 충만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롬3:19-20)
사람은 누구나 다 그 무엇 아래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 아래 살고 있습니까?
육적으로는 우리는 한국의 법아래 영토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로마서에는 사람은 세 가지 아래 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 아래 있고, 둘째는 죄 아래 있고, 셋째는 죽음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구원이란 개념은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간은 그 무엇 아래 얽매여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절대적 자유는 없습니다. 다만 상대적 자유가 있을 뿐입니다.
먼저 시간과 공간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 3:9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눅1:79절에서는 인간을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구원의 개념을 율법과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 즉 율법의 제약을 받고 살고 있는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불 경건](본문 18절, 시36:1절)하다고 했습니다.
“경건”이란 말은 영어로 “godly”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란 단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삶](CoramDeo=Before God)사는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의만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란 마치 거지의 옷과 같아서 빨아 입지 못하기 때문에 땀 냄새, 음식 냄새, 등 온갖 여러 가지의 냄새가 납니다.
우리는 죄의 냄새가 절여있는 존재란 말씀입니다.
2. 율법은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합니다(19절).
19절에 보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라고 시작해서, 끝에 가서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심판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나 선을 가지고,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비판할 수도 없고, 또 피할 수도 없습니다.
또 그것에 대해서 시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모두 우리가 행한 행위대로 받습니다.
그래서 갈6:7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만홀히)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지어 율법을 지킨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노력과 의가 하나님의 표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룩한 그의 의뿐입니다.
엡2:16절에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고, 골1:20절에서는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2000년 전에 일어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의 우리와 관계를 갖게 됩니까? 롬5:1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다시 말해서 믿음은 우리들을 2000년 전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하여 주님의 의가 우리들에게 전가가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무익한 것입니까?
도대체 그 역할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은 좀 더 세밀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3. 율법의 역할(20절).
20절에 율법의 역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크게 세 가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1).먼저 초등교사의 역할이 있습니다.
초등교사(몽학 선생)란 말은 구약시대에 종들 중에 주인의 인정을 가장 많이 받는 청지기 중에서 정하는데 주인의 아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서당에 다닐 때 동행하고, 가고 오는 중에, 혹은 집에서 그 아들을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의 청지기였던 엘리에셀처럼 주인의 아들의 배우자를 정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갈3:24절에 보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첫 번째 역할입니다.
(2).다음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를 깊게 해줍니다.
오늘의 본문인 롬3:20절에,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양심이란 것이 있지만 그러나 양심이 원죄로 인해서 유리처럼 깨어지고, 음식처럼 부패되어 제대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셔서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게 하였습니다.
율법은 [하라]와 [하지 말라]의 두 가지 형태로 되어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믿기 전에는 아, 나는 죄인이구나 하고 깨닫게 하여 예수님께로 나가게 하고,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죄를 더욱 깨닫게 하여 회개를 깊게 하여 줍니다.
참 놀라운 것은 예수 믿기 전보다 믿고 난 후에는 회개할 죄가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믿고 난 후에는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방안에서 보면 방이 깨끗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문틈으로 해가 비칠 때 보면 방에 먼지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도 그런 것입니다.
(3).끝으로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합니다.
롬7:7절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
율법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의 정체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시119:105절에서는 “주(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4. 율법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대부분의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서 율법주의적으로 살거나 아니면 율법과 관계없이 무율법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삼대역할을 바로 깨달아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그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주의적으로 살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고, 무율법주의적으로 살면 우리는 비윤리적 삶을 살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도 문제가 있고, 무율법주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3의 길을 열어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것은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2).날마다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해야 합니다.
이것이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비결입니다(고후4:16).
먼저 매일 벗는 일을 하고, 다음에는 입는 일을 해야 합니다. 벗는 일은 죄를 벗고, 나쁜 습관을 벗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불의를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입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랑의 옷을 입고, 믿음의 옷을 입고, 소망의 옷을 입고, 의의 옷을 입고, 찬양의 옷을 입고, 섬김의 옷을 입고, 무엇보다도 주님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3).입술에 매일 찬송하고(시135:1) 주께 기도하여 동행하고(골4:2),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눅9:23).
찬송가 19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결론}***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 즉 율법의 제약을 받고 살고 있는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2. 율법은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합니다(19절).
3. 율법의 역할(20절).
20절에 율법의 역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크게 세 가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1).먼저 초등교사의 역할이 있습니다.
(2).다음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를 깊게 해줍니다.
(3).끝으로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합니다.
4. 율법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대부분의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서 율법주의적으로 살거나 아니면 율법과 관계없이 무율법주의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도 문제가 있고, 무율법주의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3의 길을 열어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했습니다.
(2).날마다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해야 합니다.
(3).입술에 매일 찬송하고(시135:1) 주께 기도하여 동행하고(골4:2),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눅9:23).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님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죄인들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으로 인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면서 주님께 나오게 하고, 또 주님께 온 후에는 우리의 죄를 세밀하게 보면서 회개를 깊게 하여 줍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하여, 주시는 영생과 축복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로마서3:19-20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함을 묵상하였으니 죄를 깨닫고 회개하심으로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