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힐링이다 여행작가 권다현
사람들이 보통 여행을 ‘일상 탈출’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탈출이 아니라 일상으로 잘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에요. 힐링도 마찬가지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힐링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 다시 잘 돌아가기 위해 힐링이 필요한 거죠.
힐링에 대해 묻자 주저 없이 ‘카페에서 책 읽기’를 꼽으셨어요. 평소 이런 시간을 자주 갖나요?
저는 힘들거나 지칠 때 카페에 틀어박혀 책 읽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여행이 업이다 보니 다리를 쉬게 해주는 게 최고의 힐링인 셈이죠. 이번에도 태안으로 여행 가서 하루에 산을 10㎞씩 걷다 왔어요. 평소 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을 많이 소개하기 때문에 발목에 무리가 올 정도로 걷는 일이 많아요.
차 없이 여행하면 한계가 있지 않나요? 대중교통 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는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목적지만을 연결하는 여행을 지양하고, 다른 이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 길 위의 인연들을 찾는 것이 제 일이에요. 차로 가는 건 편하긴 하지만 휙 지나가면서 놓치는 것도 많거든요. 모든 사람이 편하게 여행한다고 해서 여행작가인 저까지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같은 식견을 갖게 되잖아요.
발이 피곤하면 발 마사지를 받는 것도 힐링이 되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육체적인 힐링은 잠깐뿐이에요. 조용한 카페에서 쉬면서 책을 읽는 건 심리적 힐링이기 때문에 여기에 더 가치가 있답니다.
한옥 카페 ‘연(緣, YEON)’을 촬영 장소로 추천해주셨어요. 자주 오는 곳인가요?
여기는 여행자 카페를 콘셉트로 하고 있어요. 주인이 여행 가서 사온 소품들이 눈에 띄지요. 보통 여행자 카페들은 이국적인 느낌을 표방하며 일본식이나 인도식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이곳은 자유로운 느낌의 한옥 카페예요. 제가 한옥 게스트하우스에 관한 책도 낸 적이 있어서 좀 더 친근하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찾아와 그간 못 읽었던 책들을 몰아 읽곤 합니다. 삼청동이 많이 상업화되었지만, 여긴 아직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아요.
또 다른 곳도 있나요?
사직공원 뒤에 위치한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의 카페 ‘사직동 그 가게’를 즐겨 찾아요. 가끔 좀 더 특별한 힐링이 필요하면 남대문에 있는 ‘소금동굴힐링센터’도 찾고요. ‘연’은 낮에 햇살이 예쁘게 비추고, ‘사직동 그 가게’는 조금 복작복작하지만 티베트 공예품들이 많아서 이국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런 힐링타임은 자주 갖나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카페에서 이렇게 쉽니다. 사람이 많이 없는 오전에 와서 편하게 하루를 보내죠.
카페 선정 기준은 무엇이고,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조용하면서 듣기 편한 음악이 있는 곳이어야 해요. 너무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여야 하고요. 지금 흐르는 영화 <원스>의 OST, 이 정도가 딱 좋아요. 책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쉬러 와서 인문학 책을 읽으면 머리가 더 아플 것 같아요.
책을 연달아 세 권 냈는데, 책을 내고 나면 제 안에 있는 마지막 한 문장까지 쥐어짠 느낌이 들어요. 글 쓸 때 제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비워냈으니 쉴 땐 저에게 뭔가를 채워주고 싶어요. 책을 쓸 때는 TV나 음악은 일체 멀리하며 집중하거든요. 그래서 쉴 때는 평소 못 했던 것들을 채우는 거예요.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평소에 많이 채운 것을 쉬면서 비우고 싶겠지만, 저는 그 반대예요. 책을 읽으면 오히려 일할 때 글 쓰기가 더 쉬워진답니다.
힐링을 위해 카페로 직행하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요?
원고가 잘 안 풀릴 때. 그리고 너무 과하게 움직여서 몸이 힘들 때.
여행지에서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갖나요?
네. 커피를 좋아해서 지방을 여행할 때는 그 지역의 로컬 브랜드나 로스팅된 하우스 커피 파는 곳을 찾아요. 지방에서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카페 사장님과 친해져서 온답니다. 누구나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잖아요. 그곳이 저는 카페인 거예요. 단, 꼭 지키는 게 있어요. 여행가들 사이에서는 ‘공정여행’이나 ‘책임여행’이라는 화두가 이슈거든요. 프랜차이즈 커피숍보다는 그 지역 자본으로 운영되는 카페를 찾아야 그 지역 경제가 발전하고, 그래야 저희가 다음에 또 그곳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편의점보다는 구멍가게, 스타벅스보다는 동네 카페를 찾는 거죠. 이번에 갔던 태안 안흥항에는 카페가 없어서 다방에 갔었어요.
요새 힐링이 화두예요. 본인에게 힐링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과 의미가 비슷해요. 사람들이 보통 여행을 ‘일상 탈출’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탈출이 아니라 일상으로 잘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에요. 힐링도 마찬가지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힐링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 다시 잘 돌아가기 위해 힐링이 필요한 거죠. 잡지를 읽다 보니 여행에 관한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서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여행한다(We travel not to escape life, but for life not to escape us).’
여행으로 힐링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때론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힐링 여행을 위한 조언 좀 해주세요.
감동할 시간을 비워놓고 여행 계획을 짜세요. 친구 중에 항상 너무 많은 계획을 짜고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하는 친구가 있는데, 여행지에선 그 친구가 제일 감동이 덜해요. 준비하면서 기대치를 너무 높였던 거죠. 알고 보는 거보다 모르고 보는 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발 한 도시에서 하루 이상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 점심, 저녁마다 풍경이 다르거든요. 너무 많이 준비하고 욕심내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 어느 정도 미련을 남기고 와도 괜찮아요. 그래서 부담 없는 국내 여행이 좋아요. 봄에 가서 부족함을 느끼면 여름에 다시 가서 채우고 오면 되니까요.
힐링 여행지 한 곳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인제의 자작나무숲이요. 자작나무 군락지를 일부러 조성한 곳이긴 해도, 인위적으로 멋을 낸 수목원과는 느낌이 달라요. 숲에 들어가려면 차 없이 3㎞ 정도 트래킹을 해야 하는데, 가는 길도 참 멋집니다. 봄, 가을에 가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