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3월31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
(마 24:36–39) ”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서론 :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동정녀 탄생과 부활의 신앙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상식이나 세상의 역사 속에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을 변형시켜서 설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기독교에만 있는 교리이고 신앙입니다,
◈ 불교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어느 날 80세의 석가모니가 숲속에 있는 대장장이 춘다의 집에 갔는데 그가 공양한 버섯나물을 먹고 식중독을 일으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죽으면서 말했습니다. “죽 끈이 끊어지고 수레바퀴가 무너지는 도다. 모든 인생들이 가는 길을 나도 이제 마침내 가는구나.”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혔습니다,.
◈ 유교에도 부활이 없습니다. 어느 날 제자인 계로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고 계로는 다시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살아 생전의 일도 아직 잘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 그리고 공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공자의 묘가 지금도 있습니다,.
◈ 위대한 철학에도 부활이 없습니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대해 정의를 내리길 “철학은 죽는 연습이다”라고 말하며 죽음의 문제에 통달한 것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웃집에서 닭 한 마리 꾼 것 갚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 역사상에 부활하였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부활이란 말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적용된 것이 기독교가 처음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신앙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죽으심과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 성경 말씀이 당시 제자들의 신앙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모두가 살길을 찾아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부활의 신앙이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야에서 로봇이 등장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자주 보는 서빙하는 로봇이 있는가 하면 공장에서 생산에 투입된 로봇들도 있습니다, 아주 세밀한 공정이 요구되는 자동차 생산하는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것도 로봇이 하는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수술까지 로봇이 한다고 합니다,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부품을 조립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계획하고 입력하여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부터 원하신 뜻대로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예고된 것이고 그것이 사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말은 이미 대제사장이나 장로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들은 말합니다, (마27:63-65)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65,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병사들을 보내서 무덤을 지키게 하였고 무덤은 총독의 인을 쳐서 봉하였습니다,
참으로 모순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따른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도망치고 제각기 갈길을 갔습니다.<두려워 숨고> <갈리리로 가고> <엠마오로 가고> 그런데 예수를 죽인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생전의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뜻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오셨고 말씀 하신 대로 죽으셨고 말씀 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선 것입니다,
1, 영과 육으로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되는 두려움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단절되는 두려움입니다, 더우기 죽음이후 어떻게 되는 지를 알지 못하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으로 사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또다른 삶의 시작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 부활을 말하면서도 그 의미를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의 부활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돌아가셨으나 그 말씀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한다는 식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부활입니다, 세종대왕은 죽었으나 그가 만든 한글은 우리들이 아주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으니까. 세종대왕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 부활을 말 하지만 주님의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교주의 그릇된 예언을 합리화하려는 거짓 주장에 불과합니다,
◈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분명하게 영과 육의 완벽한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마침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도마는 말합니다, (요20:24-25)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런데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말씀 하십니다,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하셨다면 손으로 만질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갈리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찾아가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영과 육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셨다.
요즘 옛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냥 죽거나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정상인처럼 살수있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공 심장, 인공 팔, 다리, 이빨. 가발. 사이버그 인간이 탄생하고 이제 로봇까지 만들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사람들이 만들어 낼수 있는 그런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 거룩하고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십니다,
(고전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여기서 두 가지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어찌 살아 나나> <어떠한 몸으로 부활 하나>
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 아들(왕상 17:17~24),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 4:17~27), 야이로의 딸(막 5:22~43), 나인 성의 청년(눅 7:11~17), 나사로(요 11:17~44), 여 제자 다비다(행 9:36~43), 등이 죽었다가 살았으나 그들의 소생은 주님의 부활과는 전혀다른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들의 몸과는 다른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땅에다가 사과씨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곳에서 사과나무가 나와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에서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부활 할 때에 몸은 같은 몸이지만 내용중 일부가 달라 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은
◈ 시공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세상적인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문이 닫힌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가운데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 세상에 법칙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행1:8-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보면 구름이 밑에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정말 포근하게 보입니다, 그곳에 떨어지면 아주 폭신하게 받아줄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구름 위에 설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하신 몸은 우리 같은 인간의 몸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쇠하거나 병들지 않는 몸입니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5.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인간의 몸은 쇠하고 병들고 썩어집니다, 그러러나 주님의 부활하신 몸은 쇠하거나 병들거나 썩어질 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부활할 때의 몸은 신령한 몸일 것입니다. 부활의 몸에 대하여 바울은 썩어질 것으로 심지만 썩지 않을것으로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약한 것으로 심으나 강한 것으로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육의 몸으로 심지만 영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영광스런 몸인것 처럼 우리의 부활의 몸도 신령하고 쇠하지않고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할것입니다,
결론 : 부활의 신앙은 신앙의 최고봉입니다, 모든 것을 믿어도 부활을 믿지 못하면 그는 세상에 매인자되고 죽음에 매여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세상 적은 것을 초월합니다, 세상에 매이지 않는 신앙이고 세상을 이기는 신앙이고 영원한 소망으로 꿈을 꾸는 삶을 살게 합니다,