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24 - 절망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스스로 음식 없이 표류한 알랭 봉바르(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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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01:49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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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절망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스스로 음식 없이 표류한 알랭 봉바르(1953년)
요약 알랭 봉바르는 바다를 떠돌 때 불안해하거나 겁먹고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표류 실험 대상이 되어 물 한 방울, 음식 한 줌 없이 바다에서 견딜 수 있는지 증명하기로 한다. 자신의 믿음 아래 65일 동안 음식 없이 약 4,500km를 표류하여 대서양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절망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알랭 봉바르는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때 먹을 것이 없어도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이를 증명했다.
1951년 봄, 바다에서 표류하던 어부 43명이 지나던 배에 구조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죽은 사건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세균에 감염되지도 않았고, 너무 오래 굶거나 지쳐서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 무렵 해마다 전세계적으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조난자는 20만 명쯤 되었다. 대략 5만 5,000명이 구조되었는데, 그 가운데 90%인 5만여 명이 구조된 뒤에 죽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너무나 지친 나머지 기운을 회복하지 못해 죽는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먹지 못해도 10일은 살 수 있다. 물이 있으면 30일도 산다. 그런데 온통 물천지인 바다에서 왜 절망하는가. 보트로 표류하는 사람들이 사흘 정도밖에 못 사는 까닭은 두려움과 무지 탓이다. 바닷물 1m3속에는 흙 1m3보다 200배나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으므로 훌륭한 양식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물을 하루에 800~900cc 마셔야 하는 것도 바닷물이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구명 보트에 타고 바다를 떠돌 때 불안해 하거나 지레 겁먹고 삶을 포기하면 안된다. 열흘에서 한 달 가량 신념을 가지고 버티면 구조되고, 구조되어서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봉바르의 믿음이었다.
사람들은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면 소금기 때문에 더 갈증을 느껴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봉바르는 바닷물을 조금씩 마시는 것은 해롭지 않으며, 야채 대신 바다에 떠다니는 초록색 이끼(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으면 비타민C 결핍증에 걸리지 않고, 식사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물고기를 잡아서 먹으면 된다고 믿었다. 그는 자기 주장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많은 조난자가 생명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 물 한 방울 음식 한 줌 없이 바다에서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 증명해 보자.'
그리하여 대서양에서 해양 사상 가장 유명한 인체 실험 탐험이 행해지게 되었다. 봉바르는 실험에 앞서 더 철저히 바다에 대해 공부했다. 바람과 해류를 조사해 보니, 두 달쯤 바다를 떠다닌다고 했을 때 제일 안성맞춤인 곳은 대서양이었다. 콜럼버스처럼 해류를 타고 계절풍을 받으면 카나리아 제도에서 서인도 제도 바베이도스까지 두 달쯤 걸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봉바르는 길이 4.6m 너비 1.9m짜리 공기주입식 고무 보트를 구해다 돛대를 세우고 3m2짜리 사각돛을 달았다. 배 이름은 레레티크라고 지었다. 그가 동료를 구하자 잭 팔머라는 젊은이가 나섰다. 팔머는 요트로 대서양을 건넌 경험자였다.
가장 초라한 횡단
3m2짜리 사각돛을 단 공기주입식 고무보트 레레티크호(4.6×1.9m)는 65일간 4,500km를 표류하여 대서양을 횡단했다.
1952년 5월 봉바르와 팔머는 북아프리카 탕헤르를 향해 모나코를 떠났다. 그런데 가는 길에 지중해를 건너게 되었으므로, 어차피 바다를 건널터이니 거기에서 먼저 표류해 보기로 했다.
두 주일 동안 표류하던 그들은 바람이 불지 않자 스페인의 한 섬에서 기선을 타고 탕헤르로 갔다. 그런데 탕헤르에서 서인도 제도 쪽으로 부는 계절풍을 기다리면서 한 달쯤 머무르는 사이 팔머가 느닷없이 가버렸다. 신문들마다 이 실험이 매우 위험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도하던 참이어서 봉바르의 실망은 더욱 컸다.
