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유쾌한씨에게는 이 영화를 보기 두려웠다. 예고편을 보면서도 김을분 할머니의 모습이 유쾌한씨에게는 그의 할머니와 오버랩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백숙의 대결처럼, 매일같이 할머니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유쾌한씨에게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난 여드름을 가진 얼굴을 들이미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항상 말끔한 얼굴을 하고 다니면서 말이다. 유쾌한씨는 죄책감을 뒤로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 죄책감이라는 것이 딱히 뭐라 할 것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이비 천주교 신자인 유쾌한씨는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회개하는 기분이랄까. 하!
"집으로...."는 이게 영화가 될까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도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딱히 스토리가 없다. 영화 속에서 스토리 그런거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인가. 아니다. "집으로...."는 리얼 스토리이면서도 분명 영화다.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정향 감독의 연출력에 있다. 77살의 할머니와 7살의 꼬마 아이가 동거 생활을 한다는 스토리 라인 안에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엮어낸 이정향 감독. 단편적인 에피소드만을 떼어놓고 보아도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예고편을 보면서 그런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과성이 없는 단독적인 장면들을 이어 붙이며 영화를 전개해 나가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는 관객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안겨준다. 물론 영화는 할머니와 상우 사이에서 슬쩍 슬쩍 외도를 하기도 한다. 상우와 철수와 소녀(혜정 맞나?) 사이의 에피소드를 끼워 넣었다. 하찮은 소품처럼 느껴지는 3 아이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에피소드는 쓸모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김을분 할머니의 광채 속에서 어색하지는 않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창을 열어 준다. 하나는 영화내내 보여주는 할머니와 상우의 창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는 무얼까. 그것은 상상의 스토리를 펼쳐주는 할머니와 상우 엄마의 창이다. 할머니와 상우의 창은 우리가 바라볼 수 있도록 열려있지만, 할머니와 상우 엄마의 창은 닫혀 있다. 이 창안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집으로..."라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영화는 상우 엄마가 상우를 할머니께 맡기기 위해 자신의 집인 산촌 마을로 돌아오는 것이다. 19살 때 집을 나간 상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 이게 바로 집으로의 시작이다. 관객은 상우 엄마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 할 수 있을 법하다. 그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의 상상 속에 있는 것이다.
영화는 억지 감동이나 울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손수건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 거다.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하염없이 울어야 할테니까.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동의 물결에 대해 얘기할 필요조차 없는 영화다. 그저 보고 울고 그러면 된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우리의 마음은 찌든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情"이라고 새겨진 쵸코파이를 사먹으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