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후 워남블의 밤거리는 마치 시골 아낙네의 치마폭처럼 소소하고 생긋하기만 하다. 고래 관측지로 유명하다는 로건스 비치(Logan's Beach)까지 갔다가 초겨울의 바닷바람만 실컷 맞고 돌아온 우리 가족에게 워남블의 이름 없는 식당은 너무나 포근했다. 별빛 찬란한 시골마을의 희미한 가로등을 돌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정겹다. 숙소 밖의 야외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연 김에 밤의 온기가 느껴진다.
시카코의 지하도로망을 무대로 엽기적인 형제의 스토리를 다룬 "블루스 부러더즈"가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스위트룸의 객실은 두 개의 방으로 나눠져 있어 방마다 TV 등 집기들이 비치되어 있다. 우리 부부와 애들 남매가 각기 다른 방을 사용했다. 쾌적한 시설이 熟眠으로 유도한다. RAA에서 권유하는 대로 Flag(프래그)계열 숙소를 택한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튿날 드디어 우리는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本線道路로의 大長征에 돌입했다. 숙소에서 약 5Km 정도를 달렸을까? 오른 쪽으로 꺽어진 그레이트 오션로드 방향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연이어 우측으로 그림같은 해변이 펼쳐지는 가 싶더니 '런던 브리지' 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런던브리지는 1990년 1월 어느날 저녁 육지에 연결돼 있던 땅이 붕괴된 뒤 형성된 지형으로, 무너진 런던다리를 연상케하는 모양이다. 당시 졸지에 섬에 고립됐던 관광객 두 명은 몇시간 뒤 출동한 헬기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약 4km 쯤 달렸을까, 이번엔 로크 아드 고지(Loch Ard Gorge)가 나타난다. 로크 아드는 1878년 6월 1일 런던에서 멜버른으로 이민오다 이곳에서 난파한 배의 이름으로, 깁이라는 이름의 선장이 해안에 배를 정박시키다가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승객 선원들과 함께 실종된 곳이기에 이 곳의 지명이 로크 아드 고지가 되었단다. 당시 52명의 인명을 앗아갔던 그날의 怒濤가 陰濕한 바위 지형의 절경 속에서 칼날을 숨긴 채 포효하고 있었다.
이어서 우리가 들른 곳은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하이라이트라는 '12사도 바위'(Twelve Apostles), 12사도바위란 이름의 유래는 성경에서 비롯됐겠지만, 20세기까지는 ‘암퇘지와 새끼들'(sow and piglet)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현지 안내표지판은 처음엔 육지였으나 침식작용으로 차츰 분리되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차장옆 휴게소에걸린 12사도바위를 소재로 한 영시가 눈길을 끈다.
...Were you halted marching south,
or anchored climbing to the beach?
Did you yearn for freedom through the endless years?…
남극으로부터의 바람과 남양 대해의 파도에 육신을 깍이고 깍인 12개의 바위가 주홍빛 태양을 배경으로 한 원근투시법 속에 풍파에 시달린 그네들의 스펙타클한 군상을 펼쳐보이고 있다. 비스듬히 일렬 종대로 제식훈련을 하듯 바다 위로 솟아 있는 바위들에게 求愛하듯 달라붙는 거친 파도와 휘날리는 물보라, 안개, 바람 등이 戰慄的 風景畵를 演出하고 있다. '12사도 바위'는 그대로 대자연의 엄숙함이 빚어낸 충격적 파노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