'그렇다고 나마저 포기하면 사람이 바다에서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내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조난자들은 더 겁을 먹게 되어 그만큼 살아날 가능성이 적어지게 될 것이다.'
신문들이 떠들면 떠들수록 실험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1953년 8월 13일 기다리던 바람이 불자 봉바르는 보트를 바다에 띄웠다. 서인도 제도로 흐르는 해류에 올라타고 평균 시속 2노트(3.7km)로 카사블랑카를 거쳐 두 달 만에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 항구에 닿았다. 여기서 배를 손보면서 잠시 쉰 뒤 10월 19일 역사적인 대서양 횡단 표류를 시작했다.
날씨는 좋았으나 적도 해류를 탔기 때문에 햇빛이 무섭게 내리쬐어 배나 사람이나 온통 소금투성이가 되었다. 봉바르는 날마다 바닷물을 0.7리터씩 마셨다. 그래도 목이 마르면 손수 만든 작살로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비틀어 짜서 즙을 내 먹었다. 또 바닷물에 적신 헝겊을 얼굴에 덮으니 갈증이 한결 가셨다.
살을 태울 것처럼 강렬하던 태양이 지고 난 밤바다는 무섭게 추웠다. 아마도 몸이 소금기에 전 탓인 듯했다. 너무 추워서 웅크린 채 꼬박 밤을 세우는 때가 많았다.
음식을 전혀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동이 트면 제일 먼저 보트 안을 살펴 밤새 떨어진 날치를 줍거나 낚시를 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 플랑크톤은 옷을 찢어 만든 그물을 보트 뒤에 늘어뜨려 건졌다. 그것을 하루 한두 숟갈 먹는 것만으로도 비타민 걱정은 없었다. 11월 11일에는 소나기가 쏟아져 오랜만에 단물을 실컷 마셨다.
비타민과 갈증은 이렇게 그럭저럭 해결했지만,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로 일곱 주쯤 흐르자 봉바르는 몹시 여위고 기운을 잃었다. 게다가 몸이 언제나 바닷물에 젖어 있다 보니 살갗이 짓무르고 발이 부르텄다. 어느 날엔가는 바람에 날린 공기 쿠션을 건지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죽을 뻔하기도 했다.
12월 10일. 라스팔마스를 떠난 지 53일째 되던 날 봉바르는 지나가던 화물선을 만났다. 바베이도스까지 아직도 1,000km가 남았다고 했다. 그 말에 무척 실망했지만, 배에서 대접받은 한 끼 식사와 따뜻한 격려에 힘을 얻었다. 선장은 53일이나 표류한 것만으로도 목적을 충분히 이루었으니 돌아가자고 권유했지만 봉바르는 거절했다.
화물선과 헤어진 뒤로는 순조로운 항해가 계속되었다. 폭풍우도 만나지 않았고, 작은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토록 참기 어려웠던 고독감도, 화물선 선원들과 즐겁게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리며 이겨냈다.
자석을 보고 방향을 재면서 해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말고는 특별히 신경쓸 일이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보트 구석구석을 살핀 뒤 체조를 30분쯤 하고, 육분의로 태양을 관측하는 아침 일과는 언제나 변함없이 지켰다.
1953년 12월 22일 아침 레레티크호는 서인도 제도의 바베이도스 섬에 도착했다. 카나리아 제도를 떠난 지 65일 만에 약 4,500km를 표류하여 대서양을 건너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몸무게는 25kg이나 빠졌지만 봉바르는 건강한 몸으로 흙을 밟았다. 65일이나 흔들흔들하는 물결 위에서 살아온 그는 단단한 땅을 디딘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고 기뻤다.
▼ 관련 기록은 * 1943년 / 세컨 스튜어트 풍 림(홍콩인) 뗏목 최장거리 표류(9,040km, 133일) * 1992년 / 남태평양 원주민 어부 2명 고깃배로 최장기간 표류(17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