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25 - 모험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 65세에 세계 일주한 프랜시스 치체스터(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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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01:51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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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모험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
65세에 세계 일주한 프랜시스 치체스터(1967년)
요약 프랜시스 치체스터는 세계 최초로 요트로 4만 5,000km를, 즉 지구 한 바퀴를 226일 만에 혼자 도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뿐만 아니라 1960년, 쉰여덟에 대서양 단독 횡단 요트 경기에서 우승을 하고 일흔이 될 때까지 대서양 횡단 경기에 출전함으로서 모험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해양 왕국의 자존심
최초로 세계를 단독 일주한 요트맨 프랜시스 치체스터 경이 맨션하우스 발코니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환영 인파에 세계 일주를 상징하는 지구의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1967년 5월 28일, 유서 깊은 영국의 플리머스 항구. 요트 1척이 수평선에 모습을 드러내자 구름같이 모여든 30만 군중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바다에 떠있던 배 천여 척까지 세찬 고동 소리를 토해내자 항구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듯 출렁거렸다.
요트가 부두에 닿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걸어 내려왔다.
"우리는 이겼다!"
그가 두 팔을 치켜들고 외치자 하늘과 땅은 또 한 번 흔들렸다. 30만 군중을 향해 당당히 승리를 외친 이 노인, 깊게 팬 주름살과 흰 머리칼에 불사조처럼 눈동자를 번뜩이는 이 노인이야말로 방금 세계 최초로 요트를 몰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온 프랜시스 치체스터였다.
아홉 달 전인 1966년 8월 27일 치체스터는 예순다섯 나이에도 아랑곳없이 세계 일주 항해에 도전했다. 길이 15m짜리 작은 요트 '집시 모드 4호'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시드니에 들렀다가, 태평양을 가로지르고 남아메리카를 돌아 대서양을 거슬러오른 4만 5,000km항해, 백발 노인이 혼자서 226일 걸려 해낸 일이다.
'혼자서 지구를 돌아 오다니!'
믿어지지 않는 치체스터의 승리는 영국의 승리요, 인간의 승리였다. 5대양을 누비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세웠던 영국 국민들에게는 1580년 세계를 일주한 드레이크경의 후예요 바다의 왕자임을 일깨우는 승리였고, 인류 전체에는 끝없는 모험심과 불가능에 도전하도록 부추기는 승리였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이렇게 논평했다.
'치체스터가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룬 일은 꿈을 가지고 살려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는 진짜 영웅이며, 20세기에 치러진 모험 가운데 최고의 모험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이 얼마만큼 참고 견딜 수 있는지 찾아내는 일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일깨웠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버킹엄 궁에서만 해온 작위 수여 관례를 깨고 그리니치까지 직접 나갔다. 여왕의 칼이 노인의 어깨에 얹히자, 치체스터는 영국 시민으로서 가장 큰 영예인 종신 귀족이 되었다.
변변한 공부를 못한 치체스터의 70 평생은 '집시 좀벌레'라는 요트 이름이 말해 주듯이 떠돌아다니며 모험에 빠져든 삶이었다. 1902년 영국의 데번이라는 어촌에서 목사 집안에 태어난 그는, 친구도 없이 수평선과 파도만을 바라보며 지낸 외톨이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은 가슴 속에는 이미 대양(大洋)이 출렁이고 있었다.
치체스터는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는 열아홉에 뉴질랜드로 건너가 2만 파운드를 벌어 비행기를 샀다. 스물일곱에 유럽 일주 단독 비행에 성공하자, 다음에는 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단독 비행에 도전했다. 그때까지 한 사람(1928년 버트 힝클러)만 성공한 일이었으나 그는 이것도 해냈다.
치체스터는 세 번째 도전인 타스만 해협 횡단에서 살인적인 돌풍에 휘말렸으나, 한 섬에 불시착했다가 비행기를 고쳐서 기어이 건너고 말았다.
네 번째는 최초로 뉴질랜드-일본 항로를 날았고, 다섯 번째로 세계 일주 비행에 나서 일본 가쓰우라에서 이륙하다가 전화줄에 걸려 추락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치체스터는 항공학교에서 독도법을 가르쳤는데, 그 인연으로 나중에 지도 공장을 차렸다. 공장이 들어선 제임스 플레이스는 대서양 횡단에 나서는 요트들이 출발하는 항구였다. 이것이 쉰다섯으로 황혼기에 들어선 치체스터로 하여금 또다시 모험에 뛰어들게 했다. 그는 폐렴을 앓고 한쪽 폐를 잘라냈지만, 안락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기보다는 바다와 싸우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1960년 치체스터는 쉰여덟에 출전한 제1회 대서양 단독 횡단 요트 경기에서 우승했다. 1962년과 1964년에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예순다섯이 되자 일생일대의 명예를 걸고 세계 일주 항해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모험담을 적은 〈외로운 하늘과 바다〉와 〈뱃길을 따라서〉를 펴보라. 갈피갈피에서 오대양의 바람이 짭짤한 냄새를 흩날릴 것이다. 그의 항해일지에서는 투지와 고독이 손끝에 묻어나는 듯하다.
'···내가 이 모험을 계획한 것은 케이프혼 앞바다(드레이크 해로)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지껏 나를 무섭게 한 것들을 다 정복했으니 악마의 바다라 불리는 드레이크 해로도 마땅히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대서양은 너무나 쓸쓸했다. 날치나 몇 마리 보였을까, 물결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외로움이 때도 없이 밀려오곤 했다. 배가 잘 달릴 때면 할 일이 너무 많고, 바람이 자면 우두커니 기다렸다. 어느 날인가는 노래를 틀어놓고 밤을 지새웠다.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었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107일 만에 시드니에 닿았다. 지친 데다 영양실조인지, 20분에 해치울 일을 2시간 걸렸다. 그나마도 몇 분에 한 번씩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젊었다면 이처럼 끈기있게 항해하지는 못했으리라···.'
'···운좋게 가끔 비가 와서 큰 그릇에 마실 물이 꽤 많이 괴어 있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활대에 빗물 모을 파이프를 달았다. 그것으로 하루 0.5리터씩 물을 모았다···.'
'···배가 거의 40도나 기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 배안은 수라장이 된다. 바닷물이 들이치고, 어떤 물건도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물이 얕아졌는지 느닷없이 뱃전에서 물이 찰랑거렸다. 살펴보니 고래 등 위였다. 너무 놀라 갑판으로 뛰어올라 갔는데 별일은 없었다···'
치체스터는 세계 일주 항해를 마친 뒤에도 일흔이 될 때까지 대서양 횡단 경기에 출전했다. 1972년 그가 병든 몸으로 또 경기에 나가자 영국 정부 공군기가 대서양을 뒤져 억지로 모셔왔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지난 1972년 8월 20일 바다의 노병은 사라져 갔다.
▼ 관련 기록은 * 1876~1877년 / 로드 브래시 부부 최초로 요트 세계 일주 * 1898~1895년 / 조슈아 슬로컴 최초 단독 세계 일주(마젤란 해협 통과) * 1966~1967년 / 치체스터 최초 단독 세계 일주(케이프혼 통과) * 1968~1969년 / 로빈 존스턴 최초 논스톱 단독 세계 일주 * 1993.11.21.~1994.5.6. / 마이크 골딩 최단시간 단독 세계 일주(177일) * 1981~1982년 / 존 샌더스 최초로 단독 세계 일주 2회(케이프혼, 플리머스 통과) * 1970년 / 치체스터 대서양 횡단 최단시간 기록(22일 4시간) ▼ 우리나라의 관련 기록은 * 1991년 / 강동석 태평양 단독 횡단(LA-부산) * 1996년 / 강독석 단독 세계 일주(하와이~하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